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만으로 폭탄 투하... 이래도 미국은 우방?

[서평] <폭격-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을 읽고

등록 2013.11.01 19:12수정 2013.11.01 19:12
6
원고료로 응원
우리에게 미국은 무엇인가? 또 어떤 존재인가? 다소 해묵은 물음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80년대 학생운동권식 질문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제 이를 한 번 뒤집어 질문해보자. 미국에게 한국 또는 한국인은 무엇이었고, 어떤 존재였나?

미국에게 한국은 어떤 존재였을까


a

<폭격-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 ⓒ 창비

최근 출간된 <폭격-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아래 폭격)은 이러한 역(逆)질문의 계기를 제공하며, 독자로 하여금 이를 고민할 필요성을 던져준다.

우리에게 그간 미국은 은인이자 공산군의 불법 남침에 맞서 우리의 자유와 독립을 지켜준 우방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이러한 인식은 국가적 공식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이미 이승만은 1951년 3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민들이 (미군 폭격에 의해) 자기 집이 파괴되는 것을 눈앞에서 보는 것은 무서운 일이나 그들은 그것을 묵묵히 참고 차라리 가옥이 파괴될지언정 적에게 나라를 뺏기어 독립된 국가에서 자유민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원치 않는다"라고 피력한 바 있었다.

이승만은 미공군의 폭격이 한국 민간인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기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국가주의적 논리를 덧씌어 그것이 '어쩔 수 없는 희생'임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현재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0년 이명박 정부 하의 진실화해위원회는 "미군에 의한 희생사건 상당수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한국전쟁 당시 한국이 공격을 받은 측이며, 국가의 존망이 걸린 긴박한 시기였다는 점에서 군사적 필요가 민간인 보호 규범 준수보다 더 컸다고 판단하였고, 이에 대부분 민간인 희생을 '부수적'인 피해"로 보기로 결정했다.


이를 보면 한국정부가 미국정부의 대변인이라는 느낌마저 준다. 한국정부가 자국민 보호의 의무를 방기한 채 미국의 행위를 미국 정부보다 더 옹호하는 행태는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당장 최근만 보더라도 그러하다. 박근혜 정권은 미 국가안전국의 도청 의혹이 제기되었음에도 침묵으로 일관하였고,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을 때도 이에 이의조차 제기하지 않았다. 한국민은 자국 정부를 신뢰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러한 국가적 공식 기억의 틀 속에서 기존의 연구들은 국제 정치 속 미국의 정책이나 전략적 의도에만 주목했지, 미국의 '군사적 행위'는 무시하였다. 그러나 1950년 이후 한반도에 거주하던 민간인들이 직면한 상황은 오히려 후자였다. 사회사 연구란, 다수의 사람들이 실제 체험했던 일이자, 그것이 사회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남긴 영향을 탐구하는 것이라 정의할 때, 종래 한국전쟁 연구는 김동춘 교수의 <전쟁과 사회> 정도를 제외하면, 이를 소홀히 하였다.

그런 면에서 <폭격>은 미국의 '행위' 그 자체에 주목함으로써 당시 미국에게 한국인은 어떤 존재였고, 남북 민간인들에게 미국은 어떤 존재였는지를 살펴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한국전쟁이 지닌 성격의 일면을 해명하는 데 매우 유효한 시각을 제시해준다.

'야만'이 지배한 한반도, 모두가 적이었다

저자는 한국전쟁기 미공군 문서를 남북한, 중국, 소련의 문서들과 비교 분석한 결과, 미공군 폭격 양상이 단계적으로 변화해가는 양상을 제시할 수 있었다. 개전 초기의 군사목표 정밀폭격 방침은―이마저도 사실상 수사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지상군 전선에 대한 근접지원작전 방침이 결정되면서 차츰 '육감'에 의존한 무차별적 대량폭격으로 변화하였다. 이는 남한지역 도시, 농촌마을, 교량 폭격과 민간인 살상으로 이어졌다. 이때 '흰 옷을 입은' 남한지역 민간인과 피난민, 마을들은 사실상 전부 적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1950년 11월 5일을 고비로 다시 한 번 크게 바뀐다. 중국군 개입으로 수세에 몰린 맥아더는 이미 예견한 '최악의 대량학살' 방침을 그대로 실현해버렸다. 즉 초토화작전의 결정이었다. 그간 미공군내 일각에서 주장하던 네이팜탄 사용이 마침내 실현됐다. 미공군은 네이팜탄을 소규모 촌락에까지 대량으로 투하하는 한편, 네이팜탄 투하 이후 화재를 진압하고자 나선 민간인들에게 기총소사를 퍼부었다. 그들은 한반도의 북쪽 지역을 조직적으로 소각해나갔다. 전후 북한의 반미주의는 이때부터 잉태되기 시작했다.

또 정전협상이 교착되자 미공군은 '항공압력전략'에 따라 폭격을 정치적 압력수단으로 정식화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보급품 집적소를 폭격한다고 했지만, 기실 그것은 민간인 거주 지역이었고 집을 잃은 사람들이 거주한 토굴이었다. 또 벼농사지역을 침수시킬 목적으로 저수지를 폭격했고, 곡식이 익어가던 논밭을 폭격했다. 이러한 비인도적, 범죄적 폭격은 '죽이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

이상의 사실은 한국전쟁이 미국에게 있어 '한국인의 자유'와는 무관한 '그들을 위한 전쟁'이었음을 명쾌하게 보여준다. 이 책에 서술된 미공군의 폭격 양상 관련 대목을 읽으며 끊임없이 뇌리를 맴돈 생각은, '과연 미국이 자국 땅에서 벌어진 전쟁이라면, 이 정도로까지 폭격을 퍼부었을까'라는 점이었다. 그들에겐 흰옷을 입은 남북 민간인 모두가 '타자'였고, '적'이었다. 오로지 '기능주의적 전쟁기계'로 양성된 조종사들로선, 이 땅과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아무런 애정이나 책임감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적으로 '의심'되거나 향후 적이 사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설이라는 '느낌'이 오면 폭탄을 '소진'하고 돌아왔다. 그들은 자신이 투하한 폭탄이 '참혹한 생지옥'을 야기할 것이라는 점을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찍이 에릭 홉스봄은 <극단의 시대>에서, '총력전의 시대'에 접어들어 스위치 하나로 적을 살상할 수 있게 되면서 인간의 야수성이 강화되었다고 설명했던 바, 한국전쟁기 미공군의 폭격은 이러한 통찰에 꼭 부합하고 있었다. 어쩌면 한국전쟁기 미공군의 폭격은 20세기 인간의 야수성과 야만성이 가장 집약적으로 표출된 사례 중 하나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20세기 한반도는 '야만성이 지배한 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국가는 그 '야만성'을 가리켜 '야만'이라 말하지 못하게 했다. 야속한 세월은 그렇게 흘러갔다. 이제 이 땅의 사람들은 높은 빌딩과 아파트 숲 속에 살며 불과 60년 전 이 땅이 겪었던 야만적 경험을 완벽하게 망각해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세월의 야만성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망각의 순간,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이다. 과거를 직시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 위에 평화의 가치가 확고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한국전쟁을 보는 시각을 교정할 필요가 있다. 즉, '국가주의적 관점'을 벗어나 '인민의 관점'으로 전환해나가야 한다. 인민은 국가주의적 논리에서 탈피해 자신의 입장에서 전쟁을 반대하고, 그것이 지닌 야만성에 반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시각 전환 없이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시각 교정'의 계기를 던져주는 책이다.

폭격 -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

김태우 지음,
창비, 2013


#폭격 #한국전쟁 #네이팜탄 #무차별 폭격 #항공압력전략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그래서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대자보가 대학가에 나붙고 있다
  3. 3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동작을] '이재명' 옆에 선 류삼영 - '윤석열·한동훈' 가린 나경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