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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진심을 다하는 일'을 하고 있나요?

[리뷰] 영화 <행복한 사전>을 보고

14.03.04 11:33최종업데이트14.03.04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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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당신이 그녀라면(In her shoes)>에는 못생기고 뚱뚱하다는 피해의식이 있는 로즈란 여주인공이 나온다. 어느 날 로즈는 멋진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고, 신이 나서 친구에게 남자친구 이야기를 한다.

그런 로즈에게 친구가 말한다. "너는 왜 남자친구 이름을 놔두고, 자꾸 '남자친구', '남자친구' 그러니?"

그러자 로즈가 말한다.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 사귀게 된 남자친구라서, 남자친구란 말을 최대한 사용하고 싶어."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로즈의 기쁨이 내게 100프로 전달되는 걸 느꼈다. 그러면서 덩달아 나까지 기뻤다. 로즈가 연애를 시작하고 얻게 된 그 충만한 기쁨을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대화에는 오해가 생기기 싶다. 같은 단어라도 모두가 100프로 같은 뜻으로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자친구'의 사전적 의미는 '연애하는 관계의 남자를 이르는 말'이다. 여기에 더하여 '로즈'에게 '남자친구'란, '새로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 그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자주 사용하게 되는 말'이기도 할 듯하다.

로즈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사전을 가지고 있다. 상황에 따라서 또는 시간에 따라서 사전적 의미를 훌쩍 뛰어넘어, 자신만이 미묘하게 가지는 뜻을 포함하는 단어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미묘한 뜻을 모를 때, 우리는 상대방을 오해하게 되고, 상처 받고 그러다 심할 경우 관계를 끝내기도 한다.

소중한 사람들 사이에 그런 불신과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첫 번째는, 그 사람이 사용하는 단어의 뜻을 정확히 알아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의 사전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사전을 펼쳐서 그 단어의 뜻을 정확히 아는 것. 물론, 여기서 그 사람은 자녀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배우자일 수도 있고, 부모일 수도 있다.

이처럼 소통을 위해서는, 그가 사용하는 단어의 정확한 뜻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또 한 사람이 있다. '행복한 사전'의 마지메. 그는 단어의 뜻을 잘 아는 것이 소통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고, 14년 동안 계속된 사전 편찬 작업에 뛰어든다.

'말'과 '소통'에서 시작된 영화 <행복한 사전>

당신을 진심을 다해 현재를 살고 있나요? ⓒ 씨네그루

영화 <행복한 사전>은 1995년 한 출판사 사전 편집부에서 '대도해'라는 현대어 사전을 만들기로 하고 새 직원을 충원하면서 시작된다.

대학원에서 언어학을 전공한 마지메는 밥 먹을 때조차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출판사 영업부 직원이다. 그러나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게 어려운 마지메는 영업 일이 너무 힘들고, 그러던 때 마침 사전 편집부 직원의 눈에 띄어 '다도해' 사전 편찬 일을 시작하게 된다. 자그마치 14년 동안 이어지는 사전 출판 대장정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말'과 '소통'에서 시작된 이 영화는 '진심을 다하는 일'이란 주제로 흐른다. 그러나 이 흐름이 이상하지 않은 것은 '진심'이라는 말로 모두 통하기 때문이다. 소통을 잘 하려는 것은 상대방에게 진심을 다하고자 함이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하는 것은 내 삶에 진심을 다하고자 함이기 때문이다.

언어학을 전공했고, 책을 좋아하고, 사전을 가까이 두고 지냈던 마지메에게 사전 편찬 일이란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이 아니라, 정말로 제대로 해 보고 싶은 일이다. 그래서 재미가 있고, 행복하다. 출판사에서 더 이상 수익이 나지 않는 사전 편집부를 없애려고 할 때, 마지메는 회사의 수익을 위해서, 하고 싶지 않은 일까지도 수용해가면서 '다도해' 편찬만은 포기하지 않는다.

마지메가 사전 편찬 일에 온 힘을 쏟는 이유는, 그 자신이 내성적이고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하는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해서 허둥지둥하기도 한다. 그런 그에게 낱말 뜻을 알아가는 것은 상대방과 제대로 소통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상대방이 사용하는 낱말의 뜻을 알면, 그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이해할 수 있고, 그러면 그 사람과 더 잘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한 모습은 마지메가 패스트 푸드점에 앉아서 몰래 10대 소녀들의 대화를 들으며, 새로운 조어들을 수집해 가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런 소통의 작업은 마지메에게는 삶의 의미이다. 소통이 어려웠던 마지메에게 또 다른 누군가가 자신과 같은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좋은 사전을 편찬하도록 하는 일은 마지메가 꼭 하고 싶은 일이었다.

남에게 도움 되는 일이 곧 자기 일 될 때 삶이 가장 조화로워진다

단어의 뜻을 정확히 안다는 것은 타인과 더 잘 소통하는 방법 ⓒ 씨네그루


법륜스님의 <인생수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는 보통 살아갈 때 재미와 삶의 의미가 분리된 삶을 사는데,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곧 자기 일이 될 때 우리 삶이 가장 조화로워진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마지메의 삶이란 가장 조화로운 행복한 삶이 아닐까.

마지메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 카구야에게서도 나는 일에 대한 마음가짐을 볼 수 있었다. 카구야는 교토에서 일식 요리를 배우고 도쿄로 와서 일식집에서 일한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여자가 일식요리사로 일하는 것이 쉽지 않은 듯, 카구야는 많은 고민을 하고 괴로워한다.

그러나, 카구야가 일식 칼에 대해서 전문가 못지않게 설명하는 모습을 보면, 카구야가 그 일을 정말 하고 싶어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퇴근 후 집에서 칼을 갈고, 조림을 연습하는 카구야의 모습을 보면 그녀 역시도 그 일이 단지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진심으로 하고 싶어하는 일임을 알게 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어려움을 견디고 묵묵히 그 길을 가는 사람은, 상대방이 하고 싶어하는 일에 대해서도 똑같은 만큼의 지지를 해주게 되는 걸까. 카구야와 마지메는 서로의 일을 존중하고 이해해주고 도와주면서, 처음 만났던 그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14년의 세월을 함께한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거의 평생을 사전 편집부에서 일했던 마지메의 상사가, 사전이 세상에 나오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결국 세상을 떠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 장면들은 아주 담담하다. 그러한 장면들은 하고 싶던 일을 정말 진심을 다해서 했다면, 더 여한이 없도록 했다면, 죽음도 아쉽지 않다는 느낌을 준다.

극장을 나오면서, 나는 그렇게 여한이 없게 살다가 떠날 수 있을까, 생각하니 울적해졌다. 더구나 나는 진심을 다해 해보고 싶은 일조차도 아직 찾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면, 뭔가 진심을 다해 살고 있는 사람들에 비해 손해 보는 느낌까지 들었다.

넓고 넓은 단어들의 바다에서 사전은 단어들을 모아놓은 배와 같다고 영화는 말한다. 많고 많은 일 중에서 나라는 배는 무슨 일을 싣고 싶어하는 걸까, 그 답을 찾기 위해서 나는 나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소통을 해야 하나 보다. 소통과 진심을 다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영화였다. 

영화 행복한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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