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사> 성동일의 한 마디, LG팬들 가슴 울리네

[서평] 야구 너머 시대로 풀어낸 < LG트윈스 때문에 산다 >

등록 2013.12.07 13:39수정 2013.12.07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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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트윈스 팬이라면 울컥했을 광고가 있다. "부진한 성적보다 더 가슴이 아팠던 것은 뒤돌아서 가는 팬 여러분의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는 글과 쓸쓸히 야구장을 떠나는 아빠와 아들의 뒷모습. 2008년 11월, 주요 일간지에 실렸던 전면 광고 이야기다.

그 삽화 속 아이가 중학생이 됐을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LG트윈스의 쓸쓸한 가을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트윈스를 응원하는 숱한 아빠와 아들 사이에서는 '금지어'가 됐을 이 말,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DTD(Down Team is Down)'란 조롱에도 '굳은 살'이 충분히 박였을 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 2013년, 5년 전 광고 표현 그대로 "가장 절망적인 패배의 순간에도 떠나지 않고 함께 해주신 팬 여러분"들에게 LG트윈스는 마침내 희망을 얘기할 수 있는 성적을 거뒀다. 페넌트레이스 2위 그리고 10년만의 가을 야구. LG트윈스 팬들은 적어도 올해 행복했다.

"야구는 기록 너머의 기억" 그래서 더 강렬한 일러스트

최근 출판사 '브레인스토어'가 펴낸 의 일러스트. 프로야구 캐릭터 회사 '미프 스포츠'를 운영하고 있는 조덕희씨가 그렸다 ⓒ 브레인스토어


때를 놓칠세라 LG트윈스를 조명하는 책도 여러 권 나왔다. 시즌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김기태 감독의 리더십을 조명한 책이 나왔고, 스포츠신문 기자들이 LG트윈스만을 따로 다룬 책도 펴냈다. 최근 출판사 '브레인스토어'가 내놓은 <LG트윈스 때문에 산다>도 비시즌 '야구 갈증'을 해소시켜 줄 것으로 기대되는 책이다.

일단 저자의 이력이 기대감을 높인다. 야구 전문 저널리스트 김은식씨는 '브레인스토어'와 함께 '∼ 때문에 산다'를 타이틀로 이제까지 두산 베어스, 기아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등 프로야구단 시리즈를 펴낸 사람이다. <LG트윈스 때문에 산다>는 그 다섯 번째. 그 외에도 <동대문 운동장><고양 원더스 이야기> <마지막 국가대표> 등 특히 야구사(史)와 관련 여러 책을 썼다.

그래서일까. 책 머리말부터 이른바 '팬덤'이 무엇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관통하는 글이 눈에 띈다. "야구는 기록 너머의 기억이고, 사건 너머의 사연이라고 본다. 그래서 야구란 스포츠이고 게임이고 승부이기 이전에 하나의 드라마다." 적지 않은 팬들이 야구를,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끊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 말대로 LG트윈스 전면광고는 분명 '사건 너머의 사연'임에 틀림없다.


조덕희씨가 그린 LG트윈스 삽화 또한 '야구는 기억이고 사연'이란 이 책의 주제의식을 잘 보여준다. 단순한 모사? 아니다. 적어도 LG트윈스 팬이라면 그 하나 하나의 얼굴에 담겨 있는 스토리를 한 눈에 알아차릴 것이다. 모두 28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각 장마다 등장하는 삽화는 숱한 사건 너머의 기억을 되살리는 효과를 일으키기 충분하다.

MBC청룡과 LG트윈스 그 사이... '배추장사' 코치진

2008년 11월, 주요 일간지에 실렸던 LG트윈스 전면 광고 ⓒ LG트윈스


그 기억 사이에서 미처 몰랐거나 까마득하게 잊었던 이야기들이 참 많다. 1982년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MBC청룡(LG트윈스 전신)이 극적인 역전승을 하게 된 데 삼성그룹 고위층의 '입김'이 작용했다든가, MBC청룡이 최초로 지명한 선수 이야기,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자유계약선수'가 MBC청룡에서 탄생한 비화도 흥미롭다. 지금 보면 코미디 같은 이야기도 등장한다.

"(MBC청룡 창단 당시) 강릉으로 전지훈련 가려고 하는데, 구단에서는 그거 꼭 멀리 그렇게 가야 하느냐고 그러더라고. 꼭 가야 한다고 그래서 가게는 됐는데, 공을 300다스 준비해야 한다고 적어 올렸더니, '우선 한 다스만 가져가고, 또 필요해지면 그때 한 다스씩 추가로 신청하라'고 하더라고." (책에서, 백인천)

LG트윈스 시절로 넘어가는 길목에서는 '배추장사'가 나온다. 1990년 우승 당시 코치진이 야구판을 떠난 사람이 대다수였다는, 보험영업을 하거나 배추장사를 하던 '야인부대'였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다. 대학 시절 시위에 참가했다가 구속된 이력을 갖고 있는 역대 트윈스 감독이 있었다거나, 트윈스가 두 번 우승할 당시 상대 감독이 동일인이었다는 사실도 새삼스럽다.

과거에서 오늘을 마주하는 맛도 있다. 이른바 '뉴비팬'들에게야 낯선 이름이겠지만, "어느 지점에서든 홈까지 일직선으로 연결하는 엄청난 강견"의 신언호란 이름을 마주하면, 최근 트윈스로 이적한 임재철 선수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서울의 원래 '주인'이 누구냐는 '옆 집'(트윈스 팬들과 베어스 팬들이 서로를 가리키는 말)과의 해묵은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만한 근거도 물론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LG트윈스 이야기, '야구 너머 시대'로 담다

지난 10월 2일 잠실야구장 주차장에서 촬영한 LG트윈스 선수단 단체사진. LG트윈스의 변화를 상징하는 사진으로 팬들은 물론 언론도 주목했다. LG트윈스 홈페이지에서만 이 사진을 17,129명이 다운로드했다 ⓒ LG트윈스


이렇게까지 써 놨으니… 1982년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이종도 선수의 만루 홈런에 홀딱 넘어간 트윈스 원년팬임을 '커밍 아웃' 안 할 수 없다. 책제목처럼 LG트윈스 때문에 사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트윈스 덕분에 기분의 높낮이 폭이 심한 팬의 한 사람이니 물론 이 책에도 아쉬움은 있다.

1990년과 1994년 우승 당시 스토리가 길게 이어지다 보니, 그 후 트윈스 이야기 호흡이 다소 빨라진다. 한 예로 1997년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재역전하는 서용빈 선수의 극적인 2루타를 '직관'한 사람으로서 그 때의 에피소드가 '실종'된 아쉬움은 진할 수밖에 없다. 트윈스 팬들 사이에서 '역대급'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기억이다.

물론 327페이지 분량에 모든 기억을 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이 책에는 백인천, 어우홍, 이광환, 김용수, 김건우, 차명석, 박철순, 김홍집, 구경백 그리고 익명의 전 LG트윈스 코치까지 다양한 인터뷰를 함께 녹였다. 여기에 역대 감독, 역대 신인왕, 트레이드 잔혹사, FA 영입 잔혹사 등 토막 이야기도 잔뜩 담았다.

어쨌든 이 책은 이런 아쉬움을 저자만의 방식으로 상쇄하고 있다. 그것은 앞서 저자가 쓴 여러 책에서 그랬듯, LG트윈스를 야구 이야기로만이 아니라 그때그때 시대적 상황과 잘 배합했다는 점이다. 요즘 상종가를 치고 있는 드라마 <응답하라 1994>처럼 말이다.

1994 한국시리즈, 그 너머 성수대교 붕괴 사고

지난 11월 16일 방영된 <응답하라 1994>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편의 한 장면 ⓒ tvN


"우리한테는 젊은 피 3인방이 있잖애. 유지현이, 서용빈이, 김재현이 이 세 명이 탁 버티고 있잖애. 한 번 우승 꼴랑 해 갖고는, 팬들도 성이 안 찬당께. 내가 볼 때는 내년에도 무조건 우승이여!…(중략)… 당분간은 우리 서울 쌍둥이, 독주체제여, 10년간은. 10년간은 가을 야구 가네!"

<응사>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편에서 1994년 우승 기념주를 담그며 성동일 코치가 했던 대사다. 이어 흐르는 "마지막은 늘 마지막이라는 실감 없이 지나가 버린다"는 성나정(고아라 분)의 나레이션. 이들은 차명석 코치의 다음 인터뷰와 싱크로율이 100%에 가깝다.

"사실, 1994년에 우승했을 때는, 앞으로도 2년에 한 번씩은 우승을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 뒤로 다시 우승을 하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할 줄은 몰랐죠." (책에서, 차명석)

당연한 우연의 일치일 것이다. 드라마가 그 시대에서 트윈스 이야기를 끄집어냈듯, 이 책은 트윈스 이야기를 '야구 너머 시대'로 녹여냈기 때문이다. 1983년 트윈스가 해태 타이거즈와 맞붙었던 한국시리즈에 아웅산 테러가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나, 1994년 트윈스 우승 당시 한국시리즈 4차전이 성수대교가 무너진 이틀 뒤 열렸다는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야구 그 이상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역사와 따로 놀지 않는 스토리텔링의 힘, 이것이 이 책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미덕이다. "야구는 기록 너머의 기억이고, 사건 너머의 사연"이라는 저자의 주제의식이 온전히 드러나는 것도 그래서다.

최근 출판사 '브레인스토어'가 펴낸 ⓒ 브레인스토어


"박종훈 감독이 중도에 퇴진하게 된 건, 역시 성적보다도 선수들과의 불협화음이 더 컸다고 봐야죠. 선수들을 육성해서 기반을 튼튼히 해 달라는 게 가장 중요한 주문이었는데, 그게 원활하지 못했던 거니까." (책에서, 전 LG트윈스 코치 A씨)

저자는 LG트윈스 전체 역사를 하나의 호흡으로 살펴본다. 그래서 저자에게는 LG트윈스가 박종훈 감독과 2009년 당시로는 파격적인 5년 계약을 맺었던 것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도 사퇴하게 한 것이나, 또 그 뒤 '형님 리더십'으로 대변되는 김기태 감독을 선임한 것이나 모두 과거의 실패에서 벗어나려는 하나의 같은 과정이다.

이는 단기 목표에 급급해 선수 육성을 망가뜨린 과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발현된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성공과 실패는 사실 한 몸이다. 이와 같은 인식으로 저자는 "2013년 시즌 마무리와 2014년 시즌 준비 과정에서 현명하게 대처하기만 한다면 2010년대 중반 이후 레이스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에 서는 것은 아마도 LG트윈스일 것"이라고 전망한다.

"LG트윈스는 남들이 갖지 못한 소중한 자산 하나를 가지게 된 셈이다. 그 방향이 옳았든 아니든, 일관되게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 성공했고, 또 실패했던 경험 말이다. 최선을 다한 끝에 만난 실패는, 성공 못지 않은 깨달음을 주기 마련이다…(중략)… LG트윈스처럼 선수단이나 코칭스태프 차원을 넘어 구단과 그룹 전체가 함께 성공과 실패의 노하우를 축적한 경우는 전혀 없다."

LG트윈스 때문에 산다

김은식 지음, 조덕희 그림,
브레인스토어, 2013


#LG트윈스 #트윈스 #김은식 #응답하라1994 #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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