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오십이지만 난 아직 여학생이다

[공모-내 나이가 어때서] 장애와 나이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것

등록 2014.02.19 09:53수정 2014.02.19 18:09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자원봉사자가 사무실에 왔다 갔다. 덕분에 주말에도 나와서 일하고 매일 야근하던 나는
7시에 퇴근을 하고 노천탕에서 물장구를 친 후에 집에 올 수 있었다. 갑자기 시간 부자가 된 것 같다. 


지난 가을에 오대산 월정사에서 샀던 향을 피우고 비구니 스님이 주신 따스한 오미자차를 마시고 숨을 고르고 쉬었다. 작은 공간이지만 월정사 전나무숲길 아래 계곡에 발 담근 느낌이 든다.  단지 평소보다 두 세시간 일찍 집에 와서 쉬고 있을 뿐인데...

기관에 자원봉사하러 온 여대생을 데리고 행정팀 직원이 우리에게 온 날. 나는 얼른 손을 들었다. 정말 일이 밀려 야근을 여러 달 하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저기요! 제가 일이 밀려서 그러는데 저를 보조해주면 좋겠어요!"

4시간 가량 자원봉사자는 장장 천 페이지 가까운 정산서류와 회계증빙자료를 일일이 복사하고, 음악물품을 정비하게 하였다. 보통때는 항상 행사로 바쁜 기관인데다가 서로 미리 자원봉사자에게 말을 해놓기 때문에 내 차례는 거의 오지 않는다.

가끔은 당당하게 요구할때도 있지만 가끔은 그냥 소리없는 세상에서 우직하게 힘든 일을 끙끙거리며 혼자 한다. 그림자처럼 뒷말이 꼬리를 물어 내게 부메랑 처럼 되돌아 올 때도 종종 있는 사회생활에서 내가 좀 불편해도 침묵을 양념처럼 섞어야 조직이 잘 조화된다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정월대보름 큰 행사가 끝난 직후라 다른 직원들의 업무가 본격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틈새여서 자원봉사자를 온전히 반나절 동안 내가 쓸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그 날  야근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고 시간의 색동무지개 옷을 입은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충만한 느낌을 자정까지 누렸다.

이런 시간 부자가 된 느낌은 불혹이 넘어서 두 시간 반을 달려 경기도 군포의 대학원에 다녔을 때도 들었다. 당시 개교기념일인 줄 모르고 학교에 갔었다.

그동안 나는 매주 낮 두시에서 밤 여덟시까지 대학원 공부를 하기 위해 오전강의를 좀 일찍 시작해서 11시 반에 마치고 빵이나 김밥 한 조각을 물고 장거리 운전을 하면서 학교에 다녔다.

공부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은 참으로 허기지고 고단했다. 그래서 두 시간 반 걸리는 거리를 쉬엄 쉬엄 네 시간 이상 걸려 달과 별빛을 동무삼아 졸다 쉬다 하며 간신히 내려오는 일이 허다했다. 청신경계장애라 장시간 집중하면 엄청난 졸음이 나를 짓누른다. 그래도 장거리 운전을 할 수 있다는 내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

불혹이 넘었지만 혼자 힘으로 학교를 다니고 장거리 운전을 한다는 뿌듯함은 말로 잘 표현할 수가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런 막막함의 동굴에서 비타민 D가 있는 햇살을 쬐며 천진하게  뛰노는 동심의 느낌이랄까.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 가 텅 빈 교실을 보았을때 처음에는 당황했다. 하지만 곧 내게 생긴
반 나절 이상의 시간이 내 가슴에 색동무지개 빛깔의 포물선을 그렸다. 근처의 공원에서 여유있게 점심을 먹고 도서관에서 한 시간가량 책장 잘 넘어가는 책도 읽고 벤치에 기대어 오수를 즐겼던 그 때. 나는 운이 참 좋은 시간 부자라는 느낌에 무척 행복했었다.

내 또래의 여자들이 안정적인 가정생활의 안주인으로 자리 잡을 때 나는 긴 문장의 말을 또박또박하거나 훌라후프와 후라이펜의 입모양에 대한 말을 공부하면서 컴맹과 운전맹도 깨치면서 한 가정을 이끌어가는 여성가장이 되었다.

마흔이 넘은 청각장애인들의 대부분은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당연시여긴다. 이미 수화가 편하고 성대가 퇴화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말을 하려고 소리를 내면 이상한 동물에 가까운 소리가 나와 가족이 싫어하기도 한단다. 잘 아는 후배의 신랑이 말을 하려고 연습하면 장모가 너무 듣기 싫다고 타박을 주어 아예 입을 닫고 수화만 하기도 한다.

나이와 상관없이 최소한 가족과 또는 나와 소통하고 싶어하는 누군가를 위해서라도 청각장애인들이 목소리를 내는데 도전하고 단어를 연습하면 좋겠다. 시간은 연습하는데 따라서 조금씩 지푸라기 하나씩 하나씩 가능성을 주기 때문이다. 결코 이루지 못할 일은 없으니깐.

마흔이 넘었던 나는 내 안의 또 다른 나에게 혹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분야에 대해 더 잘 사랑하기 위해서 서예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리고 오십을 넘어서 노후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시작하면서 내게 필요한 것은 내가 버는 것이나 눈에 보이는 무엇을 모으는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나이나 시간과 상관없이 땅과 하늘과 사람과 나무와 풀과 돌들을 바로 보는게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땅에서 일어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부터 잘 이해해야 내가 사는 날까지 덜 답답하고, 좀 더 많이 웃을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50세가 넘어서 직장다니면서 대구의 사이버대학에서 심리상담2급과 1급을 차례로 합격하고 사회복지사가 되는 공부를 했다. 덕분에 나는 아직도 직장에서 잘리지 않고, 또는 숱한 변수에도 부대끼며 도태되거나 뛰쳐나가지 않고 아직 일하고 있다.

몇 년있으면 정년이다.  그래서 정년 이후를 생각하며 다시 오십대 중반을 넘은 지금 해보지 않은 전공을 택해서 작년부터 다니고 있다. 이제 졸업반이다. 그런 나를 향해 "뭐할라꼬 그렇게 아등바등 시간 팍팍하게 사냐?"고 더러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 더러 지각할 뻔하거나 또는 기말고사 마감에 쫓겨 레포트를 아슬아슬 낸 적은 많았어도 아등바등한 적이 없다. 내 삶을 하나의 그네라고 생각하고 나는 시간의 그네를 탈 뿐이다. 때로는 높고 멀리, 때로는 낮고 천천히, 때로는 그네 줄을 감아 빙글빙글 돌리면서.

소리없는 세상에서 잘 살아가는 방법의 하나가 바로 하나라도 더 배우거나 하나라도 더 경험하고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 세상과 사람을 잘 이해하는 것이다. 아마도 나는 육십이나 칠십이 되어도 무언가를 이미 했던 것은 잊어먹지 않으려고 또는 새로운 것은 배우고자 공부할 것이다.

그리고 해보지 않은 일들을 해 볼 것이며,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전시회와 작품을 통해서 만나서 삶의 그네를 함께 탈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다양하게 부른다.

직업의 호칭이 있고, 강의를 하기 때문에 선생이기도 하고, 그리고 누군가의 엄마이고 누군가의 딸이며, 시장에 가면 아줌마나 언니라고 불리워진다. 그러나 나는 살아있는 한 항상 공부하기를 즐기는 여햑생이다.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장애와 나이는 상통한 점이 있다. 사람들이 장애라서 무엇이든 하기 어렵다는 그 관념을 벗어나면 장애는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조금 불편하고 느린 것이란 걸. 나이 또한 많아서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를 벗어나면 단지 좀 더 뇌가 둔화되어 시간이 걸리고, 잘 잊어서 반복해야 되는 것이라는 걸. 아무리 많이 반복하고 느리고 불편하더라도 나는 머리를 두 갈래로 땋고 베레모를 쓰고 후레아 치마를 입고 공부하던 그 여학생의 마음으로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며 살아간다.
덧붙이는 글 내 나이가 어때서 공모글 입니다.
#청각여성장애인 인식개선 #공부가 좋아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삶과의 소통 그리고 숨 고르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