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가 나는 장산(章山)의 아름다운 숲

[디카詩로 여는 세상 20] <장산숲 연못>

등록 2013.12.31 17:53수정 2013.12.31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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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숲 ⓒ 이상옥


유년의 하늘과 키 큰 나무들
인화지처럼 찍혀 있다
-이상옥의 디카시 <장산숲 연못>

경남 고성은 옛날부터 인물이 나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혹자는 그것이 고성의 마테호른(알프스의 깎아지른 듯 삼각형 모양의 해발 4,477m의 산)이라 불리는 깎아진 듯한 거류산의 정기를 받아서 그렇다고 한다. 거류산이라는 이름에는 신기한 전설이 깃들어 있다. 


아주 먼 옛날, 여염집 규수가 부엌에서 밥을 짓다 밖을 나와 보니 신기하게도 산이 이동하는 것을 보았다. 너무나 놀라 "산이 걸어간다" 하고 소리치니, 그 자리에 그만 서고 말았다. 그래서 걸어가던 산이라는 뜻으로 '걸어산'으로 불렸는데, 그것이 오늘날 거류산(巨流山, 해발 570.5m)이다.

어느 지역엔들 이런 전설이 없을까마는 고성에는 거류산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작은 산이지만, 장산(章山)도 있다. 필자의 고향이기도 한 장산마을의 지명 속의 장산은 원래 장산(獐山')의 노루 '獐'(장)으로, 마을 뒤쪽 산의 모양이 노루가 누워 있는 형상을 하여 붙여졌다.

허천수의 문명(文名)이 마을이름을 바꾸다  

그런데, 퇴계의 제자였던 천산재(天山齋) 허천수(許千壽)의 문장이 나라 안에 널리 알려지면서 지명이 노루 '獐'(장)에서 글 '章'(장)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천산재 허천수는 지금도 남아 있는 빼어난 경관의 장산숲을 거닐면서 문장을 다듬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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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의 문장가 천산재가 장산숲을 거닐며 문장을 가다듬었을 법하다 ⓒ 이상옥


내가 태어나 고향 장산은, 그러니까 글산을 배산(背山)으로 하고 마을 앞에는 장산숲이 있다. 그 숲 안에는 정갈한 임수(臨水)로 연못이 있다. 과연 문장가가 나올만한 경관이다.


장산숲은 600여 년 전 조선 태조 때 호은(湖隱) 허기(許麒) 선생이 풍수지리적 결함을 보충하기 위해 조성한 비보 숲으로 알려져 있다. 비보(裨補)는 풍수지리상 나쁜 기운을 억누르고 모자란 것을 도와서 보태거나 채우는 것인바, 흔히 탑, 장승 등을 세우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장산마을에서 약 5킬로 건너 이순신 장군 당항포해전 대첩지 고성국민관광단지가 있다. 바다가 마을에 비치면 마을에 이롭지 않다고 해서 바다와 강풍의 피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풍림으로 조성된 것이 장산숲이다

허기 선생은 고려 말 신돈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만 고성에서 귀양살이를 했는데, 그후 신돈을 처벌하고 다시 조정에서 불렀지만 지금의 장산마을에 터를 잡았다고 하는데, 그의 곧은 성품을 알 만하다. 오늘 장산마을 허씨 집성촌은 참으로 유서가 깊다 하겠다. 처음 조성 때의 숲은 1000m에 이르렀으나, 지금은 유실되고 100여m만 정도로 남아 있지만, 장산숲은 숨어 있는 보석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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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숲의 연못에는 아름다운 정자도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시를 읊조리면 금상첨화. ⓒ 이상옥


이 장산숲에서 지방 유지들이 초청되어 고기를 낚고 시를 읊으며 풍류를 즐겼다고 하니, 과연 '章山'이라는 지명이 적확한 듯하다.

허천수 선생의 문명이 얼마나 높았으면 마을 이름이 '章山'으로 바꿨을까.

문장가가 날 만한 내 고향 경남 고성 장산

내 고향 장산마을이 이렇게 유수 깊고 문장가가 난 곳인 줄은 모르고 지냈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고향이 아닐 수 없다. 내 시심(詩心) 또한 장산숲과 뒷산 글산(章山 )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생각해보면, 고향에 대한 사랑이 새삼 새록새록하다.
덧붙이는 글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이제는 채호석 교수가 쓴 <청소년을 위한 한국현대문학사>(두리미디어, 2009)에 새로운 시문학의 한 장르로 소개되어 있을 만큼 대중화되었다. 디카시는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날시)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순간 소통을 지향한다.
#디카시 #장산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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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로서 계간 '디카시'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고 있으며, 베트남 빈롱 소재 구룡대학교 외국인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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