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계속되는 잔혹 우화

[서평]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등록 2014.01.08 10:28수정 2014.01.08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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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동물농장,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 김기혁 역 / 문학동네 / 출간일 2010-05-17. / George Orwell / Animal Farm·Down and Out in Paris and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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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 문학동네

아마 <동물농장>을 처음 접했던 것은 중학교 때 추천도서 목록에 올라 있어서 숙제를 위해서 읽었을 겁니다. 분량도 길지 않고 수많은 동물들이 등장하는 이 소설을 읽고는 마치 이솝우화를 읽은 마냥 '재밌는 이야기였다', '동물을 괴롭히는 인간도 나쁘지만, 욕심 많은 돼지는 더 나쁘다' 정도의 감상을 가지고 끝났던 것 같습니다. 어린 저에겐 이 우화의 무수한 상징들과 잔혹함을 이해하기는 무리였겠지요.


줄거리는 대단히 간단합니다. 매너 농장의 동물들이 주인 존스의 착취에 힘겨워 하던 중, 늙은 돼지 메이저 영감의 충고로 반란을 일으킵니다. 반란은 성공해서 동물들은 인간들을 몰아내고 자신들만의 평등한 공동체 '동물농장'을 만들고 각자의 역할에 맞는 일들을 부여받아 최선을 다해 살아갑니다. 그러던 중 지식노동을 맡았던 일부 돼지들의 탐욕으로 이 공동체가 무너져가는 과정, 그리고 극의 마지막 부분의 인간과 다를 바 없이 타락한 돼지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짧은 작품은 끝이 납니다.

러시아 혁명을 상징하는 우화

일반적으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러시아 10월 혁명의 주요 인물들과 1:1로 대칭이 됩니다. 메이저 영감은 마르크스를 상징하고 그가 전파했던 '동물주의'는 '공산당 선언'에 대칭되는 개념이지요. 탐욕스러운 돼지인 나폴레옹은 스탈린에, 그에 의해 축출당하는 돼지인 스노볼은 트로츠키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차르 정권을 상징하는 농장주인 존스의 몰락을 가져온 동물들의 반란은 '러시아 혁명'을 상징합니다. 끝으로 '동물농장' 주위에서 동물농장을 위협하기도 하고 또 거래하기도 하는 두 농장인 필킹턴과 프레더릭의 농장은 각각 서구 자본주의 진영과 파시스트당 진영에 대입됩니다(참고 : 위키백과 - 러시아혁명(http://ko.wikipedia.org/wiki/%EB%9F%AC%EC%8B%9C%EC%95%84_%ED%98%81%EB%AA%85)).

다소 먼 나라의 이야기같은 '러시아 혁명'만을 다룬 이야기로 이 작품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울타리 너머에는 어떤 세상이 있는지 알지 못하는 동물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유'가 최상의 가치입니다. 자신들이 그전에는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자꾸 잊어 버리고 자신들을 이끄는 지도자의 말이라면 무조건 옳다고 하고마는 어리석음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가혹한 노동에 시름하고, 굶주림에 시달리게 됩니다.

지배층의 이익에만 신경쓰고 대다수 민중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아직도 지구상에 남아 있는 독재국가들에서는 '동물농장'이 표현하고자 했던 우화가 현재진행형입니다. 바로 우리나라 근처에 있는 북한에서도 말이죠.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자, 작가가 대중들에게 표현하고자 했던 바는 아래 대목입니다.

"그런데 저 벽이 많이 달라진 것처럼 보이네요. 일곱 계명이 전에 적혀 있던 것하고 똑같은가요, 벤저민?"

벤저민은 이번만은 자신의 규율을 깨뜨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벽에 쓰인 글을 그녀에게 읽어주었다. 거기에는 단 하나의 계명만이 존재했다. 그것은 다음과 같았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몇몇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출발선부터 다른 동물들에게 실질적 평등이 아닌 형식적 평등을 강요하면서, 이에 대한 정당한 요구는 체제에 대한 반동이라는 이름으로 깔아뭉게고 겁에 질린 인민들을 착취한다. 전체주의가 벌이는 흔한 악행이자 현실입니다.

바로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끝나지 않은 우화

공산주의 혁명 직후의 러시아의 상황을 표현한 작품이기에 번역과정에서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을 쓰다 보니 '위대한 영도자'라던가, '우리의 지도자 나폴레옹 동무'와 같은 단어가 등장합니다. 때문에 요즈음을 살아가는 우리 독자들에게 작품이 마치 현대의 북한 정권의 부패를 상징하는 것으로 읽힐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품 중간 중간 등장하는, 체제에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모든 문제를 '스노볼'이 벌인 일로 돌리는 나폴레옹이 이끄는 돼지 집단의 모습을 보면 대한민국의 요즈음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주창한 '시뮬라크르(simulacre)'라는 철학적 개념이 있습니다. 이를 쉽게 이야기하면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꾸민 가상의 실재"입니다. 더 쉽게 풀어보면 "진품이 없는 짝퉁" 정도가 되겠습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누군가에 의해서 존재하게 된 가상의 실재입니다.

히틀러의 나치즘, 모택동의 문화대혁명도 시뮬라크르 때문에 벌어진 역사적 착오라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널리 퍼지고 있는 '종북 논란'도 실존하는 종북주의자보다 더 부풀려진 허구의 존재에 다수의 국민이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상황인 셈이죠(이 대목에서 오독하지 않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분명 간첩과 종북주의자들은 대한민국의 체제를 위협하는 존재입니다만, 특정 정치세력에 의해서 과장된 '종북'이라는 낙인을 주의해야한다는 것 입니다).

요즈음의 한국 사회는 스스로 튼실해지기보다는 주위의 다양한 핑계를 대면서 어렵다는 변명만을 늘어놓는 사회가 되지 않았는지 주위를 둘러보시면 어떨까요?

많은 책들이 그렇지만, 특히 고전은 읽을 때 마다 느낌이 정말 다른 것 같습니다. 대학에 진학하고, 다양한 책을 읽고, 냉정한 사회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얻은 지식과 체험은 이제 이 우화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이 우화의 진실에 접근한 게 참 두렵기만 하네요. 거의 100년 전에 벌어졌던 민중의 불행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니 말이죠.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블로그에도 동시에 게재되었습니다. (mimisbrunnr.tistory.com)

동물농장.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반양장)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문학동네, 2010


#동물농장 #우화 #시뮬라크르 #전체주의 #러시아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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