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피 아이 덕분에 생겼다... 근.자.감

[공모-내 나이가 어때서] 서른과 마흔 사이, 나는 아직 한창이다

등록 2014.02.18 14:48수정 2014.02.18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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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서른 여섯.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 서른 여섯.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평범'이다. 너무 평범해서 하품이 날 지경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평범한 학창시절과 대학진학, 평범한 연애와 결혼을 거쳤다.


화려할 것도 없는 사회생활을 하다 둘째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미친 듯이 열정을 태우며 이 한 몸 바친 적 없었고, 불 같은 사랑에 마음을 태운 적도 없었다. 잔잔한 시냇물 흐르듯 지나온 인생이었다.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면서 아쉬움과 시원함이 뒤엉켜 있었다.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고, 알게 모르게 서로가 서로를 비교하던 곳이었다. 그런 상황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런대로 재미있는 곳이었다. 그런 곳을 그만두자니 시원섭섭한 감정이 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시원함은 작아지고 아쉬움과 불안감만 커지고 있었다. 이대로 주저 앉는 것은 아닌지, 나 혼자 고립되는 것은 아닌지 무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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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면서 아쉬움과 시원함이 뒤엉켜 있었다. 이대로 주저 앉는 것은 아닌지, 나 혼자 고립되는 것은 아닌지 무서워졌다. ⓒ sxc


첫째는 명랑만화의 주인공처럼 밝고 명랑한 아이다. 열감기도 하룻밤 끙끙 앓다가 싱긋 웃으며 일어나주는 신통방통한 아이다. 둘째는 아토피를 겪고 있는데 계란과 우유 알레르기가 원인이었다. 우유와 계란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음식에서도 재료로 많이 이용되기 때문에, 모든 과자와 외식은 금지되었다. 이것은 4살 난 남자아이의 삼시 세 끼와 간식이 모두 내 손에서 만들어져야 함을 뜻한다. 이제 내게 '혼자 만의 시간'은 사치가 되어버렸다. 그런 인고의 시간이 기어이 시작된 것이다.

내가 그렇게 허우적거리는 사이 옛 직장의 동료들은 여전히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엄마로, 일하는 여성으로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속사정이야 어찌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예전엔 나와 다를 것 없던 사람들이었는데 이제는 모든 게 달라진 것처럼 보였다. 아니, 모든 게 달라져버렸다. 나는 초조했다. 그리고 두려웠다. '인간 박보경'은 사라지고 '누구의 엄마'만 남는 거 같아 두렵고 무서웠다.

TV 속 '미친' 사람들, 부러웠다


인생 길게 보고 살자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자기최면을 걸어야 살 수 있었다. 그래야 버틸 수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방송통신대학교에 편입했지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4살, 6살 아이들을 먹이고, 치우고, 놀아주고, 재운 후에 공부를 해야 하는데 공부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종종 텔레비전엔 '미친' 사람들이 나왔다. 자기가 하는 일이 너무 좋아서, 자기가 하는 일에 미쳐버려서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럴 수 있다는 게 너무 부러웠다. 미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태워 없애 버릴 정도로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는 게 마냥 부러웠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내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까? 당연히 대학에 가야 하는 줄 알았고, 좋아하는 사람과 자연스레 결혼을 했고, 그럭저럭 직장생활을 하던 평범한 사람인 내게 살아있는 생선처럼 심장이 펄떡펄떡 뛰는 그런 일이 과연 일어날 수 있을까?

나는 궁금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뭔지,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내 나이 서른 다섯 살이 되고나서야 비로서 궁금해졌다. 그리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평생 미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천천히 생각해 보았다. 한 때는 육아 때문에 전업주부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억울했다. 아이가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것만 같아서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아이 덕분에 나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고, 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 때 그렇게 절박하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도 흘러가는 대로 살았을 것이다. 순풍에 돛달린 배처럼 물이 흘러가는 대로 내 인생도 흘러갔을 것이다.

나를 바라보는, 나를 생각하는 그런 고민의 터널을 일 년 정도 지나 지금에 왔다. 안타깝게도 그 때부터 지금까지 확실하게 정해진 것도, 크게 달라진 것도 없다. 그러나 나는 나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재미있어 하는지, 하고 싶어하는 일은 무엇인지 이제야 비로소 조금씩 알기 시작했다. 앞으로 또 수없이 바뀌고 변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씩 조금씩 내 마음 속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알게 된 것이다.

내 눈에 내가 보이기 시작하자 속된 말로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겨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일이라도 당장 내 꿈을 이뤄 공중파 토크쇼에 나가고, 나의 성공담을 이야기하는 그런 상상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또다시 아이였다. 뭔가를 배우고 싶어도, 자격증이라도 따고 싶어도 24시간 붙어있는 아이 때문에 모든 걸 뒤로 미뤄야 했다. 데리고 갈 수는 없느냐고? 그만큼의 열정은 없는 거냐고?

사실 그것도 안 해본 건 아니었다. 베이비시터까지 불러주는 친절한 생협이 있어 이런 저런 교육에 아이와 함께 다녀봤지만, 숫기 없는 우리 아이는 그리 호락호락 나를 놔주지 않았다. 베이비시터가 상냥한 미소로 다가올수록 아이는 나에게 울면서 달라붙었다. 그건 민폐였다. 교육을 받으러 온 다른 분들에게 커다란 민폐였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아이가 유치원에 가게 되는 그 순간만을 손꼽아 기다려야 했다.

아이도 나도 스타트 라인에 서 있다

그런 아이가 올해 드디어 유치원에 입학을 하게 된다. 누나가 다니는 유치원을 함께 다니게 되는 것이다. 물론 급식을 할 수 없으니 도시락을 싸야 하겠지만 그 정도의 수고라면 웃으면서 할 수 있다. 불과 몇 시간이지만 내게도 이제 자유시간이라는 것이 생긴다.

그 황금 같은 자유시간에 휴학했던 방송통신대학 공부도 다시 시작하고, 이것 저것 배워보기도 하고, 자격증도 따보려고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워놓았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게 황홀한 시간이 될 것이다. 다시 하루 중 일부분은 '인간 박보경'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이도 나도 지금 스타트 라인에 서 있다. 따뜻한 엄마 품을 떠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다섯 살 난 아이와 미칠 수 있는 일을 찾으러 조심스레 한걸음 내딛게 되는 나. 둘 다 힘들고 어렵겠지만 잘 해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모습도 위풍당당하게 둘 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려고 한다.

그런데 막상 당당하게 도전장을 내밀자니 은근슬쩍 걱정이 된다. 뭔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는 그래서 그것으로 성공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은 거 아니냐고 내 마음 속에 살고 있는 비겁함이 날 유혹하고 있다. 세상은 이미 날고 기는 사람들로 넘쳐 나는데, 지금의 내 나이라면 성공까지는 몰라도 어느 정도 안정은 됐을 텐데, 내가 너무 멋모르고 달려드는 건 아닌지 되돌아 보라고 자꾸만 나를 작아지게 만들고 있다.

그냥 이렇게 살아도, 남편 그늘 안에서 아이들 키우면서 살아도, 절반 정도는 성공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나의 비겁함이 내 귓가에 소곤소곤 이야기 하고 있다. 유혹의 빨간 사과를 보이며 자꾸만 나에게 손짓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가 처음 시작하는 단체생활에 잘 적응하는지, 나아지는 것 같은 아토피는 다시 재발하지 않는지, 내 길이라고 생각했던 그 길이 정말 내 길이 맞는지 아직 아무 것도 분명한 것이 없다. 그래서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일 년 전의 절박함이다.

이대로 주저 앉을 수는 없다고, 이렇게 죽진 않을 거라고 다짐했던 나의 절박했던 마음들. 그 마음들을 다시 끌어모아 흔들리는 나를 붙잡아 세워야 한다. 혹시 시간이 더 필요해서 지금 당장 나를 찾아 나설 수 없다 하더라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 나의 비겁함에게 용감하고 씩씩하게 이 한마디를 전해주고 글을 마무리 지어야 겠다. 나이? 내 나이가 어때서?! 아직 한창이구만!
덧붙이는 글 '내 나이가 어때서' 기사공모 공모글입니다.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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