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장' 찬 통장들, 동네 들쑤시고 다니는 까닭

[전국기획- 서울 노원구의 도전⑤] '1만원의 행복' 프로젝트...통장 699명이 뛴다

등록 2013.12.01 16:26수정 2013.12.0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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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의 일상생활과 지방자치단체의 관계 밀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다양해진 주민의 이해와 요구를 능동적으로 실현해가는 지방자치단체의 혁신 사례를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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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최미라 상계9동 18통장, 김지현 중계본동 3통장, 김유미 상계9동 27통장, 김성환 노원구청장, 임영복 월계1동 20통장, 엄순하 공릉1동 41통장. ⓒ 권우성


"우리 구 통장들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복지수당 만원을 받습니다. 전국에서 월급이 제일 많은 통장들이죠. 하-하-하-."(김성환 노원구청장)

"만원 주고 일은 엄청 시켜요. 만원 받고 십만 원은 풉니다. 어르신들 좋아하는 홍시도 사드려야 하고..."(김지현 중계본동 3통장)

지난 13일 노원구 상계9동 주민센터 2층 '한울 작은 도서관'에서 오간 대화다. 정색하고 따지면서 날선 토론은 벌인 건 아니다. 기분 좋게 웃으며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김 청장은 복지도우미로 활약하는 통장들에게 1만 원밖에 드리지  못하는 상황을 안타까워했고, 김 통장은 자기 주머닛돈을 선뜻 꺼낼 수 있는 행복한 고민에 고마워했다. 이름하여 '1만원의 행복' 프로젝트.

이날 김 구청장과 다섯명의 통장들은 '우리 구 자살 예방 사업'을 놓고 토론했다. 이 자리는 <오마이뉴스> 요청으로 마련됐다. 2년 전 서울시 자치단체 중 자살자 최고라는 노원구의 불명예를 어떻게 뗀 것인지, 그 비결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또 정부 차원에서 추진해도 성과를 내기가 힘든 자살예방사업을 기초자치단체가 자원해서 벌이는 이유도 알고 싶었다.

1만 원 주고 통장들에게 '봉사 완장'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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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구의 자살자 추이 ⓒ 노원구청


지난 2009년 노원구의 자살자는 180명으로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최고 수치였다. 2년 뒤인 2011년에는 30% 감소한 128명. 자살률의 경우도 서울시 자치구 중 7위에서 21위로 뚝 떨어졌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구내 자살 상담 건수가 2010년 52건에서 2012년 5048건으로 약 100배 증가한 것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책상 앞에 앉아서 누군가가 상담해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자살 위험군을 파악해 '찾아다니는 복지서비스'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통장들이었다. 노원구 통장들은 1년에 한 번 적십자 회비를 걷을 때에만 만날 수 있는 가깝고도 먼 이웃은 아니었다. 험한 욕지거리를 들어가면서 독거노인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아주 특별한 이웃이었다. 이들은 다른 지역 통장들과는 달리 대문 앞에 '사회복지사'라는 명패를 걸고 있다. 통장이라는 명칭은 그 밑에 조그만 글씨로 적혀 있다고 했다. 구청에서 달아준 '봉사 완장'이다. 통장들은 이게 자랑스럽다고 했다.

이날 김성환 구청장과 함께 노원구 699명의 통장 가운데 임영복 월계1동 20통장, 엄순하 공릉1동 41통장, 김지현 중계본동 3통장, 최미라 상계9동 18통장, 김유미 상계9동 27통장을 모셨다.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첫 만남] 욕설과 고함, 그리고 문전박대

최미라 : "처음에는 좀 힘이 들었어요. 만날 수가 없었더라고요. 불이 켜진 것을 보고 문을 두드렸는데도 아무런 기척이 없었어요. 집 안에 계신 걸 아는데도..."

엄순하 : "저는 처음에 우울증 테스트를 하러 갔을 때 욕을 엄청 먹었어요. 사업을 하시다가 탕진하고 강북으로 이사 와서 혼자사시는 분이 계신데, 그분을 처음 만났을 때 '왜 통장들이 이런 짓을 하고 다니냐'면서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임영복 : "어르신들에게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어요?' '우울증을 겪고 계시나요?'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가 쉽겠어요? 어렵습니다. 한 시간씩 문전박대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김지현 : "독거노인들뿐만이 아닙니다. 5식구가 단칸방에 사는 사람을 봤어요. 남편은 직장에 다니다가 급여를 떼이고 직장을 그만뒀다고 하더라고요. 애기 엄마가 우울증에 걸려서 괴로워하는 걸 봤습니다."   

최미라 : "우리 옆집 젊은 애기 엄마도 우울증에 걸렸는데, 심했습니다. 아이가 우는 데 방에 들어가지 않더라고요. 애기 엄마가 아파트 베란다 앞에 서서 밑을 내려다보는 것을 여러 번 봤어요. 아찔했습니다. 애기 엄마가 문을 안 열어 줘서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면서 오히려 면박을 주더라고요."

통장들이 이렇게 구박을 받으면서까지 독거노인 등 자살 위험군으로 분류된 주민들을 만나기 시작한 것은 2011년 3월부터다. 노원구는 699명의 통장들을 대상으로 '보건복지 도우미'로 거듭나기 위한 교육을 실시했다. 2차례에 걸쳐서 교육을 이수한 통장들은 그해 4월부터 자살 위험군 조기 발견을 위해 독거노인 6902명을 대상으로 우울증 선별조사(노원정신보건센터에서 제공한 심리검사지 이용)를 벌였다. 위의 대화 내용은 당시 통장들이 독거노인을 만나는 과정에서 겪은 이야기다.

김성환 : "그 뒤에 가족들과 함께 사는 노인들을 대상으로도 우울증 테스트를 했습니다. 통장님들이 욕을 얻어먹으면서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통장님들이 없었다면 조사비용만 수십억 원이 들어갔을 겁니다. 이 조사를 마친 뒤에 통장님들의 입이 '대빨' 나왔습니다(웃음). 통장님들에게 너무 죄송해서 1만 원의 복지수당을 드렸는데, 그 정도 밖에 드릴 수 없는 형편이어서 여전히 죄송합니다."  

노원구가 자살예방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10년 12월이다. 전국 자치구 최초로 '생명존중문화 조성 및 자살예방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고 전담부서인 '생명존중팀'을 꾸렸다. 이듬해 1월에 '생명존중문화 조성 및 자살예방을 위한 생명존중위원회'를 발족했다. 2월에는 동 주민센터에 '찾아가는 마음건강 상담 서비스'를 제공했다.

노원정신보건센터 소속 정신보건전문요원 19명이 동 주민센터에서 우울증과 알코올중독검사 등 상당 서비스를 시작했다. 관청에서 시행하는 형식적인 서비스 중 하나가 아니었다. 위에서 제시했듯이 100배 올라간 상담 건수는 이런 노력의 결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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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최미라 상계9동 18통장, 김지현 중계본동 3통장, 엄순하 공릉1동 41통장, 김성환 노원구청장, 김유미 상계9동 27통장, 임영복 월계1동 20통장. ⓒ 권우성


[친해지기] "요샌 왜 안와?"... 어르신들이 달라졌어요 

최미라 : "처음에는 현관 앞에서 두세 마디 하고 끝납니다. 두세 번 방문하면 차 한 잔 얻어먹죠. 이제는 길을 가다가 마주치면 먼저 인사를 하십니다. 집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던 분들입니다. 동네에 살지만 소통이 단절된 분들이었죠. 우리가 보인 아주 작은 관심이 그들을 동네로 나오게 한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어르신들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오기도 합니다."

김유미 : "사실 그 분들은 우리 부모님 연배와 비슷합니다. 80세 정도죠. 처음에는 자살 이야기만 나와도 거부 반응을 보이셨는데, 이제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그냥 숨김없이 털어 놓아요. 전화라도 하면 자식처럼 반가워 해주십니다. 이걸 하면서 저도 배웠습니다. 저희 부모님도 이 분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말이죠. 그래서 부모님께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전화를 드립니다."

김지현 : "세 명의 어르신을 모시고 직접 신경정신과에 가기도 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안 가시겠다고 했죠. 그런데 지금은 좋아하십니다. 약값도 몇백 원 안 듭니다. 그냥 제가 내드립니다. 형편이 어려워서 병원에 안 가시는 게 아닙니다. 마음이 없는 거지요. 어떤 분께는 큰 글씨로 베개 위에 전화번호를 붙여드렸습니다. 그분이 가끔 전화를 합니다. 왜 안 오냐고."

[이웃되기] 통장들이 지구의 마지막 수비대인 까닭

임영복 : "이젠 제가 찾아뵙지 않아도, 집안에만 있었던 독거노인들끼리 연락을 합니다. 친구가 생긴 겁니다. 저는 매개 역할을 한 셈이죠."
 
최미라 : "예전에는 이웃을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우리 동네가 달라지고 있어요. 길거리에서도 서로 인사를 합니다. 국가가 해줄 수 없는 부분을 통장들이 한다는 데에서 자부심을 느끼기도 합니다. 요즘은 어른들이 가끔 전화를 하십니다. 시골에서 먹을 것 왔으니, 챙겨가라고.

엄순하 : "통장 임기가 4년인데요, 요즘은 제 임기도 걱정해주십니다. '4년이 지나면 어떻게 하지'라고 말입니다."

김유미 : "사실 이 일은 나의 일이기도 합니다. 나도 조금 있으면 나이가 들 텐데... 우리 동네 공동체가 잘 되면 나도 그분들처럼 도움을 받게 되겠지요. 그러니까 이건 우리 모두가 동네에서 희망을 만드는 일입니다."

김성환 : "OECD 국가 중 자살자가 가장 적은 나라가 그리스입니다. 1년에 2.3명 수준입니다. 유럽 남부 국가들의 자살률이 복지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북구 유럽보다 떨어집니다. 그 이유를 분석한 논문을 본 적이 있는데요, 남부 유럽의 가톨릭 공동체에서 해답을 찾았습니다.

특정 종교를 떠나서 결국 동네 공동체인 겁니다. 이웃끼리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통장님들께서 25만 원(월정 수당 24만원과 복지수당 1만원) 받으면서 너무 고생들 하시는데요, 동네에서 나 몰라라 하면 갈 곳이 없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지구의 마지막 수비대입니다. 물론 의료 보장성을 높이는 것 등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이겠지요."

노원구는 서울시 자치단체에서 '자살자 최고'라는 불명예를 떼려고 통장들에게만 의존하는 건 아니다. 2011년 2월에 노원구 의사회, 한의사회, 치과의사회, 약사회와 민관 협력체계 구축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또 그해 3월에는 기독교와 불교, 천주교 신자 중에 '생명지킴이' 자원봉사단을 구성했다. 이런 네트워크를 통해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전화 상담을 하거나 가정방문을 실시하고 있다. 심지어 심폐소생술 상설교육장을 만들어 응급상황에서 한 생명이라도 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통장들을 제외하고 구내에서 생명지킴이 활동을 하는 인원만도 400명에 달한다.

단 한 명이라도 친구가 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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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노원구 상계9동 주민센터 2층 '한울 작은 도서관'에서 김성환 구청장과 통장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권우성


노원구는 왜 자살 예방 사업에 올인할까? 이날 대담을 마친 뒤에 김성환 구청장에게 물었다.

"취임한 뒤에 기관을 한 바퀴 도는 데, 노원경찰서장님에게 자살자가 너무 많아서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동네에서 이틀에 한 명꼴로 자살을 한다는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에 있을 때 노 전 대통령께서도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자살률이 매년 1-2명씩 올라가는 것이 걱정이 되었던 겁니다. 그 때 제가 보건복지부쪽에 자살 예방 대책을 세우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5억 원을 들여서 자살예방센터를 만들자고 하더군요. 그것만 가지고는 어려울 것 같아서 대통령께 보고도 안 드렸습니다.

서장 이야기를 듣고 그 때 기억이 나서 자살 분야 전문가들과 몇 번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공무원들에게 대책 마련을 지시했더니, 유능한 공무원들도 목표조차 잡지를 못하더라고요. 제가 직접 29.3명의 자살자를 절반으로 끌어내리겠다는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우선적으로 15명인 서초구부터 따라잡자는 것이지요. 아직 서초구보다 낮추지는 못했지만, 2014년까지 따라잡을 생각입니다. 2017년까지 OECD 수준인 12명으로 낮춘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단 한 명이라도 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친구가 있다면 자살하지 않습니다. 노원구의 모토는 '내 삶의 든든한 이웃'입니다. 카드대란과 사회 양극화 등 구조적인 문제는 구 차원에서 풀 수는 없지만, 우리 동네에서 할 수 있는 대책은 지역공동체를 살리는 길입니다. 통장님들은 바로 마지막 사회 안전망입니다."
#노원구 #자살예방 #통장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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