박근혜는 두가지가 없다, '정권 불복' 우려해야

[게릴라칼럼] 선출과정과 절차적 정당성 잃은 정부의 적반하장

등록 2013.10.29 11:19수정 2013.10.29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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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안하무인이다. 2012년 대선 정국에서부터 시작된 국정원의 선거개입 논란은 2013년 그 실체가 확인되면서 뜨겁게 불타올랐다. 광장에 촛불이 다시 모이고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도 진행됐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정당한 심리전'이라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입맛에 맞지 않는 검찰총장과 국정원 사건 수사팀장도 날아갔다. 권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겠다는 태도다.

점입가경이다. 국정원만이 아니라 군 사이버사령부까지 댓글공작에 나선 사실이 드러났다. 민관군 합동 심리전 이야기도 나온다. 또 어디서 어떤 의혹이 제기될 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지난 대선에 공권력이 선거에 개입한 정도는 가히 '총체적'이라 할만하다. 민주화의 중요한 기준이 정보기관과 군기관의 국내 정치 개입 차단이라고 할 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시계는 이미 문민정부 이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마치 온 국민이 타임머신이라도 탄 모양새다.

적반하장이다. 민주당이 2012년 대선을 '3.15부정선거'에 비유하자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3·15 부정선거라는 말을 입에 올리면서 정권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사회 불안과 혼란을 가중시키며 일부 대선 불복 세력과 연합하는 것은 다음 지방선거를 위해 정략적 접근"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또한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1960년 자행된 3·15 부정선거는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될 정도로 부인할 수 없는 불법선거였지만 지난 대선은 역대 어느 대선보다 공정하고 깨끗하게 치러진 선거였다"며 어이없는 반박을 이어나갔다. 군과 국정원의 선거개입의혹을 제기하면 모두 '사회전복을 꿈꾸는 종북세력'이라고 치부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은 지난 대선에서 군과 정보기관이 어떤 수준으로 개입했는지를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와 여당은 그것을 두고 "대선 불복이냐?"라는 질문만 던지고 있다. 국민의 의문에 오히려 정부와 여당은 동문서답씩의 질문만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대답을 강요하니, 이제 답을 내놀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2008년 촛불은 왜 '이명박 정권 퇴진'을 외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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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와 최경환 원내대표가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 남소연


우리 사회가 1987년 6월항쟁과 뒤이은 6.29선언으로 민주화의 경로를 걸어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시 민주화 운동의 핵심적 요구는 선거의 복원, 즉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의 민주적 정당성 복원이었다.   

국가 통치세력이 가지는 민주적 정당성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선출과정의 민주적 정당성이다. 민주주의 이론의 권위자인 로버트 달은 대표의 선출, 자유롭고 공정한 주기적 선거, 표현의 자유, 대안적인 정보 원천, 결사의 자유, 모든 정치공동체 구성원을 포괄하는 것을 민주주의의 핵심으로 보았다. 이것은 한 정치공동체의 민주적 정당성을 자유롭고 공정한 국민의사의 형성과, 이로 인한 대표의 선출로 보고 있는 것이다.


1987년 6월항쟁 이전이 민주적이지 않다고 평가하는 것은 무엇보다 민주적으로 대표를 선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 역시 극도로 억압되었으며 국가권력의 언론통제로 인해 대안적인 정보를 구할 수 있는 경로 역시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결사의 자유도 보장되지 않았으며 반공독재이데올로기에 근거해 모든 정치공동체를 인정하기도 않았다. 따라서 1987년 6월항쟁에서 선출과정의 민주성 복원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물론 6.29선언 이후에도 선출과정의 민주성이 제대로 보장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각종 선거관련법의 불합리함은 물론 여전히 국가권력은 각종 정치적 이벤트를 통해 여론조작에 힘썼고, 무엇보다 지역이데올로기를 동원해 국민의사의 왜곡을 시도했다. 따라서 한국사회에서 선출과정의 민주적 정당성이 어느 정도 복원된 시점은 1997년 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부의 등장 이후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은 선출과정의 공정함만을 묻는 것에 머물지 않았다. 공정하게 선출된 정권이라 할지라도, 선출 이후의 통치과정에도 민주적 정당성이 있느냐를 묻는 것까지 나아갔다. 

한국사회에서 선출과정의 민주적 정당성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면, 2008년 촛불은 바로 통치과정의 민주성 문제를 제기하는 시도였다. 절차적으로 전혀 하자가 없었던 이명박 정부였지만, 촛불들이 거침없이 '이명박 정부 퇴진'을 외쳤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알다시피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한미FTA의 선결조건으로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수용하면서 온 국민의 반발을 불러왔다. 국민들의 반대 의사가 명확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수입을 강행하려던 이명박 정부에 대한 저항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자체에 대한 반대보다는 통치과정의 민주적 정당성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성격이 컸다.

국가 기관의 총체적 대선 개입, 민주주의의 분명한 후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은 선출과정의 민주성마저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점에서, 우리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을 심각하게 후퇴시켰다.

물론 댓글 공작을 통한 여론 조작 시도가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2002년 대선에서 패배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2003년 7월 'i-한나라 추진기획단'을 꾸리면서 사이버 공간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고, 당시 최병렬 대표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사이버 전사 1천명 양성론'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심각성은 국가 최고의 정보기관과 군이 국내정치 개입 금지라는 민주주의 최소 합의선을 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활용해 그 실체조차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규모 여론조작을 자행했다는 점이다.

더구나 2012년 대선은 여당 후보와 야당 후보가 박빙의 선거를 펼쳤기 때문에 국가차원에서 이루어진 대규모의 여론조작의 심각성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국민들이 '실체를 밝히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은 이런 상황에서는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반응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 드러난 의혹만으로도 '대선과정이 공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만일 이런 일이 1997년 대선이나 2002년 대선에서 일어났다면, 이 나라의 자칭 '애국보수'들은 잠자코 있었겠는가? 문제는 이런 '당연한' 항의를 어떻게 해소할 것이냐다. 대선과정의 불만과 의문을 해소할 방법은 침묵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사법적 판단밖에 없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명백한 실체를 드러내고 대선개입 정도를 가늠하며,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운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은폐와 부인, 또 다른 조작과 왜곡으로 대응했다. 게다가 국정원 대선개입사건과 관련 검찰총장을 비롯해 수사팀장까지 물러나게 만드는 악수도 뒀다. 이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법리판단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한 순간에 무너뜨렸다.

게다가 불법적인 선거개입을 의심받고 있는 국정원은 남북정당회담 녹취록 논란과 소위 이석기 의원의 '내란예비음모' 사건을 주도하면서 여전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재발 방지'만이라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조차 주지 못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은 선출과정의 민주적 정당성이 심각하게 의심받는 정권이 통치과정, 즉 문제해결 과정에서도 전혀 민주적 정당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두 종류의 민주적 정당성이 모두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대선에 불복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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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앞에서 국정원 선거개입과 노동탄압을 규탄하는 촛불 집회에 참석한 시민이 '박근혜 하야하라'가 적힌 피켓과 촛불을 들고 마지막 공연순서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 이희훈


이 상황이 지금처럼 흘러간다면, 정부와 여당은 대선 불복은 고사하고, '정권 불복'을 걱정해야할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 대선의 잘못을 인정하고 국정원 해체를 포함한 전면 개혁을 추진하는 등 개혁의 주체가 된다면 지난 대선의 정당성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선출과정에 대한 의심에도 불구하고 통치과정의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지금처럼 내란예비음모 사건이나 남북정상회담 녹취록과 같이 철지난 공안통치로 현재의 위기를 넘어서려는 꼼수에만 집착한다면, 선출과정의 민주적 정당성만이 아니라 통치과정의 민주적 정당성 역시 지속적으로 훼손될 수밖에 없다.

대선 불복이냐고? 그것은 이제까지 박근혜 정부와 의혹 당사자들의 몰염치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정한 법리다툼의 문제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제대로 따져볼' 가능성이 사라지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많은 사람들은 '정권 불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대선에 불복해야 하는지, 승복해야 하는지 공정하게 따져보자는 사람들에게서 그 가능성조차 빼앗아 가면서, 과연 이 외에 어떤 대답을 기대할 수 있을까? 결국 '정권 불복' 여론은 박근혜 정부 스스로가 만들고 있는 것이다. 종북세력 탓할 일이 아니다. 
#대선불복 #국정원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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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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