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만든 돌집, 벽을 어루만지며 전율했다

[뒷길에서 본 아메리카 09] 나의 우상 스콧 니어링의 말년 자택에서 감격하다

등록 2013.12.22 21:17수정 2013.12.22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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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인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어쨌든 미국에서였다. 아이 엄마가 한국에서 들고 온 대여섯 권의 도서 가운데 <조화로운 삶>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었다. 나는 평소 책 읽기를 아주 즐기는 축엔 들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50년 남짓한 내 삶에서 가장 인상적인 책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이 책 <조화로운 삶>을 택하겠다.

이 책은 충격 그 자체였다. 세상에! 나하고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니. 더구나 그런 생각을 실천까지 하며 살았다니. 그 인물은 다름아닌 저자이자 주인공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이다. 이름이 말해주듯, 외국인이다. 1883년 태어났고, 1983년 100세로 별세했다.


나보다 80년 가까이 먼저 태어난, 한 외국인의 생각이 나와 똑같았다는 게 정말 경이로웠다. 지금 그 책의 내용을 구구절절 다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몇 가지 핵심적이라 할 대목은 대강 추릴 수 있다. 단어로 요약하면 대충 이렇다. 자급자족, 자연 존중, 스스로 굶어서 죽음 맞이하기 등이다.

물론 생각만 똑같을 뿐, 실천이라는 면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니어링과 나는 천지차이로 다른 사람이다. 나는 겨우 4년 전에야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시골에 터를 잡았다. 게다가 자급자족 실천까지는 멀고도 먼 실정이다. 하물며, 세상을 떠날 시점이 됐다고 판단될 때, 곡기를 끊고 죽음을 부를 용기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겐 없다. 그저 그랬으면 하고 바랄 뿐, 내 그릇의 크기로 볼 때 실천되지 않을 가능성이 99% 이상이라는 걸 잘 안다.

6개월이 될지, 1년이 될지 혹은 그 이상이 될지 모를 무작정 유랑 여행을 떠난 건 2006년 늦여름이었다. 그때 꼭 찾아가 보리라 벼른 곳이 있었다면 딱 한 곳, 바로 니어링이 살았던 집이었다. 니어링이 말년을 보낸 메인 주의 한 시골에서 나는 내 삶의 가장 큰 후원자를 만난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니어링이 지었다는 돌집의 벽을 어루만지면서 나는 전율했다. 재수가 있었는지 뒤이어 펜실베이니아 일대에서는 아미시(Amish)들의 일상도 목격할 수 있었다. 아미시도 참으로 인상적인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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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니어링 ⓒ 김창엽


말년의 스콧 니어링(굿 라이프센터 제공)과 그가 살았던 메인 주 하버사이드의 돌집. 그는 돌로 지은 집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 나 역시 이런 자연소재를 최대한 활용해 집을 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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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니어링이 살던 곳 ⓒ 김창엽


니어링이 살던 집 주변의 흙 길과 바닷가 모습. 니어링이 살던 동네, 하버사이드에 도착한 시간은 오밤중이었는데, 빛 한줄기 없었던 절대 암흑의 공간이 주던 평화로운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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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라이프 센터 ⓒ 김창엽


니어링이 살던 집은 '굿 라이프 센터'라는 공공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니어링의 생활방식과 뜻을 따르려는 젊은 사람들이 이 곳을 거쳐간다고 했다. 웰컴이라는 환영 간판이 있는 우측의 길에 차를 세우고 밤을 났다. 길을 잃고 헤매는 바람에 밤늦게 이 곳에 도착한 탓에 너무 배가 고파 저 길바닥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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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시 ⓒ 김창엽


아미시 사람들은 펜실베이니아와 오하이오 주에 주로 몰려 산다. 아미시 인구는 30만 명 안팎인데 꾸준히 불어나는 추세다. 재침례교로써, 성인이 돼서 기독교 신자로 남을지, 즉 세례 여부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한다. 현대 물질 문명에 대한 의존을 최소화하는 생활 원칙을 갖고 사는데 너무 부러웠다. 자급자족은 말할 것도 없다. 한 가지 문제라면, 아미시 사람들끼리 혼인이 많아 유전병이 상대적으로는 많다는 점이다.

전형적인 아미시 농가. (위 왼쪽). 버기라 불리는 마차가 주요 교통수단이다. 아미시들은 화려하게 꾸미는 걸 정신적 타락으로 여기기 때문에 마차는 물론 옷도 대개 무늬가 없고, 회색이나 검정색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아미시 젊은이들도 미식 축구의 마력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마차의 스톱 사인판에 미식 축구 헬멧이 그려져 있다.(위 오른쪽)

아미시 마을은 법적으로 정해진 구역이나 울타리가 있는 게 아니다. 아미시 아닌 사람들도 섞여 산다. 또 일반 승용차나 트럭도 아미시들이 몰려 사는 동네를 통과하기 때문에 교통 사고의 위험도 상존한다.
덧붙이는 글 sejongsee.net(세종시 닷넷)에도 실렸습니다. sejongsee.net은 세종시에 관한 각종 정보를 담은 커뮤니티 포털입니다.
#자급자족 #아메리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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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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