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시의원을 위해 주민들이 책 냈습니다

어느 시의원이 받은 선물 <엄마, 세상을 안다>

등록 2014.03.12 13:27수정 2014.03.1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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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5일 일산동국대병원 강당에서 열린 <엄마, 세상을 안다> 책 증정식 ⓒ 조정


아이를 좋아해 망설임 없이 7남매를 낳아 길렀다는 세원 엄마. 집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 남편 문제와 생활고로 사면초가였던 그는 어느 날 현관 문 틈에 끼워진 명함과 쪽지 하나를 발견했다.

"힘든 일 있으면 연락 주세요."

이후 6년 동안 세원 엄마는, 그 쪽지를 끼워두고 간 김경희 시의원(48, 민주당)과 손을 잡고 걸었다. 여자로서 엄마로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김 의원이 그의 곁에 있어주었던 사연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중산동 주민 김혜란씨가 받아 적었다.

세원 엄마만이 아니다. 고양시의 김경희 시의원이 지난 2월에 지역구 주민들로부터 선물받은 책 속에는, 김 의원과 함께 자기 문제들을 헤쳐온 주민들 이야기가 만화경처럼 등장한다. 생활의 힘, 생활의 체취가 즉물적으로 묻어나는 책이다.

기획편집, 집필, 사진과 일러스트, 인터뷰이, 응원 트윗 쓰기, 출판까지 총 90여 명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만들었다. 총 220페이지 중 김 의원에게는 편지글 하나만 쓰게 하고 나머지는 모두 자신들이 채워 넣었다. 이 책에 담긴 메시지는 한 줄이다.

"우리를 위해 열심히 일을 잘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책 증정식은 지난 2월 25일 오후 7시, 일산동국대병원 강당에서 열렸다. 단순히 김경희 의원의 출판기념회로 알고 찾아온 이들은 책을 받아들고 '어, 이거 뭐가 좀 다른데?'라는 표정을 지었다. 무크지 형식으로 만들어진 깔끔한 책 표지에 적힌 저자는 김경희가 아니고 '김경희의 친구들'이었기 때문이다.


고양시 주민 90여 명, 김경희 시의원에게 책 만들어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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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보답하는 유권자들도 있다 지역구 시의원을 위해 책을 만든 주민들이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김경희 시의원에게 책을 헌정하는 순서. 김 의원의 8년 행보가 담긴 <엄마, 세상을 안다>의 집필, 사진, 일러스트를 맡은 주민들이 모두 무대에 올라왔다. ⓒ 조정


책 제목은 <엄마, 세상을 안다>. 복지관 컴퓨터 강사이자 '수지 엄마'였던 김경희씨가 시의원이 되어 세상을 알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김경희 의원이 일산동구 중산동, 식사동, 풍동, 정발산동의 주민들과 고양 시민들을 품에 안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책의 첫머리는 한 주민이 쓴 포토 에세이 '봄으로 가는 문, 은빛 경첩'과 김 의원이 쓴 편지글,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이셨다는 동화작가 박성배 선생의 글이 담겨 있었다.   

이후 특별기획이라는 타이틀로 170여 쪽에 걸친 '김경희 시의원 8년의 기록'이 시작된다.  사람 사는 일의 애환과 다정함이 묵직하였다. 지역구에 웬 문사(文士)와 사진작가가 그리 많은지, 글들은 세련되고 사진 속 환한 표정들은 지루함을 원천 봉쇄하고 있었으나, 읽는 이는 자주 마음이 저릿했다.

기획과 편집을 진두지휘한 중산동 주민 이규동(50)씨는 김 의원에 대한 마음의 빚을 약간이나마 탕감받고 싶었다고 했다.

"저도 살림 잘 하고 사는 주부 김경희 등을 밀어서 시의회로 보낸 이웃 사람들 중 한 명입니다. 그 후 8년 동안 여러 번 미안했지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어요. 기대보다 더 잘해준 김 의원에게 책을 만들어 주자는 의견이 나왔을 때 약간 근심을 했는데, 연락받은 모든 분들이 한 마디도 거절 없이 참여해 주셨어요. 두 달 만에 고속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주정차 자리마저 불확실하던 택시 운전 노동자들, 구두박스의 미화원들, 보행권을 위협받는 장애인들, 근로정신대 피해 보상 운동을 함께 한 고등학생들, 저소득 어르신 의료비 지원을 위한 연구모임과 그 결실, 생활보호 대상자였던 7남매 집 엄마, 초등학교 옆에 붙어 바싹 세워지던 골프장을 막아낸 하늘초등학교 학부모들, 고양시 시민창안센터를 설립하고 이끌어온 일, 시정의 오류로 허가되어 주택가의 거대 오염원이 된 대형유치원 문제.

저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김 의원은 여러 개의 연구 모임을 만들고 정책을 입안했다. 그 와중에 과로로 인한 갑상선 이상이 발병해 2년간 치료를 받았다. 책 말미에 마련된 가족 대담을 읽으면, 와병 중에도 멈추지 않는 민원 처리를 지켜보는 고통은 오롯이 가족들 몫이었던 것 같다.

"시어머니가 표지 글씨를 써준 책이라니, 따뜻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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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5일 일산동국대병원 강당에서 열린 <엄마, 세상을 안다> 책 증정식 ⓒ 조정


초등학생이었던 아이 둘이 20대가 되기까지 8년간. 세상을 안고 가느라고 가족들에게는 손이 미치지 못했던 순간이 여러 번이었으리라.

그래서 이 책을 만든 '김경희의 친구들'은 김 의원의 시어머니에게 표지 붓글씨를 받은 일, 김 의원 남편 이필윤씨를 사진팀에 포섭한 일, 동생 김명희씨의 흙인형 작품 사진을 책에 실은 일, 김 의원 딸 수지에게 가족 캐리커처를 그리게 한 일을 아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어머니가 표지 글씨를 써준 책이라니, 따뜻하잖아요."
"때로는 힘들기도 했을 시기를 가족 모두의 결실로 돌아볼 기회가 되시기를 바랐어요." 

김 의원은 2008년 '고양장애인복지모임'을 만들어 그 성과를 정책으로 연결시키면서 장애인 활동에 앞장서왔다. 특히 장애인 콜택시제 도입, 시청과 체육관 등 공공시설에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등으로 메니페스토 공약이행상을 수상했다. 시의원들로서는 가장 영예로운 보상이다.

지역 주민들이 만들어준 책을 선물받은 기쁨도 그에 못지않을 것 같다. 대한민국을 통틀어 흔치 않은 일이기도 하다. 정치에 입문하며 김 의원이 스스로에게 내걸었다는 슬로건 중 다음 세 가지가 기자에게는 퍽 인상적이었다. 

- 밥값 하는 시의원이 되자.
- 사회적 약자를 보듬어 주자.
-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시의원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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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5일 일산동국대병원 강당에서 열린 <엄마, 세상을 안다> 책 증정식 ⓒ 조정


#김경희 시의원 #엄마, 세상을 안다 #밥값 #사회적 약자 #중산에서 노는 동네 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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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2000 한국일보로 등단. 시집 <이발소그림처럼> 공동저서 <그대, 강정>.장편동화 <너랑 나랑 평화랑>. 2011 거창평화인권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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