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교직' 양산하는 교원정책, 이게 말이 되나

[주장] 교사를 대상화하는 교원정책 기조 바꿔야

등록 2013.12.09 13:34수정 2013.12.09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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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교수 사회는 일종의 카르텔 조직이다. 이 조직은 정·부·조교수로 구성되는 정규직 카르텔과 초빙·겸임강의교수 등이 포함되는 비정규직 카르텔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정규직 카르텔에 속하는 세 부류는 신분과 지위가 확실하다.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정년 또한 보장받는다. 잘릴 염려 없이 끝까지 일할 수 있으니, 이른바 '신의 직장'이자 '철밥통' 일자리다.

비정규직 카르텔은 계약직 교수들로 채워진다. '초빙'과 '겸임' 등의 거창한 이름이 붙어 있다고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안식년 중이거나 출산 휴가로 자리를 비운 정교직 교수 자리를 메우는 1년짜리 계약직 교수다. 강의교수는 예전에 '보따리 장사'라는 자조적인 비유어로 빗대어지곤 하던 시간제강사의 순화어(?)다.

초·중·고등학교의 교사 조직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교수들과 마찬가지로 교사 종류도 많다. 현재 학교에는 모두 여섯 부류의 교사가 존재한다. 정규직 정교사, 기간제교사, 시간·영어회화전문(영전강)·스포츠·원어민강사 등이다. 이들 모두 '선생님'으로 불린다. 최소 '2급 정교사 자격증' 정도는 하나씩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정규직 정교사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부류는 모두 비정규 카르텔에 속한다.

기간제교사는 정규직과 같은 '정교사'이지만, 주로 한 학기나 한 학년 단위로 계약을 맺는 비정규교원이다. 초빙교수와 비슷하게 출산 휴가나 장기간 병가 등으로 학교 근무를 못하는 정규직 정교사를 대신하는 자리다. 기간제교사는 교육감이 아니라 학교장이 채용한다. 계약도 매년 갱신해야 하고, 호봉은 경력에 상관없이 13호봉이 최고다. 아무리 오랜 기간 일을 해도 급여가 오르지 않는다.

기간제교사는 기본 수업 외에 담임업무를 맡거나 학생생활지도를 담당하기도 하는 등 정규직 정교사들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담임 업무를 기피하는 정규직 교사를 대신해 상대적 약자인 기간제교사에게 업무를 떠넘기는 데서 생겨난 '파행'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매년 갱신되는 계약 때문에 학교장 눈치를 보며 떠안을 수밖에 없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점은 그간 기간제 교사들이 계속 성과급 대상자에서 배제되는 등 차별을 받아왔다는 사실이다(전교조의 줄기찬 요구로 지난해부터 성과급 대상자가 되었다).

규모 커지는 비정규 교원... 시간선택제 교사까지 도입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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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교사가 학생들을 제대로 '교육'할 수 있을까. 교육당국의 진지한 고민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 sxc


기간제 교사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수업(강의) 시간에 맞춰 급여 등이 책정되는 비정규 교원이다. 이들은 카르텔의 위계 서열상 기간제 교사의 아래칸에 놓인다. 수업을 제외한 학교 내의 일상적인 업무 분장 과정에서 받는 차별이 기간제 교사보다 더 심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승진과 수당, 성과급 등에서도 배제된다.


특히 문제가 심각한 것은 영전강과 스포츠강사들이다.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시간제 일자리' 형태로 도입한 영전강과 스포츠강사들은 현재 무기계약 전환을 요구하며 교육 당국과 대립하고 있다. 애초 영전강은 채용공고상으로 정교사 정년을 준용하는 직위였다. 하지만 지난 8월, 4년 계약이 만료된 영전강 508명 중 138명은 학교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국가인권위와 고용노동부는 영전강의 업무 성격이 상시·지속적이므로 여타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처럼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으로 볼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교육감 직고용 대상 직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영전강 정책의 책임 주체인 교육부는 내년 2월 계약이 만료되는 영전강 4천여 명의 고용 보장과 관련하여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비겁한 자세다.

학교체육 활성화를 위해 도입된 후, 전국 초등학교에서 3790여 명이 일하고 있는 스포츠강사들의 처지도 열악하기 그지없다. 이들은 학교에서 8시간 이상 일하면서도 급여는 130만 원(세후)에 불과하다. 제도 도입 이후 임금 인상은 한 번도 없었다. 스포츠강사들 사이에서는 '보릿고개'라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된다고 한다. 매년 3월부터 12월까지 10개월 계약을 종용받음으로써 1월과 2월에는 실업수당으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명절상여금 등의 복지 혜택이나 휴일근로·연차수당 등 근로기준법상의 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교사 조직의 비정규 카르텔은 그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중학교 비정규직 교사 비율은 1995년 2.6퍼센트에서 2013년 17.8퍼센트로 급증했다. 그중 8.7퍼센트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2012년 사이에 생긴 비율이다. 현재 전국의 초·중·고교에서 신규 교원의 70.9퍼센트는 기간제 교사다. 우리 학교만 해도 교장, 교감 등 관리 교사를 제외한 54명의 교원 중 12명(외국인 원어민강사 포함)이 비정규직 교사다. 20퍼센트를 넘는 수치다. 모두 교과교실제와 영어 교육 강화 등이 강력하게 추진되기 시작한 2009년 이후 들어오신 분들이다.

이런 마당에 정부가 시간선택제교사(시간제교사) 제도 도입을 강행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들이 담임 업무를 면제받고 하루 4시간 일하면서 정년과 연금, 승진 등 정규 교원으로서의 지위와 혜택을 적용받는 '정규직'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정규직 1명분에 해당하는 예산을 반으로 쪼갠 후 이를 2명의 시간제교사에게 할당하는 방식이다. 반쪽자리이긴 하지만 승진이나 수당, 보수 등에서 정규직 정교사와 차이가 없으니 '정규직'이라는 논리다.

궤변이다. 내년 2학기부터 2017년까지 3500명이 선발될 예정인 정규직 시간제 교사는 또 하나의 새로운 '학교비정규직'일 뿐이다.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동시에 해가 갈수록 정규직 교사와의 격차가 벌어지)는 임금을 받으면서, 정교사보다 최소 2배 이상 격차가 나는 승진 속도를 기꺼이 감내할 만한 예비 교육자가 있을 수 있을까.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교과전문성도 탁월한 '능력 있는' 교사가 그 자리에서 평생 있으면서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 결국 시간제교사 자리는 취업난에 빠진 청년들의 임시 직종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대한 '무덤' 돼가는 교직 사회... 교육정책 기조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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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회련 학교비정규직 대구지부는 6일 하루 파업을 하고 대구시교육청 앞에 모여 총파업 결의대회를 가졌다. ⓒ 조정훈


교육의 질은 교사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교사의 수준은 고도의 교과전문성을 기본으로 안정적인 직무 환경과 자기효능감을 통해 결정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몰아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 이후 대한민국의 교원정책은 이와 정확히 반대되는 길을 걸었다.

교원능력개발평가와 개인·학교성과급제 등처럼 현장과의 교감이 없는 각종 평가 기제가 교사의 목을 죄면서 교사들의 자존심은 땅에 떨어졌다. 교원법정정원이 지속적으로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교사들의 업무 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졌다. 비정규교원들이 급증하면서 학교가 정규직 반 비정규직 반 세상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교사가 맡는 학생 수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2012년 기준 학급당 학생 수는 초등학교 26.3명, 중학교가 34.0명이다. OECD 평균보다 각각 5.1명, 10.7명이나 많다. 중학교의 학급 과밀 수준은 OECD 국가 중 1위였다. 초등학교는 과밀 순위가 네 번째였다. 교사 1인당 평균 학생 수도 초등학교 19.6명, 중학교 18.8명, 고등학교 15.8명이다. OECD 평균인 15.4명, 13.3명, 13.9명보다 각각 4.2명, 5.5명, 1.9명이 많다.

교원법정정원 비율도 교육의 질을 가늠하고 결정하는 데 큰 몫을 담당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비율이 지난 세 개의 정부를 거치면서 오히려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중등교사의 교원법정정원 확보 비율은 국민의 정부 시절에만 하더라도 84퍼센트에 이르렀다. 하지만 참여정부로 넘어오면서 그 비율은 82퍼센트로 떨어졌다. 이명박 정부에 오면 사상 최초로 교원법정정원 확보율이 70퍼센트대로 떨어진다. 현재 교원법정정원 확보 비율은 78퍼센트에 그쳐 있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해 9월 26일에 교원의 법정정원 관련 조항을 삭제하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교원 법정 기준인 '학급당 일정한 교원 수'를 삭제하는 대신 예산과 학생 수에 따라 교원 수를 정하겠다는 게 주된 취지다. 교과전담·전문상담·사서 등의 교사 배치 기준도 아예 삭제하겠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었다. 하지만 그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의한 초·중등 교원 배치기준에 따라 계산하더라도 아직 4만 명이나 되는 교사가 부족하다.

물론 교육당국이 이런 상황을 전혀 도외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교사 1인당 학생 수를 OECD 수준으로 개선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서남수 교육부장관도 2017년까지 약 4만여 명의 교원을 증원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9월, 교육부로부터 교원 증원 협조 부탁을 받은 안전행정부는 2014학년도 교원정원 1만6000여 명 증원 요구를 거부했다. 학생 수 감소 등을 이유로 교원 증원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이다.

교원법정정원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정부가 꺼내 놓는 약방 감초 같은 반대 논거가 학생 수 감소와 예산 문제다. 저출산 등의 영향으로 이른바 학령 인구(초·중·고등학교, 대학교에 다리는 연령대인 만 6세~21세까지의 인구)가 자연 감소하고 있으니 굳이 교원법정정원을 채우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법정정원을 채울 수 있다는 논리일 게다. 민감한 예산 문제까지 덮을 수 있으니 학령 인구 감소 카드는 멋진 '꽃놀이패'다.

실제로 정부로서는 학령 인구 감소 문제를 전혀 도외시할 수 없을 것이다. 교육·교원정책의 근본적인 틀을 바꾸어야 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교원정원 문제와 관련하여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리는 상황은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정부가 정작 책임지고 맡아서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으면서, 학령 인구 감소와 같은 외적 상황에서 핑곗거리를 찾는 듯해서 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공교육비는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대학교 등 각 교육 단계에서 쓰인 총 비용을 가리킨다. 공교육비는 대개 정부부담과 민간부담으로 나뉘어 계산된다. 정부는 지난 6월 25일에 '2013년 OECD 교육지표'를 발표했다. 여기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교육비의 민간부담 비율은 2.8퍼센트로 13년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OECD 평균 0.9퍼센트의 세 배 가량이나 된다. 반면에 공교육비의 정부부담 비율은 4.8퍼센트로 OECD 평균인 5.4퍼센트에 미치지 못한다. 공교육에 드는 비용의 많은 부분을 민간에 기대고 있는 셈이다.

짙은 냉소와 무기력이 넘치는 교직 사회는 지금 거대한 '무덤'이 돼가고 있다. 소통과 협력은 온 데 간 데 없고 갈수록 상호 불신만 깊어진다. 그 어떤 일에도 입을 열지 않는 교사들의 모습은 마치 시한폭탄 같다. 그 어떤 개혁안이나 정책도 현재의 교사·교직 시스템에서 성공하기 어렵다고 보는 이유다.

사회학자 엄기호는 최근작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따비 펴냄)에서 교사들을 "교무실에 떠 있는 천 개의 섬"으로 비유한 바 있다. 새로운 시도를 하면 분란을 일으킨다며 불온시되고, 가만히 있으면 네가 그러고도 교사냐며 힐난을 받는 게 지금의 교사다. 교사는 침묵에 빠지고, 교무실은 '천 개의 섬'이 떠 있는 황량한 바다가 된다. 학교가 갈수록 '무덤'이 돼가는 이유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는 말을 믿는가. 그렇다면 교사들이 자존감을 갖도록 만들라. 교사를 대상화하고, 그들을 수동적인 객체로 만드는 교육정책의 기조를 바꾸라. 교사를 교육의 당당한 주체로 대접하라. 교사의 자발적인 혁신이 일어나도록 그들을 신뢰하라. 교사가 신분의 차별과 지위의 불안정에 떨지 않고 교육적 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 법이 규정한 교사의 일은 아주 간명하다.

교사는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들을 교육한다. (초·중등교육법 제20조 4항)

어떤 교사가 학생들을 제대로 '교육'할 수 있을까. 교육당국의 진지한 고민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비정규교원 #시간제교사 #교원법정정원 #교원정책 #'알바 교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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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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