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사전에 '사회적 합의'는 없다

[데스크 칼럼] '두 얼굴의 박근혜' 민낯

등록 2013.12.23 15:36수정 2013.12.23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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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정부의 사전에 '사회적 합의'는 없는 셈이다. 이번 민주노총 침탈 사건은 박정희 시대의 YH무역 사건과 박대통령의 '롤모델'인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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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냥해 최루액 뿌리는 경찰 민주노총이 입주한 경향신문사 1층 현관 유리문을 열기위해 경찰이 캡사이신 최루액을 뿌리며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 이희훈


경찰이 <경향신문> 사옥의 현관 출입문을 박살내고 이 건물에 입주해 있는 민주노총 사무실을 침탈했다. 명분은 철도노조 파업지도부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이었다. 그런데 만일 민주노총이 <동아일보>나 <조선일보> 사옥에 세 들어 있어도 경찰이 현관 유리문을 깨고 진입했을까?

박근혜 정부가 취임 1년도 안되어 사회적 합의를 위한 대화를 거부하고 노동조합을 적대시하면서 국가폭력의 민낯을 드러냈다. 경찰은 22일 오전 파업중인 철도노조의 지도부 검거를 앞세워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에 공권력을 투입했다.

노동계의 본산인 민주노총 본부에 경찰이 진입한 것은 1995년 민주노총이 설립된 이후 처음이다. 이에 민주노총은 '박근혜 정권 퇴진투쟁'을 벌이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정부는 파업으로 인한 물류 파동과 경제 활동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공권력 투입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하지만, 정부의 일방통행식 강경대응이 오히려 산업현장의 평화와 노사정 대화를 파국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비판적인 언론과 노조를 적대시하는 폭거

경찰은 이날 5000여명을 동원해 서울시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건물을 에워싼 뒤 현관 유리 출입문을 깨고 민주노총에 진입했다. 공권력 투입 명분은 '불법파업'이라는 정부의 유권해석과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이다. 그러나 불법파업 여부는 다툼의 여지가 있으며, 법원이 민주노총 사무실의 압수수색 영장까지 발부한 것은 아니다.

설령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더라도 언론사 건물에 대한 경찰력 투입은 자제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정부가 신문 제작이 한창 진행중인 언론사 사옥을 보란 듯이 파손하면서 민주노총에 공권력을 투입한 것은 비판적인 언론과 노조를 적대시하는 폭거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정부의 공권력 투입은 허투루 넘길 일이 아니다.

우선 파업의 불씨를 제공한 것은 노조가 아니라 정부다. 정부는 문제의 발단인 '수서발KTX 자회사'가 민영화와 무관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흑자노선인 KTX를 분리함으로써 철도공사 재정적자 개선에 역행하고 있다. 또 수서발KTX 운영회사를 주식회사 형태로 추진함으로써 언제든지 주식이 매각될 수 있는 '변종 민영화'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결국 정부와 철도공사가 충분한 민심 수렴절차 없이 졸속으로 자회사 분리를 추진한 것이 파업의 불씨를 제공했고, 그 과정에서 8569명의 노동자를 직위해제한 것이 사태를 악화시킨 것이다.

또 지난 5년간 공공기관 선진화를 한다면서 민영화, 낙하산 인사, 노사관계 악화, 공공성 약화 등의 결과를 초래한 것도 정부 불신의 요인이다. 정부-여당은 코레일의 부채가 17조 6000억원에 달하는 만큼 경쟁체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라고 해명하지만, 공공기관 정상화는 오히려 부채만 200조 이상 불려놓은 이명박 정부에 대해 책임을 추궁하고, 낙하산 인사를 근절하고, 거수기로 전락한 이사회를 개선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부는 무조건 "정부를 믿으라"고만 할 게 아니라, 노조가 신뢰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박근혜 사전에 '사회적 합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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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 청와대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철도파업의 경우, 특히 그것이 정치 파업일수록 대안을 마련하려면 공공 서비스의 제공자와 이용자, 그리고 정치권이 참여하는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일찌감치 이를 중재할 국회 국토위가 열렸음에도 여당이 국토부장관의 현황보고를 방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정부-여당이 오히려 철도사태를 풀어갈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을 반대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철도파업을 둘러싼 정부 부처의 움직임은 일사불란했다. 정부는 정홍원 총리의 담화문에 이어 민조노총에 대한 침탈이 이뤄진 날 관계부처 장관 명의의 2차 담화문을 발표했다. 겉보기에는 정부에 명분이 있는 것처럼 비치지만, 그 속내는 노조의 파업을 불법으로 몰면서 응징하겠다는 내용의 동어반복이었다. 검찰과 경찰이 영장이 기각된 철도노조 간부에 대해 추가로 체포영장을 받아 전원 검거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비판적인 언론사와 민조노총에 대한 침탈이 이른바 '안녕들 하십니까?' 현상이 각계각층으로 번지는 시점에 전격 집행된 것도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의심케 한다. 지난 10일 한 고려대 학생이 붙인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일파만파로 확산된 것은 밀양 고압송전탑 사태 등에서 보듯,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 해결을 위해 일방통행이 아닌 '사회적 합의'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어제 불과 하루만의 파업으로 수천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다른 요구도 아닌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 이유만으로 4213명이 직위해제된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사회적 합의 없이는 추진하지 않겠다던 그 민영화에 반대했다는 구실로 징계라니. 과거 전태일 청년이 스스로 몸에 붙을 놓아 치켜들었던 '노동법'에도 '파업권'이 없어질지 모르겠습니다."(10일 고려대 대자보)

YH무역 사건과 닮은꼴...윤상현은 '현대판 유정회'

그런데도 정부는 대자보의 간절한 외침과는 정반대로 대화와 타협을 통한 문제 해결보다 강경 대응으로 아예 노조를 무력화시키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박근혜 정부의 사전에 '사회적 합의'는 없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민주노총 침탈 사건은 박정희 시대의 YH무역 사건과 박 대통령의 '롤모델'인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를 떠올리게 한다.

'YH무역 사건'은 가발 수출업체인 YH무역의 여성 근로자들이 회사 폐업조치에 항의하여 야당인 신민당 당사에서 농성시위(1979년 8월 9~11일)를 벌인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신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치안상의 이유를 들어 8월 11일 새벽 2시경 1000여명을 투입해 20여분 만에 강제해산시켰다.

신민당 의원들과 당직자들이 몸싸움을 벌였지만 역부족이었고 YH무역 노동자들은 모두 강제 연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여공 김경숙씨(당시 21세)가 추락사했다. 이 사건은 후에 김영삼 의원 제명 파동과 '부마 항쟁'을 거쳐 10·26 사태로 이어지는 박정희 정권 종말의 도화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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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가 23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김재원 의원의 얘기를 들으며 웃고 있다. ⓒ 남소연


YH무역 사건과 이번 공권력 투입은 여러 모로 닮은꼴이다. 1979년 당시에도 신민당의 기관지 <민주전선>의 문부식 주간의 구속으로 여야가 대치 상태였다. 여당인 공화당의 온건파는 여야 중진회담을 제안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친위여당인 유정회는 야당과의 대화 자체에 부정적이었다. 철도파업을 '불법파업'으로 단정하고 강경진압을 부추긴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오늘날의 유정회인 셈이다.

박근혜의 '롤모델'은 다른 대안이 없는 것?

대화와 타협을 통한 '사회적 합의'를 배제한 일방통행식 강경대응은 박 대통령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1980년대 국영광산 노조에 강경 대응했던 사례를 연상시킨다. 언론에서 흔히 'TINA'로 줄여 쓰는 대처리즘은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There is no alternative)", 즉 '바꾸지 않겠다'는 기본신념의 결과물이다. 그녀의 추종자들은 대처의 기본신념을 건전한 화폐가치, 노동조합의 개혁, 필요한 곳으로 집중하는 복지, 세금의 인하, 영국의 세계적 지위 재건 등으로 요약한다. 대처는 대중의 지지에 힘입어 재임중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했지만 그만큼 논쟁적인 인물이었다.

"그녀의 재임 중에 국가 운영의 전체적인 시나리오가 달라졌다. 그녀는 국가 주권에 집착했기 때문에 유럽연합의 추가 가입을 거부했고 또 공동통화를 거절했다. 동시에 국내적으로는 국가가 운영해왔던 공기업 분야의 책임을 대거 철폐했다. 영국 정부는 가스, 전력 발전, 석탄 채광, 수도 설비, 철도와 같은 경제활동의 방대한 네트워크를 해체하거나 매각했다."(<가면을 벗은 역사>(시대의창) 341쪽)

지난 4월 대처가 사망하자 '위대한 지도자'라는 긍정적 평가와 '1%를 위한 철의 여인'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엇갈렸다. 그러나 철도 민영화만큼은 실패 사례라는 데 이의가 없다. 영국이 민영화 8년만인 2002년에 재국유화의 길을 선택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기자가 박 대통령에게 "(4월에 사망한) 대처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충고해도, 청와대 참모들은 이를 대통령이 죽기를 바라는 '주술선동'이라고 오독할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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