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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에 정치인 노무현은 없다

[리뷰] 성공신화와 가족주의 등 코드... 양우석 감독의 영리한 줄타기

14.01.14 16:57최종업데이트14.01.1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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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면서

영화를 보면서 '이건 심하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영화라고 하지만 그래도 삶에 기초하고 있다면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설득력이 있으니 말이다. 작년에 1280만 관객을 모은 <7번방의 선물>을 보았을 때 몰입이 어려웠다. 공상과학영화나 중국 무협영화가 아닌 담에야 상상력도 유만부동이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의 난다 긴다 하는 검찰과 경찰이 총동원되어 일주일 동안 수사했음에도 경찰총수 딸의 살해범을 밝혀내지 못한다. 그런데 교도소 잡범들이 불과 한나절 만에 예승이 아빠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허망하다 못해 안타까운 줄거리에 망연자실해져서 남들 다 흘리는 눈물 콧물도 나는 잊어 버렸다.

법정 영화로 유명세를 탄 <부러진 화살>도 마찬가지다. 검찰과 변호인 측의 대결과 사실관계 확인에 기초하지 않은 영화의 허망함 때문이다. 내가 <변호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자 하는 까닭은 거기 있다. '컬트'처럼 호오가 분명한 인간 노무현을 다룬 영화가 천만관객을 향해 순항하는 이유를 돌아보고자 한다. 

사법고시와 성공신화

<변호인>의 한 장면. ⓒ NEW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이 있다. 비천한 가문에서 뛰어난 자식이 생겨나서 일거에 가문을 일으키고, 조상마저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려놓는다는 기막힌 신화. <변호인>의 첫 번째 호소력은 여기 있는 듯하다. 돈 없어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지 못한 상고 출신 변호사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언제나 흥미로운 이야기 거리다.

그런데 <변호인>의 송우석은 애당초 변호사가 아니었다. 대전지법 판사였던 그는 이른바 '스카이' 출신자들을 견디지 못하고 판사직을 때려치운다. 사법고시를 통과해도 2년 동안 사법연수원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졸업성적이 좋아야 판사나 검사에 임용될 수 있으며, 성적이 좋은 졸업생이 곧바로 변호사가 되는 것은 예외다.

1980년대 산업화시대의 마지막 터널을 통과하면서 한국에서 이와 같은 성공신화는 끝장난다. 개천에는 토룡(지렁이)들만 득시글거린다. 신분은 고착화되었고, 신분의 수직상승이 가능했던 시절은 영원히 옛이야기가 되고 만 것이다.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커지고, 서울마저 강남과 강북으로 나뉘는 계급분화가 심화된 탓이다.

이제는 꿈꾸기도 어려운 '전설 같은' 성공신화에 대중은 환호한다. 대중은 자신이 갖지 못한 신화적 요소에 박수갈채를 보낸다. 영웅과 영웅성의 상실로 규정되는 21세기에도 대중은 여전히 허망한 꿈을 꾼다. 1:99의 사회에서 99에 속하는 하층민 출신의 영웅이 도래하기를 한국의 대중은 암묵적으로 열망하고 있는 것이다.  

<변호인>에서 송우석은 헌신적이고 자상한 가장이다. 출산비용을 감당 못할 정도로 가난한 송우석이 공사판에서 일당 받아 병원으로 달려가는 장면은 시큰하다. 거기서 마주친 장모의 병원비 대납은 그를 얼마나 격동시켰을 것인가! 영화는 여기서 단 한 번 그의 확장된 가족을 보여준다. 그의 가족은 언제나 넷으로 국한된다.

영화를 보러 온 가족 단위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것을 명백히 확인할 수 있다. '15세 이상 관람가'라 하지만 초등학생들의 목소리가 드높다. 시부모와 장인장모가 실종된 2014년 가정 풍속도는 영화관에서도 확연하다. 한국의 가족 혹은 가족주의 안에 대가족의 범주나 개념은 없다. <변호인>은 그것을 정확히 짚어낸다.

송우석은 시세보다 500만 원이나 더 주고 아파트를 구입하려고 한다. 집주인 얼굴이 환해지고, 계약은 성사된다. 그것은 막노동하면서 생계를 꾸리고 사법시험을 준비했던 시절에 그가 손수 쌓아 만든 아파트였다. 아파트 벽에 적힌 글귀를 보자.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버틸 수 없을 만큼 밀린 송우석은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그의 뒤를 든든하게 받친 아내와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아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위해서도 그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가 존재하는 의미이자 버팀목이었던 가족이 영화에서 그렇게 절실하게 표현된다. 여기서 아내들의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너무나 솔직하고 너무나 서민적인!

영화 <변호인>은 '속물변호사' 송우석이 '인권변호사'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 위더스필름㈜


<변호인>의 흥미로운 장면 하나가 국밥집 여주인과 송우석이 대면하는 것이리라.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최순애의 국밥집에 간다. 그가 말한다.

"내 여서 밥 먹고 도망간 놈입니더. 7년 전에..."

순애는 그를 알아보지 못 한다. 그녀의 어린 아들 진우가 그를 기억해낸다. 안주머니에서 노란 봉투를 꺼내는 우석. 그러나 순애의 말은 뜻밖이다. 

"묵은 외상값은 돈 말고 발로 갚아야지!"

관객은 오래도록 망각했던 한국사회의 본래적인 순수성과 순박함을 확인한다. 가난한 수험생과 인정 많은 밥집주인의 따뜻한 해후가 전달하는 전형적인 최루장면. <변호인>은 감동적인 분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그리고 묻는다.

"어떻습니까, 관객 여러분? 볼 만하십니까?"

대학생들의 데모를 둘러싸고 송우석과 진우가 벌이는 논쟁은 흥미롭다. 1980년대를 살아간 동시대인들이라면 누구나 한두 번쯤은 경험해 봤을 법한 논쟁이 아니던가. 시간과 돈이 넘쳐나서 할 일 없는 학생들이 데모한다는 송우석의 주장과 그것을 논박하는 진우의 불꽃 튀는 대결. 송우석의 대사가 가슴을 푹 찔러온다.

"학생 데모로 뒤집어질 정도로 세상은 절대 말랑말랑하지 않아!"

그랬던 송우석이 우연히 한국사회의 치열한 모순 한가운데로 휩쓸려 들어간다. 진우가 '부림사건'에 연루되어 행방이 묘연해진 것이다. <변호인>은 이 지점에서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던 변호사 송우석과 시국사건 변호인 송우석을 병렬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선택지점을 확연한 대비로 각인하는 양우석 감독.

국보법 사건으로 한탕하려 했던 관제검사와 일대일로 맞장 뜨는 변호인 송우석. 여기서 그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향해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 '진격의 거인'을 실연한다. 암울한 시대와 정면 대결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관철해나가는 정의로운 인간 송우석의 위대한 승리가 관객의 가슴을 치는 것이다. 

글을 마치면서: '정치인' 노무현은 없다!

<변호인>에서 지켜볼 것은 정치인 노무현의 부재다. 만일 정치인 노무현이 영화에 등장했다면 어땠을까?! 전두환 일당에게 명패를 던지고, 부산시장에서 내리 낙선하고서도 굴하지 않았던 노무현이 나왔다면 영화는 어떻게 됐을까! 혹은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하고 얼마 안 돼서 탄핵된 노무현 대통령이 등장했다면?!

양우석 감독은 영리하다. <변호인>은 정치인 노무현이 등장하기 직전 막을 내린다. 선이 굵고 분명한 한국인들에게 노무현은 애증이 교차하는 인물이다. 반쪽의 완전한 지지와 또 다른 반쪽의 완벽한 외면의 경계지점에 그는 있다. 하지만 영화는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인간 노무현을 보여줄 따름이다.

동양고전 <채근담>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맹수를 길들이기는 쉽지만, 사람의 마음을 굴복시키기는 어렵고, 골짜기를 메우기는 쉬우나, 사람을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猛獸易伏 人心難降 谿壑易滿 人心難滿."

갑오년 벽두 한국사회에 난무하는 증오와 대결과 불화와 불통이 두렵다. <채근담>이 이른 것처럼 사람의 마음을 얻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변호인>을 보면서 과거를 성찰하고, 오늘을 돌이키며, 다가올 날을 기획하는지도 모른다. 인간 노무현의 길을 떠올리면서 오늘의 난국을 극복할 슬기로움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성공신화 가족주의 진격의 거인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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