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뷔페 괴담', 하루하루 불안했다

[소박한 결혼 프로젝트⑬] 결혼 일주일 전, 챙길 게 왜 이리 많나

등록 2014.01.29 21:06수정 2014.02.24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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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8년간의 연애 끝에 남자친구 '곰씨'와 결혼식을 했습니다. 신부와 신랑이 주인공이 되는 결혼식,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 준비하는 결혼식, 모두가 즐거운 결혼식. 제가 꿈꾸던 결혼식인데요. '소박한 결혼 프로젝트'는 성공했을까요? 그 이야기를 공개합니다. - 기자말

 

퇴근 후, 결혼을 나흘 앞두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친구의 얼굴은 불안해보였다. 요즘 잠을 잘 못자고 악몽도 자주 꾼다고 했다. 결혼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결혼식 날 혹시나 밥이 모자라지 않을지, 눈이나 비가 오지는 않을지, 드레스는 잘 어울릴지…. 친구는 "어서 결혼식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모든 과정이 끝난 내가 부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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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틀 전까지, 나는 회사에 출근을 했다. 심지어 노조 산행까지 갔다. 하늘공원 280계단을 헥헥 거리며 오르는 내게 동료들은 물었다. "새 신부가 여기 와 있어도 돼?" ⓒ 홍현진

결혼 이틀 전까지, 나는 회사에 출근을 했다. 심지어 노조 산행까지 갔다. 하늘공원 280계단을 헥헥 거리며 오르는 내게 동료들은 물었다. "새 신부가 여기 와 있어도 돼?" ⓒ 홍현진

 

결혼 이틀 전까지 나는 회사에 출근을 했다. 심지어 그날 노조 산행까지 갔다. 하늘공원 280 계단을 헥헥 거리며 오르는 내게 동료들은 물었다.

 

"새 신부가 여기 와 있어도 돼?"

 

휴가를 내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집에 있으면 괜스레 생각이 많아질 것 같아서. 그 즈음, 나도 친구처럼 하루하루가 불안했다. 이런 저런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내게 곰씨는 말했다.

 

"망쳐도 괜찮아. 그럼 더 기억에 남을 거야."

 

그 말이 나를 더 불안하게 했다.   

 

결혼식 이틀 전, 280 계단을 오른 이유

 

결혼식에서 가장 걱정이 되는 건 밥이었다. 결혼식을 둘러싼 슬픈 이야기들은 늘 밥과 관련된 것이다. 음식이 하다못해 잔치국수까지도 맛이 없었다거나, 상해서 스테이크에서 걸레 냄새가 났다거나, 모자라서 아예 먹지도 못했다거나, 뷔페가 너무 붐벼서 복도에 앉아서 먹었다거나….

 

우리는 공공기관 결혼식이라 뷔페 수용인원에 한계가 있었고, 어렵게 시간을 내서 와준 친구들과 얼굴도장만 찍고 가는 게 아쉬워 작게나마 뒤풀이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결혼식장 5분 거리에 공간을 하나 빌리기로 했다. 본식 끝나고 하객들과 시간을 좀 더 보내기 위해 폐백은 안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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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씨와 내가 한땀 한땀 작업한 깨알같은 약도. 결혼 하루 전날 친구들에게 보내줬다. ⓒ 홍현진

곰씨와 내가 한땀 한땀 작업한 깨알같은 약도. 결혼 하루 전날 친구들에게 보내줬다. ⓒ 홍현진

그런데 일요일 오후 1시 이후에 50명이 수용 가능한 장소를 찾기가 어디 쉽겠는가. 곰씨와 수차례 발품을 팔았다. 아예 대여가 불가능하다는 곳도 있었고, 대여비용으로 불가능한 가격을 제시하는 곳도 있었다. 결국 몇 번이나 인근을 헤맨 끝에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카페를 빌릴 수 있다.

 

난관은 또 있었다. 우리가 빌리기로 한 카페에는 3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좌석밖에 없어서 의자와 테이블을 추가로 구해야 했다. 원래는 케이터링 업체에서 대여까지 해주기로 했지만 중간에 일이 꼬이면서 우리가 직접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 결혼식을 6일 앞두고.

 

하지만 의자 30개 정도를 소량으로 빌려주는 업체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의자 30개…"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아무 대답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리는 곳도 있었다. '어, 전화가 끊겼네' 하며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그쪽에서 하는 말.

 

"일부러 끊은 건데. 그렇게는 못 빌려줘요." 

 

'이러다 돗자리랑 목욕탕 의자 준비해야 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 때 쯤, 다행히 의자를 소량으로라도 빌려주겠다는 업체를 찾았다. 

 

카페에 초대할 50~60명을 정하는 것도 일이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친한 친구들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갔다. 남편이랑 같이 오는 친구들도 있다 보니 인원이 만만치 않았다. 학교를 모두 서울에서 나온 남편은 더 고민이 많았다.

 

결혼식 며칠 전, 친구들이 본식 끝나고 카페로 바로 찾아와서 식사할 수 있도록 직접 약도도 만들었다. 이정표가 되는 지점마다 남편과 내가 등장하는 사진을 찍어서 이어 붙였다. 친구들은 '깨알 같다'며 좋아했다.  

 

'시험 떨어지면 끝이지 뭐'... 나를 변하게 한 그

 

웨딩 플래너 없이 준비하는 결혼식은 정말 챙길 게 많았다. 드레스는 물론이고 베일, 장갑, 웨딩슈즈까지 모두 직접 구했다. 화환과 부케는 회사 근처에 있는 꽃집에 부탁했다. 결혼식장 앞에 놓을 포토 테이블, 방명록, 축의금 장부, 봉투까지 준비해야 했다.

 

이게 다가 아니다. 결혼식순도 직접 짰고, 결혼식장에 울려 퍼질 음악도 하나하나 골랐다. 곰씨와 컴퓨터를 켜고 앉아서 식전 음악부터 부모님 입장, 신랑신부 입장·퇴장 음악 등을 뭘로 할까 고민했다. 

 

내가 꼭 고르고 싶었던 노래는 스티비 원더의 'My cherie amour'와 빌리 조엘의 'Just the way you are'. My cherie amour는 스티비 원더를 좋아하기도 했고 곰씨와 함께 <실버 라이닝 플레이북>을 보면서 이 노래에 맞춰 입장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관련 기사 : 미안하다 '작은 결혼식', 내가 오해했다).

 

'Just the way you are'는 이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곰씨와 내가 연인이 되기 전, 노래방에서 곰씨가 이 노래를 부르는 걸 보고 두근거렸던 기억이 있다. 이 노래는 양가 부모님이 함께 입장할 때 배경음악으로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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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씨와 나의 결혼식 입장곡으로 썼던 스티비 원더의 'My cherie amour'. 이후 곰씨 친구가 집들이 선물로 CD를 선물해줬다. ⓒ 홍현진

곰씨와 나의 결혼식 입장곡으로 썼던 스티비 원더의 'My cherie amour'. 이후 곰씨 친구가 집들이 선물로 CD를 선물해줬다. ⓒ 홍현진

곰씨는 페퍼톤스의 'Ready and get set go'를 퇴장곡으로 하고 싶다고 했다.

 

"시험 준비할 때, 'Ready and get set go' 들으면 괜히 눈물이 났었거든. 이 노래 나오면 울지도 몰라."

 

곰씨는 수년간 '수험생' 신분으로 살아왔다. 나와 곰씨 둘 다 재수를 해서 학번은 같지만, 곰씨는 군 복무와 시험 준비로 나보다 3년 정도 늦게 졸업했다. 곰씨가 본격적으로 시험공부를 했던 몇 년간은 본가에 가있느라 한 달에 한 두 번 밖에 보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 기간, 다행히 나는 기자 초년생이었고, 정신없이 바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곰씨에게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고, 이래서 힘들었고, 저래서 기뻤고… 조잘 조잘 이야기하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위안이 되는 시간이었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내가 어떻게 결혼을 결심하게 됐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될 때가 있다. 곰씨가 1차 시험을 치고 돌아온 날이었다. 자취방 한 구석에서 가채점을 하고 온 곰씨는 어두운 표정으로 아쉽게 떨어진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집근처 양꼬치 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나는 곰씨에게 말했다. 만약 이번에 떨어진다면 공부를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시험에 꼭 합격하지 않아도 좋으니 네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그때는 진심으로, 곰씨가 시험에 붙고 말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곰씨가 힘든 게 안타까웠다.

 

그 말을 하면서 내 스스로 놀랐다. 내가 알고 있는 나는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실제로 농담반 진담반으로 '시험 합격 못하면 끝인 거지 뭐'라는 말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나를 이렇게 변하게 만들었구나. 그 때 이 사람이라면, 결혼이라는 걸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한 선배가 말했다.

 

"그래서 주례할 때 '비가 올 때나, 눈이 올 때나'라는 말을 하는 거야. 그 사람이 상황이 좋을 때나, 안 좋을 때나 함께 하는 게 부부니까."

 

드디어 내일이면 끝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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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씨와의 첫 제주도 여행. 차안에서 들었던 페퍼톤스. ⓒ 홍현진

곰씨와의 첫 제주도 여행. 차안에서 들었던 페퍼톤스. ⓒ 홍현진

 

다행히 그 해 곰씨는 1차 시험에 합격했고 2차 시험은 떨어졌다. 이듬해 2차 시험을 치고 난 후, 곰씨와 나는 함께 제주도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시험이 끝나서 홀가분했고, 늘 가난한 학생 커플이었던 우리가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먼 곳까지 여행을 왔다는 게 행복했다.

 

그 때 해안도로를 달리며 차 안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가 페퍼톤스였다. '우울증을 위한 뉴테라피 2인조 밴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결성된 페퍼톤스는 20%쯤 모자라는 가창력으로 밝고 신나는 노래를 들려준다.


나는 우리 결혼식이 신나는 결혼식이 됐으면 했다. 물론 가장 큰 걱정은 유난히 눈물이 많은 나였지만. 그래서 결혼식 배경음악도, 축가도 밝은 곡으로 선택했다. 나와 곰씨가 부른 축가는 데이브레이크의 '좋다'. 하객들과 함께 박수를 치며 부를 수 있는 곡이다. 사실 처음에는 이한철과 박새별이 부른 '바야흐로 사랑의 계절'을 하고 싶었지만 가창력 때문에 과감히 포기했다.

 

결혼 하루 전날 저녁. 우리는 결혼식날 함께 읽을 성혼선언문과 서로에게 읽어 줄 편지를 썼다. 그리고 부산에서 하루 일찍 온 엄마, 동생과 함께 홍대에 있는 노래방을 찾았다.  

 

동생이 부를 축가를 정하는 데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흔히들 많이 부르는 축가는 싫고, '이거다' 싶은 노래를 찾으면 동생 음색에 안 맞고… 몇 번이나 바꿨는지 모른다. 그렇게 해서 고르고 고른 곡이 정인의 '오르막길'. 윤종신이 오래된 연인인 정인·조정치 커플을 보며 만든 곡이란다. 노래방에서 가만 가만 가사를 음미하며 동생의 노래를 듣는데 뭉클했다. 이러다 내일 또 우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한걸음 이제 한걸음일 뿐 아득한 저 끝은 보지마. 평온했던 길처럼 계속 나를 바라봐줘. 그러면 난 견디겠어. 사랑해. 이 길 함께 가는 그대여.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여. 가끔 바람이 불 때만 저 먼 풍경을 바라봐. 올라온 만큼 아름다운 우리 길. 기억해 혹시 우리 손 놓쳐도 절대 당황하고 헤매지 마요.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 곳은 넓지 않아서 우린 결국엔 만나 크게 소리 쳐 사랑해요. 저 끝까지.

 

집으로 돌아와 다들 얼굴에 팩 하나씩을 하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엄마와 나는 안방 침대에서, 남편은 작은방에서, 동생은 거실에 자리를 잡았다. '드디어 내일이면 끝이구나.' 설레고 긴장됐다.

#소박한 결혼 #결혼 #결혼식 #웨딩플래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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