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8개월 새댁의 방문 "저, 집 나왔어요"

등록 2014.01.28 15:17수정 2014.01.2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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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프곶. 먹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는 날이 더 많으며, 바람 쉴 날 없고, 기뻐하기보다 슬퍼하기 좋은 곳이며 사랑을 시작하기보다 이별하기 좋은 곳이다. ⓒ 이안수


#1 


어제(1월 26일), 정오쯤 한 숙녀로부터 당일 예약이 가능한지를 묻는 전화가 왔습니다. 일요일 마침, 혼자 여행할 것이라는 그녀를 맞을 공간이 허락되었습니다.

해가 기울기전에 그녀가 왔습니다.

작은 캐리어 하나를 소지한 미소를 머금은 그녀는 세련된 커리어우먼의 모습이었습니다.

"시크한 모습이세요. 휴가세요?"
"주부입니다." 

"결혼하셨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결혼하신지는?"
"8개월이요. 아직 새댁입니다. 사실은 남편과 다투어서 나온 거예요. 혼자 쉬면서 생각도 좀 하려고요." 


"이런,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부부들은 수시로 다툰답니다. 저희 부부도 마찬가지고요. 이곳에 쉬시면서 헤이리 산책도 하세요. 서재도 자유롭게 출입하시고요."

그녀는 나가서 식사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공간에서 홀로된 시간과 마주했습니다. 

오늘 낮에 캐리어를 모티프원에 두고 헤이리에서의 산책을 즐기고 생각이 많이 정리되었다며 오후에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그녀가 떠난 곳에는 지난밤에 쓴 방명록이 남겨져 있었습니다. 

#2 

2014년 1월 26일 헤이리마을 모티프원에서.

나는 남편과 다투고 나 혼자 여기에 왔다.
요즘은 일상이 너무나 힘들고 버거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혼자 남편과 다투고 나니 갑자기 온몸의 힘이 빠지고
무엇을 해아할지 몰라 일단 짐을 싸고 서울역에 갔다.
서울역에서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무작정 나왔기에
그냥... 멍하니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부산.. 밀양.. 전주한옥마을...
다.. 혼자가려니 참 겁이 나더라..
혼자 자신 있게 나왔는데 참.. 이상하게 겁나더라.. 

나는 왜.. 우리남편하고 계속 트러블이 생기는 걸까..
내가 하고 싶은 건 뭘까. 내가 이루고 싶은 건 뭘까..
뭘 위해서 달리는 걸까..
지금 내 마음은 누가 손끝으로 톡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것 같이
낡디 낡은 부푼 풍선 같다... 

혼자 남은 거 같은 기분... 온 세상에서 철저하게 나 혼자 남은 듯한 기분이다.. 참.. 이렇게 외롭고 쓸쓸할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남지 않은 채 빈껍데기만 남은 듯한 이 기분은... 참.. 어렵다.. 

복잡하고 얘기를 하고싶다. 툭 터놓고 내가 욕을 먹던 내가 욕을 하던...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맘껏 쏟아내고 싶다. 그런데 들어줄 사람이 있나..? 우리 엄마.. 착한 우리 엄마한테 하면 얼마나 속상해할까 싶어 차마... 얘기를 못하겠다...  

나는 왜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사는가..
참 고민이다.. 

WHITE 

#3 

나는 그녀가 남긴 글을 읽자 내가 마치 그녀가 된 것처럼 외로움이 밀려왔습니다. 나는 2003년 5월 어느날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코드곶(Cape Cod)의 모래언덕에 서있었습니다. 대서양 파도의 표호가 귀를 때리고, 대서양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주검으로 변해서 누워있는 고사목이 유령 같은 모습으로 내 뒤에 있었습니다, 발밑의 키 작은 잡목들의 흔들림이 짐짓 '폭풍의 언덕'과도 같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습니다.  

그 모래언덕 아래에는 흰 포말이 일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긴 거대한 모래언덕에서 거대한 파도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동안 짓눌러 두었던 외로움이 다시 삐져나왔습니다. 

미국 유학중이었고 여름학기에 등록하는 대신 긴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며칠전에 열어본 이메일을 통해 암을 앓던 친구 재원이가 결국 죽었다는 소식까지 접했습니다. 병마에 굴복하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었다. 하지만 나는 완전히 지구 반대편에 있었습니다. 차라리 나는 빈 코카콜라 페트병이라도 되어서 대서양 파도에 뛰어들고 싶었습니다. 대서양과 인도양을 부유하다가 혹 한반도의 남해에 닿을지도 모를 일이니…….

그 때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나는 왜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이곳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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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매사추세츠주 동부의 케이프곶. 좌우를 바꾼 'ㄴ'자형의 이 반도의 끝에는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청교도들이 상륙했던 프로빈스타운이 있다. 여름이면 동성애자들의 성지가 되는 곳. ⓒ 이안수


#4 
3
지난 1월 달의 일본여행에서 일본 사람들이 말하는 '프라이버시'의 정체에 대해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일본에 영주하고 있는 염종순선생께서 이동 중에 말했습니다.

"예전에 가구점에 같다가 싱글침대 두개를 붙여서 묶어놓은 더블침대를 보았습니다. 붙이면 더블, 떼면 싱글침대가 되도록 된 구조였습니다. 점원에게 그 용도를 물었습니다. 신혼부부를 위한 침대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결혼 후 1년쯤은 그 침대를 함께 사용하다가 서로에게 신선감이 사라지고 함께 잠자리를 하는 것이 귀찮아지면 그 침대를 분리해서 사용할 수 있게 디자인 된 것이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1, 2년 살다가 침대를 떼어서 각방을 쓰고, 부부로서의 유대는 점점 희박해집니다. 외부에서 각자 이성을 만나게 되고 남자친구와 여자친구로 발전하게 됩니다. 하지만 부부간에도 부인의 남자친구와 남편의 여자친구에 대해서 물어보아서는 안 됩니다. 물어도 대답해줄 필요가 없고요. 그것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니까요."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한 이불 덮고 자면서 자연스럽게 그 싸움이 '물 베기'가 되는데 일본에서는 각방을 쓰고 '프라이버시'라는 이름으로 외도에 대해 간섭받지 않을 권리가 보장되니 온전한 가정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우려였습니다.  

"지금 일본에서 인기 있는 남자는 돈 많이 벌고 따로 사는 남자예요."

#5 

저는 아내와 혼전에 긴 시간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결혼 후에도 부부싸움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부싸움을 하지말자는 약속대신 부부싸움을 한 뒤에 지켜야할 강령을 만들었습니다.  

1. 아이들이 보는 곳에서는 절대 싸우지 않는다.
2. 싸운 뒤 절대 집을 나가지 않는다.
3. 싸움을 친정이나 시댁에 알리지 않는다. 

3번의 강령은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고, 1, 2번의 강령도 한, 두 번 외에는 잘 지켜졌습니다. 

아이들에게 부모는 처음 만나는 스승이므로 부모가 폭력적이면 그 아이들이 커서 폭력성을 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한 이불 덮고 자는 것이 어떤 말보다도 효험 있는 화해의 묘약임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아무 귀책사유가 없는 양가부모님들께서 자식의 부부싸움으로 걱정해야할 이유가 없다는 것도 확실히 했습니다.  

#6

저는 그녀가 떠나고 늦은 오후에 문자를 보냈습니다.

"잘 들어가셨죠..."

바로 답이 왔습니다.

"넵! 잘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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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로 안부를 확인하니 안심이었다. ⓒ 이안수


그녀가 친정집이나 시댁이 아니고 신혼집으로 들어갔다면 화해는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에너지의 날' 캠페인 슬로건이 생각났습니다. '불을 끄고 별을 켜다'

그 부부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불을 끄고 별을 켜세요!"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motif1.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케이프곶 #CAPE COD #부부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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