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았노라... 그리고 <열하일기>를 썼노라"

[리뷰]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개정신판

등록 2014.01.09 10:15수정 2014.01.09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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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이명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고미숙이라는 고전문학가의 안내로 만나게 되었다. 젊은 날부터 학문으로 두각을 나타냈지만, 과거시험을 회피하였고 출세와 정치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며 평생 자유인을 추구했던 연암 박지원. 그의 삶의 궤적을 고미숙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통해 흥미진진하게 만났다.

연암 박지원이 <열하일기>를 쓰게 된 배경도, 고미숙이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알고 풀어 쓰게 된 배경도 흥미롭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저자 고미숙이 <열하일기>라는 여행기의 열광적인 팬이 되어 <열하일기>를 쓰다니 아이러니다. 그것은 돌연 발생한 '방향 선회'요, '우발적인 편위들을 통해서'였다고 썼다.


살다보면 삶의 여정 속에서 예기치 않은 부딪힘이 있고 방향선회도 있기 마련이다. 독일문학에 심취했던 저자가 어떻게 한국고전문학을 택하게 되었으며 여행을 싫어하는 저자가 어떻게 <열하일기>라는 여행기의 열광적인 팬이 되고 또 그것을 안내하는 글을 쓰게 되었는지 '프롤로그-여행, 편력, 유목'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대학시절, 나름대로 독일문학에 심취했던 내가 한국고전문학을 택하게 된 건 정말 우연이었다. 졸업반 무렵, 당시 비평가로 이름을 날리던 김흥규 선생님의 강의를 신청했는데 그게 현대비평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고전소설 강독이었다.

강의 변경을 하기도 뭣하고 해서 그냥 들었는데, 그때 얼떨결에 <춘향전>, <홍길동전>을 읽으면서 인생행로가 급선회하게 되었다. 난생 처음 원전으로 읽은 고전들은 기묘한 울림으로 내 신체에 육박해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은 탁월한 안내자의 인도로 인해 더 한층 증폭되었다. 고전에 대한 갈증 때문인지 아니면 논리와 열정으로 가득 찬 교수법에 대한 감동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내 지적 욕망은 한국 고전문학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되었다."

"처음 수유리에서 시작하여 지금 대학로 한복판에 오기까지 나는 이 '필드'에서 수많은 친구들을 만났고, 온갖 지식의 향연에 참여하였다... 그 인연조건에 의해 2001 봄 마침내 <열하일기>를 만났다! 당시 연구실 멤버들이 문학계간지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 있었는데...순전히 고전문학 전공자란 이유만으로 내가 박지원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고전문학 연구자이면서 그것도 18세기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던 내가... 엄두도 내지 않고 방치했던 그 텍스트를 긴 우회로를 거쳐 만나게 되다니! 운명적 해후!"

연암 박지원이 <열하일기>를 쓰게 된 배경도 흥미롭다. 박지원은 1776년 정조가 즉위하고 정조의 왕위계승을 꺼려하던 인물들이 대거 숙청되면서 정조의 즉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홍국영이 정계의 실력자로 부상, 홍국영의 세도정치가 시작되었고 정국은 연암에게 불리하게 돌아가 박지원은 '연암골'로 향한다. 홍국영의 실각과 더불어 다시 서울로 돌아온 연암은 느닷없이 열하로의 여행 기회가 주어졌고 삼종형 박명원이 건륭황제의 만수절(70세) 축하 사절로 중국으로 가게 되면서 그를 동반하게 된다.


1780년 5월에 길을 떠나 6월에 압록강을 건넜으며 8월에 북경에 들어갔고 곧이어 열하고 갔다가 그 달에 북경으로 돌아와 10월에 귀국하게 되는 5개월에 걸친 대장정. <열하일기>는 그렇게 태어났다. 그는 '열하일기'에서 '열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강희제 이후 역대 황제들이 거처했던 하계별궁의 소재지로 북경에서 약 230킬로미터 떨어진 하북성 동북부, 난하지류인 무열하 서안에 위치한다. 열하라는 명칭은 이 무열하 연변에 온천들이 많아 '겨울에도 강물이 얼지 않는다'는 데서 유래 한 것'이다. 연암은 연행을 마치고 돌아와 3년여에 걸쳐 <열하일기>를 퇴고하였다 한다.

"<열하일기>는 바로 그런 유목적 텍스트다. 그것은 여행의 기록이지만 거기에 담긴 것은 이질적인 대상들과의 "찐한' 접속이고, 침묵하고 있던 사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발견의 현장이며, 새로운 담론이 펼쳐지는 경이의 장이다. 게다가 그것이 만들어내는 화음의 다채로움은 또 어떤가. 때론 더할 나위 없이 경쾌한가 하면, 때론 장중하고, 또 때론 한없이 애수에 젖어들게 하는, 말하자면 멜로디의 수많은 변주가 일어나는 텍스트, 그것이 <열하일기>다."

무엇보다도 나를 사로잡은 것은 연암의 글쓰기였다. 막힘이 없고 사유의 진폭이 크고 깊고 높으며 생각지도 못한 창조적인 사유와 글은 반수면 상태에 있는 듯 했던 나의 글쓰기에 찬물을 끼얹는 듯 했다. 고미숙이 안내하는 '열하일기'. 그 안에서 연암 박지원의 종횡무진 하는 촌철살인의 글 솜씨를 보며 경탄하며 읽었다.

저자 고미숙은 연암체에 대해, '그것은 어떤 한 가지로 수렴될 수 없는 '리좀'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들뢰즈/가타리에 따르면 리좀은 덩이줄기라는 뜻으로, 수목이 대립되는 개념이다. 뿌리를 중심으로 하여 일정한 방향을 향해 가지를 뻗은 것이 수목이라면, 리좀은 뿌리라는 중심이 없을 뿐 아니라 목적도 방향도 없이 접속하는 대상에 따라 자유롭게 변이하는 특성을 지닌다'면서 연암의 문체적 특이성을 잘 표현해 준다. 저자의 말대로 연암체의 진수는 대상과 소재에 따라 변화무쌍한 변이능력에 있다.

연암은 여행 중에 그 여정도 어지간히 힘들었을 터인데도 붓과 종이와 먹을 넣고 다니며 그때그때 글을 썼었다는 것. 그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살았노라. 그리고 <열하일기>를 썼노라"의 삶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하겠다.

"그러나 이번에 내가 구경한 것은 겨우 그 백분의 일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겨우 비석 하나를 읽는데도 문득 시간이 훌쩍 흘러버려, 자개와 구슬처럼 찬란하고 아름다운 궁궐 구경도 그저 문틈으로 달리는 말을 내려다보는 격이고, 빠른 여울을 지나는 배처럼 건성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다섯 감각기관인 눈, 코, 귀, 혀, 피부는 모두 피로한 상태이고, 베껴 적으려다보니 문방사우가 모두 초췌하다.

항상 꿈속에서 무슨 예언서를 읽는 것 같고, 눈에는 신기루가 어른거려서 뒤죽박죽 섞이고 희미해져서 이름과 실제의 사적이 헷갈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귀국한 뒤에 기록했던 작은 쪽지를 점검해보니 종이는 나비날개처럼 얇고 자그마하며 글자는 파리 대가리처럼 작고 까맣다."(,<앙엽기>.146쪽)

연암의 글쓰기는 유머와 해학과 패러독스, 낯설게 하기의 달인이었다. 한 고을 인구를 1000으로 잡을 때 불과 3~4명에서 10명에 불과할 정도로 드문 체질인 태양인의 체질을 가진 연암은 타고난 바탕이 화통하며 막힘이 없다. 그럼에도 그는 우울증을 앓았던 적이 있다는 것, 또 그 우울증을 글쓰기를 치료의 방편으로 삼았다는 것. '저잣거리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채집하여 글로 옮기는 짓'이었다. 주로 시정의 풍문, 그것도 익살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야담들이라는 것이 특이하다.

<열하일기>를 만난 뒤 '어떻게 이제야 이 텍스트를 접하게 된 것일까?" 생각했던 저자. 나또한 고미숙 저자를 통해 <열하일기> 안내를 받으면서 어떻게 이제야 만났을까 생각했다. 우리는 대부분 <열하일기>를 통째로 접해 본 적이 없다. 학교 때 교과서에 실렸던 <호질>이나 <허생전> 정도의 소설적 텍스트만 파편적으로 접해봤을 뿐이다. 고미숙이 풀어쓴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덕분에 읽으면서 유쾌 통쾌 명쾌했다.

'길이 곧 글이고, 삶이 곧 여행'이었던 연암. "연암이 지나갈 때마다 중원천지에서 침묵하고 있던 단어들이, 문장들이, 그리고 이야기들이 잠에서 깨어나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연암은 "그것들을 무심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절단', '채취'했다. 걸으면서 쓰고, 쓰기 위해서 다시 걸었다. 그는 "심해를 항해하고 돌아온 자만이 발산할 수 있는 강철 같은 명랑함"을 가지고 있었다. 아, 반하지 않을 수 없다. 문득 연암이 말 위에서 손을 들어 사방을 보다가 '1200리에 걸쳐 한 점의 산도 없이 아득히 펼쳐지는 요동 벌판을 보고 한 말, 기존의 사유체계와 구태의연함을 뒤덮었던 그 한 마디가 떠올랐다.

"훌륭한 울음 터로다! 크게 한 번 통곡할 만한 곳이로구나!"
덧붙이는 글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저자: 고미숙 지음/ 북드라망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개정신판

고미숙 지음,
북드라망, 2013


#고미숙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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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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