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경영참여가 사회주의적 발상?
재벌에 집중된 한국경제, '리폼' 필요"

[기획-독일을가다⑤]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크리스토퍼 폴만 한국사무소장 인터뷰

등록 2013.11.04 13:16수정 2013.12.1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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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독일을 찾았습니다. 왜 독일이냐구요? 우선 우리와 독일은 비슷한점이 많습니다. 2차 대전후 분단국가였고, '라인강'과 '한강'의 기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뤘던 것도 그렇습니다. 게다가 나라 크기도 비슷하고, 천연자원이 별로 없이 인적자원에 의존하고 수출국가라는 점까지. 하지만 최근 10년사이 한국과 독일은 전혀 달리 가고 있습니다. 한국은 비정규직을 포함한 노사갈등은 여전하고, 계층간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면서 국민들의 사회경제적 민주화 요구가 거셉니다. 독일은 세계 경제위기속에서 지속적인 성장과 복지국가를 유지해가고 있습니다. 독일모델을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때 '유럽의 병자'였던 독일이 어떻게 '유럽의 강자'으로 부활했을까요. <오마이뉴스>는 궁금했습니다. 10여일동안 독일 곳곳을 다녔습니다. 거대 자동차회사 노동자부터 기업인, 교수, 일반시민 등 다양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을 해봤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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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의 폴만 소장. ⓒ 김종철


"재단에서 한국 부임을 권했을 때 흔쾌히 받아들였어요. 이 지역이 역동적이고 흥미진진하잖아요. 그나저나 한국에서는 시간이 굉장히 빨리 가는 것 같아요. 특히 한국 정치를 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많이 일어나죠. 한 번도 지루하지 않아요."

"지루하지 않다"는 말이 와 닿았다. "오늘 취재일정이 좀 많아서 사진기자와 함께 못 왔다"고 양해를 구했을 때도 그는 서툰 한국말로 "이석기?"라고 반문했다. 기민한 반응이었다. 실제로 <오마이뉴스>가 그와 만났을 때, '내란예비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은 의혹 제기 하루 만에 언론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의 말마따나 지루할 틈 없이 뉴스가 날로 터지는 한국이다. 게다가 지난 3년간 그를 찾는 곳도 많았다. 그는 독일의 경제·통일 모델을 통해 국내 문제의 해법을 찾고자 야권의원 80여 명이 구성한 '혁신과 정의의 나라' 포럼에도, 정의당(옛 진보정의당)의 '독일 사민주의 현황과 개혁논의' 강연에도 있었다. 민주당의 정책연구소인 민주정책연구원과는 '복지국가의 가치와 정당의 역할'이라는 주제의 공동 국제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바로 독일 사회민주당(이하 사민당)의 싱크탱크이자 대표적 비영리 정치재단인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의 크리스토퍼 폴만 한국사무소장이다. 2010년 한국 부임 이후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란 한국의 화두에 대해 조언해온 그를 지난 8월 30일 종로구 재단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바빴다. <오마이뉴스>와 마주 앉자 "시간이 없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라고 묻던 그였다. 그만큼 한국의 '독일 배우기' 열풍이 거세다는 얘기다. 그도 이를 알고 있었다. 폴만 소장은 "독일이 유럽의 다른 국가에 비해 경제적으로 안정된 면모를 보이고 있고 독일의 현 상황을 한국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실현했다고 한국인들이 보는 것 같다"고 평했다. 즉, 독일의 경제민주화나 복지사회, 경제적 성과 등에 대한 관심이 지금 표출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오마이뉴스>가 그에게 묻고 싶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노사공동결정권 시행되면 재벌총수들 마음대로 의사결정 못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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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만 소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실천돼야 한다"면서 현재의 개성공단 외에도 인적교류나 금융·자원교류가 가능한 '특별지구'를 추가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 김종철


그 중 후퇴 논란이 일고 있는 '경제민주화'에 대해 먼저 물어봤다. 폴만 소장은 "한국의 경제가 몇몇 재벌에 집중돼 다른 기업들이 '건강한 경쟁'을 할 수 없다고 본다"면서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의 '리폼', 경제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그는 "경제민주화 이슈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라며 한국의 대재벌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크게 벌어져 있다고 우려했다. 사실상 추진 동력을 상실한 노사공동결정권 도입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가 지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민주화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죠. 한국의 대재벌과 중소기업 간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어요. 현재 한국의 재벌은 국내 총생산량의 75%를 차지하고 있는데 2008년만 하더라도 재벌의 총생산량 비중은 55% 정도 였어요. 5년 만에 20%P나 증가했다는 건 심각한 양상이죠. 또 한국의 노조나 노동자의 기업 경영 참여에 대해서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 재계에서는 독일식 노사공동결정권에 대해 '사회주의 제도'라고 도입을 반대하고 있는데요.
"노사공동결정권 도입으로 독일이 얻은 가장 중요한 변화는 '평화'예요. 노사 모두 공존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갈등도 훨씬 줄어들었죠. 오히려 사회주의적 발상과는 반대로 볼 수 있죠. 강성노조가 연성화되는 효과도 있으니까요."

- 그렇다면 재계가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뭐라고 보나요?
"만약 공동결정권이 시행된다면 재벌총수는 지금처럼 '톱-다운(Top-down)' 식으로, 마음대로 의사결정을 못할 거예요. 독일의 대기업들은 공동결정권을 실행하고 있지만 절대로 경쟁력을 잃지 않고 있어요. 노사공동결정권에 대한 토론을 도외시하고 경제민주화를 얘기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 독일에도 대기업은 있지만 한국과 같은 재벌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한국의 재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독일에도 '가족소유경영' 형태의 대기업은 많아요. 예를 들자면, 보쉬나 베엠베(BMW), 폭스바겐, 그리고 (독일 최대 미디어그룹인) 베르텔스만 등이죠. 특히 베르텔스만은 전적으로 가족기업으로 운영되죠. 다만, 한국의 재벌처럼 한 시장을 점령하다시피 해 경쟁 자체를 차단하진 못하죠. 법으로 막고 있으니깐요. 장기적으로 봤을 때도 몇몇 재벌에 경제력이 집중되는 것은 마이너스 요인이라고 봐요. '건강한 경쟁'을 못하니깐요. 그래서 한국경제는 경제민주화라는 '리폼(reform)', '경제개혁'이 필요한 것 아닐까 생각해요."

"파견노동자 증가했지만 노조의 '단체협약' 정책으로 감소 추세 접어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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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에버트의 한국사무소 입구. ⓒ 김종철


한국의 대표적인 노사 갈등 현안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독일식 해법' 역시 경제민주화에 기초하고 있었다. 안두순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4월 '경제민주화 : 유럽의 경험과 한국적 접근'을 통해 "유럽에서는 이해당사자들의 참여와 협의를 통한 의사결정과정의 관리장치 마련이 경제민주화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독일 역시 2000년대 초·중반 사민당을 이끌던 슈뢰더 전 총리가 단행한 '하르쯔 개혁'으로 비정규직이 크게 증가한 상태다. 정원호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은 지난 5월 발표한 '독일 금속노조의 파견 근로 규제 : 전략과 성과'를 통해, "(독일의 노동시장은) 소위 하르쯔 개혁에 따른 규제 완화로 단시간 노동자, 기간제 노동자, 파견 노동자 등 비정규직이 크게 증가하여 현재는 전체 피고용자의 40%에 육박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폴만 소장은 독일 금속노조의 '단체협약 전략'이 일정정도 성과를 거둬, 최근 파견노동자를 포함한 비정규직 수가 감소 추세에 접어들었다고 설명했다.

- 독일도 하르쯔 개혁 이후 파견노동자가 크게 늘고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요.
"파견노동자 수는 현재 약간 감소 추세에 접어들었어요. 특히 독일 금속노조의 정책 영향이 컸어요. 금속노조는 최근 몇 년간 파견노동자들이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파견노동자로 채용됐더라도 일정 기간 지나면 정규직과 비슷한 혜택을 입도록 한 거죠. 이 때문에 처음부터 파견노동자보다 정규직을 채용하는 게 낫다고 기업들이 판단하게 됐어요."

- 한국은 비정규직이 2년 이상 근무시 정규직으로 전환토록 하고 있는데 독일도 마찬가지인가요?
"그렇죠. 그래서 파견노동자라 할지라도 단체협약을 적용받을 수 있게 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2년의 근무기간이 끝나기 전에 해고당할 수 있으니깐요.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성을 보장하는 법적 체계나 기업 내부의 자체 규정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한국처럼 비정규직이 대량 생산될 수 있어요. 다만,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규정만 있다면 비정규직은 필요하다고 봐요. 더구나 한국과 독일처럼 수출지향적인 나라에서 그렇죠. 예를 들어 주문이 밀려들면, 비정규직을 채용해서라도 일해야겠죠. 물론 (비정규직에 대한) 근로조건은 좋아야겠죠."

- 한국의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동일한 노동을 하면서도 임금 격차가 커 양극화가 심각해졌다고 봐요. 그런데 독일은 파견노동자와 정규직 간 임금 격차가 거의 같거나 10% 정도 차이 난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파견노동자가 (정규직 임금의) 80~90%까지 받는다고 알고 있어요. 그러나 독일 역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60% 정도 밖에 못 받았죠."

"젊은 세대에게 통일부담 숨기거나 미화해서는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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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지난달 총선에서 또 다시 기독교민주당의 메르켈 총리를 택했다. 제1 야당인 사회민주당 역시 과거보다 표는 더 얻었지만 정권을 잡기엔 역부족이었다. 대신 친(親)기업 성향의 자유민주당은 아예 의회 진출을 하지못했다. 사진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괴테 광장 ⓒ 김종철


파견노동자 수가 감소하고 있는 점이 당시 총선을 한 달 앞두고 있는 사민당에 도움이 될까 물었다. '하르쯔 개혁'은 독일의 거시경제지표를 살렸지만 사민당이 정권재창출에 실패한 주요 원인이 됐다. 오히려  기독교민주당(이하 기민당)을 이끄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하르쯔 개혁'의 성과를 얻었다는 게 주된 평가다. 

그는 "메르켈 총리가 계속 총리로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 희망이 별로 안 보인다"면서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이어, "2005~2009년 당시처럼 기민당과 사민당이 '대연정'을 할 가능성도 있지만 지난 대연정의 성과를 메르켈 총리가 다 가져갔다는 내부 반론도 만만치 않아 (기민당의) '대연정'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의 예상처럼, 독일은 지난 9월 22일 메르켈 총리를 다시 한 번 선택했다. 다만, 기민당과 연정을 택했던 친(親)기업 성향의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의회진출을 용납하지 않았다. 제1야당이 된 사민당은 현재 메르켈 총리의 연정제안에 ▲ 부자증세 ▲ 최저임금제 도입 ▲ 6개 장관 배분 등의 조건을 내건 상태다. "흔쾌히 받아들이기 힘들다"던 폴만 소장의 말처럼 연정 협상이 이번 해를 넘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마지막 주제는 '통일'이었다. 폴만 소장은 지난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 방북하는 등 남북관계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10년에는 통일부의 '통일재원논의추진단'의 초청을 받아 통일세 등에 대한 조언을 한 바도 있다.

폴만 소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실천돼야 한다"면서 현재의 개성공단 외에도 인적교류나 금융·자원교류가 가능한 '특별지구'를 추가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무엇보다 그는 통일 문제에 있어서도 '이해당사자들의 참여와 협의'를 중시했다. 비단, '경제민주화'가 경제라는 한 분야에 고착된 '개혁'이 아니라 한 사회의 공존과 발전을 위한 '구조'에 가까움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독일의 통일 과정에 비춰봤을 때, 현재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은 것에 대한 답변이었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통일이 왔을 때나, 통일 과정 중에 (남한에서) 북한의 사회적 여건을 좋게 하기 위한 투자를 해야 하고 그에 대한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밝혀야 해요. 특히 젊은 세대에게 이를 숨기거나 미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남한 국민들에게도 (통일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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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에버트 #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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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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