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퍼니', '알부자족', '목찌'... 무슨 뜻이지?

[서평]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등록 2013.12.27 09:55수정 2013.12.27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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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는 '바보'다. 약자이면서도 약자인 줄 모른다. 포악한 강자처럼 약자를 짓밟는다. 20대는 모순 덩어리다. 그들도 약자의 비참에 눈물을 흘릴 줄은 안다. 하지만 비정규직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하자고 말하면 순식간에 안면을 바꾼다.

"제가 왜요? 그들은 그러면 안 돼요.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


그들은 '괴물'이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얼굴을 동시에 가진 슬픈 괴물. 이 나라 대한민국의 20대 이야기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는 그런 20대의 자화상을 생생하게 그린 책이다. 제목에 이 책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피해자-가해자 얼굴을 동시에 가진 슬픈 괴물, 20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표지. ⓒ 개마고원

이 책이 전하는 20대의 실상은 열악하기만 하다. '청년실신'이라는 말이 있다. 대학 졸업 후 실업자가 되거나 빌린 등록금을 상환하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홈퍼니(Home+Company)'라는 신조어도 있다. 집에서 취업 원서 접수에 매진하는 경우를 빗댄 말이다.

이들 20대의 모습은 '알부자족'(알바로 부족한 학자금 충당하는 이들)으로 부를 만하다. 그들은 '십오야'('15세만 되면 앞이 캄캄'이라는 뜻)를 거쳐 '목찌'(취업이 대학생들의 목을 죈다는 뜻)가 되기도 한다. 그런 고통이 끝나도 그들 앞에는 '청백전'(청년백수 전성시대)과 '삼일절'(31세까지 취업 못하면 절망)'이 기다린다.

저자 오찬호가 수치로 보여주는 20대의 처지는 절망적이다. 4000~5000원 하는 밥값이 부담돼 2000~3000원짜리 컵밥으로 때우는 20대가 많다. 많은 20대가 아예 점심을 건너뛰기도 한다. 2012년 기준으로 20대의 점심 결식률 12.3%는 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높다. 전체 6.4%의 약 2배에 달한다. 대졸자의 비경제활동률은 2003년 26.7%에서 2011년 42.9%로 급증했다. '청백전'이 말로만이 아니라 수치로 증명된다.


위기가 있더라도 스스로 노력하라는 식으로 지금 이십대의 고달픔을 정리하기에는 그 위기의 정도가 너무 크다! 우리가 이십대를 주목하는 것은 이들이 자기계발을 해도, 자신의 몸과 시간을 잘 관리해도 그 노력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세상 때문이다. 단언컨대, 젊으니까 괜찮다는 위로는 현실의 고통을 잠시 외면하게 하는 모르핀일 뿐이다. 그럼에도 구조의 쳇바퀴에 갇힌 이십대는 "자기계발을 못하고, 자신의 몸과 시간을 잘 관리하지 못한 사람은 탈락할 테고, 그것은 전적으로 그의 책임"이라는 생각을 가랑비에 옷 젖듯 내면화하게 된다. (35쪽)

스스로 약자가 될 환경 지지하는 '블랙코미디'

이 책의 문제의식은,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경제적 약자가 된 20대가 앞으로도 계속 스스로 약자가 될 환경을 지지한다는 사실에 있다. 이런 '블랙 코미디' 같은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까.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20대가 살아가는 일상의 메커니즘이다. 이는 3장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에 잘 나와 있다.

저자는 '모든 것은 내 책임, 열정과 의지로 고통을 이겨내자' 따위의 자기계발 논리에 길들여진 20대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점을 지적한다. 이와 같은 낮은 공감력은 특정 대상(가령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강화하기도 한다. 나아가 이들은 이러한 편견의 이면에 자리잡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주어진 '기존의 길'을 맹목적으로 선호한다.

저자는 이와 같은 20대의 모습이 극명하게 드러내는 지점을 '학력위계주의'에서 찾는다. 저자에 따르면, 학력위계주의는 기존의 학벌·학연주의나 학력주의(학문을 쌓은 정도나 수준 등을 따지는 '학력주의(學力主義)'나 고졸이냐 대졸이냐 등의 학교 이력을 중시하는 '학력주의(學歷主義)') 등과 결이 다르다.

그것은 수능점수에 따라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바닥까지 쭉 이어지는 수능배치표상의 학교 순위를 노골적으로 강조하고 내면화하는 태도를 말한다.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로 시작하는 서울 소재 대학 서열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저자의 말대로, 수능점수야말로 대학과 학생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진리의 빛'이다.

이들은 수능성적과 그것을 기준으로 한 대학서열을 가지고서 타인을 평가하는 것이 (상당 부분 비논리적인 고정관념에 근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이고 공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치 비정규직 전환 요구 문제 등의 사회적 이슈에서도 차별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듯이 말이다. (141쪽)

저자는 "'수능점수'의 차이를 '모든 능력'의 차이로 확장하는 식의 사고를 갖고 있"(168쪽)는 20대의 모습을 '와각지쟁(蝸角之爭)'이라는 한자성어를 빌려 설명한다. 자기계발의 논리에 빠져 소모적인 이해관계 싸움에 몰려 있는 20대의 모습을, 달팽이 머리 위에 있는 두 개의 작은 뿔이 의미도 없이 힘겨루기를 하는 상황에 빗대고 있는 것이다. 무의미한 소모전 속에서 수많은 패배자와 희생자를 양산하는 현재 상황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피해자 탓하기'에 익숙한 대학생들... '공정성' 다시 생각하자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공정성을 다시 생각하자고 제안한다. 그가 보기에, 20대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이 자기계발서의 논리에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는 까닭은 '능력주의'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스스로 노력하면 능력을 얻을 수 있고, 이에 따라 사회는 차등대우를 해준다는 능력주의를 '공정성'의 이름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 능력에 따라 보상받는 세상이 뭐가 문제냐며, 사회구조와 시스템의 문제를 보자고 말하는 이들을 오히려 힐난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저자를 따라 기회의 균등과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 문제를 짚어보자.

먼저 기회 균등의 문제. '정의' 열풍을 몰고 온 마이클 샌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를 본 적이 있는가. 저자가 재인용하는 샌델 교수의 강연 한 토막을 보자.

"능력 위주 사회에서는 기회가 공정하다고 해도 타고난 재능 덕에 자격 없는 사람이 남보다 앞서거나 보상을 받습니다. 노력도 노동윤리도 수많은 가정환경에 좌우됩니다. 가정환경은 우리 노력과 상관없습니다. ··· 심리학자들은 형제간 출생순서에 따라 노동윤리와 노력이 차이가 있다고 말했는데, 학생 중 첫째 손들어 보세요!" 그리고 대다수가 손을 들었고 논쟁은 종료된다. (210~211쪽)

사람들은 개인의 능력과 의지는 그 사람 개인의 것이라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샌델 교수의 말에서처럼, 첫째로 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성공(가령, '하버드'라는 명문대 입학할) 확률도 훨씬 높다.

물론 아버지 잘 만난 게 죄는 아니다. 다만 그 덕에 공부를 더 잘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능력주의'만 강조하면, 그 덕이 없었던 사람은 도대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211쪽)

요컨대, "아버지의 학력은 아버지의 소득을 결정짓고, 그 소득은 자녀가 어떤 교육을 받는지 결정하고, 이는 자녀의 '꿈'으로 이어진다."(212쪽) 이 책이 인용하는 '소득에 따라 꿈도 다르다: 소득별·학교별 장래희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어고의 경우 장래희망이 고소득 전문직인 학생이 76%에 이르는 반면에 실업고는 3%에 불과하다. 거꾸로 중하위직종을 꿈꾸는 경우는 외고가 11%, 실업계는 79%다. 저자의 말대로 희망은 '뜨거운 가슴'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 돈이 있어야만 가슴도 뜨거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과정의 공정과 결과의 정의도 전혀 보장되어 있지 않다. 저자는 과정의 공정을 왜곡시키는 대표적인 언변술로 '모두가 불공정한 과정을 겪고 있다! 그러니 다 똑같은 조건이다!'라는 말을 제시한다. 힘들게 살아가는 건 다들 마찬가지라며 과정의 불공정성을 모든 사람이 겪는 '동일한 조건'으로 착각하게 한다는 말이다.

결과의 정의로움은 또 어떤가. 저자는 온갖 공정하지 못한 기회와 과정으로 인해 나타난 결과의 피해자들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자기 스스로 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20대는 비정규직이 피해를 입는 것은 그들이 못 나서고, 자신들이 학교서열에 따라 멸시와 차별을 받는 것을 그들의 능력 부족 탓으로 여긴다.

이 책에 등장한 이십대 대학생들은 이 사회에 깊게 침윤된 자기계발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인 나머지 일종의 '피해자 탓하기'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한 개인이 경쟁에서 밀려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얽혀 있다. ··· 그렇다면 사회는 출발과 과정의 공정성에 차별을 받았던 사람들에게 '결과의 차별'을 통해서라도 충분히 보상을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228쪽)

책을 덮으며 이즈음의 '안녕' 대자보 열풍을 떠올렸다. '안녕' 열풍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를 당당히 외치는 20대가 그 진원지였다. 어떻게 보아야 할까. 저자의 말을 빌려 표현해 보면, 그저 한순간 약자의 눈물에 동참하는 감성 표현의 발로일 뿐 그들의 냉혹한 이성은 여전히 스펙 쌓기와 취업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닐까. 20대가 일으키고 있는 '안녕' 바람에 기꺼워하면서도, 그것이 결국 찻잔 속 태풍으로만 끝나고 마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이 엄습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오찬호 지음 | 개마고원 | 2013. 12. 5 | 239쪽 | 14,000원)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오찬호 지음,
개마고원, 2013


#20대 #자기계발 #학력위계주의 #능력주의 #공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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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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