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이를 병원에서 만나고 싶지 않아요

[두근두근 엄마되기 14] 30주차 '자연출산' 동기들을 만나다

등록 2013.12.27 13:27수정 2013.12.27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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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이 안녕? 요즘 바깥세상에선 안녕하지 않은 사람들이 안녕하냐고들 묻는단다. 이상하지? 홈런이가 살 세상은 안녕해야 할 텐데. 지금 홈런이는 안녕하지?"


내가 느끼기에 홈런이는 안녕한 것 같다. 이제 31주째, 이젠 밤에 자려고 하면 홈런이의 태동이 심해져 자려다가도 잠이 깬다. 내 배속에서 우당탕탕, 데구르르. 이젠 옷을 입고 있어도 홈런이의 움직임이 눈에 보인다. 난 홈런이가 움직이면 잘 느끼고 잘 보는데 남편은 그러질 못해 아쉽다.

그래도 어제는 홈런이가 신나게 노는 때 남편을 불러 함께 움직이는 내 배를 보았다. 안에서 스~윽 하고 훑는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신기해 하는 남편을 보니까 그동안 나만 누렸던 기쁨을 우리 부부가 함께 나눈 것 같아 뿌듯하다.

이번에 병원에 가서 홈런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지난 번 입체초음파 촬영에서는 홈런이가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홈런이는 1.54kg, 이번 초음파 촬영으로 예상한 출산 예정일은 내년 3월 5일이다. 의사선생님은 출산 예정일 데이터는 믿을 게 못된다고 하시지만 난 내 '막생', 그러니까 마지막 생리일을 모른다. 그래서 초음파 촬영 후 적히는 출산 예정일을 늘 확인하게 된다.

홈런이 초음파 촬영사진 원래 찍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희한하게도 귓바퀴를 찍어주셨다. 홈런이는 귀도 예쁘네. ⓒ 곽지현


그동안 좀 뜸했던 태담도 다시 시작했다. 사실 12월 초에 남편과 휴가를 떠났을 땐 남편과 연애하듯 시간을 보내고 남편하고만 이야기하느라 태담을 못해줬다. 휴가 다녀온 후엔 조금 피곤하기도 하고 이것저것 또 새로운 일들이 생겨 못했다.

그런데 얼마 전 남편이 책과 시집을 갖다 줘서 그 책을 읽으면서 홈런이와 이야기하고, 시를 읽어 주기도 했다. 시를 읽어 줄 때는 정말 신기하게도 홈런이가 내 말을 듣는 것처럼 가만히 있다가 다 읽고 나면 신나게 움직였다. 홈런이에게 잘한다고 칭찬해 주고 노래도 해 주면서 지금이 아니면 다시 할 수 없는 일들을 열심히 챙겨하고 있다.


홈런이와의 태담을 다시 시작하면서 출산 전 마지막 큰 고민도 다시 시작했다. 나는 병원이 아닌 '조산원'에서 '자연출산'으로 홈런이를 만나고 싶다. 물론 자연출산을 시행하는 병원도 있다. 하지만 병원은 나에게 낯설고 무서운 곳이기 때문에 좀 더 편안한 곳인 조산원에서 덜 긴장하며 낳고 싶다. 또, 우리 할머니들도 자연출산으로 우리 아버지, 어머니를 건강하게 낳으셨는데 나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자연출산을 해보고 싶다.

자연출산이라고 하면 보통 산모가 주체가 돼서 불필요한 의료적 개입(회음부 절개, 불필요한 약물 사용 등) 없이 아이를 낳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위 '3대 굴욕(관장, 제모, 내진 또는 회음부 절개)'을 최소화 해서 그로 인한 부작용이나 산모의 불쾌감을 줄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친구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면 늘 비슷한 대답이 돌아온다.

대답 1 : "위험하지 않아? 응급상황이 생기면 어쩌려고?"
대답 2 : "병원 놔두고 왜? 조리원은 예약했어?"

이 이상 대화가 진전되지 않을 뿐더러 나도 잘 모르니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그들을 이해시키기가 어렵다. 자연출산에 대해 잘 모르는 친구들과 대화하고 나면 결국엔 '더 말해 뭐해' 하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과 자연출산에 대해 얘기하면 '그렇지, 그렇긴 해' 하며 반 발 물러나는 일에 익숙해질 무렵 새로운 예비엄마 모임이 생겼다.   

자연출산 동지를 만나다

아기 침대를 중고로 사볼까 하며 '중고나라'와 '맘스홀릭 베이비'이라는 카페에 들락거리던 때였다. 맘스홀릭 베이비에 한 부천 엄마가 글을 올렸다.

"자연주의 출산 준비 중 인데 주수 차이 나더라도 같이 '자출'(자연출산) 준비하는 분으로 친구 사귀고 싶어요. 서로 격려도 하고 정보교환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늘 '눈팅'만 해왔지만 이 글엔 꼭 덧글을 달고 싶었다. 덧글 단 지 1분 만에 또 덧글이 달렸다. 그리고 우리는 만나기로 했다.

막상 일을 저지르고 나니 걱정이 되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오랜만이기도 했고, 남편은 '그 사람 사기꾼 아니냐'며 카페에서 연락한 사람과 만나는 것을 걱정했다. 그래도 난 꼭 만나고 싶었다. 자연출산을 이야기 하면서 지지받은 기억보단 그렇지 못한 기억이 더 많아서일까 그 사람이 쓴 글 중에 "서로 격려도 하고" 하는 대목이 마음에 콕 박혔기 때문이다.

자연출산 할 엄마를 찾습니다 자연출산을 고민하던 차에 반갑게 만난 '자연출산'엄마를 찾는다는 글. ⓒ 곽지현


세 명의 엄마가 찻집에 모였다. 난 30주, 한 엄마는 31주, 다른 엄마는 32주, 다들 한 주씩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고 한 명은 한 살 언니, 또 한 명은 친구여서 서로 빨리 친해졌다. 우리는 모두 부천에 있는 같은 조산원에서 아이 낳기를 원하고 있었고 32주차 언니는 며칠 전 조산원에서 상담을 받고 왔단다. 몸무게가 14킬로그램이 더 쪄서 많이 혼나고 왔다면서 운동도 매일 해야 하고 과일도 많이 먹지 않아야 한단다. 헉, 난 벌써 9킬로그램 쪘는데 어쩌지? 32주 된 언니는 날씬해 보이는데도 혼났다면 난 얼마나 혼날까?

"남편은 태담 많이 해줘? 우리 남편은 태담 해달라고 그러면 '토닥아~'그래 놓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안하더라구. 그래서 보면 자고 있어. 어쩜 그리도 잘 자는지."
"우리 남편도 그래요. 태담 해달라고 하면 태명만 부르고 어쩌다 '엄마 괴롭히지 마'정도만 해요."
"내 남편도 태담 많이 안 해줘요. 그냥 아침에 출근할 때 현관 쪽에 내가 서있으면 남편이 신발 신고 일어나서 '엄마랑 먹을 것 잘 나눠먹고 잘 놀고 있어' 정도 말해주는데."
"어머, 굉장한데. 그거 좋은 방법이다. 나도 해봐야지."
"나도 서 있는데 우리 남편 안 해줘요. 아기 낳을 때 도움되는 마사지나 남편한테 가르쳐야겠어요."   

운동 이야기, 자연출산에 대한 책이나 다큐멘터리 이야기, 먹는 이야기, 변비 이야기, 시댁 이야기, 남편 이야기 등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이리저리 흘렀고, 몇 시간 지나 배고프다며 아까 이야기 나온 떡볶이 집에 함께 가기로 했다. 떡볶이 집에서도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자연출산 할 때 남편하고 같이 들어 갈 거야?"
"네. 진통 심할 때 남편이 마사지해 준다고 만지면 귀찮다고 나가라는 산모도 있다고 하던데 저도 그럴 것 같긴 해요. 그런데 남편이 괜찮다고 옆에 있어주고 탯줄도 잘라 주겠대요."
"난 좀 부끄러울 것 같기도 한데 남편이 같이 있어주면 힘이 될 것 같아요."
"어떤 남편은 아기 나올 때 그 피 보고 기절하기도 한다던데. 그리고 아기 낳는 장면 보면 그게 트라우마로 남아서 괴로운 경우도 있대요. 다큐멘터리나 조산원에서 하는 교육 같이 가서 듣고 다시 결정하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난 남편 꼭 데려 갈 거야. 남편 없으면 무서울 것 같아."

한 엄마는 다른 모임에서는 유모차가 얼마인지만 얘기하다가 온 적이 있었는데, 우리와 그렇지 않은 대화를 하게 돼 좋다고 했다. 아, 정말 엄마들 모이면 그런 대화를 하는 구나. 그냥 떠도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난 사실 모임의 성격을 스터디로 생각하고 책과 필기구까지 챙겼다. 이렇게 편하게 수다 떨며 공부할 수도 있는 것을, 난 고리타분한 준비물만 가져와 버렸다. 벌어진 가방 틈새로 그것들이 보일까 잘 단속하며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그곳에서도 이야기가 이어졌다. 계속 자연출산에 대한 이야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함께 만나서 이야기 하는 동안 자연출산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하고 서로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감격스러워서 주책없이 울컥하기도 했다. 

출산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 인간이 살면서 느낄 수 있는 고통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출산의 고통은 누구에게나 두려움으로 느껴질 것이다. 게다가 난 자연출산을 원하고, 다들 응급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하니까 두려움의 종류도 둘이 된 셈이다. 그런데 두려움이란 모르는 것에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알지 못하니까, 겪어보지 못했으니까 두렵고 불안한 것이 아닐까?

나도, 위험하다고 만류하는데도 자연출산을 고집할 만큼 무모하지 않다. 조산원에서도 병원에 가야 할 산모를 37주쯤 내진으로 확인한다고 하고, 출산을 진행하다가 병원으로 가는 산모도 있다고 한다. 내가 자연출산을 추구한답시고 홈런이와 나, 두 사람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만든다면 그게 오히려 자연출산을 거스르는 것이지 않을까.

모임에서 만난 한 엄마가 다큐멘터리 파일을 몇 개 보내줬다. 그 중 자연출산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면 자연출산에 대한 두려움은 더 사라질 것 같다. 다큐멘터리와 함께 추천 받은 책도 읽어볼 예정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건, 뿌리가 얕은 갈대일 뿐. 대지에 깊이 박힌 저 바위는 굳세게도 서 있으니~."

난 이제 병원출산을 할지 자연출산을 할지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자연출산에 대해 더 많이 알아보면서 자연출산에 대한 내 뿌리를 더 깊게 하려고 한다. 막연히 생각하는 것보다 보고 읽으며 많이 알아두면 확신이 생기고 덜 무서울 테니까 말이다.
#자연출산 #조산원 #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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