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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헌정곡 담은 이승환 "취향 드러내면 안돼?"

[인터뷰] 정규 11집 발표한 '데뷔 25주년' 이승환, 그는 왜 위기 의식을 느꼈을까

14.03.26 08:47최종업데이트14.03.26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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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승환 ⓒ 드림팩토리


|오마이스타 ■취재/이언혁 기자| "2010년에 나온 10집이 역사의 뒤안길로 씁쓸한 발걸음을 옮겼을 때, 정말 벼랑 끝에 선 기분이었다. 더이상 음반을 내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경제활동이 맞나. 취미 아닌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2년 정도 지나니까 좀이 쑤셨다. 주체할 수 없는 창의력이라고 할까. 뭔가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다시는 벼랑 끝에 선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대중성을 찾았다."

이승환은 지독하리만큼 완벽을 추구하는 가수다. 아무리 "대중과의 접점을 찾았다"고는 하나, 그것은 가사와 멜로디 등에 해당되는 말일 뿐이다. 4억 원에 가까운 비용을 투자해 미국의 여러 스튜디오에서 3년간 1820시간을 녹음하고, 한 곡당 5~6번이나 믹싱과 마스터링 작업을 했다. 그는 피를 말리는 이 과정을 두고 "작업실에 중국집 쿠폰이 120장을 넘었더라"고 재치있게 표현했다.

프로듀서 황성제와 단둘이 작업한 정규 11집 <폴 투 플라이(Fall to Fly-前)>는 지난 앨범을 발표한 후 이승환이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비상을 위한 추락'이라는 뜻의 앨범 제목에 대해 이승환은 "전체 앨범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이제 깨어나라. 바닥을 치지 않았느냐'는 의미를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혀와 귀는 쇠퇴하고...내 음악은 차트에서 버티질 못해"

ⓒ 드림팩토리


<폴 투 플라이>는 전편과 후편으로 나뉘어 있다. 이번에 공개되는 전편은 비교적 듣기 편한 곡들로 구성됐으며, 후편에는 이승환이 추구하는 실험적인 음악이 담길 예정이다. 전편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내야 후편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나이가 드니까 신체기관 중 쇠퇴하는 것은 혀와 귀"라고 털어놓은 이승환은 "스스로 위기라고 생각해서 듣기 편한 음악을 먼저 발표했다"고 고백했다.

"사실 난 1997년부터 내리막길을 걸었다. 급속도는 아니었는데 10집이 컸다. 하루 이틀 만에 음원 차트에서 내 노래를 본 적이 없다. 심각하다고 느꼈다. 내 음악은 일주일도 못 버티고 차트에서 사라졌다. 막막하더라. 일단 마케팅에 대한 고민이 제일 컸다. 예전에 (박)신혜에게 '우리 회사에 있으면 나 때문에 안될 것 같다'고 놔줬는데 나가자마자 잘되지 않았나. 신의 한 수였다. 이번 앨범 발매를 앞두고는 마케팅에도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번 앨범의 수록곡 대부분은 이승환이 작사, 작곡했다. 피처링의 면면도 화려하다. 타이틀곡 '너에게만 반응해'에서는 미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이소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선 공개된 '내게만 일어나는 일'의 피처링은 가리온의 MC메타가 맡았다. 바우터 하멜과 유성은, 러쉬는 'STAR WARS(스타워즈)'에 목소리를 더했으며, 배우 이보영은 'Sorry(쏘리)'에, 김예림은 '비누'에 참여했다.

"처음으로 발라드 아닌 펑키한, 흥겨운 노래를 타이틀 곡으로 했다. 전 세계의 조류가 가벼워지는 느낌이고. 또 사회적으로는 답답하고 암울한 느낌이 들지 않나. 대중에게 밝은 노래를 들려주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번 앨범에는 이보영씨가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내 팬이라는 소문을 듣고 무작정 제안했는데 흔쾌히 응했다. 15분간 녹음하고 밥 먹으러 갔다. 그 자리에는 지성씨도 왔다. 지금은 오히려 이보영씨 번호는 모르고 지성씨와 연락하는 사이다."

"도종환 시인에게 가사 받고 노무현 전 대통령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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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11집에는 도종환 시인이 가사를 쓴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도 담겼다. 이승환은 지난 2013년 8월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생 67주년 기념 <봉하음악회>에서 도종환 시인을 만나 가사를 부탁했다. 이승환은 가사를 받고 도종환 시인에게 "그분(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각난다. 그분을 위해서 불렀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고.

"사실 가사를 내가 쓰려고 했는데 멜로디 자체가 진중한 느낌이었다. '이걸 내가 쓸 수 없겠다'고 느껴서 도종환 시인에게 아무런 의도 없이 말씀드렸다. 지난해 10월쯤 가사를 받았는데, 가사를 보니까 그분이 생각나더라. 그분을 직접 뵌 적은 없는데 헌가 같은 느낌이랄까. 이 곡은 뮤직비디오도 찍을 생각인데 내용을 아직 고민하고 있다. 노무현재단에서 많이 도와주셔서 사진과 동영상도 받았는데 너무 직접적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 뮤직비디오에는 만화가 강풀과 캘리그래피 작가 공병각,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의 오성윤 감독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권위적이지 않고, 굉장히 서민적인 분"이라고 회상한 이승환은 "아버지의 등을 통해 그분을 투영해보려고 한다"고 전했다. 이렇게 자신의 정치적인 소신이나 성향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을까.

"취향이자 성향인 것 같다. 소신이라는 말까지 쓰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 공격은 이미 영화 <26년> 때 다 겪었다.(웃음)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옳고 그른 게 아니라 좋고 안 좋고를 드러내는 것을 왜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지 이해가 안 된다. 때론 고통스럽기도 했다. 무섭기도 하고.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누군가 한 명이 깃발처럼 있어주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옹알이 창법 벗어난 이승환 "믹 재거처럼 멋진 형님 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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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9년 데뷔했으니 어느덧 25년이다. 이승환은 "산전수전을 겪었다"는 말로 지난 시간을 표현했다. 데뷔 때부터 앨범을 직접 제작했던 그는 25살 풋내기였을 때부터 지금까지를 돌이켜보며 "트라우마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정직하게, 정의롭게 살려고 했다"고 자평했다. 때론 피해의식도 있었지만, 이승환은 "7080과 인디 페스티벌에 동시에 나가는 유일한 사람이자 인디와 오버의 접점에 있는 가수"라는 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아마 과거로 돌아간다면 인디 음악을 했을 거다. 10cm나 장기하와 얼굴들처럼 독특한 색깔의 음악 말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접근하는 느낌이랄까. 지금은 약간 이미지나 나이에 얽매여서 하고 싶은 것을 못하기도 한다. 예전엔 아이돌에 관심이 많았는데, 요즘은 인디신에 관심이 많다. 최근에는 인디가 돈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인디에 오버그라운드를 결부시키는 것 같은데 그래서 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11집에 들어서야 비로소 옹알이 창법에서 벗어나 가사를 또박또박 짚으며 노래하게 되었다는 이승환. 그에게 이번 앨범은 일각에서 제기된 보컬 능력에 대한 폄하를 불식시키는 하나의 전환점이기도 하다. 녹음 방식을 바꾸고 보완점을 찾아가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는 "롤링스톤즈의 믹 재거처럼 나이가 들어도 멋진 형님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앨범 성적에서 '중박'이란 어느 정도냐고? 서울 공연을 기준으로 1년에 1만 5천 명 정도의 관객을 모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음원 판매는 뭐가 중박인지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나는 가수이지만 제작자이기도 하다. 레이블로 확장하기보다 지금 제작하는 (가수) 솔튼페이퍼에 집중할 생각이다. 사실 여러 팀에게 러브콜을 보냈는데 우리 회사에 쉽게 오지 않더라.(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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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너에게만 반응해 노무현 공연의 신 박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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