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시절 국가가 저지른 범죄, 소멸 아닌 연기일 뿐

조작·고문 수사뒤 재판 도중 사망... 국가가 속죄·배상할 방법 찾아야

등록 2014.01.20 16:49수정 2014.01.20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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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했다는 이유로 재심 무죄가 거절된 사정

과거 군부독재∙권위주의 시절의 고문∙가혹행위 등 불법수사와 불법재판에 대한 재심은 현재 진행형이다. 워낙 사건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인 6월 이 중에서도 어렵고도 드문 사건이 있었다. 내용적으로는 재심해야 하는데 형식적으로는 재심할 수 없는 그런 사건, 수사기관이 고문을 가하여 사건을 조작한 것은 분명하고, 그래서 국가의 책임도 분명한데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기인한 사건이었다. 대법원은 재심대상인 원래 재판 도중 사망한 사람이 재심을 청구한 사건에 대하여 재심을 할 수 없다는 판결을 했다. 사안은 이렇다.

재심을 청구한 사람은 두 사람이다. 두 사람은 1981년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으로 공소가 제기되었다. 두 사람은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되어 무기징역을, 항소심에서는 각 징역 10년과 7년의 장기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상고하여 대법원에서 심리하는 도중 한 명이 사망하였다. 사망한 사람은 다른 피고인의 외할아버지. 산 자에게는 상고기각, 즉 징역 10년이 확정되었고 죽은 자에게는 공소기각결정이 선고되었다.

공소기각결정은 피고인이 재판도중에 사망했을 경우에 내리는 결정이다. 더 이상 재판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다. 형사재판은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이 아니라 사람을 처벌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절차이다. 따라서 만일 그 대상인 사람이 사망한다면 모든 절차는 그 자리에서 멈춰 선다. 유무죄를 밝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죽음으로 모든 것을 정리한다는 것은 재판에서도 통하는 말이다.

이후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분과 사망한 분의 아들이 재심을 청구했다. 이유는 고문과 가혹행위, 불법감금으로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것이다. 재심은 받아들여졌고 다시 재판이 진행되었다.

재심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대하여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살아있는 자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한 것이 맞지만 죽은 자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할 재판이 없다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로써 같은 재판을 받은 자 중 한 명은 무죄를 선고받아 명예가 회복되었는데 다른 사람은 명예가 회복되지 못했다.


수사∙재판 모두가 '국가에 의한 범죄'였던 독재시절 공안조작사건

이 사건 실체관계를 들여다보면 더 기가 막힌다. 재판을 받은 외할아버지와 손자는 어부인데 1971년 10월 북한경비정에 납북되어 1년 후인 1972년 9월 귀환했다. 이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는 없다. 북한에 납북되었다가 풀려난 것이 무슨 죄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시대의 흐름이 있는 법. 이때는 10월 유신직전이었다. 국가는 이들을 반공법위반혐의로 기소했고 법원은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그런데 이것이 불행의 끝이 아니었다. 1981년 경찰은 C급 공작승인을 받고 공작을 진행하여 피고인들이 어부를 상대로 불온선동사실, 북한을 찬양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자백받았다. 다시 시기를 눈여겨 보자. 이때는 전두환 등이 군부쿠데타를 일으켜 사회정화운동을 하고 조작간첩을 열심히 만들고 있을 때였다. 정통성의 부재를 공포통치로 보완하려고 했던 시기이다. 전두환정권은 이들을 다시 불러냈다. 경찰은 이들을 구속영장도 없이 연행하여 각 104일, 86일 동안 불법구금하면서 고문을 가했다. 진실화해위원회와 법원이 인정한 고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볼펜을 손가락 사이에 끼워서 위에서 누르고, 각목을 오금지에 끼워놓고 무릎을 꿇게 한 후 발로 밟고, 주먹으로 때리고, 잠을 재우지 않고, 얼굴에 수건을 씌운 후 매운 것 붓기∙전기고문∙구타,'국가 일에 협조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 등.

이들은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허위자백을 했다. 검찰 단계에서 검찰수사관은 자백을 번복하면 다시 경찰로 보내겠다는 협박을 했다. 검사가 한 것이라고는 '사실대로 진술한 것이냐'라고 물었던 것이 전부였다.

재판은 시작되었으나 피고인들의 주장은 하나도 인정되지 않았고 그대로 유죄판결이 선고되었다. 외할아버지는 항소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대법원 심리도중 사망했다는 이유로 공소기각결정을 받았다. 구속되어 있던 중 1982년 6월 18일 구속집행정지로 석방되었으나 다음 달인 7월 4일 사망한 것이다. 석방된 지 불과 보름 정도 만에 사망했다.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자인 것은 누구의 눈에도 명백히 보인다.

수사와 재판 모두 불법이었지만 국가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고문을 한 경찰과 허위자백을 받은 검사는 처벌받지도 않았고 유죄판결을 한 판사들도 똑 같았다.

대법원 판결 논리적이지만, 억울한 피해자 명예와 배상은 어쩌나

대법원 판결은 논리적이다. 이미 본 바와 같이 재판은 사람을 처벌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이다. 진실은 딱 그만큼만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천동설인지 지동설인지, 진화론인지 창조론인지를 법원이 결정해야 하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공소기각결정은 유무죄판결이 아니다. 유무죄 판결이전에 재판의 전제조건이 갖추어지지 못했다는 이유로 내리는 형식판결이다. 재심은 유죄라고 확정된 판결만을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유죄의 확정판결이 없는 이 사건에서 재심을 할 수는 없다는 결론은 간단한 삼단논법이다.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사건을 이렇게 정리하고 끝내는 것이 맞을까? 무엇인가가 비어있다. 외손자는 명예를 회복했고 피해를 배상받을 근거를 얻었다. 그런데 같은 재판을 받은 외할아버지는 명예가 회복되지 않았다. 형식판결이므로 명예가 침해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다. 불법구금과 고문, 협박을 당한 사실이, 그리고 고등법원에서 유죄판결받은 사실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국가는 당연히 명예를 회복시켰어야 했고 배상을 했어야 한다. 국가범죄를 스스로 단죄하지 않는 국가가 어찌 문명국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대법원의 결정은 논리적이지만 차갑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는지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밝힐 수는 없었을까? 사법부가 아닌 다른 국가기관이 이를 담당해야 한다고 준열히 꾸짖을 수는 없었을까? 논리적이지만 너무 차가운 판결문이라서 마음으로 수긍하기 어렵다.

진실화해위원회와 과거사재단의 활동이 필요한 이유

과거에 벌어진 일을 현재의 법제로 모두 해결하기는 어렵다. 과거사 정리에 항상 논쟁과 갈등이 있는 이유이다. 시간도 많이 흘렀고 불법행위를 일일이 단죄할 수도 없게 되었다. 하지만 최소한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그리고 억울한 피해자의 명예는 회복되어야 하고 피해에 대한 배상도 이루어져야 한다.

이 사건과 같은 과거사 사건에서 명예를 회복시키고 배상을 해야 하는 주체는 국가이다. 그러나 사법부는 적당하지 않다. 사법부도 스스로 성찰하고 반성해야 하지만 명예회복과 배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곳은 아무래도 행정부이다. 한때 활동하였던 진실화해위원회가 바로 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가 만들기로 약속했던 과거사재단이 이러한 일을 해야 한다.

아직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은 살아있다. 이 법은 국가에게 피해자의 피해 및 명예의 회복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고 가해자에 대하여 적절한 법적․정치적 화해조치를 취하여야 하며, 국민 화해와 통합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할 의무를 부담시키고 있다.

과거의 국가범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연기될 뿐이다. 우리가 그 사례를 일본의 과거사에서 보고 있지 않은가. 박근혜 정부는 관심이 없지만 눈을 감는다고 존재하는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의무는 면제되지 않는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좋게 해석하자면 국가가 나서서 재판 이외의 방법으로 과거의 국가범죄를 정리하라는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 칼럼은 한국미래발전연구원 홈페이지(www.futurekorea.org)에 동시 게재합니다.
*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법위원장, 참여정부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 등을 지냈으며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2011) 등의 저서를 냈습니다.
#국가범죄 #진실화해위원회 #과거사정리 #김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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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래발전연구원(http://www.futurekorea.org/)은 민주주의와 한국사회의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진보적 정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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