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 쇠줄 매고 유서 써놓고 산다

[르포] 쇠줄-가스통 등 앞세우고 강제 철거 대비한 '움막 4곳'을 가다

등록 2014.04.14 10:33수정 2014.04.14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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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반대 밀양 주민들이 벼랑 끝에 몰려 있다. 한국전력공사(아래 한전)가 송전탑 반대 주민들의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철탑 공사장 4곳에 있는 움막농성장을 강제철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충돌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철탑 공사 현장 부지에서 움막 농성하고 있는 지역은 모두 4곳. 밀양 단장면 용회마을 101번, 상동면 고답마을 115번, 부북면 위양리 127번, 부북면 평밭마을 129번 철탑 현장이다. 도로 옆이나 공유지가 아니기 때문에 밀양시가 아닌 한전이 철거를 요구한 것이다.

한전은 주민들에게 13~14일 사이 자진철거해 줄 것을 요구했다. 주민들은 "철탑 공사를 멈출 때가지 자진철거할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 주민들은 밀양 부북면 위양리 장동마을, 단장면 용회마을 등 공사장 주변 입구에도 움막을 지어놓았고, 이것까지 포함하면 농성장은 10여 곳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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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 주민들은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129번 철탑 현장에 움막 농성장과 '무덤 구덩이'를 만들어 놓았다. 구덩이 안에 쇠줄을 매달아 놓고 가스통과 석유통을 갖다 놓았으며, 한옥순 할머니가 강제철거할 경우 가스를 틀겠다며 각오를 다지고 있는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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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 주민들은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129번 철탑 현장에 움막 농성장과 '무덤 구덩이'를 만들어 놓았다. 사진은 움막 앞에 철조망을 설치해 놓은 모습. ⓒ 윤성효


한전은 2013년 10월 송전탑 공사를 재개하면서 주민들과 곳곳에서 충돌했다. 주민들은 마치 전쟁을 치르다시피 했다. 한전은 밀양 4개면(부북, 상동, 산외, 단장)에 총 52개의 철탑을 세우고 있으며, 현재까지 공사에 들어가지 못한 현장은 움막농성장을 포함해 5곳이다.

한전과 경찰은 움막 철거를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주민에 따르면 한전 직원과 경찰관들이 움막농성장 주변에 서너 차례 다녀가기도 했다는 것. 주민들은 24시간 움막을 지키며 강제철거 시도에 대비하고 있어, 극도로 민감한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12일 <오마이뉴스>는 4곳 철탑 부지에 있는 움막농성장을 언론사 가운데 처음으로 다녀왔다. 주민들은 강제철거에 대비해 그동안 준비해온 비밀장소까지 공개했다.

[129번지 움막] '무덤 구덩이'에 가스통, 석유통, 쇠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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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 주민들은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129번 철탑 현장에 움막 농성장과 '무덤 구덩이'를 만들어 놓았다. 사진은 움막 앞에 꽃동산을 조성해 놓은 모습. ⓒ 윤성효


밀양 부북면 대양2리 평밭마을. 이남우(72)씨는 "사람으로 치면 이마에 해당하는 부분에 철탑이 들어선다"고 표현했다. 127번 철탑 현장에는 한전이 벌목을 다 해놓았고, 주민들은 움막을 지어놓았다.

움막은 철재로 짓고 천막을 씌워 놓았다. 주민들은 움막 안에서는 24시간 생활하고 있다. 집에 왔다 갔다하는 주민도 있지만, 이곳에서 먹고 자는 주민들도 있다. 움막 입구는 개들이 지키고 있고, 그 앞에 태극기를 매달아 놓았다.

주민들은 움막에 쇠줄을 매달아 놓았다. 한전이 움막을 강제철거할 경우 쇠줄을 목에 감아 버티려는 의도다. 한옥순(66)씨는 "한전이 움막을 철거하겠다고 들어오면 쇠줄을 목에 감을 것"이라며 "허리도 아닌 목에 쇠줄을 감고 있는데 잡아당기면 목이 어떻게 되겠느냐. 바로 살인미수다"고 말했다.

움막 바로 앞에는 '무덤 구덩이'를 파놓고, 넓은 천막으로 덮어 놓았다. 밤에도 주민 2명은 구덩이 안에서 잠을 잔다. 구덩이 안에는 쇠줄이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또 구덩이 안에는 가스통과 석유통, 오물통도 비치해 놓았다. 주민들은 움막 강제철거를 할 경우 이 통을 다 열어 불을 질러 버리겠다는 각오다. 주민들은 유서를 써놓고 지낸다.

한옥순씨는 "정부와 한전은 이 문제를 절대 돈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이곳 할매들은 움막을 강제철거한다면 죽을 각오로 싸울 것이고,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끌고 다니면서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움막에서는 127번 철탑 움막농성장과 최근에 세워진 126번 철탑이 한눈에 들어왔다. 주민들은 이곳 움막 앞에 꽃동산을 만들어 놓았다. 활짝 핀 꽃이 열매를 맺을지, 아니면 움막 철거 과정에서 짓밟히거나 뽑혀나갈지 이 꽃들의 운명을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127번지 움막] "몸 아프지만 떠나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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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 주민들은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129번 철탑 현장에 움막 농성장과 '무덤 구덩이'를 만들어 놓았다. ⓒ 윤성효


밀양 부북면 위양리에 있는 127번 철탑 현장에 움막이 지어진 지는 오래됐다. 윤여림(75) 할아버지 등 주민들이 지난해 추석 무렵, 움막 앞에 '무덤 구덩이'를 파놓기도 했고 최근에는 움막 앞에 깊은 구덩이를 또 파놓았다.

또 움막 앞에는 철조망도 설치해 놓았다. 이곳도 주민들은 24시간 움막을 지키고 있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개도 키우고 있으며, 올봄에는 꽃동산도 조성해 놓았다.

정임출(73)씨는 "우리는 죽어도 이곳을 지킬 것"이라며 "서민은 없고 기업만 살아야 하나"며 정부와 한전을 비난했다. 손희경(79) 할머니는 "요즘 몸이 아프지만 이곳을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다"며 "한전은 객지에 나가 사는 자식들을 찾아가서 송전탑에 찬성해 달라고 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말했다.

손 할머니는 "둘째 아들이 강원도에 살고 있는데, 한전 직원들이 찾아와서 움막 농성하지 말라고 하더란다"라며 "우리는 보상도 필요 없고 이대로 살게만 해주면 된다"고 강조했다.

곽정섭(68)씨는 "며칠 전에 보니까 이곳 주변에 빨간색 노끈을 산속에 매달아 놓았던데, 한전이 밤에 쳐들어오기 위해 표시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며 "129번 농성장 주변에도 그렇게 해놓았다고 해서 모두 풀어서 갖고 와버렸다"고 말했다.

[115번지 움막] "주민 모두 모여 저항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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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시 상동면 고답마을 주민들은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115번 철탑 현장에 움막 농성장을 만들어 놓고, 철야 농성하고 있다. ⓒ 윤성효


115번 철탑은 밀양 상동면 고답마을 과수원에 들어선다. 한전은 아직 벌목 작업을 하지 못했고, 위치만 파악해 놓은 상태다. 주민들은 철탑이 들어설 곳에 움막을 지어놓고 24시간 농성하고 있다.

주민들은 움막에 필요한 전기를 '태양열 발전'을 이용해서 사용한다. 움막 안에는 역시 쇠줄을 매달아 놓았다. 움막 강제철거를 시도할 경우 주민들은 쇠줄을 목에 감고 버티겠다는 의도다.

한전이 움막 자진철거를 요청하는 공고문을 게시해 놓았지만, 주민들은 그 공고문을 바닥에 내동댕이쳐놓았다. 이곳 움막농성장 위로 헬기가 수시로 날아다니며 공사 자재를 실어다 날랐다. 헬기가 지나갈 무렵에는 옆 사람의 말이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소음이 심했다.

김귀태(67)씨는 "하루에 헬기가 40번은 왔다갔다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재화(58)씨는 "우리 마을 주민들은 모두 송전탑에 반대하다시피 한다"며 "지금은 논밭에 일한다고 얼마 없지만, 만일에 무슨 일이 있으면 모두 모여 저항할 것"이라고 말했다.

[101번지 움막] "밤마다 경찰 쳐들어오는 악몽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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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시 단장면 용회마을 주민들은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101번 철탑 현장에 움막 농성장을 만들어 놓고, 철야 농성하고 있다. 사진은 101번 철탑 농성장에서 바라본 100번 철탑 공사 현장(원안)으로, 헬기가 장비를 내리고 있는 모습. ⓒ 윤성효


밀양 단장면 용회마을 101번 철탑 현장에 있는 움막농성장은 산꼭대기에 있다. 마을에서 걸어서 30분 넘게 걸어 올라가야 한다. 한전은 이곳에 철탑을 세우기 위해 벌목만 해놓은 상태다.

주민들이 철탑 현장과 그 옆에 움막농성장 두 곳을 지어 놓았다. 이곳에서 보면 100번 철탑 공사장이 한눈에 보인다. 헬기가 계속해서 장비를 실어다 나르고 있다.

102번 철탑 공사장은 밀양 산외면 보라마을 논 가운데 있다. 최근 한전이 마을 주민들과 보상에 합의하면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이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102번 철탑 공사 현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움막은 초등학교 교장 출신인 고준길(72)씨 등이 지키고 있다. 송루시아(59)씨는 "한전에서 자진철거하라고 한 뒤부터 한전 직원과 정보과 경찰들이 몇 차례 이곳 주변을 살피고 갔다. 그들은 처음에 등산객을 가장해서 왔더라"며 "농성장에 사람이 몇 명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

송씨는 "우리는 24시간 움막을 지키고 있다"며 "이곳에는 가전제품도 없고, 해가 뜨면 일어나고 지면 쉬었다가 자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들어 경찰이 쳐들어오는 악몽을 계속 꾼다"고 말했다.

평밭마을에서 만난 이남우(72)씨는 "거짓이 참을 억누를 수 없다"며 "누가 봐도 이것은 아니다"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봉건주의 시대도 군주는 백성을 두려워했다. 지금 정부와 한전은 막무가내다. 독재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전쟁 때 국토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느냐. 돈으로 주민들의 입을 막는 비겁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송전탑 때문에 주민 공동체가 파괴된 것이 제일 가슴 아프다."
#말양 송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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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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