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 회장은 '황제노역', 장애인활동가는 '몸빵노역'

[인터뷰] 벌금 갚으려 자진 노역 택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등록 2014.03.28 18:37수정 2014.03.2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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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때우러 가요. 벌금이 좀 많아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공동대표가 한 숨을 쉬며 말했다. 그는 지난 2012년 사망한 동료 활동가 고 김주영씨의 노제를 지내던 중 도로를 점거해 집시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약속한 이동 차선을 넘어섰다는 이유에서다.

박씨가 내야 할 벌금은 200만 원. 그가 전장연 활동을 맡으면서 달마다 받는 120만 원보다 큰 액수다. "은행 대출금이랑 생활비가 빠지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고 한다. 현행 형법은 벌금이 확정되면 30일 안에 모든 금액을 완납하도록 규정한다. 벌금 납부 기간을 넘긴 그는 현재 수배 대상에 올랐다. 지체장애 1급인 박씨는 결국 노역형을 택했다. 일당 5만 원씩 총 40일 동안 구치소에서 지내다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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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억원대의 벌금과 세금을 내지 않고 뉴질랜드로 도피했던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하루 5억원짜리 노역이 논란이 되고 있다. 허 전 회장은 지난 22일 귀국해 광주교도소 노역장에 유치되면서 하루에 5억원씩 벌금을 탕감받기 시작했다. 사진은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지난해 1월 22일 오클랜드에 있는 한 호텔에서 열린 KNC 건설 사장 이취임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이날 행사장에는 뉴질랜드 정치인과 교민 등 5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 연합뉴스


박씨에 앞서 노역형을 지낸 인물이 있다.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다. 회사 전산회계를 조작해 법인세 508억 원을 탈세하고 회삿돈 100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 판결을 받았다. 벌금 254억 원도 내야 했다.

그러나 허 전 회장의 일당은 5만 원이 아닌 '5억' 원. 일반인보다 1만 배 많은 일당을 받게 된 그는 닷새 만에 벌금 25억 원을 탕감 받았다. 지난 22일에 와서 주말동안 쉬고, 월요일에는 건강검진을 받고, 화·수요일에는 봉투 접기와 청소를 조금 한 게 전부다.

"장애인도 일당 5만 원으로 노역 사는데... 세상 참 불공평해"

허 전 회장과 '같으면서도 다른' 노역형을 지내게 될 박 대표. 그는 28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인터뷰에서 하소연을 털어놨다.

"저는 차선을 넘었다가 벌금형을 받았는데 그마저도 돈이 없어 하루 5만 원 씩 몸으로 때우러 가고, 누구는 부자에다가 큰 죄를 저질렀는데도 일당을 5억 원이나 받고. 세상 참 불공평하네요."

그러면서 박 대표는 "같은 노역을 지내는데 누구는 하루에 5만 원이고 누구는 5억 원인 게 말이 되냐"며 "기초생활수급자인 장애인들도 어떻게든 벌금을 내려고 비장애인이랑 똑같이 일당 5만 원으로 계산하고 노역형을 살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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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인 활동가 8명이 2012년 8월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벌금형을 거부하고 자진구속을 결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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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인 활동가 8명이 2012년 8월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벌금형을 거부하고 자진구속을 결의하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자진 노역을 위해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 이주영


무더위가 한창이던 2012년 8월, 중증장애인 활동가 8명이 노역신청을 하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두했다. 이들은 장애등급제 폐지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다 각각 30~12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자진 노역형을 선택한 활동가들은 벌금을 갚을 형편이 안 돼 노역을 택하게 됐다고 이 자리에서 털어놨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장애인들이 정부에서 받는 생활비는 1인당 평균 40~50만 원. 이 돈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장애인 활동가에게는 30~120만 원의 벌금이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당시 한 장애인 활동가는 "정부는 기초생활수급비로 월 43만 원 받는 내게 벌금 80만 원을 선고했다"며 "나는 어디 가서 5만 원도 못 벌어 온다, 차라리 노역을 살아 벌금을 물고 오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허재호 '황제출소' 하는데... 장애인은 활동보조인조차 내부로 못 불러와

허 전 회장과 이들은 출소 방식도 달랐다. '황제노역' 논란으로 노역 중단 조치를 받은 허 전 회장은 승용차를 광주교도소 안까지 불러와 몰래 빠져나갔다. 보통은 노역유치자가 걸어서 교도소 정문까지 나간 다음에 가족을 만나 귀가한다. '황제노역'에 이어 '황제출소' 논란이 불거진 이유다.

반면, 자진 노역형을 마친 장애인 활동가들은 몸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정문까지 나온 다음에서야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아 귀가했다고 한다. 박 대표는 "활동가들이 중증장애인이라 활동보조인의 도움이 필요하다"면서 "교도소에 들어갈 때는 활동보조인 도움을 받게 해줬는데, 출소할 때는 그렇게 안 해줬다"고 전했다.

노역형을 앞둔 박 대표는 기자와 통화하는 도중 "어유…"라면서 한숨 섞인 말을 여러 차례 내뱉었다.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장애인 인권 활동가들에게는 벌금형이 일종의 '탄압'입니다. 남들한테는 적은 액수일지 모르지만, 소득활동이 거의 없는 저희 입장에서는 큰돈이거든요. 그럼에도 어떻게든 노역을 살면서라도 인권운동을 이어가고 있거든요? 그런데 누구는 그런 노역이 형 마치려고 하는 가벼운 수단인 것 같아요. 뭐랄까…. 부당하네요. 같은 사람인데 말이죠."

인터뷰를 마무리하기 전, "하고 싶은 말이 없냐"고 그에게 물었다. 박 대표가 우스갯소리로 답했다.

"저도 가서 일당 좀 올려달라고 하려고요. 과연 될까요(웃음)?"

대법원 '벌금 대신 노역' 기준 설정... 황제노역 퇴출

한편 '일당 5억 원 황제노역' 논란으로 국민적 비난 여론에 휩싸였던 법원이 뒤늦게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나섰다.

대법원은 28일 전국 수석부장판사 회의를 열고 1억원 이상의 고액 벌금형을 선고하는 경우 벌금을 못 내더라도 노역을 하는 기간의 하한선을 정해 터무니없는 고액 일당이 부과되지 않도록 하는 등 개선 방안을 내놨다.

대법원에서 마련한 제도 개선안에 원칙적으로 벌금 1억원 미만이 선고되는 사건은 노역 일당, 즉 환형유치 금액이 10만원이 된다. 환형유치는 벌금을 내지 못하면 그 대신에 교정시설에서 노역을 하는 제도다.

특히 벌금 1억원 이상 선고되는 사건은 노역 일당이 벌금액의 1천분의 1을 기준으로 설정된다. 이 기준을 적용할 경우 허 전 회장은 일당 2540만원을 넘을 수 없게 된다. 대법원은 법원행정처와 각급 법원을 중심으로 후속 논의를 거쳐 조만간 세부 기준을 마련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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