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문도 안 열었는데... 의원 보좌진은 왜 떨리나

[보좌관 일기] 상임위 조정 등 물밑작업으로 바쁜 의원실

등록 2014.01.21 17:12수정 2014.01.2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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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은 비회기 기간이니 몸과 함께 마음도 편안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어디나 비슷하겠지만 1월은 의원실도 한해의 계획을 세우는 시기다. 밀도 있는 논의와 단합을 위해 1박2일 워크숍을 가기도 하고, 사무실에서 문 닫아 걸고 긴 회의를 하기도 한다. 우리 의원실도 보좌진들끼리 두 차례 회의를 했고, 논의 결과를 가지고 의원님과 함께 하루 워크숍을 진행하기로 했다.

사업 계획 수립의 기본은 지난 활동에 대한 평가다. 지난해 우리 박원석 정의당 의원실이 한 일을 쭉 나열해 놓고 보니 이 많은 일을 어떻게 다 했을까 싶다. 일정표에 기록된 의원의 공식일정만 356건이다. 상임위 등 국회일정은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토론회가 50여 회, 집회와 기자회견 참석이 70여 회, 언론 인터뷰도 40여 회에 가깝다. 주말 일정도 상당히 많아서 "우리 수행은 언제 쉬나? 정말 고생이 많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1월은 비회기 기간인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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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석 정의당 의원. (자료사진) ⓒ 남소연

홈페이지 방문자 수도 2012년에 비해 10배 가량 늘었다. 전체 방문자의 절반 가량은 10월 이후다. 국정감사 때 내놓은 보도자료가 충실했고, 철도민영화 문제에 대해 긴급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나 역시 지난 일 년 동안 참 바쁘고,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개인적 성과를 묻는다면 답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뭘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는 자괴감이 들고, 내가 과연 국회의원 보좌관에 적합한 사람인가, 의원실에 필요한 존재인가 의문이 든다. 사업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쓸모도 없는 자기 성찰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그래서 '2014년 사업 계획(안)' 딱 한줄 뿐인 한글 파일이 벌써 며칠째 띄워져 있다. 출근하면 일단 이 파일을 띄워놓고 다른 일을 한다. 퇴근할 땐 아무 변화도 없는 파일인데 꼭 저장을 누르고 프로그램을 종료한다. 신발 속에 작은 돌이 들어간 것처럼 무슨 일을 해도 머릿속에는 사업계획 고민이 맴돈다. 신발 벗어 돌멩이 털어내듯 떨칠 수도 없다. 이래서 1월은 마음이 무거운 달이다.

의원실의 한 동료는 "활동의 중심을 금융의 공공성 강화로 함. 상임위 관련 규제 완화 정책, 국내외 경제상황 변화에 신속히 대응함"으로 시작하는 본인의 활동 계획서 맨 마지막에 "탕비실·회의실·보좌진 사무실 업무환경 개선·유지 역할 강화"를 적었다. 자발적으로 사무실 정리, 위생관리 역할을 맡겠다는 것이다. '의원실 보좌진 동의 요'라고 아랫줄에 적어놓고, 보좌진들이 동의한 적 없는데 이미 의원실 정리정돈을 완벽하게 마쳤다.


"사랑하는 의원실 가족들과 손님들의 각종 감염 예방을 위해 탕비실은 깨끗이! 사용하신 컵은 꼭 씻어주세요!"라는 글을 뽑아 탕비실 싱크대 위에 붙여놓기까지 했다. 이 깔끔한 동료는 얼마 전 애 아빠가 된 금융·경제 정책 담당 비서다. 제목만 있는 내 사업계획서는 어쩌란 말인가.

2012년 5월 30일 시작된 19대 국회의원의 임기는 2016년 5월 29일에 끝난다. 2014년은 정확히 임기의 중간이다. 지난 의정활동을 평가하고, 남은 2년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 하므로 그 어느 해보다 중요하다.

국회법상 상임위원 임기는 2년이기에 새롭게 상임위 구성을 해야 하는 해이기도 하다. 박원석 의원의 의정활동에 어떤 상임위가 가장 적합한지에 대해 토론하고, 기존 상임위를 계속 유지할 것인지 다른 상임위로 바꿀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상임위 변경을 원한다 해도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회에는 모두 16개의 상임위가 있다. 법제사법위, 정무위, 기획재정위,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외교통일위, 국방위, 안전행정위,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산업통상자원위, 보건복지위, 환경노동위, 국토교통위 등 13개 상임위에서는 겸임할 수 없다. 국회운영위, 정보위, 여성가족위는 앞의 상임위를 하면서 추가로 맡는 겸임 상임위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 특별위원회도 별도로 구성되며 역시 겸임한다. 이론적으로는 한 개 상임위와 운영위, 여성가족위, 예결특위, 별도의 특위 등을 모두 겸임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다 할 수는 없다. 의원들 간에 고르게 배분할 필요성도 있고, 의원실 인력의 한계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의욕이 넘쳐 여러 특위를 겸임하는 의원실도 있긴 하다. 양과 질을 동시에 달성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어쨌든 이들 상임위는 열 손가락 깨물면 다 아프듯 모두 중요하지만, 손가락 길이가 다르듯 상임위에 따라 인기도 차이가 있다.

예컨대 예산 심의·의결권을 가지고 있는 예결특위 위원을 할 경우 예산 확보가 용의하기에 예결특위는 희망자가 많다. 위원 숫자도 50명이나 된다. 보통 상임위 위원이 25명 내외이고, 윤리특별위원회가 15명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많은 숫자다.

새 상임위 구성... 보좌진은 왜 떨리나

정당별 위원 숫자는 의석수 비율로 정해지는데 예결특위는 새누리당 26명, 민주당 20명, 비교섭단체 3인이다(1월 15일 현재 49명). 비교섭단체는 정의당, 통합진보당, 무소속 의원 각 1인이 위원이다. 따라서 정의당의 경우 5명의 국회의원 중 단 한명만 예결특위 위원이 될 수 있다. 일 년씩 돌아가면서 하는 것이 관행이다.

예산 심의를 하는 핵심 단위인 예결특위 산하 '예산안 등 조정소위원회'는 15명으로 구성된다. 현재 소위원회에 비교섭단체 위원은 없다. 한 번 배제하면 여간해서 자리를 내주지 않기에 다음 상임위 구성 때에는 비교섭단체도 소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상임위가 바뀌면 상임위원장도 바뀌고, 간사도 바뀌고, 소위원회 구성도 바뀐다. 한시적인 특별위원회는 활동이 종료되고, 새로운 특위가 구성되는 등 여러 환경이 변한다. 상임위 변경에 따라 보좌진이 교체되기도 하는, 개인적으로 덜덜 떨리는 시기다.

또 각 당이 원내 지도부를 새롭게 구성하는 해이기도 하다. 의원 숫자가 적은 우리 당이야 크게 고민할 문제가 아니지만 새누리당, 민주당은 계파별로 물밑에서 바쁜 시기다. 공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당이 작든 크든 당직을 맡을지 말지에 대해 판단해야 하는 상황은 같다. 이건 사실 보좌진들 의견이 큰 의미가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의원 스스로 자신의 정치 영역을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지에 대한 결심이다. 정치인은 때를 아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너무 일찍 나서도 안 되고, 너무 늦어져도 안 되니 말이다.

또, 올해는 지방선거가 있으니 의정활동 계획이 이와 무관할 수 없다. '아무개 의원이 모 지역에 출마한다'는 소문이 떠돈다. 날마다 새로운 소식들이 물고 날라진다. 점쟁이처럼 선거 결과를 내다 볼 수는 없지만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선거 전과 후의 정치적 환경은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더군다나 지역구 의원은 지방선거가 다음 국회의원 선거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어 소홀히 할 수 없다. 지역에 같은 당 지방자치단체장과 의원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아직 출마할 지역을 정하지 못해도 지방선거를 외면할 수 없다. 지역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고, 가능성을 가늠할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일 열린 '2014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인 신년인사회'에 참석했다. ⓒ 청와대


정세 전망도 중요하다. 정부는 2014년 경제정책 목표로 '경제 활성화와 민생안정'을 내걸었다. 경기회복이 민간부문으로 확산되도록 하기 위해 투자 촉진 및 소비 여건 개선에 정책역량을 집중하겠다고 한다. 주택시장 정상화도 말한다. 경제체질 개선을 위해 공공부문 개혁 원년으로 삼겠다는 언급은 선전 포고처럼 들린다. 2월에 발표하겠다는 경제 활성화 3개년 계획의 중심적 내용은 규제완화 정책이 될 것 같다.

규제완화 예고한 정부... "적극 대응하련다"

결국 서비스 산업을 중심으로(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정부 제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에 의하면 농림어업과 제조업을 제외한 모든 사업이 서비스 산업이다)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외국 자본 유치를 위해 각종 투자 규제를 재검토 할 것이며 부동산 규제 등 기업 투자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는 규제도 완화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철도 민영화에 이어 의료 영리화를 추진하는 등 공공성에 역행하는 정책에 속도를 낼 것이다.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의원실의 실질적인 주요 사업이다.

발생한 현안에 대응만 하는 것이 아니라 대안도 말해야 한다. 사회적 가치가 있는 진보적 의제도 감당해야 한다. 아무리 줄여도 사업계획에 담아야 할 것들이 많다. 모든 것을 고려하여 면밀한 계획을 수립한다 할지라도 한국 사회는 매우 역동적이라 번번이 예상치 못한 현안이 발생할 수 있다. 매머드급 사건이 발생하면 모든 업무가 정지되고 거기에 집중한다. 이 어쩔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2014년 사업 계획 수립을 통하여 정세 판단을 공유하고, 정치활동 목표와 방향을 함께 정하고, 그 속에서 개개인의 역량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한해를 살아갈 힘을 주고받는 것이 사업계획 수립의 진정한 목표다.

이제 진짜 사업계획서를 써야겠다. 그런데 뭘 써야 하지?
#상임위 #보좌관일기 #국회 #정의당 #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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