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 어디까지 돌려야 할까

[소박한 결혼 프로젝트⑨] 우리만의 청첩장이 나왔다

등록 2013.11.23 13:45수정 2013.11.23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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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8년간의 연애 끝에 남자친구 '곰씨'와 결혼식을 했습니다. 신부와 신랑이 주인공이 되는 결혼식,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 준비하는 결혼식, 모두가 즐거운 결혼식. 제가 꿈꾸던 결혼식인데요. '소박한 결혼 프로젝트'는 성공했을까요? 그 이야기를 공개합니다. - 기자말


청첩장이 나왔다.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가장 욕심냈던 것 중 하나를 꼽으라면 청첩장일 것이다. 인터넷에서 고를 수 있는 기성의 청첩장이 아닌, 우리만의 개성과 이야기가 담긴 특별한 청첩장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곰씨와 내게 청첩장을 직접 만들 '재주'는 없었기에, 친구의 재능을 빌리기로 했다. 인턴 활동을 함께했고 지금은 동화를 그리고 있는 친구가 떠올랐다. 평소 친구의 '손꾸락 그림'이 좋아서 청첩장을 만든다면 꼭 친구의 그림을 넣고 싶다고 생각해온 터였다. 곰씨도 친구의 그림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친구가 '손꾸락'으로 그린 청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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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정성껏 만들어준 청첩장. 마음에 쏙 든다. ⓒ 홍현진


친구는 "정말 내가 그려도 괜찮겠냐"며 흔쾌히 승낙했다. 볕 좋은 일요일, 대학로에서 곰씨, 나 그리고 친구 셋이 모였다. 친구에게 밥과 커피를 대접(?)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청첩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청첩장 만드는 건 처음"이라며 부담스러워하던 친구는 이야기가 무르익자 "한 번 해볼게, 할 수 있을 거야"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우리 욕심 때문에 친구에게 괜한 부담을 주는 건 아닌지, 미안했다. 게다가 업체를 통해 알아보니 추석 전에 청첩장이 나오려면 적어도 목요일에는 시안을 넘겨야 한단다. 맙소사, 여유 부리고 있었는데 사흘 밖에 안 남았다.

그리고 사흘간, 친구와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청첩장을 만들어나갔다. 곰씨와 내 모습을 그린 캐리커처는 물론이고, 청첩장 앞뒷면의 '우리 결혼합니다', '행복하게 살게요' 문구 역시 캘리그래피를 배운 친구가 직접 썼다. 친구의 정성이 어찌나 고마운지, '이 은혜, 뼈에 새길게'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친구가 그림과 디자인을 완성해가는 동안, 곰씨와 나는 청첩장 한 면을 채울 '초대의 말'을 준비했다. 식상하지 않은 말을 찾기가 어찌나 어렵던지... 얼마 전, 한 선배의 청첩장을 받고 '오글거린다'고 했던 것이 후회됐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고민하다, '꾸밈없이, 진솔하게 우리 이야기를 쓰자'는 결론을 냈다.

2013년 가을, 저희 결혼합니다. 9년 전 처음 만난 스물한 살 그때도 가을이었습니다. 이듬해 봄, 연인이 되었고 어느덧 8년이 흘렀습니다.

가장 기쁜 순간도, 가장 힘든 순간도 늘 함께 했습니다. 20대의 수많은 경험과 도전도 서로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였고 가장 힘이 되는 동반자였습니다.

저희 두 사람, 이제 평생을 함께하려 합니다. 서로 아끼고 배려하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겠습니다.

결혼식은 소박하게 준비했습니다. 주례도, 화려한 웨딩드레스도 없지만 대신 두 사람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담으로 노력했습니다. 참석해주셔서 축하해주시고 응원해주세요.

드디어 시안을 보내던 날, 우리는 친구와 업체 측으로부터 몇 번이고 '괜찮겠냐'는 이야기를 들어야했다. 먼저, 청첩장에 '누구누구의 장녀', '누구누구의 장남'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께서 서운해 하실 수도 있지만 부모님의 결혼식이 아닌, 우리 두 사람의 결혼식이니까. 신랑 이름이 신부 이름보다 먼저 들어가는 것도 바꾸고 싶었다. 청첩장 앞면에는 '곰씨♥현진'이라고 신랑 이름을 먼저 적고, '모시는 글' 아래에는 '신부 홍현진*신랑 곰씨 드림'이라고 신부 이름을 먼저 썼다. 업체에서는 '배상'이 올바른 표현이라고 했지만, 조금 더 편한 표현을 쓰고 싶어서 봉투 겉면에도 '드림'이라고 적었다. 대신 부모님용 청첩장은 봉투를 따로 찍고, 기존의 '격식'을 갖췄다. 

"식구 별로 없다"더니... 밥 모자라면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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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큰 집에서. 열심히 청첩장 봉투에 넣는 중. 엄마와 큰 엄마가 작성한 하객 리스트가 보인다. ⓒ 홍현진


그렇게 나온 청첩장을 추석 때 들고 갔다. 기차 안에서도 '너무 튀나', '너무 알록달록한가' 내심 걱정했는데 어른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엄마도, 아빠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청첩장"이라며 몇 번이고 들여다봤다. 고등학생 사촌동생도 "귀엽다"며 좋아했다.

청첩장이 나오자, 진짜 고민이 시작됐다. 청첩장을 어디까지 돌릴 것인가. 결혼식을 하겠다고 결심한 이후, 나는 줄곧 '작은 결혼식'이 하고 싶었다. 정말 가까운 가족, 친지들만 초대해서, 맛있는 밥 한 끼 대접하며 이야기도 나누고 노래도 부르고. 하지만 그런 식의 하우스 웨딩은 오히려 비용이 더 많이 들었다.

일반 예식장이 아닌 공공기관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고, 3월에 결혼식장을 잡을 때까지만 해도 예상 하객은 200명이었다. 뷔페 수용인원도 그 정도였다. 상견례 때 이 점을 이야기했고, 양가 부모님 모두 "우리는 식구가 별로 없다"며, 각각 50명씩만 초대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큰집에 가서 예상 하객 리스트를 주욱 뽑아보는데 70명 가까이 됐다. 하긴 아빠가 8남매, 엄마가 4남매니까, 아무리 부산에서 간다고 해도 애초부터 50명은 '미션 임파서블'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리스트를 적어나가는 엄마와 큰 엄마 옆에서 "부를 사람만 불러", "엄마 직장 아줌마들은 왜 가는 건데", "이 사람은 누군데, 본 적도 없는데"... 라며 닦달을 했다. 엄마는 "정작 오는 사람은 얼마 안 될 것"이라며 나를 안심시키려고 했다.

곰씨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가족들과 영화 <관상>을 보고 나오는데 곰씨에게 전화가 왔다. 온가족이 함께 보러 간 영화인데 초반에는 재밌던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지지부진하게 늘어져 살짝 짜증이 나있던 참이었다.

"우리는 최대 100명 정도 올 것 같은데."

나는 언성이 높아졌다.

"이제 와서 결혼식장을 바꿀 수도 없는 거고. 밥 모자라면 어떻게 할 거야."

문제는 가족뿐만이 아니었다. 곰씨와 나, 둘 다 직장 생활을 하고 있으니, 누구에게는 청첩장을 주고 누구에게는 청첩장을 안 줄 수는 없었다. 그 이외에 일적으로 알게 된 사람들은 어쩌지.

"결혼식 때도 안 부르면 그 관계는 정말 끝이야"

친구들은 더 걱정이었다. 한 때는 친했지만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몇 년 동안 얼굴 본 적 없는 친구들…. 몇 년 간 연락 안 하고 지내다가 '나 결혼해'라며 뜬금없이 연락하는 건 정말 싫은데. 게다가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대부분 부산에 있으니 결혼식 때문에 서울까지 와달라고 하기도 미안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자, 지난해 4월 결혼한 친구가 말했다.

"일단 부르기는 다 불러. 나도 결혼식 때 '뻘쭘하다'는 이유로 친구들 많이 안 불렀는데 서운해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반대로 나도 그런 이유로 초대 못 받아서 서운한 적도 있었고."

그 친구가 했던 진짜 '무서운 말'은 이거였다.

"몇 년 동안 연락 안 했던 친구들도 결혼식 계기로 다시 인연을 이어갈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런데 결혼식 때도 안 부르면 그 관계는 정말 끝이라고 보면 되는 거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냥 남들처럼 일반 예식장에서 했어야 하는 건가. 하지만 어쨌든 결혼식은 해야 하니까,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먼저 청첩장은 '가까운 이들에게 돌리되, '좋은 날'에 마음 상하는 일이 없도록 유연하게'라는 기준을 세웠다. 피로연 업체 측에 음식을 좀 더 해줄 수 있는지 물어보고, 결혼식장 근처에 따로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을 하나 빌리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작지도 크지도 않은 결혼식'을 하게 되었다.
#소박한 결혼 프로젝트 #결혼 #결혼식 #청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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