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보온병' 안상수가 측은한 이유

[서평]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를 읽고

등록 2013.12.27 13:25수정 2013.12.27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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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책표지. ⓒ 오마이북

국민의 60% 이상이 800만 화소가 넘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대한민국. 수백만 원이 넘는 최상위급 DSLR 카메라를 구입하는 층은 사진작가나 사진기자보다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데.

사진이 발명된 이후 가장 많은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사진가들은 단지 사진을 잘 찍는 기술을 가진 것만으로는 존재 증명을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사진을 잘 찍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으니까.


그 때문에 이 시대의 사진가들은 프로와 아마추어를 떠나서 또 사진이 돈으로 환산되는 금전적 가치의 크고 작음을 따지지 않고, 시대와 사회를 향한 자신의 일관적인 시각이 드러나야 한다. 이는 단순히 멋진 사진을 찍는 기술을 가졌다고 사진가라 말할 수는 없는 지점이다.

노순택 사진가, 사진계에서 독보적 존재

여기에 다큐멘터리 사진은 시간이 더해진다. 동일한 주제로 작업이 쌓여가야 하고, 사진 한 장 한 장의 수준보다 전체를 일관적인 방향성과 밀도가 더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노순택 사진가는 사진계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다.

그의 '독보적'인 작업은 예전 '얄읏한 공' 시리즈에서도 빛났지만, 이번에 새로 낸 사진 에세이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는 더욱 예리한 빛을 낸다. 처음부터 스포일러로 드러내면 그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후, 그 처참한 현장을 찾은 안상수 국회의원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 그가 보온병을 북한의 포탄으로 인식한 그 지점의 의미를 좇아가고 있는 것이다.

'분단인의 거울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번 작업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연평도와 임진각, 서울 시청 앞,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이루어졌다. 휴전이 된 지 60년 가까이 되었지만, 이곳에서 그가 촬영한 한국은 아직도 전쟁 중이다. 왜 갑자기 전쟁터가 되었을까? 그의 사진과 글에는 분단된 한반도가 긴장으로 가득하고 뭔가의 오작동에 의해 작동되기를 원하는 인간으로서 안상수를 지목하고 있다. 그리고 안상수가 걸어 온 길을 추적한다.


작가 노순택이 발견한 것은 분단인의 삶을 살아가는 한반도 안에서는 안상수도 노순택도 같은 모습이라고 지각한다. 분단을 잊고 살았던 민주화시대의 10년에서 나온 우리들은 다시 분단의 어두운 동굴로 들어온 것이다. 어두운 동굴에 들어온 이상 나와 남을 구분할 길은 없다.

그의 사진 톤은 흙빛... 감동보다는 절망감 가득

그의 작업에는 감동보다는 절망감이 가득한 느낌이다. 물론, 포격을 당한 연평도의 풍경을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사진의 톤은 흙빛이다. 그 흙빛이 절망감을 더해준다. 마치 동굴 속에 있는 것처럼, 아니면 무덤 속에 누워서 보는 풍경처럼...

쉽게 넘길 수 없는 이미지들이 가득하다. 전체적인 사진을 노출을 다운 시키고 스트로보를 다이렉트로 쳐서 말하는 바를 명확히 표현했다. 직선적이고 어둡고 무표정하지만, 스트레이트로 들어오는 주먹 같은 느낌. 사실, 이런 다큐멘터리 사진은 흑백으로 표현되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작품들은 컬러임에도 불구하고 그 색감의 부자연스러움이 현실을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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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온병'과 '안상수'로 상징되는 분단 오작동의 흔적을 노순택 특유의 예민하고 집요한 감각과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담아낸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 노순택


그 대표적인 사진이 46~47 페이지에 걸쳐 있는 붉은 바탕에 흰 꽃무늬 벽지가 있는 방이다. 너무나 화려한 이미지이지만, 이곳마저 전쟁터의 화약 냄새가 느껴진다. 타다만 삼겹살의 붉고 흰 살덩어리나 그을린 배추의 녹색 역시 비현실적이지만, 현실의 이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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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책 중에서 ⓒ 노순택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지난 대선의 결과가 나온 시점이다. 그래서 작가의 마지막 즈음의 사진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이 등장한다. 이 사진이 나오기 전의 많은 사진들은 그 이미지 안에서 전쟁터의 냄새가 물씬 풍겨 나오다, 갑자기 그 흐름이 새로운 전개로 바뀌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사진전이나 사진집의 스토리텔링은 한 장의 사진만을 놓고 이야기 하지 않고 전체적인 흐름을 고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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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책 중에서 ⓒ 노순택


작가가 천착해 온 분단과 전쟁의 위기에 대한 작업의 결과는 대선의 결과에 따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 천천히 곱씹어 볼 주제가 아니라, 더욱더 심화되어질 상황으로 전개된 것이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사진들은 조금은 차분해졌고, 명료한 질문을 던지는 느낌이다.

다큐멘터리가 주는 묵직함은 다루는 사건을 다 고발하는 것보다는 작가가 가진 질문을 보는 이에게 다시 던져주는 것에 있다. 노순택 작가는 거의 잊혀져 가던 분단의 현실이 정치세력들의 필요에 의해 다시 우리 앞에 내던져진 것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자! 이 분단의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하고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인가?"

민주화 10년의 세월을 살면서 분단은 정부가 짊어진 문제였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의 피부에 닿아 있고, 그 예리한 칼날에 우리 사회는 마구 상처를 입고 있다. 언론과 정부의 발표로만 삼킬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각자의 해법으로 풀어헤쳐야 하는 문제가 된 것이다.

좋은 다큐멘터리는 무거운 질문 거리를 던져준다. 노순택 작가의 이번 책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는 시대에 울림을 주는 좋은 다큐멘터리다.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책 중에서 ⓒ 노순택


덧붙이는 글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 분단인의 거울일기 | 노순택 (지은이) | 오마이북 | 2013년 12월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 분단인의 거울일기

노순택 글.사진,
오마이북, 2013


#오마이북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노순택 #안상수 #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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