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에 단 한 번뿐인데"... 예비신부는 '봉'이다

[소박한 결혼 프로젝트⑪]'내 맘대로'와 '남들 하는 대로', 그 사이에서

등록 2013.12.24 19:47수정 2013.12.24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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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8년간의 연애 끝에 남자친구 '곰씨'와 결혼식을 했습니다. 신부와 신랑이 주인공이 되는 결혼식,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 준비하는 결혼식, 모두가 즐거운 결혼식. 제가 꿈꾸던 결혼식인데요. '소박한 결혼 프로젝트'는 성공했을까요? 그 이야기를 공개합니다. - 기자말

"가격 때문에 그러세요?"

구두를 신어보기 위해 양말을 벗은 한쪽 발이 민망했다. 어서 다시 양말을 신고 이 신발가게를 나가고 싶었다.

"에이, 평생에 단 한 번밖에 없는 날인데. 그냥 이걸로 하세요. 제가 바로 주문 넣어 드릴게요. 오늘까지 세일이라 이번 기회 놓치면 이 가격에 절대 못 사요."
"아, 다른 가게도 좀 보고 오려고요."
"여기 웨딩슈즈 파는 가게는 우리밖에 없는데 어딜 간다고 그러세요." 

웨딩드레스 밑에 신을 웨딩슈즈를 사러 돌아다니다 발견한 신발가게. '세일'이라는 가격이 무색하게 신발 밑창에 찍힌 가격은 전혀 저렴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직원은 막무가내였다. 다들 이 정도는 결혼할 때 신는다는 듯. 평생에 딱 한 번뿐인 날에 이 정도 투자도 하지 않는 너는 대체 뭐냐는 듯. 내가 비뚫어진 건가.

"3주 밖에 안 남았는데 한 번도 관리를 안 받으셨다고요?"

피부과 직원은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결혼 3주 전. 스트레스로 인한 수면부족으로 피부가 엉망이 됐다. 서른에 사춘기가 온 것인지, 학창시절에도 안 생겼던 여드름이 얼굴 곳곳을 덮었다.

피부과에서는 그나마 싸다는 수십만 원짜리 피부 관리 프로그램을 추천했다. 보통 웨딩 피부 관리는 몇 달씩 받는데,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집중적으로 받으라고. 여드름 주사나 맞으러 간 건데, 주사의 '주'자도 꺼내지 못했다. 피부과를 나와 회사로 향하면서 혼잣말을 했다.

"예비 신부는 호구구나."

"평생에 단 한 번인데... 가격 때문에 그러세요?"

신부는 호구다.  '일생에 단 한 번뿐인데'라는 이유로 신부를 유혹하는 것들이 어찌나 많은지.

'일생에 단 한 번인데, 드레스는 좋은 거 입으셔야죠. 결혼식은 신부님이 주인공인데, 메이크업은 이름 있는 데서 받으셔야죠. 어머, 평생에 한 번뿐인 날인데, 피부 관리도 안 받으시려고요?'

이는 비단 '업자'의 유혹만은 아니다. 나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신혼집 먼저 구해서 같이 살고 있고, 혼인신고까지 했는데, 결혼식은 말 그대로 '식' 아니야?'라고 생각했는데, '견물생심'이라고 알면 알수록, 보면 볼수록 욕심이 생겼다. 씁쓸하기는 하지만, '신부가 예쁜가'와 '밥은 맛있는가'로 평가 받는 것이 요즘 결혼식 아니던가.

사실 결혼 준비 전까지만 해도 결혼식 때문에 적지 않은 돈을 들여서 '관리'를 받는 신부들이 솔직히 잘 이해가 안 갔다. 귀찮다는 이유로, '그걸 꼭 해야 해?'라는 남모를 반항심(?)으로 삼십 평생 색조 화장 한 번 안 하고 살았으니까. 처음 본 면접이었던 <오마이뉴스> 합숙 면접에서 다행히 합격했고, 그동안은 사회부 기자로 '구르느라' 정장도 화장도 남의 일이었다. 안구 건조증 때문에 렌즈도 못 껴서 친구들은 묻곤 했다.

"홍, 신부 입장할 때도 안경 쓰고 들어가?"

그랬던 내가, 어느 점심시간, 회사 근처 피부 관리실에 누웠다. 저녁 시간은 한 달 동안 예약이 꽉 차서 점심시간에만 이용이 가능하단다. 관리사가 얼굴에 뭘 그렇게 이것저것 발랐다가 지웠다가. 얼굴은 또 어찌나 격하게 만져 주시는지…. 이러다 얼굴에 피멍드는 건 아닌지 걱정될 정도였다.

'점심도 못 먹고 이게 뭐하는 건지. 내가 마음이 급하긴 급했나 보다. 몇 달씩 피부 관리 받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다.'

일단 한 번 받아보고 관리를 더 받을지 말지를 결정하려고 했는데, '물광'이고 뭐고. 이건 도저히 더 못 받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살던대로 살아야지. 그냥 팩이나 사서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해야지. 잠도 많이 자고.

원피스에 면바지... 회사 앞에서 웨딩 촬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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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함께 사진 찍던 날, 하늘공원. 하늘은 파랗고 뜨겁고... 저 수많은 인파가 보이는가. ⓒ 홍현진


'내 맘대로', '남들 하는 대로'. 결혼 준비를 하는 내내 나와 곰씨는 이 둘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으려고 했다. 남들 다 하는 대로 따라 하기는 정말 싫은데, 그렇다고 해서 남들 신경 안 쓰고 내 맘대로만 할 수 없는 어중간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를 잃지 않을 것인가. 당시에는 정말 큰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돌아보면 큰 즐거움이기도 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다. 웨딩 촬영도 처음에는 할까 말까 많이 고민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배경 앞에서 어디선가 본 듯한 의상을 입고 처음 보는 사진사 앞에서 하루 종일 방긋방긋 웃으며 촬영할 자신이 없었다. 어색하고 민망한 것을 잘 못 참는 성격이라 더욱 그랬다.

'어차피 8년 넘게 사귀면서 사진도 많은데, 굳이 따로 또 찍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여름쯤 카메라 한 대를 구입했다. 친구와 가족들을 만날 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포토 프린트를 사서 집들이에 온 친구들에게는 즉석에서 사진을 뽑아주기도 했다. 고향집에도 사진을 가져갔다. 우리의 시작이 우리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도 작은 의미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우리 신혼집에도 그 사진이 걸렸다.

웨딩 촬영을 따로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에 먼저 결혼한 친구들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예쁜 모습을 남겨놓으라'고 말했다. 이미 '화양연화'는 지난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왠지 아쉬웠다.

그러다가 곰씨의 친한 친구가 사진을 찍어주기로 했다. 사진 찍는 날, 나는 원피스를 입고, 곰씨는 면바지에 남방을 입었다. 촬영 장소는 회사가 있는 상암동. 하늘공원이 당초 목적지였지만 10월 초인데도 햇살이 너무 뜨거웠다. 일단 태양을 피해 회사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오마이뉴스> 사무실이 있는 층에는 건물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거나, 바람을 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잔디도 깔려있고, 탁 트인 하늘을 배경으로 건물들이 보인다. 매일 일하러오는 회사에, 그것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헤어와 메이크업까지 하고 왔더니 어찌나 민망하던지. 혹시나 담배 피러 나오는 당직자들이 있을까봐 힐끔거리며 사진촬영을 했다.

해가 조금 떨어지자 하늘공원으로 향했다. 근처에 사는 친구도 자전거를 타고 얼마 전 구입한 카메라를 들고 과일을 싸서 놀러왔다. 사진 찍는 건 역시 어색했다. 너무 많이 웃었더니 광대는 승천, 눈가에는 주름, 입가에는 경련이…. 토요일 오후 하늘공원에는 사람이 얼마나 많던지. 그래도 친한 친구가 찍어준 덕분에 자연스러운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준비한 결혼, 고마움 반 미안함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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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보내 준 결혼신문 디자인 최종 시안. 나와 곰씨를 인터뷰한 기사와 곰씨의 결혼제안서, 그리고 지인들의 축하 메시지로 구성돼있다. 신문은 결혼식 당일 하객들에게 배포됐다. ⓒ 홍현진


결혼 신문과 영상은 동기들의 도움을 받았다. 올해 초, 기자 커플 결혼식에 갔는데 양측 모두 동료들이 결혼 신문을 만들어준 거다.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부터 시작해서 추억의 사진이 담겨있는 신문을 보면서 참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상견례도 하기 전, 동기 한 명을 '결혼 신문 편집국장'으로 임명(?)했다. "너만 믿을게"라면서. 타사 동기 한 명도 신문팀에 합류했다.

시간을 맞춰서 인터뷰를 하고, 지난 8년간 찍어뒀던 사진첩을 뒤적이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 곰씨와 내가 처음 만났던 야학 사람들, 회사 사람들, 가족들까지. 메시지를 하나하나 읽어보는데 괜시리 눈물이 났다.

"4학년 3반 셋째 줄에 앉아있던 홍현진을 처음 만난 게 19년 전, 그때나 지금이나 우린 그대로인 거 같은데 어느새 난 아들 둘 엄마가 됐고, 홍씨도 결혼이란 걸 한다네. 어리기만 한 것 같은 홍씨가 결혼한다니 신기할 뿐이지만, 든든한 곰씨가 있으니 걱정 없겠지? 10년이나 연애했지만 결혼은 연애랑 다른 거니 살다보면 마찰이 있겠지. 근데 먼저 결혼해보니 별 거 없더라 ㅎㅎ. 한 번 더 이해하고 배려하고 생각하고. 그렇게 맞춰 살아가면 행복할 거야..."

"드디어 오늘, 이 시간이 네가 태어난 삼십년 전 그날과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오네. 존재만으로 기쁨이고 행복이었던 첫 조카 시현. 아직도 바가지 머리에 귀여운 살인미소를 날리던 꼬꼬마의 모습이 실감이 나질 않는다. "시현아", "현진아"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십년연애 담백하게 지내온 것처럼 이제부터의 결혼 생활도 너희들의 방식대로 그렇게 지속될 거라 믿는다. 건강하게 서로에게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기원하며 너희 두 사람을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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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가 만들어준 결혼식장에서 상영할 동영상. 청첩장에 적었던 문구를 넣어주었다. ⓒ 홍현진


결혼식장에서 상영할 영상은 방송팀 동기가 만들어줬다. 동기가 "주례 없는 결혼식 하면 썰렁할 수도 있으니까 영상 만들어줄까"라고 말한 것을 '소머즈의 귀'로 포착해서(빈말... 아니었지?). 곰씨와 내가 함께 부를 축가, 데이 브레이크 <좋다>에 맞춰서 나올 영상이라 사진은 하객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것들로 골랐다.

친구들 모두 기쁜 마음으로 도와줬고 그래서 정말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불편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자칫 우리의 부탁이 친구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 될까봐. 다들 먹고 사느라 바쁘고 힘든데, 또 하나의 부담이 될까봐. '재능기부'라는 말을 내가 경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간 되는 친구들은 직접 집에 불러서 식사를 대접하기도 하고, 밖에서 따로 밥을 먹기도 하고, 선물을 준비하기도 하고. 나름대로는 마음을 쓰려고 노력했는데 가슴 한편에는 여전히 고마움 반, 미안함 반이다. 부족한 건 살면서 갚아나가야지. 잘 할게. 친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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