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절인배추 사서 김장하고 싶다, 제에발~

[공모-김장이야기] 내년에는 얼마나 더 힘들까

등록 2013.11.21 12:23수정 2013.11.21 12:23
2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절여서 씻어 놓은 배추. ⓒ 정현순


"엄마 벌써 배추를 다 씻어놨네. 왜 혼자 이렇게 많이 했놨어. 우리 오면 하지. 병나려고."
"아빠가 배추를 목요일(14일에) 뽑아 와서 노느니 슬슬 했더니 잘 절어서 일찍 씻었다. 그렇지 않으면 너네 오면 씻으려고 했는데."


"엄마 내년부터 우리도 절인 배추 사서 하자."
"엄마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부터 기운이 쭉 빠진다."

지난 주말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다고 하자 남편은 마음이 급했는지 주말 농장에서 배추와 무를 모두 뽑아왔다. 날이 추워지면 배추는 괜찮아도 무는 빨리 얼기 때문이라고 한다. 집에 김장거리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있자니 마음이 편치 않아 슬슬 일을 시작했다. 배추 60포기, 무 30개.

이제 시작인데... 기운이 쭉 빠진다

딸아이한테는 토요일에 오되 천천히 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금요일 오후부터 혼자 배추를 다듬기 시작했다. 배추 다듬기 2시간, 저녁 먹고 오후 11시부터 배추를 절이기 시작했다. 한두 시간이면 절이기가 끝나겠지, 했지만 다음날 오전 2시나 되어서 배추 절이기가 끝이 났다. 몇 시간을 쪼그리고 앉아서 배추를 절이고 나니 일어나기가 너무나 힘이 들었다.

지난 봄에 허리를 다친 것이 아직 다 낫지를 않고 조금만 힘든 일을 하면 허리가 부러질 것처럼 아프곤 한다. 그런 허리는 좀처럼 펴지지 않아 한동안 구부리고 뜸을 들이고 난 후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아이고, 아이고 허리야~" 소리가 절로 나온다.


뒷설거지를 대충하고 허리에는 한방 파스를 잔뜩 붙인 후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깊은 잠은 잘 수가 없었다. 3~4시간 후 절인 배추를 뒤집어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늦게 잠자리에 들었는지라 몇 시간 후에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허리를 다잡고 겨우 일어서 배추를 뒤집어 놓으려고 하니 생각보다 잘 절어 2~3시간 후에는 배추를 씻어야 했다. 잠시 자리에 누워 있다가 오전 8시에 일어나 따끈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배추를 씻기 시작했다.

아파트 살림이 그러하듯이 베란다나 목욕탕 등 어디 넉넉하게 넓은 자리가 없다. 남편이 씻어준다고는 했지만 마음이 놓이지도 않고 내가 해야 그나마 빠르기 때문에 혼자 씻었다. 배추는 보편적으로 적당하게 잘 절었다. 지난해에는 딸아이한테 해보라고 했더니 소금 양을 맞추지 못해 배추가 살아서 밭으로 갈 정도였다. 2년 전에는 나와 딸아이 둘이 절였는데 소금을 너무 많이 뿌려 절인 지 4시간 만에 씻어야했다.

절인 배추를 샀더라면...

김장은 배추가 잘 절여졌는지 잘 안 절여졌는지가 맛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하다. 배추를 다 씻고 나니 오전 11시 정도가 되었다. 아침도 안 먹고 힘든 일을 했으니 배가 고팠다. 대충 아침을 먹고 또 다시 김장 준비. 김장 하기 2~3일 전 마늘은 다 빻아 놓았다. 그리고 나머지 대파, 쪽파, 갓 등은 남편이 전날 모두 다듬어 주었다. 나는 그것들을 씻고 무도 씻어 놓았다.

a

씻어 놓은 무 ⓒ 정현순


늦은 아침을 먹고 이리저리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니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기운이 쫙 빠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도 할 일은 태산인데. 만약 절인 배추를 샀더라면 김장의 절반은 먹고 들어갈 수 있는 건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올케도 작년에 우리 밭에 가서 직접 배추를 뽑아 아파트까지 나르고 나니 김장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기운이 빠져 일을 할 수가 없더란다. 우리와 겹치니 내가 가서 도와줄 수도 없는 일이고. 하여 올케의 친정에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그렇게 힘들기도 하고 올케도 허리가 좋지 않아 올해는 절인 배추를 사서 한다고 했다. '생각 잘했다'고 했다. 우린 올해도 배추를 주말농장에서 나르고 아파트로 또 올렸다. 그것도 남편과 나, 단 둘이.

김장 다음날, 아픈 허리 끌고 한의원으로

아무튼 난 잠시라도 허리를 펴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남편에게 무채를 썰라고 했다. 몇 개를 썰고 있으니 딸과 사위 손자들이 온 것이다. 일을 많이 해놓은 것을 보면서 모두 미안한 생각이 들었나보다. 오자마자 사위가 무채를 썰기 시작했다.

다 썬 무채에 고춧가루, 파, 마늘, 생강, 젓갈 등을 넣고 힘 좋은 남편과 사위가 버무렸다. 그리고는 온 식구가 둘러 앉아 배추소를 넣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손자녀석들도 거들고 나섰다. "자 너희들이 먹을 것은 너희들이 김치를 만들어" 하는 제 엄마의 특명아닌 특명이 떨어졌다.

a

드디어 배추소를 넣다 .. ⓒ 정현순


배추소를 넣는 것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골고루 소를 넣어야하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 딸아이가 "엄마, 내년에는 절인 배추 사서 하자"고 말하니 남편이 "올해는 배추가 싸서 괜찮았지만 내년에는 배추가 비싸질 수도 있어"라고 한다. 옆에서 듣고 있던 사위도 "아버님 말씀이 맞아. 뭐든지 그렇잖아" 한다.

그 말도 맞다. 그런데 난 이젠 절여진 배추를 사서 김장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게 든다. 하지만 남편의 유일한 취미생활이 주말농장에서 농사 짓는 것이니 단호하게 배추 심지 말라는 말도 못하겠고.

올해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내년에는 한 살 더 먹으니 얼마나 더 힘들까? 하는 걱정이 지금부터 드는 것은 그 다음날 부터 2~3일 동안 아픈 허리를 이끌고 한의원에 다녔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마도 김장증후군은 아닐런지.
덧붙이는 글 김장 응모글
#김장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주로 사는이야기를 씁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2. 2 "일본정치가 큰 위험에 빠질 것 우려해..." 역대급 내부고발
  3. 3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4. 4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5. 5 '김건희 비선' 의혹, 왜 자꾸 나오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