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소 닭 보듯'... 이 남자들 정체가 뭐야?

[가다툰의 네버랜드-이집트⑮]숨막히게 행복했던 두 번째 이집트 여행

등록 2014.02.01 16:16수정 2014.02.01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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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 해도 군침도는 아랍 음식들

아랍과 지중해를 동시에 담은 매력적인 레바논 음식을 만드는 레스토랑 타불라. 세계에서 가장 큰 미국 대사관을 비롯해 각국의 대사관과 고급 전원주택들이 밀집해 있는 가든시티(Garden city) 지역에 있는 이 레바니즈 레스토랑은 이집트에서 언제나 주머니 가벼운 여행자이자 유학생이었던 내가 특별한 날 한 두 번 가보는 게 전부였던 곳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마지막 만찬을 함께 했다. 3년 전과 다름없이 갓 구워진 빵과 여전히 맛있는 음식들을 먹고 나니 피곤이 한결 가시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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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무스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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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반(요거트의 일종)과 함께 요리한 양고기 찜 요리.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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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불라의 양갈비구이 ⓒ 김산슬


특히나 유명한 양갈비 구이와 따끈한 빵에 찍어먹는 훔무스(병아리 콩을 갈아 만든 아랍음식으로 올리브 오일을 위에 뿌려 빵이나 음식에 곁들여 먹는다)를 함께 먹으니 오랜만에 행복하게 배가 부르다. 게다가 사실 이집트 음식보다는 샴 지방(요르단,레바논,시리아 지역)의 음식이 훨씬 맛깔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지긋지긋한 요르단을 떠나 단 하나 그리워 했던 것도 바로 부드러운 빵이었다. 아무리 이집트를 사랑한다지만 이렇게 맛있는 빵을 앞에 두고 '에이쉬'라는 제 이름보다 '걸레빵'으로 여행자들에게 더 유명한, 까끌까끌하고 텁텁한 이집트의 빵의 손을 들어주는 건 내 양심이 허락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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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불라의 쿱즈 쿱즈는 아랍어로 빵이라는 뜻이다.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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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길거리 어디에서나 이렇게 소위 걸레빵이라 불리는 에이쉬를 파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 김산슬


그런데 삼 년 전과 다를 바 없는 음식 맛과 달리 타불라까지 오는 데 펼쳐진 광경은 사뭇 달랐다. 삭막해진 타흐리르 광장 바로 옆에 위치한 가든시티를 가는 길은 높은 바위로 죄다 막혀 있었다. 대사관과 각종 중요 기관들을 위험으로부터 구하기 위한 정부의 조치였는지, 권력과 외부에 대한 반감에 그들을 고립시켜버리려 했던 민중들의 행위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우리로서는 지날 곳을 찾지 못해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2010년의 이집트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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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시티와 타흐리르 광장을 가로막은 돌 벽. ⓒ 김산슬


기쁨도 슬픔도 안고 흐르는 나일강

식사 후에 우리가 타기로 한 배는 한 번 타고나면 진이 빠져버리는, 아는 사람만 안다는 카이로의 매력덩어리같은 존재였다. 나 춤 좀 춘다 하는 이들이 배를 타러 밤마다 모여드는 것이다. 물론 가족 단위로 놀러 와서 점잖게 야경만 구경하는 이들도 종종 있긴 했다. 배를 타려면 타흐리르 광장 반대편 강가에 가야 하는데, 사자상이 세워진 다리를 건너는 동안 수십 번도 넘게 '헬로' '니하오'와 '웰컴 투 이집트'를 외치는 이들과 마주친다.

더러는 혈기왕성한 청년들이고 가끔 호기심 많은 아가씨들이 아름다운 속눈썹을 깜빡이며 수줍게 웃음으로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그리고 드물게는 나이 지긋한 노인들까지도. 점잖은 눈인사를 건네는 무슬림 할아버지도 있었고, 나이가 들어도 이집션 특유의 오지랖과 장난기를 떨쳐내지 못하신 능글맞은 눈빛의 할아버지도 있었다.


이 다리를 다시 건너노라니 이곳에 살던 삼 년 전 추억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학회에 참석하러 왔던 주희 언니를 처음 만나서 밤에 놀러왔던 곳도 이 다리였다. 사랑싸움을 한 뒤 속상한 마음을 달래려 KFC에서 치킨 한 박스와 이집트산 맥주를 사다가 나일 강가에서 맥주 캔을 들이켜던 기억. 그 밤의 폭식 덕에 이틀 뒤 맹장염에 걸리는 바람에 죽다 살아났지만 말이다(수술 후 의사아저씨는 내게 떼어낸 충수를 선물로 컵에 담아 주셨다).

내가 그렇게 이집트에서 최상의 기쁨과 최악의 슬픔 사이를 숨 가쁘게 넘나드는 동안 그곳에는 언제나 나일강이 있었다. 그렇게 여기에 올 때마다 그들의 인사에 신 나게 화답하기도 하고 이집션 사내들이 입을 열기 전에 먼저 "웰컴 투 이집트!"를 외치는 소심한 복수를 해주기도 했다. 그러고서 어? 뭔가 바뀌었는데? 하는 어벙하게 나를 쳐다보는 얼굴을 보는 재미는 보너스랄까.

흥겨운 보트를 고르는 두가지 방법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양쪽 강변이 풍기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깔끔하고 노점상 하나 없는 호텔 쪽 거리에 반해 반대편은 다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 좁은 다리 위 인도 위에서부터 장사꾼들이 진을 친다. 어디에 그리 볼일들을 보시는지 오줌 지린내가 진동을 하고 콩과 해바라기씨를 파는 생인들은 옆에다 재스민으로 엮은 목걸이를 덤으로 걸어놓고선 이따금 지나가는 커플을 붙잡고선 목걸이를 여자 친구에게 선물하라 닦달한다.

강둑을 따라 걷다 보면 바로 아래에 뻔쩍거리는 조명을 달고 고막이 터질 만큼 음량을 높인 스피커에서는 예의 콧소리로 사랑을 노래하는 이집트 가요가 흘러나온다. 이제 여기서부터가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어떤 보트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오늘 밤 나일강 위 밤 소풍의 운명이 결정된다.

배 한 척을 통째로 빌리는 펠루카와 달리, 이 통통배는 모든 좌석에 손님이 가득 차야만 출발했다. 따라서 우선은 사람이 많이 타고 있는 배를 타야 덜 기다릴 수 있는데, 자리가 전부 차지 않는다면 언제 출발하냐는 물음에도 언제나 보트의 주인은 대답한다. "조금만 있다가요." 그것이 십분이나 삼십분 혹은 한 시간이 된다 할지라도 말이다.

둘째로 보트에 탈 때 봐야 할 것은 이미 타고 있는 사람들의 분위기이다. 승객들이 하나같이 장례식장에 온 듯 말 한마디 없이 나일강 위의 추모식을 올리고 있는 분위기의 보트가 있는 반면, 어떤 배는 출발도 하기 전에 벌써 춤판이 벌어지고 있다. 사내들은 사내들대로, 또 아가씨들은 아가씨들 대로, 한 보트 안에서 함께, 하지만 섞이는 법 없이 교묘하게 그려지는 그들의 춤판에 내 눈은 언제나 휘둥그레진다.

춤을 못 추는 나로선 아랍 남자들의 타고난 벨리댄스 솜씨가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그들의 유연한 골반 놀림은 봐도 봐도 신기하다. 큰맘먹고 시간과 돈을 들여 삼 개월간 벨리댄스를 배웠건만, 나는 저들의 반의 반의 반도 미처 따라가지 못했는데 말이다. 같은 사람의 몸인데 어찌 이리 다를 뿐인지 춤과 노래에는 더디기만 한 내 몸이 원망스럽다.

그 남자들의 정체는 뭐였을까?

유학시절 하루는 보트에 탔더니 죄다 남자들뿐이었다. 게다가 우리를 보고도 반색은커녕 왜 왔느냐는 식으로 쳐다보는 게 아닌가. 그러고는 우리는 아주 무시해버리고선 자기네들끼리 신이 났다. 서로 엉덩이를 흔들어 가며 또 손을 맞잡고 끌어당겼다 멀어졌다 하면서, 웨이브는 물론이고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털기 춤으로 몸을 흔들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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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에서 열린 댄스 파티 배가 출발도 하기 전에 이미 춤판이 벌어졌다. 다시 봐도 이집션 남자들의 춤솜씨 경이롭다.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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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환영하지 않았던 남자들만의 모임 그들의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춤 솜씨는 정말 끝내줬다. ⓒ 김산슬


그런데 잠시 후 두 청년이 서로 엉덩이를 맞대고 춤을 추며 은밀한 눈길을 주고받으며 웃더니 같이 온 무리 모두가 환호하기 시작했다. 감탄에 겨워 한참을 쳐다보다가 친구가 나에게 다른 곳으로 가자는 시늉을 했다. 배에서 나가자마자 친구가 소리쳤다.

"대박! 이집트에서 게이들을 볼 줄 누가 알았겠어? 그것도 게이 한 명도 아닌 게이 모임이라니! 우리를 쳐다보는 표정 봤어? 완전 소 닭 보듯했잖아! 어쩐지 보트도 어두운 구석에 대어져 있더라니! 분명해!"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그래? 게이이든 말든 그렇게 멋진 춤 구경은 난생 처음이었어.'

나일강 위에서 벌어진 춤판

"어서 와요 어서 와. 곧 출발해요!"

숨넘어갈 듯한 사내의 성화에 못 이겨 보트를 내려다 보니 정말 보트의 절반 이상이 이미 차있는데다 감사하게도 춤판까지 벌어진 상태다. 이 보트를 타는데 드는 돈은 고작 3 기니. (평균 요금은 3~5기니 정도이다.) 우리가 타니 모든 시선이 쏠린다. 나일강 위를 떠다니는 호화 크루즈나 펠루카를 타야 할 외국인들이 왜 여기 있지? 하는 표정이다. 춤은 중단되고 그들은 긴장과 경계 그리고 호기심을 담은 눈으로 우리를, 그리고 이보와 내 손에 들린 카메라를 쳐다본다.

아이의 손을 잡은 여인 몇 명은 그들의 히잡을 추스른다. 무슬림 국가에서 누군가의 사진을 찍는 것은 매우 예민하고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특히나 외간 남자나 외부인에게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아 하는 여성들에게는 더더욱이나. 우리는 카메라를 그들이 보는 앞에서 카메라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 순간, 누군가 일시정지를 눌렀다 다시 재생 버튼을 누르기라도 한 것처럼 언제 긴장감이 흘렀냐는 듯 배 안은 다시 한껏 시끌벅적해진다.  

화려한 조명이 켜진 배는 드디어 승객들을 가득 태우고 갖가지 규율에 매인 육지를 떠나 넘실거리는 강물 위로 흘러들었다. 육지를 떠난 배위에서 그들은 모든 것을 강물 위로 흘려보내는 듯했다.

갑갑했던 현실에서 잠시 도망치는 순간. 아가씨들은 애써 꾹꾹 눌러 숨겼을 청춘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며 허리와 손목을 유연하게 돌리며 요염한 벨리댄스 실력을 뽐냈다. 제 딸이 남사스럽게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는 걸 보면 머리채를 잡아끌고 갈 아버지도, 물위까지 따라오지는 못 할 것이다. 자신을 얽매던 신분과 규율, 사람들도 지금의 그녀를 볼 수는 없다. 그렇게 그녀는 온몸으로 잠시나마 얻은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육아와 집안일에 묶여 허리둘레가 두툼해진 아줌마들은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하는 눈으로 그녀들을 바라보며 추억에 젖었다. 바로 그때, 웃는 모양새도 시원시원한 아줌마 한 분이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조그만 고사리 손으로 야무지게 움켜쥐고 있던 여섯 살배기 정도 되어 보이는 아들의 손을 떼어내더니 더 이상 못 참겠다는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와 춤을 추던 아가씨 무리 틈에 섞인다. 그때부터였다. 얌전하게 앉아 춤 구경만 하던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에라 모르겠다.' 하며 춤판에 뛰어든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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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배 한가운데로 이끌었던 세 자매와 소녀들. ⓒ 김산슬


화려한 히잡 색깔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아가씨 세 명이 나흘라와 아롬, 그리고 내 손을 잡아 끈 것도 그때부터였다. 춤추기를 좋아하는 나흘라는 잠시 망설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을 보니 성격 좋은 아롬은 이미 다른 아가씨에게 끌려가고 없다. 춤과 노래라면 질색을 하는 이보는 지난번 펠루카를 탔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니, 더 큰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더욱더 비장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그 모양새가 마치 제 엉덩이를 의자에 아주 붙여버릴 기세다.

사실 나는 부끄러움은 둘째치고, 춤과 노래가 있는 곳에서 내가 낄 때마다 흥이 사그라지고 어색해지던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다. 때문에 평소에 넘쳐나는 나의 적극성과 에너지는 저 강바닥 아래로 꼬리를 감춘 지 오래였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아이처럼 이보의 바지춤을 붙든다. 그가 씩 웃으며 내게서 카메라와 외투를 채가더니 내 등을 떠민다.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동지끼리 이래도 되는 거야? 배신감에 찬 눈으로 그를 홱 쳐다보았더니 엄지 검지를 입에 대고 스마일을 그리더니 윙크를 날린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며 안쓰러울만치 어색한 몸짓으로 춤 아닌 춤을 추는데 이보는 자신의 손을 잡아끄는 이들에게 손에 들린 짐을 내보이며 아주 아쉽지만 짐들을 지켜야 한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돌려보낸다. 저런 영악하고 늙은 곱슬머리 아저씨 같으니라고(그가 마음에 안 들 때면 난 언제나 그를 아저씨라고 부르곤 했다). 나를 처리(?) 함으로써 가장 친한 친구가 쩔쩔매는 모습을 구경할 기회와, 춤을 출 수 없는 그럴싸한 이유까지 일석이조로 얻어낸 그는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두고 보자. 이 배신은 잊지 않을 테니.

노래는 끊임없이 돌았고, 어느새 나는 화려한 히잡 세 자매와 손을 맞잡고 춤을 추고 있었다. 우리 셋과 세 자매까지 여섯 명은 손을 맞잡았다 떼었다, 왼쪽 오른쪽으로 이리 돌고 또 저리 돌며 신나게 춤을 췄다. 가끔 '개방적'인 사고의 외국인 아가씨들을 기대한 청년들이 다가와 손을 맞잡을 것을 청하며 내밀지만 그 손이 미처 우리에게 닫기도 전에 세 자매는 우리의 경호원을 자처하고 나서 그들의 손을 매섭게 뿌리쳤다. 나흘라가 귀에 대고 속삭이더니 장난스럽게 혀를 비죽 내민다.

"손 한 번 잡는 건 우리도 괜찮은데 흠흠, 그렇지 않아?"

그나저나 이 배가 얼마 동안 운행되냐 물으신다면 대답은 '아무도 모른다'이다. 걱정 없고 낙천적인 데다 '마 퓌시 무쉬킬라'를 입에 달고 사는 이 사랑스러운 민족은 돈벌이를 하는 생계수단조차도 인 샤알라(신의 뜻이라면)인 듯하다.

판을 깔아줘도 춤은커녕 나일강 물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손님들이 탄 배는 십분이면 나일강을 대충 둘러보고 선착장으로 돌아온다. 반면 배에 탄 승객들이 흥에 겨워 배를 클럽으로 만들어버리면, 배 주인은 '이거 신 나는데?'하며 선착장으로 향하던 뱃머리를 휘리릭 다시 강 쪽으로 돌려버린다. 참고로 이 날 내가 탔던 배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무려 한 시간하고도 십여 분을 클럽으로 변신해 강 위에 머물렀다.

다음날 해가 중천에 뜨도록, 나는 숨도 쉬지 않고 죽은 듯이 깊은 잠에 빠졌다. 이보에게 전화가 오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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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레스토랑 타불라 ⓒ 김산슬


타불라(Tabula) 홈페이지에 가면 연락처와 주소를 알 수 있다.
 http://www.taboula-eg.com/
#이집트 #카이로 #나일강 #레바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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