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직후 교원노조 출신 팔순 인사 "전교조 뭉쳐야"

창원 김지영씨, 5·16 뒤 탄압 받아... "정부는 전교조 분열 노려"

등록 2013.11.05 11:05수정 2013.11.05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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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쳐야 한다. 저 사람들이 노리는 것은 이간질이며 분열이다. 전교조를 다른 단체로 분열하려고 생각한다. 분열하지 말고 뭉치면 법외노조라도 역할을 훌륭하게 해낼 수 있다."

팔순의 '교원노조' 선배는 박근혜 정부로부터 '노조 아님' 통보를 받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아래 전교조) 후배들한테 이같이 당부했다. 김지영(82·창원)씨는 4일 저녁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전교조의 단결을 강조했다.

김지영씨는 1958년 울산의 한 시골 중학교에서 교사로 있다가 이듬해 부산으로 옮겼다. 1960년 4·19혁명 직후 '교원노조'가 결성되었는데, 그는 '부산 중등 교원노조' 상임집행위원을 지냈다. 당시 상집위원은 모두 7명이었는데, 그가 제일 나이가 적었다. 그는 그때 31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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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에 사는 김지영(81)씨는 1960년대 교원노조 활동을 하다 해직되었다. ⓒ 윤성효

허정 과도내각과 장면 정권은 교원노조 합법화에 미온적이었다. 4·19혁명 직후지만 교원노조는 설립신고필증을 교부받지 못했고, 그러는 사이 5·16군사쿠데타를 맞았다. 교원노조 설립은 좌절되고 말았다. 그러나 당시 교원노조운동은 노동운동을 사무직 노동자까지 확대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씨는 4·19혁명 직후 교원노조 가입은 폭발적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교장·교감·행정실장(서무과장)만 빼고 교사와 서무과 직원들은 모두 교원노조에 가입할 정도였다는 것.

"당시 정부가 교원노조 설립신고필증을 받아주지 않았던 이유는 교원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법외노조였지만, 교원노조 가입률은 99% 정도였다. 자유당정권 하에서 교사들은 온갖 탄압을 받았을 때였고, 당시 교사들은 문교부가 시키는 대로만 했고, 말 한 마디 할 수 없었다. 그런 압제 속에 4·19혁명이 일어나고, 자유가 폭발하니까 너도나도 교원노조에 가입했던 것이다. 내가 재직하고 있던 학교만 해도 교장·교감·서무과장 3명만 빼고 다 가입했으니까."

김씨는 "상집위원 활동을 하는데, 다른 여섯 분은 내보다 10살 위였고, 대부분 일본에 있는 대학을 나와 교사로 있었던 분들이었다"고 말했다. 교원노조는 당시에도 집회를 열었는데, 주로 서울과 대구에서 열렸고, 그는 대구 집회에 참석했던 적도 있었다.


"집회는 주로 통일 관련 요구를 했다. 이승만 정권 때 국가보안법 피해를 많이 입었는데, 4·19혁명 뒤 만들어진 교원노조는 국가보안법 반대를 외쳤다. 그리고 남북학생회담 성사를 외쳤다. 5·16쿠데타가 일어나기 이틀 전 판문점에서 남북 학생 대표들이 회합을 하기도 했다. 교원노조는 남북 학생 회합을 지지했던 것이다. 그런데 5·16이 터지고 말았던 것이다."

5·16쿠데타가 터진 뒤 교원노조는 바로 탄압을 받았다. 김씨는 "나는 그때 부산에 있었는데, 교원노조뿐만 아니라 혁신정당과 각급 노동단체 간부들도 영장 없이 예비검속에 걸렸던 것"이라며 "부산의 한 장소에 모였는데, 1000명은 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개 5월 18일부터 20일 사이에 붙잡혀 왔다. 제헌절(7월 17일)에 풀어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나와서 교단으로 복귀한 사람들도 있었고, 한 10% 정도는 군사쿠데타 정권이 시키는 대로 가르칠 수 없다고 해서 교단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 뒤 김씨는 대전형무소로 끌려가 구속되었고, 공주로 이감되었다. 2년간 교도소에서 복역했던 것이다.

"7월에 풀어준 뒤에 형사들이 미행했던 것이다. 당시 쿠데타정권은 교원노조 등 진보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거리만 있으면 잡아넣으려고 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내가 그 덫에 걸렸는지 모른다. 당시 내한테는 큰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통일운동 관련 서적을 보관하고, 노동자들을 모아놓고 쿠데타정권에 거슬리는 이야기를 했다는 게 이유였다."

김씨는 최근 전교조의 법외노조 논란이 일어나면서 그때 '교원노조' 활동을 했던 인사들을 찾으려고 했지만, 많이 찾을 수가 없었다. 당시 교원노조 했던 인사들이 모여 '전교조 후배'들을 격려하는 광고를 하기 위한 의도였다.

"그때 간부 중에는 내가 제일 나이가 적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다들 돌아가셨는지 생존자를 찾기가 힘들다. 마산에 한 분이 살아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김씨는 박근혜 정부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었지만 전교조는 더 단단해질 것으로 보았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조합원 6만 명인 전교조를 무시하고 탄압하고 있다"며 "탄압하면 조합원들이 흩어질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인데, 오히려 탄압으로 인해 결집시킬 가능성이 높고, 이 정부가 혹을 떼려다가 붙이는 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5·16 때는 군사깡패들이 법 없이 할 때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몇 년 동안 군복을 입고 설치다가 유신헌법을 만들었다. 18년이나 독재정치를 했다. 지금은 민주정부인데 그렇게 못한다."

김씨는 "그때 회유당했다면 교단에 복귀했을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며 "교사들을 탄압했던 정부의 말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역사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후배 교사들이 단결해서 싸워 주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요즘 창원에서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열리는 '촛불집회'에 자주 나온다. 특히 정부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어버린 뒤부터 그는 촛불을 들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것이 후배들을 위하는 길이라 여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교조 #교원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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