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의 기폭제, 광주 3·15 의거 데모 재연

등록 2014.03.16 12:41수정 2014.03.16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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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로에서 진행된 광주 3.15의거 참가시민들과 각계 인사들 ⓒ 김범태


호남 4·19 혁명단체총연합회(상임대표 김영용)는 오전 11시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1960년 3월15일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거해 광주 시민이 일어섰던 '곡(哭) 민주주의 장송' 데모를 재연하였다.

호남 4·19 혁명단체총연합회는 광주에서 마산보다 3시간 앞서 유혈봉기가 일어났다며, '4.19혁명의 시원(始原), '광주 3.15의거'를 바로 세우자'는 취지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재연 행사를 열었다.

1960년 3월 14일 다음날 실시될 선거가 부정선거로 얼룩질 것을 직감한 민주당의 이필호 의원과 민주당 당원들을 중심으로 준비하였던 '곡(哭) 민주주의 장송(葬送)' 데모는 투표소에서 부정 표를 발견한 한 유권자가 선관위에 항의하자 정치 깡패들이 무자비하게 폭행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데모는 3월15일 12시45분 '민주주의 사망을 애도한다'는 의미로 상복을 입은 민주당원 등과 1200여 명의 시민이 합세하면서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수많은 부상자가 속출했고 첫 유혈 시위로 기록됐다.

4.19혁명의 도화선 역할을 한 '광주 3·15의거'는 이날 오후 1시에는 진주에서 민주당 당원들이 시위를 벌였고, 오후 3시 30분 마산에서 김주열 학생의 주검으로 분화구가 된 마산 3·15로 이어지는 등 유혈사태로 번졌다. 이후 대한반공청년단의 4월18일 고대생 유혈집단 테러사태가 기폭제로 터져 4·19혁명의 불길이 전국으로 타올랐다.

김영용 상임대표는 기념사를 통해 "2013년 10월1일은 광주광역시가 53년 만에 '광주3·15의거 및 4·19 혁명 기념사업지원조례'를 제정·공포한 기념비적인 날이다. 4·19혁명의 시원(始原)인 '광주3·15의거'를 복원, 4·19통일운동의 첫 걸음을 뗐게 되었다. 4·19혁명은 광주, 마산, 서울의 3대 권역이 서로의 상호작용으로 상승되어 이뤄졌음에도 정부의 기록과 역사는 '광주3.15의거'를 빠뜨린 채 이어 오고 있다"면서 정부 차원의 대책을 촉구하였다.

행사에 참석한 이용섭 의원은 축사를 통해 "광주 3·15 의거는 4·19혁명의 최초 시위로 4·19의 기폭제가 됐다"면서, "잊혀지거나 왜곡된 역사를 찾아내고 바로 알리는 것은 후손들의 역사적 소명"이라며, "광주시가 지난해 광주 3·15의거와 4·19혁명 사업지원 조례를 발표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광주 3·15 선언문은 "이승만의 영구집권으로 계속될 독재와 남북분단의 고착화를 막아 민주주의와 통일을 이루자는 4·19혁명의 목표와 가치였다"며 "통일운동의 시작과 배경이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나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늘 행사에는 강운태 광주시장과 이용섭, 박주선, 박혜자, 오병윤 국회의원과 조호권 광주시의회 의장,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노희용, 김종식, 최영호, 송광운 구청장, 윤봉근, 김영수 광주시교육감 예비후보, 양혜령, 신광조 등 구청장 예비후보 등 많은 시민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덧붙이는 글 다음 아고라에 게재 및 블로그에 올렸음.
#4.19혁명 #광주3.15의거 #곡(哭) 민주주의 장송(葬送 #김영용 #이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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