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지인이 와서 주고간 선물?

시한부 고용계약후 걱정이 되었나 봅니다

등록 2014.01.14 20:46수정 2014.01.1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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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주고간 선물 여러가지 식품 잘 먹겠습니다. ⓒ 변창기


"창기씨, 30분 후 학교 가 봐도 되나?"


학교에서 걸어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의 동네에 사는 지인 한 분이 계십니다. 오늘 (14일) 오후. 그 지인에게 전화가 왔었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두어살 많고요. 모 고등학교에서 교사를 하고 있습니다. 6개월 전부터 간질환이 생겨서 자가 치료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의사 선생님이 많이 걸어 다녀라 해서 동네를 자주 걸어 다닌다고 합니다. 가끔 제가 다니는 학교에도 오곤 했었습니다. 저야, 뭐 그분이라면 언제든지 방문을 환영합니다. 참 좋은 분이거든요. 학교에서도 학생들 사이에 좋은 선생님으로 평이 자자할 정도로 학생들 입장에서 참교육을 실천하고 있지요.

학생들이 장난삼아 똥침을 하고 가도 그냥 허허 웃고 만답니다. 지난해 여름 저녁 무렵 잠시 본적이 있었는데요. 길가다 우연히 자신이 담임으로 있는 반 학생들이 식당에서 알바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인은 말없이 가까운 마트에 가더니 알바 하는 학생들 모두 먹으라며 얼음과자를 여러개 사서 주고는 가는 것이었습니다. 참 멋진 교사라 여겼습니다.

지인과 만난지는 20여년 넘었네요. 환경운동에 관심 많던 저는 '울산공해추방운동연합'을 알게 되었고 거기 참석하면서 지인을 만났었습니다. 요즘은 '녹색평론 울산 독자모임'에 함께 하고 있구요.

"창기씨, 이거 가져가 먹어."


지인은 등에 짊어지고 온 가방을 내려 놓더니 여러가지 물품을 내놓았습니다. 신문지로 싼 내용물을 벗겨보니 배추와 큼지막한 인삼, 건새우,콩나물이었습니다.

"이 배추는 산청에서 유기농으로 농사 지은거래. 가져가 쌈싸 먹으면 좋을거야. 인삼은 그냥 썰어 넣고 밥 해먹어. 인삼 냄새가 풍기는 밥 한 번 해먹어 보라구. 좋아. 이 콩나물은 저번부터 내가 재배법을 연구해 기른 것이야. 이 새우를 물에 끓인후 콩나물 국을 끓이면 맛있어. 콩나물 국 끓일때는 마늘을 조금 넣으면 더 맛날꺼야."

6개월 치료한 몸이 어떻냐고 물으니 "몸이 무지하게 많이 가렵고 머리도 많이 빠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매주 한 차례씩 항암 주사를 집에서 스스로 놓아야 하고, 약도 하루 두 번 먹어야 한다고 합니다. 또, 한 달에 한차례 병원가서 진료를 다시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때 혈액을 100미리 리터를 4번 채취해 특수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래저래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치료를 1년을 해야 한다니 아직 6개월 정도 더 해야 합니다. 그런 지인이 오히려 저를 위해 여러가지 좋은 말로 저를 위로 했습니다.

"교장이야 뭐 교육감이 시키는 대로 했을 것이니 어쩔수 없어. 2개월 시한부 근로계약 체결했다고 낙담 하지마. 희망을 가져야지. 창기 씨는 가족이 살아가는 희망이라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창기씨가 우선이야. 창기씨 건강에 신경 써야 해.

가족은 두 번째로 중요한거야. 창기씨가 아파 병원 신세라도 져 봐. 가족들이 얼마나 걱정을 많이 하겠어? 체중을 줄여야 해. 학교 고용형태가 일용직이고 대체인력이니 현실이 그런 건데 어쩔수 없는 일이지 뭐. 교육청은 2년 되기 전에 잘라내야 정규직 전환 부담이 없으니 아마 그래서 교장을 시켜 그런 조치를 취했을거야. 이왕 이렇게 된 거 너무 실망 하지말고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 해. 그리고 천천히 다른 일자리 알아보면 되잖아. 창기씨가 힘내야지. 안그러면 몸이 허약한 아내와 자식들이 더 힘들어 진다고."

지인은 이런 저런 제 현실에 대해 좋은 말을 많이 해주고는 "다음에 또 보자"며 학교를 떠났습니다.

"창기씨 잠시 학교 앞으로 나와봐."

힘내라고 좋은 이야기 많이 해주고 가는가 싶더니 다시 불러 나가 보았습니다.

"오늘 동네 시장 장날인데 생미역 좋은 게 있어 사 나눴어."

자신의 몸도 성치 않으면서 저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누어 주려고 가던 길 다시 돌아와 물미역 한봉지를 더 주고 갑니다.

누구는 날 정리해고 하려고 변칙계약에 도장 찍으라 강요했는데 누구는 제가 처한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그렇게 위안이라도 해주고 싶어 하네요. (관련기사: 2개월 근로계약서... 이게 새해 선물입니까)

냉정한 사람도 있지만 마음 따스한 사람도 있음을 느낀 하루 였습니다.

고마운 지인의 건강회복을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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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감이 사용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학교장이 변칙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2개월 시한부 고용형태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대한민국 교육계가 노동자를 무시하고 멸시하는 현실입니다. ⓒ 변창기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엄지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울산 #녹색평론 독자모임 #교사 #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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