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도 지킨다고 해군기지 짓는다더니..."

[강정 평화마음 동화 15] 제주도는 평화의 씨앗이래요

등록 2013.12.02 13:52수정 2013.12.02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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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을에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이 자명한 사실.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다. 이 완강한 사실. 평화는 아이들이 앓지 않는 것이다. '강정 평화마음 동화'는 구럼비라는 우주 놀이터를 아이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사실을 바탕으로 쓴 손바닥 동화이다. 그 마을에 아이들이 자라고 있음을 자주 잊은 일을 용서받기 바라는 글쓰기이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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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 평화마음 동화 ⓒ 이동수


"성님, 주민 밀집 지역에 해군기지를 만들면 되꽈? 중국 미사일 날아오면 어떡할 거요?"
"미사일 얘기 하지 마라게. 한라봉들이 무섭다 그런다."
"성님 태평하네. 마데 인 차이나 포탄이 길 잘못 잡으면 클난다니까."


온 가족이 며칠 동안 한라봉 솎아내기 하던 5월이었다. 귤은 열리는 대로 내버려두면 안 된다. 열매가 잘 자라지 못 한다. 특히 한라봉은 적은 수를 남겨 곱게 가꾼다. 나뭇잎보다 녹색이 옅거나 꽁무니가 누리끼리한 열매는 약한 열매니까 그것도 따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닌데 삼촌은 계속 말하면서도 슥슥 일을 잘 했다.   

"성님 내 말 들어봐요! 내가 양구 서정리 포병 출신이잖아요. 포라는 건요, 0.1도만 각이 어긋나도 서귀포 시내에 떨어질지 중문으로 떨어질지 아무도 몰라요. 제주 전체가 과녁이 되는 거라니까요. 전쟁이 나도 주민 피해 최소화하는 게 나라가 할 일 아니꽈?"
"나한테 화내지 마라고. 내가 대통령이냐, 도지사냐."

아빠는 삼촌 말을 눙치며 나를 부르셨다. 열매 솎느라고 가까운 데만 보다가 먼 데를 갑자기 보니까 눈이 부셨다. 아빠를 보는 얼굴이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보였을 것이다.  

"상규야 여기 봐라. 여기 우듬지에 열린 놈들은 큼지막하게 자랄 거야. 사방에서 쏟아지는 햇빛을 종일 받잖아."
"그럼, 그 한라봉은 엄마 드려요."
"오케이, 우리 효자 말대로 하자. 상규야, 사람도 이렇게 환하게 살아야 큰 사람 되는 거야. 국이 삼촌처럼 어둑어둑 인상만 쓰고 그러면 안 된다이. 하하하."

국이 삼촌이 아빠 말을 받아쳤다.


"에~이 성님, 강정에 나보다 해맑은 사람 어딨수꽈! 저놈의 해군기지 때문이지. 그전엔 나 지나가면 통물질이 막 환했수다."

마라도는 어린왕자 행성이야?

방파제에서 내려오신 어른들은 성우 아빠랑 인사했다. 엄마들은 윤구 삼촌이 내려놓은 생선 상자를 보며 생선 이름을 물으셨다. 

"참 싱싱하다."
"이거 사가지고 가면 좋겠다."
"맞아, 저기요, 이거 혹시 얼음에 담아 부쳐주실 수 있나요?"
"그래, 오늘 부치면 내일 우리가 집에 들어가서 받을 수 있겠네."

역시 엄마들은 장 보는 거에 관심이 많다. 원하는 만큼 포장해서 보내드릴 수 있다고 윤구 삼촌이 대답했다. 옥돔과 가자미를 주문하는 엄마들 목소리가 알록달록 산호초 촉수처럼 바람에 흔들렸다. 그 사이에서 아빠들은 두런두런 말씀을 나누셨다.

"강정, 하면 해군기지만 떠올라서 본래 어촌이라는 걸 잊었네."
"그러게요. 와서 보니 '일강정'이라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들도 넓고 물도 좋고 고기도 많이 잡히고…. 정말 제주에서 제일가는 마을이었겠어요."  

아빠들은 이내 성우네 배를 타셨다. 우리도 다시 배에 올라갔다. 형준이 아빠가 성우 아빠에게 물으셨다.

"요 며칠 이어도 문제 때문에 언론이 시끄럽잖아요. 이어도는 여기서 어느 쪽입니까?"
"네, 저 방파제 너머 서남쪽으로 계속 내려가면 나옵니다."

어른들은 아득한 눈으로 방파제 너머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물결이 반짝반짝 밀려오고 있었다. 케이슨과 방지막에 막혀 구럼비에는 닿지 못 하는 물결. 물결도 시멘트 냄새가 지독하고 흙탕물이 일어나는 공사장 쪽으로는 아예 가기 싫을 거다. 나는 물결에게 눈을 맞추었다.

'물결아, 그래도 너희들은 저 안으로 갈 수 있잖아. 가서 구럼비를 위로해 줘. 우리가 늘 생각하고 있다고 전해 줘.'

눈이 시큰하게 물결을 바라보는데 누가 내 어깨를 툭 쳤다. 은서였다. 

"오빠도 이어도 가봤어?"
"아니, 거긴 아주 먼 데야. 마라도는 가봤어."
"마라도도 제주도 같은 곳이야?"
"아니, 아주 작은 섬이야. 자동차도 없어. 걸어서 한 시간이면 섬을 다 돌 수 있어."
"우와, 애기 섬이네."

형준이가 물었다.

"어린왕자가 사는 B612 행성만큼 작아?"

아이들은 금세 흥미진진한 표정이 되었다. 애들과 함께 마라도에 가면 참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하루만 더 놀다 가면 안 되는 걸까? 등 뒤에서 형준이 아빠 음성이 들렸다. 

"어제 외교부 당국자가 이어도는 영토가 아니라고 발표해서 놀랐습니다. 저는 여태 우리 영토로 알고 있었거든요."

배타적 경제수역이 뭐예요?

생선 주문을 마친 엄마들이 배 위로 올라오셨다. 배가 흔들리자 서로 손을 잡고 갑판을 걸어오신 엄마들도 성우 아빠 말씀에 귀를 기울이셨다.

"대부분 그렇게 아시죠. 정부에서 늘 우리 영토인 이어도를 지키기 위해 해군기지 짓는다고 주장해왔잖아요. 그 주장과 다른 말은 언론에서 알려주지 않아요. 강정 주민들도 계속 말했습니다. 이어도 같은 배타적 경제수역 문제는 무력이 아니라 외교관들이 해결할 일이라고요."

눈이 커서 혜선 샘을 닮은 태호 엄마가 손을 번쩍 드셨다. 

"저기요, 배타적 경제수역이 뭐에요?"
"네, 각 나라 영해 밖 200해리에 이르는 구역입니다. 인근에 있는 국가가 그 구역의 어업, 광업자원에 대한 권리와 관할권을 갖게 됩니다."
"그 거리는 누가 정해요?"
"유엔에서요. 그런데 국가 간에 주장이 서로 다르면 갈등이 생깁니다." 

멀리 범섬 쪽으로 둥글게 놓여있는 오탁방지막이 파도에 흔들렸다. 어젯밤 집에 온 찬엽 삼촌이 며칠 전에 불어온 센 파도 때문에 저쪽 케이슨이 반쯤 부서졌다고 했다. 계속 만들고 부서지고…. 우리 마을에서 해군은 바다와 싸운다. 
 
"유엔이 정한 대로 하는데 왜 문제가 돼요?"
"아, 두 나라의 배타적 경제수역이 겹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설명해 드릴게요. 제가 두 걸음 떨어진 곳에 이 휴대폰을 놓겠습니다. 고 박사, 이리 와 봐요."

성우 아빠는 저만치 뱃전에 기대어 선 은서 아빠를 부르셨다.

"고 박사는 반대편으로 가서 휴대폰과 두 걸음 떨어진 자리에 서세요. 각자 서 있는 자리에서 세 걸음까지를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치죠. 고 박사가 이쪽으로 세 걸음 오고, 제가 저쪽으로 세 걸음 갑니다."

두 분은 마주보고 걸었다. 휴대폰을 지나쳐 멈추셨다.                   
                             
"보세요. 한 걸음씩이 겹쳐집니다. 그 겹친 부분에 이 휴대폰처럼, 이어도가 있어요."
"아…."

삼학년 은서만 빼고 어른들과 아이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성우 아빠는 알기 쉽게 설명을 잘 해주셨다. 나는 검붉게 탄 성우 아빠의 얼굴을 슬쩍 올려다보았다. 우리 마을 삼촌들은 좀 멋있다.

"이어도는 옛날부터 우리 거에요. 제주 사람들의 마음이 쉬는 낙원이죠. 외교관들이 국제사회에 그 사실을 설득하면 좋겠어요. 무력으로 지키겠다고 호언하며 해군기지 만들어 공연히 중국 심사 건드리지 말고요."

4학년 여름방학 때 도서관에서 글쓰기 공부를 할 때였다. 우리를 가르쳐준 시인 선생님도 성우 아빠와 똑같이 말씀하셨다. '우리나라가 무력으로 미국이나 중국보다 강해질 수는 없다. 하지만 인류에게 보석처럼 특별하고 소중한 나라가 될 수는 있다'고 하셨다.

"그럼 강정 주민들은 해군기지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기를 원하나요?"

태호 아빠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물으셨다.  

강정은 평화의 씨앗

"무조건 해군기지 공사 중단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농사짓고 고기 잡으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습니다. 그것이 우리들 평화고 안전입니다." 
"해군기지 생기면 농사나 어업이 어려운가요?"
"마을 안에 군사 도로며 군 기지 부대시설이 들어오고 상업지구나 유흥시설이 생성되면 아이들 키울 환경이 안 됩니다. 그리고 농사나 고기잡이 따위는 아무 데 가서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우리도 국민이고 우리 아이들도 타지의 여느 아이들처럼… 소중합니다."

성우아빠가 목이 메어 말을 더듬거리셨다.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성우는 조타실로 뛰어 들어가 괜히 키를 막 돌리는 시늉을 했다. 우리 아빠가 얼른 말씀을 하셨다. 

"지역에 따라 적절한 전략이 필요할 거 같아요. 군사기지를 짓는 편이 좋은 곳도 있겠지요. 제주도에 필요한 전략은 무력이 아닐 겁니다. 제주도를 동북아 분쟁의 DMZ (비무장지대)로 지정해서, 평화로 우리를 지켜야지요."
"그게 가능할까요?"
"네, 우리 국민이 꿈과 의지를 가지면 됩니다. 제주는 이미 평화의 섬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제 평화 기구나 평화대학을 최대한 유치하고 구럼비에 평화 공원을 조성하면, 세계인들이 모여들 거예요. 제주도가 안전해야 육지도 안전합니다."
"제주도를 평화 블루칩으로 활용하자는 거군요."
"네, 해군기지는 이미 목포, 진해, 부산에 포진해 있지 않습니까? 보시다시피 강정에 해군기지 만들어봐야 파도 때문에 1년 중 반은 사용이 어렵습니다."

구름 속에 숨어서 기울던 해가 구름 밖으로 나왔다. 수평선 위쪽이 주황빛으로 환해졌다. 사람들 얼굴도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이마와 어깨가 금세 따뜻해졌다. 아빠가 구럼비에서 낚시를 할 때도 이랬다. 저녁 해가 구럼비에서 노는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아, 기분 좋은 우리 마을의 햇살이다.  

"그런데 대중국 전진기지가 필요한 미국이 동의하겠습니까?"
"저희들은 미국에도 평화를 사랑하는 분들이 많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원하고 호소하면 공감할 겁니다. 절실하지 않은 우리 자신이 문제겠지요."  

갑자기 어른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 덩달아 우리들도 와아 소리치며 박수를 쳤다.  

"강정이 제안하는 평화 국방 전략에 동의합니다!"
"풀뿌리에서 시작되는 평화 전략, 참신합니다!"
"아이고 별 말씀을요. 저희 주민들은 다 아는 겁니다. 매일 기지공사 때문에 시달리고 재판에서 벌금 때려 맞아도 이 꿈을 가진 후로 자존심이 생겼어요. 어느 주교님은 강정이 평화의 씨앗이라고 하셨어요."
#한라봉 솎아내기 #어린왕자 #배타적 경제수역 #유엔평화대학 #이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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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2000 한국일보로 등단. 시집 <이발소그림처럼> 공동저서 <그대, 강정>.장편동화 <너랑 나랑 평화랑>. 2011 거창평화인권문학상

** 월간 작은책에 이동슈의 삼삼한 삶 연재중. 정신장애인 당사자 인터넷신문 '마인드포스트'에 만평 연재중. 레알로망캐리커처(찐멋인물풍자화),현장크로키. 캐릭터,만화만평,만화교육 중. *문화노동경제에 관심. 또한 현장속 살아있는 창작활동을 위해 '부르면 달려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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