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의 자살, 그 이면에는...

[서평]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경제 이야기 <김원장 기자의 앵그리 경제학>

등록 2013.11.03 14:09수정 2013.11.03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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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31일, 삼성전자서비스의 협력업체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3살.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더 많이 남은 청년이, 돌도 지나지 않은 딸도 있는 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더군다나 이 나라 젊은이들이 그리도 가고 싶어 하는 '삼성' 유니폼을 입고 일하던 이가 말이다.

삼성전자가 올해 3분기에만 올린 영업이익이 10조 원이니, 하루에 천억 가까이 이익을 낸 셈이다. 대단하다. 하루에 천억이라니. 모르긴 몰라도 이는 절대 저절로 얻어지는 이익이 아닐 게다. 엄청난 천재 하나가 만들어내는 이익도 아닐 게다.


삼성전자가 영업이익을 발표하는 날이면 온 국민이 숨을 죽인다. 동계올림픽 개최지 발표하던 날, 안경 쓴 근엄한 아저씨가 마이크에 대고 나지막이 "퓅촹"이라고 말할 때처럼. 그리고 언론은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사상 최대', '단군 이래 최대'라는 수식어로 극찬한다. 박수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마치 삼성전자의 이익이 내 삶을 곤궁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 같고, 내 임금을 올려줄 것 같고, 내 집을 마련해줄 것 같다. 아, 삼성전자여 어서 더 큰 이익을 내게 보여줘!

그러나 그 돈이 다 어디로 가는가. 대기업들이 국내에서 늘리는 일자리의 대부분은 비정규직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소득은 정체된다. 큰 이익에 같이 기뻐하고 박수쳐줬는데,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에 힘도 실어줬는데, 난 왜? 그곳의 노동자들은 왜?

그런데 왜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불행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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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장 기자의 앵그리 경제학> 우리를 화나게 하는 26가지 경제 이야기가 담겨있다. ⓒ 해냄출판사

<김원장 기자의 앵그리 경제학>에서 설명하는 월마트의 경우를 보자. 참, 미리 말해두고 싶다. 월마트의 경영철학은 매우 숭고하다. 월마트의 직원들은 '우리 월마트는 사람이 곧 보물입니다'라는 조끼를 착용하고 일했다고 한다. '또 하나의 가족'을 자처하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처럼 말이다. 인류애가 철철 넘치는 기업들이다.

월마트의 근로자는 미국 전체 근로자의 1퍼센트나 된다. 하지만 연간 평균 임금은 미국 4인 가구 기준 빈곤선인 2만2천 달러(약 2470만 원)보다 낮은 2만 744달러(약 2330만 원)수준이다. 또한 월마트에서 팔리는 다수의 상품들도 대부분 저개발 국가나 중남미 노동자들이 만든 것들이다. 질은 낮지만 저렴한 제품을 원하는 저소득층이 주요 고객이다. 한 마디로 월마트의 직원도, 고객도, 상품을 만드는 노동자도 가난하다.


그러나 월마트는 가난하지 않다. 2011년 기준, 월마트는 매출 4210억 달러(약 473조 4145억 원)에 영업이익 160억 달러(약 17조9920억 원)를 기록했다. 저임금의 근로자와 저임금의 다국적 생산자가 저소득층 고객을 상대로 천문학적인 매출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쌓인 돈들은 월마트의 주주와 경영진에게로 향한다. 월마트의 주주들이 배당으로 받는 돈은 미국 노동자 하위 40퍼센트가 벌어들인 소득의 총합보다 많다.

이해가 되는가? 아마 그들이 말하는 '보물'과 '가족'은, 우리가 알고 있는 뜻과 좀 다른 용례를 가졌나보다. 보통 이렇게 소통의 차이가 발생하면, 상대방은 '화'가 난다. 그리고 '화'가 쌓이면 '폭발'한다.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경제 이야기

승자독식 시대. 그런데 승자들이 사회적으로 부담하는 세금은 오히려 줄었습니다. 글로벌 대기업들의 가문의 영광은 계속됩니다. '닥치고 탐욕 시대'. 그 탐욕의 끝에서 위기는 되풀이 됩니다. 우리가 원했던 새로운 시대는 더 멀리 달아납니다. 함께 부자가 되는 시스템이 멈춘 시장에서, 누군가 부자가 됐으니 이제 누군가 가난해질 시간입니다.(<김원장 기자의 앵그리 경제학> 232쪽)

<김원장 기자의 앵그리 경제학>에는 화가 나고 당최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이 담겼다. 대표적으로 부동산, 저축성 보험, 소득세, 약탈적 대출 등이 그렇다. 부동산 쪽을 한 번 볼까.

집을 그렇게 지어대는데 왜 '내 집'은 없을까. 그냥 느낌뿐일까. 아니다. 통계 수치도 이를 증명한다. 국토해양부에서 2010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주택 보급률은 101.9퍼센트다. 가구보다 집이 더 많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자가주택 거주율은 54.2퍼센트로 나타났다. 지금도 해마다 25~35만 가구의 아파트가 새로 공급된다. 그런데 왜 '내 집'은 없나.

책에서 설명하는 내용을 간단히 옮기면 이렇다. 1~2인 가구가 늘면서 전월세로 남의 집에 사는 2~30대는 증가했다. 새로 공급되는 주택의 가격은 너무 비싸다보니 새 주택의 상당수는 이미 집이 있는 유주택자가 구입한다. 평균 저축률이 3퍼센트도 안 되는 도시 근로자가 수억 원의 주택을 분양받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결국 부족한 것은 집이 아니라 돈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규제를 풀어 건설경기를 부양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이미 가구당 평균 4560만 원의 빚이 있는데, 또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독려한다.

이렇게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경제가 담겼다. 26가지 이야기가 들어있는데, 줄이느라 애먹었을 저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또한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일정한 순서성이 있다는 데 있다. 경제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기초가 없는 사람도 저자가 이끄는 대로 충실히 따라오면 화가 나는 현상과 원인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경제학 지식은 덤이다.

생산의 과실을 독점하는 계층의 탐욕을 억제할 제도적 장치는 여전히 의회 사무실 구석에서 주인이 불러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생산의 과실을 고루 나누는 것에서부터 새로운 시대는 시작될 것입니다.(<김원장 기자의 앵그리 경제학> 305쪽)

저자는 시장이 지금보다 더 공정하고 근사해지길 바란다고 했다. 그 출발점은 '지금의 위기에 대한 냉정한 비판과 그 비판에 대한 젊은 시장 참여자들의 공유'일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의 바람대로 나누는 경제로의 이행은 전지전능한 누군가가 해주는 것이 아니다. 땀과 노력에 대한 공정한 과실을 얻지 못하는 시장은, 장기적으로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이 지극히 당연한 이치를 왜 모를까.

'삶이 그대를 속인다면, 슬퍼하거나 노여워' 할지 말지는 각자 판단해도 된다. 그러나 경제가 그대를 속인다면, 그냥 슬퍼하고 노여워하자. 반칙과 속임수가 횡행한다면 그래도 된다. 아니, 응당 그래야 한다. '방관하는 소비자'로 머물 것인가, '참여하는 시민'이 될 것인가. 화가 난다, 화가 나!

"그동안 삼성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었어요. 배고파 못 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전태일님처럼 그렇진 못해도 전 선택했어요.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 지난달 31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이 남긴 글.
덧붙이는 글 <김원장 기자의 앵그리 경제학>, 김원장 지음, 해냄출판사 펴냄, 2013.09, 1만4천5백원

김원장 기자의 앵그리 경제학 - 우리를 화나게 하는 26가지 경제 이야기

김원장 지음,
해냄, 2013


#김원장 #앵그리 경제학 #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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