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세상 떠난 동생, 왜 하필 일본에 갔을까

동생의 여행노트를 들고 떠난 오사카 여행기 1

등록 2013.11.27 17:52수정 2013.11.27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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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도톤보리가 얼마나 정신 없었는지, 네온사인은 또 얼마나 번쩍거렸는지 그래서 그냥 숙소로 돌아갔다고, 그 활기는 좋았지만 정이 들지는 않았다고 적혀 있는 여행기가 있습니다. 도톤보리 100엔 샵에서 일본어로 쓰인 세계지도를 발견하고는 남들이 보면 웃겠지만 그래도 그걸 샀다는 여행기가 있습니다. 오사카 야경이 보이는 어느 빌딩 29층 바에서 혼자 하우스 와인을 마시면서 이번 여행은 꽤 괜찮은 것 같다고, 이렇게 조바심 내지 않고 여유롭게 조금 오랫동안 여행을 했으면 한다고 적혀있는 여행기가 있습니다. 귀국하는 날 남은 엔화로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그 영수증을 붙여놓은 여행노트가 있습니다.

작성 년도는 2007년, 벌써 6년 전이니, 여행 안내서의 유효기간은 이미 끝난 셈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최신 여행글이 올라오는 인터넷 시대에서 정보의 가치로는 글쎄요, 하고 고개를 저을지도 모를 여행기입니다. 그 노트를 보고, 그 노트에 적힌 일정대로 여행을 해 보리라 마음먹은 게 2009년, 그 다짐 역시 4년의 세월을 지나쳐왔습니다. 그러나 그 다짐에는 유효기간이 없었는지 저는 계속 그 노트 한 권을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내 마음은 오사카와 교토 그 언저리를 계속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5년 전 세상을 떠난 동생, 그의 궤적을 좇아 일본에 가다

동생의 여행노트 ⓒ 이지아


오사카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뒤늦은 휴가 날짜를 정하고, 비행기를 예약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여행일정을 잡았습니다. 원전 문제로 예민한 지금, 사람들은 한 마디씩을 합니다. 

"왜 하필 오사카야? 굳이 일본 아니라도 되잖아??"
"예전부터 꼭 가고 싶었어."
"아니, 왜?"

조금은, 유치한 답변이 이어집니다. 대답을 들은 그들은 고개를 갸웃거릴지도 모릅니다. 꼭 그렇게 얽매일 필요가 있냐고 답변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반응을 보이든 상관없습니다. 그건, 그들이 나와 내 동생의 이야기를 모르기 때문이니까요. 아니, 짧은 사연을 안다고 해도 그들은 우리의 젊은 날과 젊은 날의 아픔을, 두려움을, 쓸쓸함을, 외로움을, 그리고 우리들의 사랑을 모르기 때문이니까요.

"동생이 세상을 떠나기 일 년 전, 혼자 오사카로 여행을 다녀왔어요. 그때 동생이 저보고 같이 가자고 했는데도, 저는 안 간다고 했거던요. 못갈 이유도 없었는데, 저는 여행보다 돈이 아까웠던 것 같아요. 어떤 불안감에 좇겨 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도 같고요. 결국 동생 혼자서 여행을 떠났어요. 그런데 그렇게 혼자 여행을 떠난 동생이 적어놓은 여행기 노트가 동생 유품을 정리하는 데 나온 거예요. 그 노트를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마음이 싸한 거예요. 그 안에 어떤 외로움 같은 게 느껴지더라고요. 혼자 음식점을 찾고, 혼자 거리를 걷고, 혼자 아프고. 그때 나는 후회했어요. 왜, 그렇게 동생의 옆에 있어주지 못했나. 그렇게 혼자서라도 하루하루 행복해지려고 애쓰는 동생 옆에 길동무가 되어 주지 못했나.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그때 나는 그 노트를 들고, 그대로 여행을 다녀보겠다고 결심했어요. 동생이 본 것을 그대로 보고, 동생이 먹은 것을 먹어 보고, 동생이 다녔을 법한 거리를 걷겠다고요. 그리하여 동생과 내가 무엇을 같이 느끼고, 무엇을 달리 느끼는지 보겠다고요. 우리가 얼마나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알아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내가 얼마나 동생을 사랑했는지도 알고 싶었어요."

그건 동생을 잊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이었고, 동생을 보내주는 나만의 이별 의식이기도 했습니다. 아직은 동생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절심함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복잡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4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 절실함은 숙성이 되고, 감정은 파도를 치다가, 결국 이제는 알맹이만 남았습니다. 모든 자질구레하게 엉겨붙어있던 감정은 하나하나 떨어져나가고, 다만 동생이 걸었던 그 길을 걷고 싶다는 마음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배낭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떠난 여행에서, 새삼 느낀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그건 동생에 대한 사랑도 아니고, '사랑' 그 자체였습니다.

교토역 대공광장을 가득 채운 건 '사랑'

대공광장 유리에 비친 교토타워 ⓒ 이지아


교토역 최상단의 '대공광장'에 올라가보지 않았다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정면으로 보이는 교토타워보다는 건물 유리에 비쳐진 교토타워가 더 멋있었다.
-2007년 8월 동생의 교토 여행기 중에서

노트에 적혀 있는 이 두 문장을 보고 나는 교토역을 찾습니다. 교토 가와라마치역 근처에서 5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립니다. 정류장 오른쪽으로 교토타워가 있었고 왼편으로 교토역이 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어둠이 쏜살같이 내리고 있습니다. 낯선 곳에서 느끼는 어둠은 더 칠흑 같은 법입니다. 저녁 6시 서울역 광장에서 느끼는 어둠과 저녁 6시 교토역 앞에서 느끼는 어둠은 그 스산함의 깊이가 다릅니다. 지나치는 사람들의 말이 다르고, 거리에 휘몰아치는 퇴근시간의 부산함조차 서울의 그것과는 다른 것만 같습니다. 홀로 떠난 여행지에서 느끼는 미묘한 두려움이 마음속에 차오르기 시작하는 저녁 시간입니다.

오른편의 교토타워를 올려다 봅니다. 소박한 외관이 교토와 어울리는 타워입니다. 나는 교토역 안으로 들어갑니다. 내가 가야 할 곳은 교토 역사 제일 위층에 있는 스카이 가든, 즉 '대공광장'입니다. 그곳에서 나는 건물 유리에 비친 교토타워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뜬금없이 '사랑'에 대해 생각합니다. 갑자기 그 어둠속에서 '사랑'이라는 두 낱말이 가슴을 휘집고 들어옵니다. 그날 아침 있었던 속상한 일 때문일까요. 그 일을 조잘거리면서 누군가에게 투정 부리고 싶었던 날이기 때문일까요. 혼자 떠나온 여행지에서 홀로 감당해야만 하는 이런 저런 감정의 흔들림이 너무 버거웠기 때문일까요. 나는 그곳에서 뜬금없이 '사랑'에 대해 생각을 합니다.

그 어둑어둑한 대공광장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사랑이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어둑어둑한 대공광장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이구나. 이 대공광장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설계했구나. 아니,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라는 땅덩어리조차도, 그 곳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은 사랑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이겠구나, 이 지구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구나.'

대공광장의 어둠속에서 사랑하는 연인들이 달콤한 이야기를 나누고, 사랑하는 친구들이 의자에 앉아 유쾌한 이야기를 나누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사랑하는 부부가 걱정스러운 고민을 나눕니다.

그때 그 곳에 홀로 서서, 대공광장의 어둠과 대공광장의 시간을 시린 마음으로 흘려보냅니다. 그리고 내 옆에도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사랑'이 문뜩 떠오른 그 마음을 그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마도, 동생도 대공광장 건물 유리창에 비친 교토타워를 보면서, 참 멋있다고, 아마도 사랑하는 누군가와 얘기하고 싶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 사랑을 충분히 얘기하고 나눌 수 있도록 만들어진 세상인데, 낯선 곳에 홀로 서서 밤바람을 맞고 있자니 마음이 한없이 슬퍼져 결국 그 자리를 뜹니다. 
덧붙이는 글 10월 9일부터 14일까지 떠난 일본 오사카 여행기입니다.
#오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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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만큼 남아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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