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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보 뜯고 경찰 신고... 이 정도면 '공포영화'다

[주장] 매카시즘의 광기어린 시대... 한국도 다르지 않네

13.12.20 10:39최종업데이트13.12.20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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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미국, 한 남자의 지나친 음주가 추문을 일으키며 크게 문제가 됐다. 또한 그 남자는 명예훼손·뇌물수수 등으로 사회적인 비판에 시달리며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얼마 후 대중을 휘어잡으며 인기인으로 거듭난다. 그는 공화당 당원집회에 참석해 "미국에는 공산주의자들이 비밀리에 활동하고 있으며, 나에게 그 명단이 있다"고 외쳤다. 여기서 그는 바로 공화당 상원 의원 조지프 매카시였다.

수많은 비리들로 정치적 위기에 처해있던 매카시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공산주의자 딱지를 붙이며 국가안보를 위한 영웅으로 거듭났다. 상원의회는 그의 발언을 근거로 위원회를 구성해 조사에 들어갔고, 언론은 검증 없이 받아쓰기 바빴으며 무고한 피해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1950년대 미국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은 매카시즘 시대의 개막이었다.

표현의 자유 위축시킨 광기의 시대

영화 <모던 타임즈> 스틸 컷 ⓒ 모던 타임즈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따스한 시선을 보내는 영화 <키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비인간성을 고발한 <모던 타임즈> 등 수많은 걸작을 남긴 찰리 채플린이 매카시즘에 희생당하며 공산주의자로 몰린 사례는 유명하다. 전후 미국 희곡의 대표적인 걸작 <세일즈맨의 죽음>을 집필했던 아서 밀러 역시 이때 공산주의자로 몰렸다.

특히 안보와 동떨어진 평등이나 인권 같은 주제를 말하는 사람들도 공산주의자로 몰렸으며 표현의 자유가 크게 위축되기 시작했다. 시민단체 지도자·공무원·교사 등 일반인들도 공산주의자로 의심받아 시달림과 고초를 겪었다. 매카시즘으로 인해 직업을 잃은 사람, 투옥된 사람 등 피해자 수는 엄청났다.

무려 4년 동안 나라를 뒤흔들던 이러한 광기는 공화당이 정권을 잡는 것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여론은 수년 동안 지속되는 매카시즘에 점차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다. 흑색선전에 가담했던 사람들의 양심선언과 함께 언론의 고발성 보도가 이어졌다.

시들해진 인기와 더불어 그동안의 주장에 근거를 제시하라는 언론의 책임추궁 등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매카시. 그는 조사대상으로 지목돼 청문회에 서게 된다. 미국 전역에 생중계된 청문회에서 그는 공산주의자들을 지목한 근거를 대지 못한 채 나락으로 굴러떨어졌다. 이후 알코올 중독에 빠진 매카시는 3년 뒤 48세라는 젊은 나이로 생을 달리했다.

매카시즘이 불러온 공포영화의 전성기

메카시즘의 광기 속에서 살이남기 위한 헐리웃의 몸부림...이때 쏟아져 나온 헐리웃 공포영화들은 반공주의에 대한 강박을 드러내고 있다. ⓒ 유니버설, 워너브라더스,윈체스터, 월터 와그너


당시 수많은 영화계 인사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탄압 당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대중들이 느끼는 무서운 시대상의 반영이었는지 매카시즘이 횡횡하던 시기 할리우드에서는 공포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영화 <괴물> <신체강탈자의 침입> <나쁜 종자> 등이 그것이다.

반공주의 정서 속에 몸부림치던 할리우드의 첫 공포영화 <괴물>은 인간의 몸 속에 숨은 끔찍한 외계 생명체를 등장시켰다. 숨어있는 불순분자들을 색출하던 당시의 시대상을 담아낸 것이다. 관객들을 충격에 몰아넣으며 흥행했던 이 영화는 세월이 지난 후 존 카펜터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영화 <신체강탈자의 침입> 역시 비슷한 소재인데, 주인공이 사는 마을에 외계인들이 잠입해 인간의 몸을 뺏어간다는 내용이다. 2007년 개봉한 니콜 키드먼 주연의 <인베이젼>은 이 영화의 리메이크 버전이다.

소개된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초창기 할리우드 공포영화들은 매카시즘을 비판하기보다는 이것에 편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영화 <나쁜종자>에서는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애장품으로 빨간색 구두가 등장할 정도다. 여기에는 매카시즘으로 인해 수백 명의 감독과 작가 및 배우들이 블랙리스트에 오르며 해고됐던 당시의 상황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할리우드 공포영화가 반공주의적 강박에서 벗어나 장르적인 재미를 추구하기 시작한 것은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른 뒤에서야 가능했다. 마녀사냥을 소재로 삼은 <심판>이라는 영화가 1968년에 개봉됐는데, 매카시즘으로 난리를 떨었던 미국사회의 모습을 담아낸 것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마저도 할리우드가 아닌 영국에서 나온 영화였다.

누가 '청소년 드라마'를 공포영화로 만드나

최근 종북몰이가 이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사회상이 매카시즘이 횡횡하던 1950년대 미국과 닮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인지 공포영화의 전성시대 역시 재현되는 조짐이다. 극장이 아닌 현실에서 말이다.

최근 사회 현안에 대한 걱정을 대자보로 담아낸 학생들에게 몇몇 교사와 관계자들이 보여준 처사는 공포영화의 익숙한 클리셰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예를 들어 학생이 대자보를 붙이자 불순분자의 개입을 의심한 교장 선생님이 신고를 했다는 설정이 그렇다.

학교로 경찰이 찾아오는 장면은 캠퍼스 공포물에 흔히 등장하는 것이다. 더욱이 대자보를 붙인 학생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침해하는 것'은 텔레파시 따위가 등장하는 SF 공포물이 아니고서야 가능한 설정이 아니지 않겠는가.

자유롭게 토론하며 지식의 전당으로 우뚝 서야 할 배움의 터전에서 어떻게 이런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까. 어쩌면 학교를 배경으로 비밀리에 공포영화가 제작 중이며, 모든 관계자들이 영화의 스태프 및 배우로 활약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공포영화 속의 캐릭터가 돼 살아남는 법을 기술한 <공포영화 서바이벌 핸드북>의 저자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에 따르면, 이러한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오로지 장르탈출뿐이란다. 예를 들어 전기톱 살인마를 향해 검을 빼들고 '사부의 복수'를 외치며 무협영화 주인공처럼 행동하거나, B급 영화에는 어울리지 않는 명대사들을 중얼거리며 감독과 작가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걸작 <죽은 시인의 사회>나 <언제나 마음은 태양> <위험한 아이들> 같은 영화를 참고한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매카시즘의 광기어린 공포영화'로부터 구해내는 것 아닐까.

대자보 공포영화 매카시즘 표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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