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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책표지. ⓒ 시사IN북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는 '김재규 평전'이다. <물은 생명이다>로 알려진, 27년 경력의 다큐멘터리 작가 문영심이 썼다. 김재규 장군이 유신의 '심장' 박정희를 쏜 지 35년이 지났다. 작가 문영심은 김재규를 왜 다시 이야기하는가.

우리에게는 햇빛 아래 끌어내야 할 역사가 많다. 10·26사건과 김재규를 다시 이야기하는 것도 그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왜곡된 일들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박정희가 죽었을 때 유신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나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유신독재를 끝장낸 김재규는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한 채 처형되었다. 지금 김재규가 누구인지 다시 이야기하는 이유는 유신의 악몽이 우리 머리 위에서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15쪽)

유신 독재자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다. 유신헌법의 초안자 김기춘은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었다. 요지경 세상이다. '긴급조치'가 없어도 대통령은 지엄한 존재라 누가 감히 쓴소리를  못한다. '유신의 악몽'이 '꿈'으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김재규와 박정희의 인연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나는 김재규가 5·16 쿠데타 당시부터 박정희 휘하에 있는 줄 알았다. 이 책을 보고서야 그것이 착각인 줄 알았다. 이 책에 따르면, 김재규는 5·16에 가담하지 않았다. 김재규와 박정희의 인연은, 5·16 이후 박정희가 김재규를 불러들여 호남비료사장으로 임명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김재규의 능력을 믿고 출세 가도로 이끈 사람은 박정희였다.

그런 김재규가 왜 박정희를 쏘았나. '조국 근대화의 지도자' 박정희는 허상이었을까. 그랬다. 작가는 박정희가 밀실에서 솜털 보송보송한 갓 스무 살의 처녀를 잡아다가 성적 노리개로 삼는 일에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고 적는다. 그 처녀가 자신의 두 딸처럼 어느 선량한 국민의 귀한 딸이라는 생각은 그의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 행사라는 것이 사실은 술자리와 '대통령의 사적인 유희'를 가리킨다. 대통령의 '행사'는 소행사와 대행사로 나뉜다. 소행사는 대통령과 젊은 여성이 간단한 만찬 겸 술자리를 갖고 나서 잠자리를 갖는 것이고, 대행사는 중앙정보부장, 비서실장, 경호실장 등이 참석해서 두어 명의 여성을 데리고 술과 여흥을 즐기고, 여흥이 끝나면 대통령이 점찍은 여자와 잠자리를 갖는 걸로 마무리된다. 이런 행사가 사흘에 한 번, 한 달이면 열 번 가까이 있었다. (52쪽)

박정희의 '채홍사'(조선 연산군 시절, 전국에서 미녀를 모아서 왕에게 갖다 바치는 일을 했던 관리-기자 주) 역을 했던 의전과장 박선호는 그렇게 박정희를 거쳐간 여자들이 200여 명이 넘었다고 증언했다.

박정희는 카메라가 돌아가는 동안에 소박하고 선량한, 혹은 자상하고 인자한 모습을 연출하는 데 능숙했다. 밀짚모자를 쓰고 막걸리 잔을 든 채 논두렁에 앉아 농민들과 담소하는 모습으로 수백만 표를 긁어모으는 데 재능을 발휘했다. 반면에 사람들의 눈길을 피할 수 있는 장소에서는 인면수심의 야비한 행동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양면성을 보였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일본군 장교 복장에 일본도를 휘두르며 일본 군가를 부르는 엽기적인 행동도 예사로 했다.(77쪽)

운명의 10월 26일에도 그랬다. 작가에 따르면,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한 박정희는 '인자하고 서민적인 대통령' 퍼포먼스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청와대로 돌아갔다. 그즈음 박정희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명을 쏴 죽이고도 까딱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폭동이 일어나면 한 100만 명이나 200만 명 처치하는 게 무슨 문제겠습니까? 각하께 불충하고 빨갱이들하고 똑같은 소리나 하는 놈들은 이 차지철이가 탱크로 다 밀어버리겠습니다."(40쪽)

10·26 직전의 한 정보 보고 자리에서 경호실장 차지철이 내뱉은 말이다. 박정희는 이 말을 듣고 "얼굴에 희미한 미소"(40쪽)를 지었다. 박정희는 그 자리에 있던 김재규에게 "정보부가 좀 무서워야지. 그렇게 물러서야 무슨 일을 제대로 하겠나?"(40쪽)며 면박을 주었다. 그날 김재규는 집무실에 돌아와 수행비서관 박흥주에게 "귀를 좀 씻어야"(41쪽)겠다고 말했다.

김재규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박흥주는 1심 재판 중 면회를 온 태윤기 변호사에게 이런 말을 한다.

중정에 부임하시고 얼마 안 되어서 남산의 고문실을 없애고 강압수사 금지 조치를 한 일, 기구 축소, 해외정보업무 중심으로 중정 개편, 부장 판공비 8억 원을 내놓아 직원들 퇴직기금을 만든 일 등 쉽게 실천하기 어려운 일들을 해오셨습니다. 무엇보다도 근래의 온갖 시국사건에서 국민의 편에서 직언을 많이 하셨습니다. 거의 매일 청와대에 보고를 하시는데 제가 서류를 챙기기 때문에 대충이지만 파악하고 있습니다. 일일이 다 거론하기 힘듭니다. 이런 이야기는 밖에서는 알 길이 없겠지요.(189쪽)

기구를 축소하고, 해외정보업무 중심으로 중정 조직을 개편하는 일은 지금 중정 후신인 국가정보원(국정원)의 남재준 원장조차 감히 상상하지 못할 일이 아닐까. 2013년의 국정원장이 떠올리지도 못할 일을 과감히 행할 줄 알던 사람이 1970년대에 중정부장으로 있었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김재규의 '거사'는 1979년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작가는 수감 중 감옥에서 쓴 한 일기에서 김재규가 과거의 '거사'에 대해 고백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첫 번째는 1972년 유신 직후 3군단장으로 복무할 즈음이었다. 김재규는 대통령이 전방 군단에 시찰을 나오면 영내에 가둬두고 하야시킬 계획을 세웠으나 결행하지 못했다. 다른 한 번은 건설부 장관 재직 시절이었다. 권총까지 준비하고 계획을 세웠으나 용기 부족으로 실행하지 못했다.

김재규는 유신정권의 핵심 권력자였다. 그런데도 그는 유신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박정희를 죽였다. 김재규는 법정에서 군사독재를 끝내려고 거사를 했는데 내가 집권하면 역시 군사독재가 된다, 나는 집권할 생각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작가에 따르면, 김재규는 박정희 측근이었기 때문에 그를 제거할 기회가 있었지만, 박정희를 본뜬 전두환처럼 행동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버렸다. 작가는 그것이 김재규가 바보여서가 아니라 유신의 핵심 권력자로서 유신을 부정했다는 역설 때문이라고 말한다.

10·26 사건 재판은 제대로 된 재판이 아니었다. 재판 중 재판부와 변호인이 의견 충돌을 빚을 때면 재판부에 수시로 쪽지가 전달되었다고 한다. '쪽지재판'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다. '쪽지'는, 전두환이 이끌던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관계자들이 재판부 출입문 바로 앞방의 법무감 집무실에서 보낸 것이었다. 그들은 스피커를 통해 법정 재판 내용을 확인한 후 쪽지를 통해 재판부에 대응 방법을 전달했다.

재판 절차가 공정하지 못했으니 결과가 부당하게 나온 것은 당연했다. 10·26 관련자 6명(김재규 중앙정보부장, 박선호 의전과장, 박흥주 대령, 유성옥 경비원, 김태원 경비원, 이기주 경비원 등)에 대한 재판은 시작한 지 16일 만에 선고공판이 이루어졌다. 변호인들이 줄기차게 요청한 공판조서 열람청구, 공판조서에 대한 이의신청, 외부의사 진단신청, 현장검증신청, 수많은 증인신청이 모두 무시된 후 내려진 선고는 전원 사형이었다.

1심 재판부는 선고공판에서 형법에도 없는 '대역죄', '시해' 등의 말을 썼다. 절대왕조 시대의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10·26 사건의 반역성을 극대화하려고 한 것이다. 작가에 따르면, 김재규는 유신의 잔당들인 전두환 무리가 그들의 치부를 하루라도 더 일찍 숨기고 권력을 신속하게 찬탈하기 위해 속히 제거돼야 하는 존재였다. 세계에 유례없는 불공정한 재판이 진행된 이유다.

역사의 '괴물' 박정희가 20여 년 넘게 권좌를 주물럭거린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차지철이나 김기춘과 같이 저돌적이고 머리 좋은 부하들의 보좌 덕분이었을까.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진 최후의 박정희를 부축한 것은 화장실로 도망친 차지철이 아니라 이른바 '대행사' 진행요원이던 심수봉과 신재순 두 사람이었다. 부하들의 '충성' 덕분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그의 탁월한 정치 감각이나 통치술 덕분이었을까.

김재규의 항소심을 변호한 강신옥 변호사는 1980년 1월 21일 자로 '사건일기'를 남겼다. 그 중 한 대목에 '괴물' 박정희의 장기 독재 비결이 잘 나와 있다.

유신독재를 비판하면서 감옥에 들락거리는 국민은 전체 국민의 숫자에서 별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자유민주주의가 실종된 체제 속에서도 저항만 하지 않으면 큰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다. 게다가 지금 한국 사회는 물질적 풍요를 가장 큰 가치로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그것은 박정희의 개발독재가 심은 가치관이다. 독재가 나쁜 줄은 알지만 5·16 이후부터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가치관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왔다. 박정희의 국장이 치러질 때 목 놓아 울던 국민들은 박정희가 오랫동안 자유민주주의를 실종시킨 독재자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었다. (262쪽)

김재규는 1979년 10월 26일에 유신의 '심장' 박정희를 제거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에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그 공교로운 우연을, 함세웅 신부는 역사적인 차원에서 재해석하고 평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작가가 김재규 자신이 언급한 '역사의 심판'이자 '하늘의 심판'인 '제4심'을 강조하는 이유다.

작가는, 모든 죽은 세대의 전통은 악몽과 같이 살아 있는 세대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다는 칼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한다. 더불어 김재규가 승리를 자신한 역사의 제4심은 열리지 않았지만, 죽은 세대의 그림자가 살아 있는 세대의 삶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한 공정한 제4심은 열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세상이 녹록치 않긴 하다. 유신 '괴물'의 딸이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은 김재규 장군의 명예회복이 아직도 여전히 멀 것임을 말해 준다. 하지만 저자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들의 악행을 변명하기 위해서 김재규를 깎아내리는 사람들 말고 김재규를 가까이에서 만나고 접해본 사람들은 그의 진전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강신옥, 안동일 그리고 부산에서 올라온 노인 같은 사람들이 33년이라는 시간의 강을 건너서 아직도 그를 찾아오는 것을 보면 제4심의 전망은 밝은 편이다.(367쪽)

추천사를 쓴 함세웅 신부의 말마따나, 10·26 의거를 역사적으로 함께 확인하는 그날이야말로 한국이 민주주의가 아름답게 꽃피는 날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덧붙이는 글 |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문영심 지음 | 시사IN북 | 2013. 10. 25 | 368쪽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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