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이렇게 좋은 거였다니... 응원합니다

2013 남산 강학원&감이당 학술제에 가서 느낀 것들

등록 2013.12.08 10:21수정 2013.12.0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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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전평론가다 12월4~7일 감이당 학술제 ⓒ 이소영


6팀의 중년 여인네들이 개그콘서트 같은 연극을 했다. 지방에서 상경한 나와 일행들의 배꼽을 쥐게 했다. 100여 명 남짓 들어찬 이곳은 충무로 깨봉빌딩 3층 감이당이다. 얼마 만에 이렇게 웃어보았을까? 본 적은 있다. 나꼼수의 김어준, 국민TV문희정 아나운서의 시장바닥 웃음, 꾸미지 않은 생이 터져나오는 웃음. 내가 부러워한 이 후련한 웃음, 한동안 잊어버렸던 진짜 웃음, 그것을 내가 2시간 동안 터뜨릴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여기 여인네들은 1년간 감이당에서 원정공부를 하였다. 가까이 서울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청주, 천안, 성남부터 멀게는 대구에서 오전 5시 30분 KTX를 타고 1주일에 한 번 올라오는 사라도 있다. 이날 하루, 밥도 쌀도 나오지 않는 공부를 위해 2013년 한해를 불태웠다.

그들의 수업을 살펴보자.

10시 1교시 글쓰기 : 미국도 아닌데 학교에서도 배우지 않았던 글쓰기 수업이라니, 소위 에세이란 말이다. 드라마도 독후감을 써내라면 차라리 안 보겠다는 우리 가정주부들인데.

1시 30분 2교시 독송교실 : 노래방 덕에 가무에 능하다는 한민족이 노래가사 망각의 시대를 살고 있는데 독송이라니. 심지어 나는 단축키의 일상화로, 남의 집에 가서도 아빠 전화 번호는 1번 '꾸욱'이라는 6살배기 아들을 가진 사람이다. 독송?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온다.

3시 3교시  의역학 입문 : 한의사들이 하는 공부인가? 듣기만 해도 전문적인 냄새가 나는, 디지털시대를 거스르는 듯한, 멀게만 느껴지는 한자의 거부감까지 드는 2시간짜리 수업.


그럼 도대체 어떤 교재로 공부했을까. 이름도 어려운 크리슈타무르티의 <아는 것으로부터이 의 자유>, 박지원<연암집/나는 껄껄선생이라오>, 나쓰메의 <소세끼>, 동의보감, 아함경.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의 소도구가 아닐까? 소위 중년의 가정주부들이 뭣 때문에 자기 돈을 들여 이 먼 데까지 와서 이런 걸 배우는 것일까?

나는 그녀들 중 한 명을 알고 있었다. 나와 4명의 여자들은 감이당 독서목록을 가지고 천안에서 5월부터 책읽기 모임을 하고 있었다. 간간히 감이당 소식을 들었다. 그녀들의 이야기에 무심하다가도 어느 날은 솔깃했다. 또 어느 날은 강렬하게 부러워했다가 '뭣하러 그렇게 까지' 했다.

우연히도 이들의 수업 시간에 쉬는 나는 너무도 궁금하여 혹시나 참관 수업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지인에게 부탁한 적이 있다. 물론 그녀에겐 권한이 없었고 어려운 일이었다. 감이당에 대한 호기심은, 이 인문학 공동체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남산강 학원에 아이를 등록하게 했다. 그후 지난 여름 매주 토요일에 깨봉빌딩을 찾게 되었다. 그녀들 속은 아니지만 그녀들의 장소에만도 가보고 싶었나보다.

나의 책읽기 모임은 6개월이 지나가고 있었고 감이당에서 '학술제'가 열렸다. 드디어 나는 감이당 그녀들의 아지트에 초대받을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속시원하고 후련한 웃음을 선사한 게 바로 학술제 2번째 날 5일에 열린 '독송 대회'였던 것이다.

미리 신청을 받아서 진작에 마감되었던 '사주어택' 첫 시간을 놓치고 아쉬워하며 다음 프로그램인 독송대회를 보게 되었다. 사실 이 프로그램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 독송 대회? 암송하는 것을 본다는 게 뭐 재밌겠는가? 그러나 나의 예상은 첫 팀부터 기분좋게 빗나갔다. 독송대회는 연극을 통한 대사로 그녀들이 짠 시나리오 속에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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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을 차지한 2조의 "고골 엔터테인먼트". 많은 분량을 외워 잘 독송하였다. ⓒ 이소영


첫 번째 조의 연극, 이 외로운 마음을 어찌할꼬? 남자 한나 소개시켜 주오. 소개받은 변강쇠도 이도령도 조르바도 나의 이 허한 마음을 채울 수가 없네. 공부하고 실천하여 기쁨으로 외로움을 날려버리세.

이것이 아니었을까? 그녀들의 뻥 뚫린 구멍을 메우고 외로움을 날려버려 주는 것. 덤으로 기쁨까지 준 것.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어떤 이는 명품가방을 살 테고 어떤 이는 아이교육에 집중할 테고 어떤 이는 일에 매진할 것이다. 이들이 선택한 것은 공부다.

법륜스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설악산이 뭐 해줘서 좋아하나? 해주는 것도 없는데 그냥 좋아하잖아." 공부를 왜 좋아하나? 밥이 나오나 쌀이 나오나? 그러나 좋다. 산보다 좋다. 남자보다 좋다. 그냥 좋아하는데 허한 마음을 채워주고 기쁨도 주며 내가 누군지 알려준다. 공부하여 깨닫게 되고 쓰기를 통하여 나를 보게 되고 의역학을 통하여 몸과 정신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의 공부는 허공중에 흩어져 버리는 관념, 지식 놀이가 아니었다. 3번째 조의 연극처럼 알람을 치워버리고 마시는 물을 바꾸고 차를 팔고 걸어다니는 변화, 나를 바꿨다. 이런 재배치로 가정이 바뀌고 인간관계가 바뀌고 아침이, 하루가 삶이 변화했다. 내가 읽었던 수많은 육아서 교육서 심리학 책들이 삶으로 펼쳐지는 현장이었다. 실천 없는 앎이란 모르는 것만 못한 것.

이들의 공부는 삶을 바꿔 기쁨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 기쁨이 나에게도 전해졌는지 이들의 연극은 내게 한바탕 웃음으로 터져나왔다. 그러나 이들의 공부를 볼 때 만만해 보이지가 않았다. 이 어려운 것을 어떻게 합니까? 대단한 사람들이니까 하는 것 아닙니까? 나는 지인에게 손사레를 쳤지만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잘해서 하는 것이 아니야. 고미숙 선생님께 안 깨지는 사람이 없어. 다들 못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건 이 길이 진리이기 때문이야. 진리를 깨닫는 것은 그 어떤 기쁨보다고 크고 지속적인 것이야."

잔뜩 차서 혼란스러웠던 것이 아니면 텅 비어서 허했던 것이 뭔가가 선명하게 뚫리고 싶기 때문에, 공부가 통로이기 때문에 그녀들은 열정을 바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나또한 그런 한 사람이기도 하다. 아직 장을 찾지 못한.

다음 프로그램인 혈자리서당, 미술톡톡까지 듣고 집으로 내려왔다. 이 학술제는 7일 토요일까지 진행되었고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토요일 밤에는 뒷풀이를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오픈강좌의 객으로 초대되었으나 가슴에 구멍을 가진 자로서 그들의 열정이 웃음을 통해서가 아니라 삶의 변화로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안고 이 시간 그들의 뒷풀이에 박수와 응원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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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이당을 이끌고 있으며 쓰기수업담당 고전평론가 고미숙 ⓒ 이소영


#감이당 #학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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