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 시작된 뒤에도 삼겹살 먹으며 기다렸어요"

[엄마를 만났다] 자연출산으로 딸 낳은 박미애씨

등록 2013.11.08 17:16수정 2013.11.08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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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장, 제모, 촉진제, 무통주사, 회음부 절개. 이 다섯 가지 모두 출산 시 의사가 개입하는 병원출산율이 99% 이상인 우리나라에서 출산할 때 당연하게 겪는 코스로 인식되고 있다. 집에서 아기를 낳거나 의사 개입 없이 아기를 낳았던 건 원래부터 없었던 것 마냥, 의료진 중심의 병원출산은 우리나라의 당연한 출산방식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최근 행복한 출산의 권리, 스스로의 출산을 지향하며 병원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산모들이 있다. 1% 미만의 산모들, 자연출산을 선택한 이들이다. 자연출산은 의료진의 개입 없이 출산의 순간을 온전히 자기만의 인내의 시간으로 감수하고 몸이 뜻하는 대로 자연스럽게 출산하는 것을 말한다. 관장, 촉진제, 무통주사 없이도 스스로 출산할 수 있다는 사실에 성취감을 느끼고 행복함을 느끼는 것, 이게 자연출산의 매력일 것이다. 

"아이가 나오던 그 찰나의 순간이 선명해요. 애가 딱 나오면서 정신이 또렷해지고 맑아지면서 정말 신기했어요."

15개월 된 딸 지안(가명)이를 키우고 있는 박미애(33)씨는 자연출산으로 아이를 만난 순간을 기억해내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자연출산이 아닌 건 상상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박 씨. 그에게 출산은 고통의 순간이 아닌 기쁨과 환희, 최고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던 인생 최대의 경험이었다. 지안이와의 첫 만남, 소중했던 출산 이야기를 지난 7일 그의 자택으로 찾아가 들어봤다.

물에서 태어난 지안이

"아이가 물을 정말 좋아해요. 엄마 다음에 배운 말이 물, '무이'라고 말하거든요. 물만 보면 좋다고 돌진하는데, 물에서 태어나서 그런가 봐요."

박씨는 자연출산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 욕조에서 지안이를 낳았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는 물에서 낳기를 희망했다. 임신 20주가 되던 때 자연출산을 결심했던 박씨. 특별한 계기는 없었지만, 병원보단 자신을 믿어보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자연출산으로 이어졌다. 어린 시절 심한 아토피로 병원을 다니던 그는 병원 진료에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병원을 끊고 식이요법 등 자연치유로 아토피를 이겨냈었다. 스스로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은 자연출산을 선택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 


"출산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고 자신한테 맞는 걸 택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자연출산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심한 아토피를 이겨내면서 그냥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안다'라는 믿음이 자연스레 자연출산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하지만 한국은 '어떤 출산을 하고 싶다'고 선택할 수 없이, 첨단화된 병원만을 고집하고 산후조리원으로 향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일본에 살던 박씨는 임신 30주쯤 한국으로 들어왔다. 박씨가 경험한 일본은 한국처럼 병원출산이 성행하지만 그래도 산모 스스로 출산환경을 선택할 기회는 있었다. 대형병원이든, 시골의 아주 작은 산부인과든, 집에서든 원하는 곳에서 출산하면 된다고. 그는 "한국에선 무통주사는 무조건 맞는 걸로 알았는데, 일본은 출산에 대해 자신이 환경을 선택할 수 있었다, 병원 팸플릿에 '저희 병원은 무통주사를 놓지 않는다'고 써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의료환경도 그랬다. 일본에선 선택적으로 하는 임신 전 검사도 한국에선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었다. 박씨는 "건강한 산모였기 때문에 임신부당뇨검사를 안 해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20주 넘으면 당연히 검사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안 하면 어떡하느냐. 우리 병원에서 출산할거냐 말거냐' 묻더라"며 "결국 자연출산 전문병원을 찾아갔고, 그곳 원장님이 '검사는 산모의 선택'이라고 말해주셔서 검사하진 않았다"고 전했다.

"자연출산? 특별하지 않아요"

병원출산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한국에선 자연출산이라 하면 거창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흔히 볼 수 없고 '의사 없이 어떻게 아이를 낳을까'하는 두려움에 상상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또 자연출산을 위해 식단관리, 체력관리, 출산연습 등 다양한 것들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감을 느끼는 산모들도 있다. 

하지만 박씨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식단관리보다도 체력관리가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아기 낳는 건 마라톤 뛰는 것만큼 체력 소모가 심하기 때문에 엄마가 힘들면 출산을 포기할 수 있으니 체력관리를 해야 한다, 저는 특별히 한 건 없고 많이 돌아다녔다"고 설명했다. 

출산도 특별함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새벽 6시부터 진통이 오더라고요. 일본에 있던 남편에게 소식을 전하고 남편이 오길 기다렸죠. '남편이 올 때까지는 배가 아프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짐볼에 앉아 TV 보면서 진통을 견뎠어요. 엄마는 밥을 먹어야 힘을 줘서 애를 잘 낳는다고 삼겹살을 구웠고 동생이 쌈 싸주면 짐볼에 앉아 받아먹었죠."

병원에서 진통하는 것보다 집에서 진통을 겪는 게 훨씬 편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10여 시간을 견뎠다. "남편이 공항에 도착했단 전화를 받자마자 정말 아프기 시작했다"는 그는 밤 10시가 돼서야 자연출산병원으로 향했다. 보통 자연출산이라 하면 집에서 하는 출산을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자연출산 전문병원을 찾기도 한다. 물론 병원에서의 의료적 개입은 없다. 어두운 조명 아래 오롯이 산모와 남편만이 출산의 주인공이 된다.

출산의 주인공은 산모와 남편

자연출산 시 남편은 산모의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한다. 보통 자연출산의 경우 남편을 비롯해 '둘라(Doula)'라는 산모의 지지자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함께 하는데, 박씨는 둘라 없이 남편과 함께 했다. 일본에서 일을 하던 남편은 자연출산을 준비하는 다른 부부들처럼 함께 출산교육을 받지 못했다. 박씨가 교육을 받은 후 전화로 이것저것 얘기해 준 내용이나 동영상을 보며 준비한 게 전부임에도 박씨의 남편은 여유롭게 출산을 도왔다. 박씨가 고양이자세를 한 채 고통을 이겨내면 남편은 진통을 경감해주는 마사지를 해주고 몸을 쓰다듬어줬다. 체력이 떨어지지 않게 꾸준히 물을 먹여주는 것도 남편의 몫이었다. 가끔 조산사가 들어와 산모의 상태를 체크할 뿐이다. 

"자유롭게 분만실을 왔다갔다할 수 있고 다양한 자세로 출산을 기다리는 거죠. 일반병원은 누워서 견뎌야 하니, 힘들잖아요. 사람이 너무 아파서 신경이 곤두설 때 몸을 터치해주면 터치해주는 쪽으로 신경이 가면서 고통이 줄어든다고 해요. 남편이 둘라 역할을 잘 해줬죠."

자궁 입구는 열렸지만 아이가 내려오지 않았다. 일반병원에선 의사나 간호사가 산모의 배를 눌러 억지로 아기가 나오게 하지만 박씨는 기다려야 했다. "순간 너무 힘들어서 '배부른 상태로 살면 안 될까?'라는 생각을 했다"는 박씨. 그러다 거울 속에 새카만 머리가 보였다. 

"남편이 제 뒤에서 안고, 저는 앉은 자세로 있는데 그 밑에 거울을 놔뒀거든요. 갑자기 자궁이 열리면서 거울 속에 아이 머리가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거예요. 그러다 힘을 주니, 아이가 갑자기 쑥 나오더라고요."

이야기를 전하던 박씨는 당시로 돌아간 듯 환희에 찬 표정이었다. 신음소리 하나 없이 아이를 낳은 뒤, 태지도 벗겨지지 않은 미끌미끌한 아이를 처음으로 안았다. 그는 "아이를 낳고 몸이 너무 가벼워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이 장난 아니었다, 정신이 또렷해지면서 정말 행복했다"고 전했다.

"자연출산은 내 몸을 믿을 수 있는 기회"

출산의 기쁨에 밤도 꼴딱 샜다는 부부. 병원 1인용 침대에 남편, 아이와 나란히 누워 아이의 자는 모습을 보며 행복을 만끽했다.

"아기를 낳자마자 '또 낳을 수 있겠냐'는 물음에 '네'라는 대답이 절로 나왔어요. 힘들지만 이 정도는 내가 할 수 있겠구나, 자연출산병원이 아니더라도 나 스스로 혼자 다 할 수 있겠구나는 자신감이 생겼죠."

지안이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사랑이 가득 묻어났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이, 그 아이를 처음 만난 순간의 기억은 평생의 추억이 됐다.

그는 "아기를 키우면서 사람이 되는 것 같다. 애 키우기 전에는 몰랐던 게 많은데 많은 걸 느낀다"면서 "한 명인데도 이정도인데 하나 더 낳으면 얼마나 더 큰 기쁨일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게 최고의 일'이라는 말에 동감하기 시작했다고.

"자연출산이 낫다, 어떤 게 낫다고 감히 말할 순 없죠. 하지만 자연출산을 망설이는 사람에겐 말하고 싶어요. '자연출산은 내 몸을 믿어볼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요. 사실 관장도 '이게 자연관장인가' 싶을 정도로 출산 전 저절로 화장실에 가는 경우가 많아요. 무통주사 맞으면서 진통 경감시킬 수도 있죠. 하지만 내 몸이 강한 진통을 겪고 이완되는 것을 언제 오롯이 느낄 수 있겠어요. 무서울 수 있지만 그걸 이겨냈을 때의 기쁨과 환희는 인생의 엄청 큰 경험인 것 같아요. 한번 도전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출산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경험일 것이다. 그 방식이 어떠하든 생명의 탄생은 아름다운 일이다. 박씨에게 최고의 순간을 안겨 준 딸 지안이, 마지막으로 그는 지안이에게 사랑의 말을 전했다.

"나 혼자 있을 때는 이 세상이 어떻게 돼도 상관없었던 것들이 이젠 남의 일이 아닌 게 됩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 환경도 깨끗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내 아이가 살 곳이니까요. 아이가 자기 자신을 알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 사랑하고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을 알고, 하고 싶은 대로 살았으면 좋겠어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자연출산 #굴욕 3종세트 #병원 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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