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대로 안되는 게 인생... 두루뭉술한 신년계획 어때요?

2014년을 맞이한 우리의 자세

등록 2014.01.04 10:54수정 2014.01.0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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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서 무엇이 되고 싶나요?"


아이들은 대답했다. 선생님이요, 과학자요, 회사원이요, 의사요…… 맨 앞에 있던 한 여자 아이가 답했다. "서울대학교 법대에 들어간 다음에 사법고시를 볼 겁니다. 1등으로 합격해서 먼저 변호사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소송에서 한 번도 지지 않을 거에요. 그걸로 유명해 진 뒤 국회의원이 되고, 그러고 나서 대선에 나가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이렇듯 무엇이든 계획을 세워 놓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7살 난 여자 아이가 있었다.(다소 꼰대스런 계획을 세운) 바로 나였다. 어쩌다 내가 옷을 입기 전 엄마가 머릴 묶어주기라도 하면 (머리를 묶어버리고 나면 일반적인 티셔츠를 입기 어렵다는 건 누구나 알 거다.) 머리를 묶는 내내 생각했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바지와 어울리는 셔츠는 입을 수 없으니 차선책의 남방을 생각해내야 머리도 망가지지 않고 깨끗하게 옷을 입고 나갈 수 있어. 하지만 남방은 다려야 하니 내가 밥을 먹을 동안 엄마에게 해달라고 하고 밥을 먼저 먹고 남방을 입으면 시간이 낭비되지 않을 거야'라며 그새 새로운 계획을 세우곤 그대로 실행했다.

그런 계획병 환자의 환기는 사춘기가 되어서도 끝나지 않았고, 시험 두 달 전부터 기술과 가정 같은 100% 암기과목마저 미리 계획을 세워 공부했다. 공부에 대한 계획은 그런대로 나를 배신하지 않았고, 그렇게 좋아하던 일등을 만들어주었고 원하는 대학 합격증을 가져다 주었다.

19살이 되고 첫사랑을 만났다. 중학교 입학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내내 짝사랑했던 아이에게 고백을 했다.(6년간 그 애에게 내내 잊을만하면 연락하고,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 가끔 던지고, 무심한 척 뒤에서 배려했던 것 또한 그 순간을 위한 치밀한 계획이었음을) 그 역시 나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그 말을 들으며 역시 내 인생은 계획대로 풀리지 않는 것이 없다고 자신했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그 어떤 여인들이 그러하듯 나도 계획을 세웠다. 어떻게 사귀다가 언제쯤 프로포즈를 받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예쁘게 살아가는 내 생애 가장 바보 같은 계획을. 하지만 그 아이는 내게 선물하나를 주고 2년 뒤 이별을 고했다. 그 선물은 바로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될 수는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지금 나는 계획병을 완치했다고 할 수 있는가? 아니, 아직 완치하지 못했다. 내가 처리한
일에서 오점이 발견되면 그날 하루는 내내 우울하고, 아이라인을 조금이라도 비뚤어지게 그리면 아침을 거를지언정 세수를 다시 하고 화장을 한다. 대충 생각해둔 하루의 계획이 돌발적인 상황으로 틀어지게 되면 울상이 되곤 한다.

그래도 한살 한살 나이가 들수록 계획병은 조금씩 호전을 보이고 있다. 회사 일이 내 욕심만큼 풀리지 않아도, '이 정도면 됐다'라고 자위하며 퇴근하는 법도 배웠고, '이 남자 아니면 안돼'라고 생각하며 연애를 해도 그 사람에게 모든 걸 다 걸지는 않게 되었다(다 걸지 않았기에 아쉽지 않은 연애를 했고 은은하게 사랑하며, 평이하게 결혼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날 좋아할 수는 없다는 걸 이젠 알기에 사회 생활 속에서 사람에게 지나치게 공을 들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한가지 더 깨달은 것은 계획을 세워 이룰 수 있는 일과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도 이룰 수 없는 일을 구분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 첫 사랑이 준 깨달음을 토대로 계획에서 나를 조금씩 놓아주니 내 소소한 일상에 작은 숨구멍이 생긴다. 그리고 내 얼굴의 독기를 조금은 빼주는 듯 하다.

2014년의 새로운 날이 시작된 지 3일쨰. 예전 같으면 장대한 계획을 적어 넣었을 다이어리를 집안 중요 행사만 기록한 채 허전하게 남겨 놓았다. 어제 조금. 그리고 오늘 조금. 내일도 조금 나는 이렇게 내 계획병을 치유해 나간다.

2014년의 계획이 3일간 무너져 버렸다고 구정을 기다리는 당신! 모든게 계획대로 될 수는 없음을 깨닫고 조금은 조용히, 그저 하루를 열심히 열심히 살아가자는 나의 두루뭉술한 계획을 세워보는 건 어떠하실는지.

그런데 잠깐. 지금 나는 이것마저 계획병을 호전하고자 하는 계획마저 세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계획 #새해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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