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부가 무서워 울던 막내처제, 지금은...

[공모-내 나이가 어때서] 아줌마라서 행복해요

등록 2014.02.19 20:37수정 2014.02.19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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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도 긴 추위가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 아직은 따뜻한 봄날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 어색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봄은 곧 올 것 같다. 지금 계절, 모든 것을 마감하는 시기이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매일 보는 집 앞 빌딩, 사람들, 매일 출근해야 하는 일상의 일들이지만 지금 이 시기는 꼭 새로운 뭔가를 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

예전 어머니는 '세월이 달려간다, 세월이 무섭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그러나 그때엔 이 말의 의미를 잘 알지 못했고,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자라면서도 세월이란 게 내게 있어 어떤 존재로 남아 있는지 관심조차 없었다고나 할까. 그러는 사이 정말 세월은 말없이 흘렀다.

나의 세월의 흐름을 실감나게 해주는 건 명절이다. 먼 친척부터 가까운 형제, 자매, 사촌들 그리고 조카들. 특히나 조카들의 자라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것은 이렇게 세월이 흘렀나? 되묻고 있다는 것이다. 난 아직도 그 옛날 모습 그대로 그런 마음이라 여기며 살고 있는데 주위 사람들은 더러 '많이 변했다'라고 말들을 해온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그렇게 내가 변했나, 왜? 난 아닌 것 같은데 난 예전 모습 그대로인데, 난 변하지 않았다' 이렇게 혼자서 속으로 몇 번을 되새기곤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변하지 않은 나를 믿으며 살았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난 그대로인데 사람들은 만나는 친척들은 모두 다 "니가 이렇게 변했나?, 세월이 많이 흘렀네, 우리 순희가 몰라보겠다, 올해 나이가 뭣꼬?" 등등 쏟아지는 질문들을 다 모아보면 결국 내가 나이를 먹고, 세월을 보냈다는 것이다.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지만 믿어야 하는 현실이다.

설날, 큰집 형부와 모처럼 한 자리에 앉았다. 이런저런 소식들을 전하면서 큰집 형부는 자꾸만 나를 바라보며 웃으셨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옛날 처음 큰집 큰형부가 장가 왔을 때가 생각난단다. 그때 아주 조그마한 처제였는데 언제 이렇게 세월을 먹었는지 많이 변했다며 웃으시는 모습을 보니 그래,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이렇게 받아들여야 할 때가 되었구나, 싶은 마음이 생겼다.

세월이란 거스를 수 있는 것이 아닐진대 난 왜 그렇게 부정하며 살았을까 싶다. 큰집 형부와 정말 처음으로 30여 년 만에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불현듯 '내 나이가 어디가 어때서?' 싶었다. 그러고 보니 세월이 많이 흐르긴 흘렀다. 큰집 형부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아주 아련히 떠오르는 기억이 새삼 나의 뇌를 스쳤다.

무서웠던 큰형부, 이제는 아버지 같다

초등학교 6학년 졸업을 앞둔 어느 날, 맏이인 큰언니는 따뜻한 봄날을 뒤로 하고 추운 겨울 아마도 그때가 지금쯤이었을 것이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수줍게 신부대기실에 앉아 있던 큰언니. 몸이 아파 우여곡절 끝에 시집을 가는 언니였기에 집에서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잔치였던 것 같다. 읍내 작은 예식장에서 처음 마주한 큰언니 옆의 한 남자. 그 사람은 바로 우리 큰형부였다. 자그마한 가족들의 키 높이에 비한다면 큰형부는 아마 동화 속에 나오는 거인처럼 보였다. 머리는 아주 짧게 잘랐고, 눈은 또 어찌나 컸던지.

동네 어르신들은 이구동성으로 인물 좋다고, 어디서 저런 훤칠한 총각을 잡았나, 다들 한마디씩 건넸지만 난 싫었다. 무서웠다. 한 번도 마주해 보지 않은 큰 키가 우선 두려웠고, 짧은 스포츠형의 머리는 꼭 어딘가를 다녀온 사람처럼 내겐 비호감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리부리한 눈이 얼마나 두려운 시선으로 나를 대하게 했는지 모른다.

아무튼 어린 소녀의 눈에 비친 큰형부는 무섭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며칠을 지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큰언니와 큰형부. 집에서는 가족, 친척들이 모여 작은 기와집 촌방이 터져라 무너져라, 북치고, 장구 치기를 멈추지 않았던 시간. 얼굴을 대면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난 우리집과 멀리 떨어진 친구집에 갔다.

친구 어머니는 큰언니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와서 좋겠다며, 언니 보러 안 가고 왜 다 늦은 저녁에 왔냐고 물으셨다. 난감한 질문에 대답도 못하고 친구 방에서 숨죽이며 앉아 있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얼마를 친구 방에 쪼그리고 있었던지... 밖은 이미 해도 지고 어둑한 달빛이 비춰지고 있을 때, 어디선가 들리는 작은언니의 목소리가 아주 작게 그리고 길게 들렸다.

더 이상 친구집에 있을 수 있는 명분이 없었던 터라 작은언니의 부름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억지로 끌려온 사람처럼 그렇게 마당에 서니 어머니는 얘기도 안하고 없어졌다며 나무라셨고, 방에서 장구 소리에 목청이 뚫어져라 노래 부르던 큰형부는 '막내처제'라고 한마디 부르며 씨~익 웃으셨지.

아~, 지금도 그 순간을 피하고 싶다. 부끄러워서 차마 마주할 수 없어 친구 집에 숨어 있어야 했던 그때. 시골에서 처음 만난 낯선 아저씨의 익숙하지 않은 외모의 큰형부는 그로 인해 나에게 전해진 두려움과 높게만 여겨졌던 서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떻게 쳐다봐야 할지 난감해서 늘 말없이 큰형부 주위만 맴돌았던 나. 그 후,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을 가고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아이 낳아 40대의 아줌마가 되어버린 지금, 나! 13세 소녀에서 43세 아줌마로 변해버린 세월 속에 그때의 수줍어하고 여린 모습은 없지만, 그때의 큰형부를 잊지 않고 함께 큰형부와 대화할 줄 아는 아줌마가 되었다는 것이 행복하다.

수줍음에 말 한마디 못했던 그때의 막내처제. 지금 늘 고향집으로 향하는 손에는 큰형부의 오래된 친구, 막걸리 한 병이 들려 있다. 막내처제가 돼지감자가 몸에 좋다고 하면 그 해 밭농사엔 돼지감자가 풍작을 이루고, 야콘이 몸에 그렇게 좋다던데, 그러면 어느새 야콘은 어머니의 밭 귀퉁이에 떡 하니 자라잡고 있다.

'형부, 나중에 어머니가 밭농사 못 지으면 이 막내처제는 다 사 먹어야 하는데 형부가 농사지어서 좀  나눠줘요~형부만 믿고 있어요~'라고 하면 걱정 말라고 못을 박는다. 처제 먹을 거는 형부가 다 지어 준다나, 어쨌거나 큰형부의 막내처제 사랑은 식을 줄을 모르고 하늘을 치솟고 있다. 아마 나의 착각이라고 해도 좋다. 이제는 아버지를 대신해 아버지다.

지금, 내 나이가 어때서? 더 이상 변해가는 나를 붙잡고 싶진 않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 내 모습도 변해가는 것처럼 아마 내 안의 삶에 대한 애착도 둥글게 잘 영글어갈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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