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간다고 했더니... 이 사람들 왜 이러지

[가다툰의 네버랜드-이집트16] 숨막히게 행복했던 두번째 이집트 여행

등록 2014.02.14 08:42수정 2014.02.14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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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봄' 민주화 혁명이 일어나기 전 아름답던 타흐리르 광장의 모습 ⓒ 김산슬


시곗바늘이 정오를 가리키는 늦은 아침. 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진동에 잠이 깨었는데 발목이 심상찮다. 무거운 배낭 때문에 출발 때부터 시원찮던 발목이 어제 피라미드에서 살짝 삐끗한 후 밤새 눈에 띄게 부어올라 버렸다. 그 발목으로 간밤에 춤판까지 벌였으니, 둔한 주인 탓에 몸이 고생이구나. 그나저나 당장 모레 일정이 사막 투어인데, 그전에 회복을 못하면 일정이 모두 틀어질 게 분명하고 이보는 자기도 사막에 절대 가지 않겠다고 버틸 게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보에게 전화를 했더니 나보다 더 난리다. 오늘 하루 나올 생각 말라며 으름장을 놓는 걸 귓등으로 흘린 채 나흘라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겸 저녁에 잠시 나가겠다고 했다. 어쨌거나 예상치 않게 여행 일 주일 만에 모처럼 갖게 된 여유를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고, 밀렸던 일기와 나흘라에게 줄 짧은 엽서를 쓰며 보낸 뒤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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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흐리르 광장의 사다트역. ⓒ 김산슬


마디(Maadi)에서부터 1호선을 타고 이십분 가량 걸리는 사다트 역은 2011년 1월 15일 이후 이집트 민주화 혁명의 성지가 된 타흐리르 광장이 위치한 곳이다. 죽부인을 꼭 빼닮은 카이로 타워와 내가 미치도록 사랑했던 카이로 오페라 하우스가 인접하며, 투탕카멘 황금마스크가 있고 파라오들의 미라가 잠들어 있는 고고학 박물관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사다트 역의 이름은 이집트 사람들이 사랑하는 역대 대통령 중 한 명인 안와르 사다트를 기념하기 위해 붙여졌다. 사다트 대통령은 중동 평화에 기여를 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한 제3대 이집트 대통령으로, 나세르 대통령과 함께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이름이 붙여졌던 무바라크 지하철역이 아예 사라져 버린 것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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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역에서 사라진 무바라크역 혁명 이후 이집트 국민들은 무바라크의 무 자만 들어도 치를 떤다. 과거 무바라크 역이었던 역의 이름은 쇼하다[Shohada]역으로 바뀌어 있었고, 미처 바뀌지 못한 지하철 이름판에는 시민들이 분노로 이름을 긁어버린 흔적이 선명하고 그 위에 누군가 스티커를 붙여버렸다 ⓒ 김산슬


누군가 자신의 죽음을 간절히 기다리고 바란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다. 수많은 독재자들과 권력자들이 다른 이들의 행복과 목숨을 앗아가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보다 우선순위로 두었던 그것은 정말로 행복이었을까.

성냥팔이 소녀가 아니에요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꽂은 채 자리에 앉아가는데 웬걸, 십대로 보이는 사내아이가 여성칸으로 당당하게 들어온다. 자세히 보니 그의 손에는 무언가 들려있다. 알고 보니 소년은 지하철 이 칸 저 칸을 옮겨 다니며 물건을 파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어쩐지 너무 당당하게 여자칸을 타더라니.


그런데 잠깐, 그의 손에 들린 것이 무엇인지 한참을 보니 기다란 회색 철사 막대다. 그리고 나선 열심히 물건을 광고하던 그가 내게 가까이 왔을 때 자세히 보니 그의 손에 들린 건 '헉, 불꽃놀이에 흔히 쓰는 스파클러'다. '성냥팔이'는 소녀가 더 어울리듯이 '폭죽팔이 소년'도 그럴듯하다? 뭐? 폭죽?!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내 눈이 휘둥그레지다 못해 튀어나올 정도가 되었고, 거기다 입까지 떡 벌리고 그를 쳐다보니 소년이 나를 보고 웃는다. 그러더니 주머니를 뒤적거려 라이터를 꺼낸다. 상황 판단이 안 된 내 입에서는 당황한 탓에 "어어어"만 자꾸 반복되고, 그런 나를 본 소년은 이 가여운 중국인 소녀가 폭죽이란 걸 처음 보고서는 이러는 줄 알고 친절하게 눈앞에서 불꽃놀이를 보여주려는 모양이었다. 어? 아니야 아니야 이건 아니라고. 여긴 지하철이라고!

파직, 하고 스파클러의 끝에서 불꽃이 일었다. 불똥이 사방으로 타다닥 튄다. 히잡을 쓴 여인네들은 불똥이 그들의 옷이나 스카프에 옮겨붙어 불이 나거나 할 상황에 대한 걱정은 하지도 않는지, 혹은 불똥이 스카프에 구멍을 내든지 말든지 신경도 안 쓰는 눈치다. 심지어 그중 몇몇은 소년과 함께 나를 보며 키득거리기까지 한다. 아무리 이집트라 해도 달리는 만원 지하철에서의 불꽃놀이라니. 여기가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이집트이긴 해도 저건 누가 봐도 확실히 좀 많이 미친 짓이다.

한번 붙은 불은 꺼지지도 않더니, 결국 회색 탄약 심지의 끝까지 모조리 태우고서야 사그라졌다. 그제야 안도 섞인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아무 일이 없었으니 나올 수 있는 안도의 웃음이다. 알 함두릴라(신에게 감사를). 오늘도 살았구나.

이 기막힌 상황을 아무도 믿지 않을 것 같아 이보와 나흘라에게 보여주려 급히 사진을 찍었을 뿐인데, 그런 나를 본 폭죽팔이 소년은 내가 그 특별한 깜짝 이벤트를 좋아했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러더니 새 폭죽을 주섬주섬 꺼내들면서 정이 뚝뚝 묻어나는 이집트 사투리로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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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놀래켰던 폭죽팔이 소년. 그의 웃는 얼굴이 너무 해맑아서 화도 낼 수 없었다. ⓒ 김산슬


"아위자 와히다 카만??"(한 개 더 할래?)

당연히 나는 질겁하며 소리쳤다.

"라! 아바단!!!!!!!"(아니! 절대 안되 절대!!!!)

이렇게 짜릿하지만 위험천만한 스릴은 한 번이면 충분하다. 이제 오늘은 여기까지만. 그리고 다시 한 번 이집트가 내 마음을 쥐었다 폈다 하는, 나쁜 남자 같은 나라라는 걸 새삼 깨닫게 해주다니, 친절하기도 하지. 여기서 정말로 전혀 심심할 틈이 없다. 다만 수명이 단축되는 걸 감당할 수 있다는 조건에서 말이다.

세 얼간이의 작별

드디어 타흐리르 KFC에 도착했다. 이보가 나를 보자마자 앉히더니 발목부터 보잔다. 나를 기다리며 약국에서 사놓은 약인 듯했다. 소염제를 바르고 붕대까지 감아준 뒤 남은 약들을 건넨다. 마그네슘과 먹는 소염제 그리고 비타민까지. 거의 이십 년째인 여행 경험 덕분에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대부분 이성적으로 행동했고, 그래서 배낭여행이 처음인 나흘라와 보다 감성적인 성향의 내가 많이 기댈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여행 메이트였다.

이집트 여행 동안 내가 여행의 방향을 끌었다면 이보는 우리 셋의 안전과 건강을 살핌으로써 정서적인 흐름을 이끌어주는 친구였다. 사실 여러 번의 여행뿐 아니라 유학시절을 통틀어 그는 내게 아빠 같은 친구이자 조언자였고 의사였고 보호자였으며 선생님이었다. 이러니 내가 그에게 'All in one ivo'(슈퍼맨 이보)라는 별명을 지어줄 수밖에.

그가 없었다면 아마 나는 더 많은 문제들과 맞닥뜨렸을지 모른다. 이렇게 마음 편히 웃고 또 아랍 남자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도 없었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정말 인복 하나는 넘치는 사람이다.

나흘라는 이집트에서 유학 중이던 대만 친구와 함께 마지막 밤을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마지막 날에서야 되돌아보니, 첫날 이집트 누웨이바 항구의 진흙탕 바닥에서 조심스레 발을 디디며 울상을 짓던 나흘라를 보며 이보와 내가 했던 걱정은 온 데 간 데 없어진 지 오래다. 결국 까다롭고 깔끔한 우리의 대만 소녀조차 이집트의 매력에 빠져 버렸고, 이제 그녀는 이 나라를 떠나기 싫어 울상 짓고 있었다. 2주 후에 곧 요르단에서 다시 만날 텐데도 헤어지는 것이 여간 아쉬운 게 아니다. 그녀가 나를 꼭 안으며 속삭인다.

"소피, 몸 조심히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해 즐기다가 돌아오길 바라. 이보가 또 딴 길로 새거든 그냥 사막에 두고 와 버려! 모른 척해 줄게. 아무튼, 둘 다 무사히 돌아와. 내가 집에서 핫산과 멋진 컴백 파티를 준비해 놓고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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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 가기 위해 꾸렸던 우리의 배낭. 걱정을 안고 시작된 세 얼간이의 여행은 결국 서로를 더 가깝게 만들어 주었다. ⓒ 김산슬


같은 여자로서 많은 것을 공감하고 또 나눌 수 있었던 그녀와 막상 떨어지려니 슬펐다.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는 이보는 여행 중에도 일곱 개 국가의 언어로 그 누구와도 수다를 떨어댔고 때문에 동행인 우리의 존재를 까맣게 잊곤 해 화를 돋우곤 했는데, 나흘라가 없었다면 이 여행은 시작부터 삐걱거렸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서로의 장단점을 그대로 수용하고 끌어안는 동안 우리 사이에는 끈끈한 유대감이 생겼다. 그렇게 두려움과 불확실을 껴안고 떠났던 세 얼간이들의 여행은 서로를 껴안고 떨어질 줄 모르는 우리를 이보가 겨우 떼어놓는 것으로 끝이 났다.

카이로 복판을 유유히 지나는 '뚝뚝'

나흘라를 보낸 뒤 이보는 호스텔에서 나와 샴스네에 묵기로 했다. 샴스의 집은 카이로 대학교 역 다음인 페이살(Faysal)역에 있었는데, 지하철역 출구를 나가니 샴스가 기다리고 있다. 작지만 단단한 체구를 가진 그는 한사코 사양하는 이보에게서 결국 50리터 가방을 빼앗아 제 어깨에 들쳐멘다.

손님을 잘 대접하는 문화는 아랍 사람들이, 그리고 무슬림들이 자신들의 의무이자 체면으로 생각하는 부분이다. 손님을 후하게 대접해야만 그의 체면이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의리와 환대로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아프가니스탄인들이니 그저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들의 접대를 감사한 마음으로 기쁘게 받아 그들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 체면을 세워주는 게 전부다.

3년 만에 이집트에 돌아와 이전엔 보지 못했던 것을 몇 가지 볼 수 있었는데, 타흐리르 광장의 벽화와 거리 위 뚝뚝들이 그것들 중 하나였다. 특히 동남아나 인도 지역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았던 뚝뚝을 이집트에서 처음 보았을 때의 놀라움이란. 카이로 거리 한복판을 유유히 지나가는 뚝뚝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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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 등장한 뚝뚝 동남아나 인도 지역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았던 뚝뚝을 이집트에서 처음 보았을 때의 놀라움이란. 카이로 거리 한복판을 유유히 지나가는 뚝뚝이라니! ⓒ 김산슬


샴스가 지나가는 뚝뚝을 멈춰 세우고 우리에게 타라 손짓한다. 샴스까지 아슬아슬 남은 자리에 가방을 붙들고 앉자 뚝뚝이 출발했다. 역을 벗어나니 내게는 언제나 이집트와 동일 어인 예의 그 투박한 골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의 집은 4층이었는데, 그야말로 현지인 중에서도 서민들이 사는 동네에 큰 백팩을 멘 이웃 뒤로 백인 남자와 동양인 여자가 졸졸 따라오고 있으니 신나는 구경거리가 생긴 셈이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들어 짙게 드리운 속눈썹을 깜빡이며 우리를 쳐다보고 킬킬거리고 손을 흔든다.

그의 집으로 들어가자 그의 친구들이 우리를 맞았다. 아프가니스탄 전통차라며 컵과 함께 쟁반에 내어온 물주전자는 어찌나 펄펄 끓었던지 뜨거운 쇠 표면에 닿은 물방울들이 죄다 치지직 소리를 내며 튕기더니 증발해 버린다.

그들은 늦은 밤 짐을 둘러메고 찾아온 낯선 이방인 친구를 위해 좀처럼 앉아 있지 못한 채 수선스레 무언가를 요리하고 끓이고 내어오고 또 청소했다. 무얼 그리 볶고 튀기는지, 야심한 밤에 음식 대접은 끝날 줄을 모른다. 배가 점점 빵빵하게 불러오고, 3년 만에 만난 샴스와 또 다른 아프가니스탄 친구들과의 대화에 빠져들 무렵 시계를 보니 젠장. 어느덧 시간은 열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기, 미안한데 난 이제 일어나야 할 것 같아."
"뭐? 지금 가겠다는 거야? 여기서 하루 그냥 자고 가. 넌 내 방을 쓰면 돼."
"아니야, 이보도 여기 있고, 사람이 많은 걸, 게다가 내일 교회를 가야 하는데 세면도구도 미처 챙겨오지 못했어."
"음,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알았어. 옷만 입고 올게 잠시만 기다려."

샴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보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외투를 챙겨 입기 시작했고, 놀란 내가 말했다.

"뭐야 다들 뭐 하는 거야? 저기, 난 괜찮아 혼자 갈 수 있다고. 나도 여기 살았었어, 까먹은 거야? 나랑 같이 마디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겠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
"소피, 너야말로 헛소리하지 마. 아무리 네가 이집트에 살았었다 해도 지금은 밤이고, 여자 혼자 택시를 타는 건 절대 안전하지 못해. 내가 널 데려다 줄 테지만, 저 아프가니들이 따라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여기 있는 모두와 함께 가던지, 그게 미안하면 그냥 하루만 여기서 자고 가는 게 어때?"

이보의 말이 맞다. 오늘 나는 내가 그들의 집 문을 나서 안전한 곳에 도착할 때까지 자신들의 명예와 목숨을 걸고 내 안전을 지킬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초대를 받았다. 게다가 택시비도 절대 내가 내지 못하게 할 테고, 그렇다면 내가 폐를 덜 끼치는 방법은 하나다.

"아 정말이지 너무 미안해. 내가 좀 더 일찍 일어났어야 하는 건데… 그러면 미안하지만 오늘 하루만 신세를 져도 될까?"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똬브안! 베이티 베이탁 야 하빕티."

베이티 베이탁. 내 집이 곧 당신의 집이니 편하게 머물라는 아랍어이다. 친절하고 정 많은 무슬림들은 종종 길가는 나그네에게 이러한 친절을 베풀곤 했다. 그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아예 마음 편히 앉아 다시 수다를 떠는데, 현관문이 열리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소파에 앉아있었던 것 같은 샴스의 친구 둘이 무언가를 잔뜩 짊어진 채 들어왔다.

언제 나갔었지? 그들이 사온 것 중 몇 개를 샴스에게 건네고 그중 한 비닐봉지를 내게 건넸다. 안을 보니 거기는 세안제와 샴푸, 칫솔, 티슈가 들어있었다. 이보가 장난스러운 몸짓으로 어깨를 넓히고 고개를 쳐들더니 다분히 마초적인 한마디를 던진다.

"남자들은 절대! 이런 거 안 써. 비누 하나면 된다고. 머리도 얼굴도 샤워도 전부!"

하, 웃기시네. 그에게 처음 재미삼아 코팩과 마스크팩을 보여준 이후 그는 세수만 하면 그 신기한 코찍찍이를 해달라며 얼굴을 들이미는 통에 난 결국 화장품을 모두 숨겨야만 했다. 근데 뭐? 나도 질세라 그에게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그래? 그럼 이제 양치질도 비누로 하지 그래?" 

수줍음 많고 모든 일에 겸손한 샴스는 고마움을 전하려 입술을 달싹이는 내 시선을 피하려는 듯 자꾸만 분주하게 움직였는데, 욕실을 청소하다 말고 친구에게서 짐을 건네들며 내게 말했다.

"가다, 오늘 이걸 덮고 자면 될 거야."

그가 꺼내든 것은 한눈에도 두툼하고 따뜻해 보이는 이불이었다. 게다가 일부러 고른 것인지, 아주 여성스러운 분홍색이다. 당황해서 벌떡 일어나며 내가 말했다.

"샴스? 이게 뭐야? 맙소사, 지금 나 때문에 이불을 사 온 거야? 난 하루만 여기 묵을 거야, 네겐 난로도 있고 이건 낭비야. 네 성의는 알겠지만 이건 내일 도로 환불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는 예의 그 고요하지만 완고함이 어린 목소리로 자신이 쓰는 담요가 너무 낡아 하나 사려고 했었으며, 내가 그 이불을 써야만 이보와 자신이 난로를 쓸 수 있을 거라 했다. 그를 잘 안다고 생각했건만, 나 때문에 샴스와 그의 친구들이 신경 쓸 일이 더욱 늘어난 것만 같아 미안한 마음이 가득이다.

새 이불을 깐 침대를 내준 것도 모자라 여자인 날 배려해 주려 온돌식 난방도 없는 차가운 거실 바닥에서 자겠다고 나가는 이보와 샴스를 겨우 붙들어 침대 바닥에도 카펫이 깔린 샴스의 방에 침낭을 깔고 난로를 켠 채 자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뒤에서야 나는 먼저 잠들 수 있었다. 

다음 날, 따뜻한 담요에 싸인 채 침대에서 잠을 깨어 보니 방바닥에는 잔뜩 웅크린 채 잠든 이보와 샴스가 있었고 전기난로는 나를 향해 세워져 있었다. 이보에게 잠시 후 만나자고 조용히 말했더니 잠꼬대인지 아닌지 구분도 못할 정도로 졸린 목소리로 그가 웅얼거리며 대답한다.

"소피, 아프가니들은 정말 미쳤어. 네가 잠든 후에도 그들이 새벽 네시까지 요리를 하는 바람에 밤새도록 난 그들과 먹고 마셨다고. 신이시여, 정말 기막히게 멋진 친구들이야("Sophie, the Afghanis are totally crazy. After you sleeping, they didn`t stop cooking till 4a.m. And I had to eat and drink all the night with them. God, They are amazing guys").


지난 하루, 우리는 특별한 계획 없이 관광지가 아닌 곳들을 쏘다녔고, 그 결과 그 하루는 정 많은 사람들과의 눈 맞춤과 미소로 채워졌다. 그리고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이집트에서의 3주는 3년 전에도 그랬듯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추억으로 알록달록 수놓아졌다. 아마 내가 이집트를 잊지 못하고,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는 것도 그 조건 없고 계산 없는 순박한 우정과 사랑 때문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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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스의 집과 그의 친구들. 나의 큰 배낭을 메고 있는 친구는 무함마드이다. ⓒ 김산슬


내가 전날 밤 그들을 위해서 할 수 있었던 건 잠들기 전 그들을 위해 올린 기도가 전부였듯이, 벅찬 마음으로 이 따뜻한 아침에 조용히 감사한 뒤 쪽지를 남기고 옷을 챙겨 입고 나오니 그새 잠이 깬 샴스가 굳이 나를 따라 나와 지하철을 타는 곳까지 말없이 같이 걷는다. 고맙다는 말도 부족하다. 그냥 나도 그를 보고 미소 지었다. 행복으로 벅찬 가슴이 카이로의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며 더욱 부풀어 올라온다.

*잠깐 말해보자면 아랍인과 무슬림은 같은 말이 아니다. 아랍인은 아라비아 지역에서 유목민을 조상으로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고 무슬림은 이슬람을 종교로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레바논과 시리아 그리고 이집트에는 아랍인이지만 기독교인인 아랍인도 있고, 이란은 이슬람이 국교이지만 페르시아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아랍 국가는 아니다. 또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는 아랍인이 아니지만 국교가 이슬람인 만큼 국민의 대부분이 무슬림이다. 아랍인 기독교인들은 '아쌀라무 알레이쿰'이 아닌 '마르하반'으로 인사를 주고받는다. 
#이집트 #카이로 #타흐리르 #뚝뚝 #무바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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