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전격 압수수색, 청와대와 사전교감 있었나

[해설] 11개월 만에 또 압수수색... '특검' 여론 무마용?

등록 2014.03.11 09:24수정 2014.03.1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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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수사팀 관계자가 압수수색 물품을 싣기 위해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있는 국가정보원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이석기 RO 사건 잘 해놓고, 아무 것도 아닌 사건 가지고 이게 뭐야."

한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관의 말이다. "아무 것도 아닌 사건"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의혹 사건'을 말한다. 이 말에서 국정원의 짜증이 묻어난다.

간첩 증거조작 의혹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윤갑근 검사장)은 10일 오후 5시께부터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정원 청사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노정환 서울중앙지검 외사부장 등 수사팀 검사 3명과 수사관 등 10여 명이 투입돼 이튿날 새벽 0시 30분경까지 약 7시간 반 정도 압수수색을 벌였다. 압수수색의 주 대상은 증거조작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대공수사팀으로 알려졌다.

이번 압수수색은 국정원으로서는 굴욕이다. 국정원은 현 정권 들어 벌써 두 번째 검찰에 압수수색을 당하게 됐다. 국정원 심리전단 대선개입 의혹 사건으로 압수수색을 당한 시기가 지난해 4월 30일이니, 약 11개월 만이다. 검찰이 국정원을 압수수색 한 것은 지난 2005년 8월 '안기부 X파일' 사건까지 합해 총 세 번밖에 되지 않는다. 세 번 중 두 번을 최근 겪은 셈이다.

압수수색 전 고위층 사전교감?

하지만 국정원은 그리 호락호락한 조직이 아니다. 아무리 검찰이 영장을 가져 왔어도, 국정원의 협조가 없으면 제대로 된 압수수색은 어렵다. 지난해 4월 압수수색 당시에도 심리전단 사무실은 이미 깨끗이 치워진 상태였고, '젊은층 우군화 심리전 강화방안' 문건처럼 이미 존재가 알려진 서류도 국정원은 내놓지 않은 사실이 공판 과정을 통해 드러났다. 이번 증거 조작 의혹에서 지금까지 보여온 국정원의 태도를 보면 이들이 진상 규명에 얼마나 협조할지는 미지수다.

주목해야 할 점은 최근까지도 증거조작 의혹에 별 반응이 없던 청와대와 국정원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이다. 국정원의 증거조작 의혹은 지난달 14일 중국대사관 영사부가 서울고등법원에 보낸 답변에서 검사가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가 위조됐다고 밝히면서 본격화됐다. 벌써 25일간 이어진 사안이다. 초기부터 특별검사 도입 등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국정원과 청와대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일요일인 9일부터는 달랐다. 이날 김진태 검찰총장은 "국민적 의혹이 한 점 남지 않도록 신속하게 법과 원칙대로 철저히 수사하라"고 수사팀에 지시했고, 이어서 밤 9시엔 국정원이 "물의를 일으켜 송구하다"는 발표문을 내놨다. 다음날인 10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은 엄정한 수사를 지시했고, 이날 오후 5시엔 검찰이 국정원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이틀 만에 이루어진 이런 숨가쁜 상황 전개는 정권 최고위층에서 이 사건 대응방침을 바꿨다는 걸 시사한다. 물 흐르듯이 매끄럽게 진행되는 상황은 '고위층의 사전 교감'을 빼고 설명하기 어렵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이전의 검찰 수사에 대한 국정원의 대응을 보면 이번에도 '꼬리자르기'식으로 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점점 조여오는 특검 여론

어찌됐든 국정원으로서는 11개월 만에 또 압수수색 대상이 됐다는 사실 자체가 굴욕이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심상치 않은 여론의 힘이 있었다. 지난 5일 국정원 협조자 김아무개씨가 검찰 소환조사 직후 자살을 시도한 사건을 계기로 여론은 급반전됐다. 그가 벽에 피로 쓴 글씨 '국정원'과 유서 내용은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즉각 정치권의 압박이 시작됐다. 9일, 함께 신당을 준비하는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나서 특검을 도입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0일 오전엔 여당 국회의원 중 처음으로 이재오 의원이 남재준 국정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오후엔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대검찰청을 항의방문했다.

압수수색은 야당의 대검 항의방문 와중에 나왔다. 어떻게든 강한 수사의지를 보여 특검도입 여론을 막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국정원의 증거조작 의혹을 추궁해야 할 국회 정보위가 두 달 넘게 열리지 않고 있는 상황은, 여권이 진상규명보다는 '특검 피하기'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는 의혹을 뒷받침한다.

이번 사건은 검찰보다는 특검이 수사하는 게 타당해 보인다. 검찰도 '증거 조작의 가담자 또는 동조자'로 의심되기 때문이다. 만약 특검이 도입됐다면 '국정원-검찰 동시 압수수색'이라는 사상초유의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증거위조 #공무원간첩사건 #국정원 #압수수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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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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