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엄마들, 답답하고 속상합니다

[서평] 열한 명의 장애아 가족 이야기 <특별한 너라서 고마워>

등록 2014.03.03 11:47수정 2014.03.03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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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너라서 고마워> 표지 ⓒ 오마이북

이 책은 <오마이뉴스> 김혜원 시민기자가 사회복지법인 밀알복지재단에서 받은 연락으로 시작되었다. 김혜원 기자는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라는, 독거노인 열두 분의 삶을 풀어낸 책을 낸 적이 있다. 밀알복지재단 사람들이 그 책을 보고 감동을 받아서, 김혜원 기자에게 장애아 부모 이야기를 취재해서 <오마이뉴스>에 소개해주길 바란다고 요청을 한 것이다.

이 책은 그렇게 시작되어, 11명의 특별한 아이들 이야기로 채워졌다. 특별한 아이들과 어머니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평범한 삶이길 바랐지만 특별했고, 나중엔 그 특별함마저도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게 된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현호는 17살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현호는 엄마 박향숙씨가 결혼 4년 만인 29살에 얻은 귀한 아들이다. 그러나 아이는 분만 당시 삼킨 양수가 폐로 넘어가 심각한 신생아 폐렴에 걸렸고, 출산 당시 5분이나 자가 호흡을 하지 못해 무호흡 상태에 있었다. 현호는 20일 동안 인큐베이터 신세를 졌고, 그렇게 뇌성마비 장애인이 되었다.

향숙씨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현호를 업고 병원에 다녔다. 경기도 의왕시에서 버스를 타고 구로디지털단지역까지 간 다음 지하철과 택시를 번갈아 타며 신촌까지 오갔다. 현호를 휠체어에 태우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막내 임신 9개월 때까지 현호를 업고 다녔다. 현호는 현재 척추를 지탱할 힘이 없어 허리가 휘어졌고, 자신의 몸을 끌고 다니느라 온통 손마디가 굳어 있다.

예인이는 연골무형성증을 앓고 있는, 한창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중학교 3학년 예쁜 여학생이다. 연골무형성증은 10만 명당 두 명 꼴로 발생하는 희소질환이며, 비정상적으로 저신장을 일으키는 유전적 장애라고 한다. 그래서 예인이는 키가 120센티미터,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마흔다섯 살 엄마는 100센티미터다. 이 병은 척추가 내려앉아 어느 날엔가는 일어설 수 없는 몸이 된다고 한다.

장애아들이 한 발짝씩 사회로 나아갈 때, 엄마들은 행복하다

세준이는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다. 자폐성 장애 등 뇌기능 장애가 있는 사람 중 아주 소수에게 나타난다는 서번트 증후군은 음악, 미술, 계산, 암기 등 특정 분야에 천재적인 재능을 나타내는 증상이라고 한다. 우리가 TV에서 보게 되는 특별한 재능과 능력을 보이는 자폐아들이 대부분 이 서번트 증후군이라고 한다. 세준이는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 세준이가 그린 알록달록 화려한 색감의 동물 친구들은 언제나 재미있는 표정을 짓고 있고, 그 그림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모두 장애를 안고 있다. 그 장애의 종류와 깊이도 다양해서 누구는 직장을 가져 돈을 벌기도 하고, 대학교를 가기 위해 공부를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아이들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병원 생활로 하루하루를 버텨내기도 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끊임없이 등장하는 낱말이 있다. 바로 '엄마'다. 물론, 엄마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인터뷰 했으니 더 그렇겠지만, '엄마'는 이 특별한 아이들에게 더 특별한 그 무엇이다. 이 엄마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사진 속의 엄마들은 평범한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엄마들보다 표정이 상당히 밝다. 누가 보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환한 웃음을 웃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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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같은 모녀. 예인이와 이선혜씨 ⓒ 추연만


특별한 아이들의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보통의 부모들처럼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서 일류 대학을 가고, 돈을 많이 주는 회사에 들어가고, 돈을 많이 버는 성공을 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 부모들은 아이들이 그저 건강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하루하루 그저 행복하게 살아가기만을 바란다. 그러니 그 기대만큼 아이들이 조금씩 달라질 때, 하루하루 한 발짝씩 사회로 나아갈 때, 엄마들은 많이 기쁘고 행복하다.

평범한 우리가 행복을 느낄 때가 언제인가.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전엔 하지 못했던 작은 성취를 해나갈 때 행복을 느낀다. 나의 성장을 내가 봤을 때, 혹은 그 성장을 누군가가 알아봐주었을 때 행복을 느낀다. 그러고 보면 엄마들이 지치지 않고 또 다시 아이들을 위해 힘을 낼 수 있는 것은 엄마들의 내적 성장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작은 도전뿐만 아니라, 엄마들 스스로도 본인들이 전날보다 조금씩 내적으로 성장하고 강해지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행복하고 환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것 같다. 장애아들을 키우면서 누구보다 성장한 사람은 엄마일 테니까.

이웃과 사회와 국가가 엄마들의 짐을 덜어줘야 한다

물론 책을 읽는 내내 그 엄마들 때문에 답답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모든 짐들이 엄마에게만 지워진 듯한 느낌. 다른 가족 구성원들은 모두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데, 엄마들만 자신의 삶을 살고 있지 못한 느낌. 그런 속에서 엄마는 장애아가 아닌 또 다른 자녀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소홀할 수밖에 없는 남편에게도 미안함을 느끼며 살고 있다. 엄마는 그런 죄책감과 미안함과, 항상 돌봐주어야만 하는 아이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까지 그 모든 감정의 중심에서 고군분투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오한숙희님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사랑의 자가발전에는 한계가 있다. 장애인 자녀와 함께 세상을 등져야 했던 부모에게는 과연 사랑이 없었을까? 이 책은 부모들이 사랑의 자가발전을 중단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어디에선가는 동력을 공급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절절히 깨닫게 해준다.

누군가를 돌보는 위치에 있다는 건, 힘든 일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만 돌봄을 정당화 할 수는 없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돌봄을 당연시해도 안 된다. 즉, 사랑의 자가발전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우선은 그 가족들이 엄마의 짐을 덜어줘야 하고, 그리고 더 크게는 같이 살아가는 이웃이, 그리고 사회와 국가가 그 짐을 덜어줘야 한다고 본다.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정도는 엄마가 돌봄의 역할을 내려놓고 충분히 재충전 할 수 있는 시간을 나머지 가족들이 배려해주어야 한다. 하루 이틀쯤은 진짜로 엄마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챙겨주어야 한다. 그리고 크게는 사회에서 좋은 제도를 만들어, 엄마들이 그 짐을 내려놓게 해주어야 한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듣고 그가 말하고자 하는 뜻을 알아내는 데서 시작한다. 특별함을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아이들, 태어났을 때 이미 특별했던 아이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뜻이 무엇인지 알려고 노력하다보면, 그 아이들도 우리 옆에서 당당히 걸어가고 있지 않을까.

특별한 너라서 고마워 - 장애아 가족들의 슬픔과 기쁨 그리고 사랑

김혜원 지음,
오마이북, 2014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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