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전 찍은 사진, 드디어 보냈네요

중고등학교 동창회 행사에 다녀와서

등록 2013.11.20 11:57수정 2013.11.20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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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밭을 배경으로 단체사진. 일찍 출발하거나 식당으로 직행한 동창들이 빠졌다. ⓒ 조종안


 "제42회 군산 회원들! 일요일 10시 동창회 사무실 집결! 모두 산행합시다. 위하여!"


지난 15일(금) 군산중고등학교 제42회 동창회 문희주 총무에게 두 번째 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이다. 문 총무는 17일(일) 오전, 재경 동창들과 군산시 옥산면 청암산(117m) 옥산저수지 일대 트레킹을 마치고 점심이 예정되어 있으니 빠짐없이 참석해달라고 당부했다. 

우리 기수는 69학번으로 1982년 가을 중·고교 동창회를 만들었다. 모임은 월례회와 총동창회 행사 등 1년에 14~15회 가진다. 그럼에도 월례회 참석 한 번 못 하고 해를 넘기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워하다 열흘 전 첫 문자를 받고 달력에 메모부터 했다. 지난 7월 하순, 딸이 결혼했는데, 몇 달이 지나도록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다. 그래서 미안함이 더했다.

행사 전날 밤에는 천둥과 낙뢰를 동반한 늦가을 비가 무섭게 쏟아졌다. 낙뢰 조심하라는 경고 문자까지 뜨고, 동창회 행사가 취소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심란했다. 이런저런 잡념으로 새벽에 잠들었다가 눈을 뜨니 오전 8시 20분. 높고 푸른 청잣빛 하늘을 대하니 기분이 상쾌했다. 집결 시간에 늦을까봐 아침도 거르고 집을 나섰다.

오전 9시 45분 동창회 사무실에 도착하니 자물쇠가 잠겨 있다. 영문을 몰라 두리번거리는데 반가운 얼굴이 나타난다. 대전에서 내려왔다는 오정석. 안경 너머로 느긋하게 웃는 이마에 주름만 몇 개 늘었지, 모습은 옛날 그대로다. 이어 동창회 관련 일에 두 번째가라면 서운할 정도로 열정이 대단한 전성식 회장이 소형 트럭을 몰고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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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누는 동창들. ⓒ 조종안


옥산저수지로 이동했다. 저수지로 집결한 회원들이 합해지니 순식간에 20여 명으로 불어났다. 얼마 전 정년퇴직하고 손자·손녀 재롱 보는 재미로 지낸다는 완국이가 "허리 아파서 산행을 못 하겠다"며 손사래를 친다. 통증도 전염되는지, "관절 때문에 트레킹은 못하고 오랜만에 동창들과 점심이나 먹으러 나왔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모두 세월 탓으로 돌릴 수밖에.


서울에서 내려온 동창은 24명(여성 포함). 고헌영 재경 총무는 서울 회원들의 뜨거운 열의를 전했다. 그냥 참석해달라고 했는데도 영건이(재경회장)는 버스에서 마실 음료와 푸짐한 음식을, 정환이는 뜨끈뜨끈한 연잎 밥을, 기오는 삶은 계란 한 판과 소주를, 주원이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육에 김치와 새우젓까지 가져왔다는 것. 그는 "기오는 행사 때마다 계란을 삶아오고, 수육은 주원이 노모(84세)가 삶아줘 더욱 맛있고, 고마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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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아름다운 청암산과 옥산저수지. 외국의 어느 휴양지를 떠오르게 한다. ⓒ 조종안


옥산저수지는 일제강점기(1939)에 축조됐다. 해방 후에도 상수원(제2수원지)으로 사용하다가 1963년 보호구역 지정으로 출입이 통제됐다. 그 후 45년이 지난 2008년 해제되면서 구불길(구슬뫼 길) 코스로 개발됐다. 반세기 가까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보존가치가 높은 생물과 방풍림, 습지 등이 잘 보존되어 생태탐방 명소가 되었다.

청암산(일명 '샘산') 일대 '구슬뫼길'은 지명(玉山)에 나타나듯 저수지를 둘러싸고 이어지는 자그만 산봉우리들이 작은 구슬을 꿴 것처럼 아름답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걷기 예찬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자연과 호흡할 수 있는 산책로와 등산로를 따라 청암산에 오르면 아스라이 보이는 군산 시내와 금강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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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뚝방길. 고향의 향수가 진하게 느껴졌다. ⓒ 조종안


일행은 간단한 설명을 듣고 트래킹을 시작했다. 산책길을 따라 이어지는 능선과 두둥실 떠가는 구름이 거울처럼 반사되는 호수, 청잣빛 하늘이 조화를 이루면서 멋을 한껏 더한다. 동심으로 돌아가 억새밭 숲길을 뛰어다니는 친구도 있다. 흰서리라도 내린 듯 은빛으로 반짝이는 억새밭을 배경으로 너도나도 기념사진 한 컷씩 남긴다.

바람 부는 방향에 따라 너울대는 억새와 뚝방길(제방)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고헌영은 "군산시 옥산면과 회현면 경계를 이루는 이곳(청암산 저수지)은 내가 태어난 고향동네"라며 "고무신도 신고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했던 초등학교 때 소풍을 다녔고, 제방에서 도시락을 까먹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면서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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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에서. 멧돼지 출연 경고가 숲이 깊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 조종안


청암산 저수지에는 탐방코스 네 개(수변로, 등산로, 구불 4길, 구불5길)가 조성돼 있다. 우리는 주차장을 출발하여 저수지를 왼쪽으로 끼고 억새풀길→ 유실수원→ 삼림욕장→ 수변생태 관찰장→ 죽림원→ 왕버드나무 군락지→ 청암산 정상→ 습지 관찰원→ 휴게소→ 가시연 서식지 순으로 트레킹을 마쳤다. 거리는 약 9km, 완주하는데 2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정담에 빠져 배고픈 것도 모르고 트레킹을 마쳤다. 식당에 도착해서야 동창들 얼굴이 하나씩 시야에 들어온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들. 경남이, 종현이, 경호, 종환이 등 일찍 세상을 등진 동창들 모습이 뇌리를 스친다. 이제는 60대 중반으로 대부분 정년퇴직을 하고 연금으로 생활하는 백수가 되었다. 기민이처럼 느즈막에 사업을 시작해서 수익을 짭짤하게 올리는 놈도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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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추억들을 안주삼아 술잔을 나누는 동창들 ⓒ 조종안


권커니 잣거니. 술잔 권하는 소리로 식당이 장터처럼 소란하다. 소란함 속에 한동안 끊겼던 기억의 조각들이 아름답게 이어진다. 나이를 먹어서일까. 오늘처럼 즐겁고 건강에도 좋은 모임을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지속할지 모르겠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우리가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느냐며 탄식하는 친구도 있다. 군산-재경회원이 초청형식으로 매년 2회씩 치르는 체육행사를 4회로 늘리자는 고육책도 나온다.

점심 메뉴는 간장게장 백반. 서비스 안주로 얼큰한 참조기탕도 나왔다. 밑반찬은 김치를 비롯해 야채샐러드, 각종 산나물, 꼬막 무침, 박대구이 등 그야말로 진수성찬이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어렸을 때 엄니가 부엌에서 손으로 만들어주던 그 맛"이라며 그릇을 단숨에 비웠다. 양이 차지 않는지 게장을 따로 3~4인분 주문해서 상자에 담아가는 친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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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군산 회원들이 해어지기 전 내년 봄을 기약하고 있다. ⓒ 조종안


재경 동창들과 만남의 자리는 오후 2시 40분에 끝났다. 시간이 너무 짧다며 아쉬워하는 표정들. 일요일이니 고속도로가 밀리는 것을 고려하여 조금 일찍 출발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군산 회장과 총무는 서울 친구들이 올라가면서 마실 술과 안주를 챙겨주었다 한다. 먹을거리 챙겨주기 또한 동창회가 출범하는 해부터 있어온 아름다운 관행이 아닐 수 없다.

이날 행사에 참여해서 얻은 소득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소식이 궁금했던 정준하를 만나서 따끈따끈한 얘기를 나눴고, 하나는 고헌영 부부 모습을 1986년 1월에 찍어놓고 27년이 지나도록 연락처를 몰라 보관해오다가 스캔작업을 해서 파일을 보내준 것이다. "옛 사진을 고이 간직했다가 보내줘 고맙기 그지없다"는 내용의 답장을 받았다. 동창의 소중함을 재확인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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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정리할 때마다 안부가 궁금했던 고헌영 동창 부부. ⓒ 조종안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군산중고등학교 #동창회 #청암산 #옥산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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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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