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상담 아빠와 하겠다는 아이들은 단 0.9%

[너희가 중2를 아느냐 ⑦] 자녀로부터의 부모 독립이 필요하다

등록 2014.04.15 18:58수정 2014.04.1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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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문제는 가정 문제로 수렴될 때가 많다. 부모 불화로 인해 평온할 길 없는 집안 분위기, 자식을 끊임 없이 간섭하는 '교육욕' 높은 부모는 아이들에게 최악이다. 이는 아이가 공부를 잘 하거나 못 하거나 하는 것과 상관 없다. 성적이 좋은 아이는 그 좋은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그렇지 않은 아이는 또 그 좋지 않은 성적으로 인해 부모의 자장권 아래서 벗어나지 못한다.

칼국수 집에서 아이들 상담, 내가 유별난건가?

학년 초부터 아이들과 점심 시간을 이용해 상담을 겸한 첫 대화를 나누었다. 일명 칼국수 집 상담이다. 학교 앞 칼국수 집에서 두 명씩 짝 지은 아이들과 칼국수 한 그릇씩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식이다. 점심 식사 상담을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마지막 두 명의 아이들과 대화를 나눈 게 바로 어제였다.

칼국수를 먹으며 하는 상담이라니 유별나게 보일 법도 하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아이들이나 나나 그나마 조금 여유 있는 시간이 점심 시간밖에 없었다. 많은 아이가 종례하자마자 곧장 학원 차를 타고 수업을 받으러 간다. 학원 차가 오지 않더라도 집으로 가 이른 저녁을 먹고 학원으로 가야 한다. 담임이 따로 쓸 만한 상담 시간이 없는 것이다.

칼국수 집 상담을 하면서 아이들 대다수가 학원 다니는 일을 무척 싫어한다는 걸 알았다. 학원 공부에서 재미나 의미를 찾는 아이들은 두어 명밖에 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학원 때문에 친구들과 제대로 놀지도 못하는 걸 가장 큰 문제로 여기고 있었다. 스스로 공부하는 일의 재미와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자기만의 계획과 방식으로 공부하는 습관이나 태도를 기르지 못하는 문제 또한 심각해 보였다.

이렇게 된 데는 학원에 다니는 일이 부모의 강권으로 이루어진 탓이 크다. 우리 반 아이들 중에 스스로 원해서 학원에 다니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대다수 아이가 엄마가 다니라고 해서 다닌다고 말했다. 그래서 많은 아이가 일부러 빌미를 만들어서라도 학원 수업에 빠지려고 한다.

그렇더라도 아이들이 학원 수업에서 나름대로 의미를 찾는다면 별 문제가 없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들은 학원에서 수업을 하는 것에 대해, '그냥 그래요'나 '재미 없어요', '힘들고 지겨워요' 등의 말로 대꾸했다. 자발성이 없는 공부가 가져오는 처참한 모습이다.


아이를 대신해 자식의 모든 것을 챙겨주려는 부모들의 태도 문제도 심각하다. 아이가 학교 생활에서 겪는 문제를 일일이 대신 처리하려는 엄마들이 많다.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기는 엄마 아래서 아이가 문제 상황을 스스로 분석하고 헤쳐나가려고 마음 먹을 필요는 거의 없다. 무언가를 스스로 하려고 마음 먹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얌전하고, 침묵을 지키는 아이들이 많다. 교사 말에 고분고분하고 순종함으로써 관심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아이를 자세히 보면, 표면의 얌전과 침묵 뒤에 의기소침과 소심, 소극 등이 깔려 있기도 하다.

꼭두각시 같은 아이들, 헬리콥터 맘 아래서 애어른이 된다

엄마가 쥔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 같은 아이들이 있다. '헬리콥터 맘'이라는 말을 아는가. 다 자란 자식 주변을 헬리콥터처럼 맴돌며 대학 입시와 성적, 취업 문제는 물론 결혼 생활까지도 간섭하는 엄마를 가리키는 신조어다. 그런 꼭두각시 같은 아이들이 헬리콥터 맘 아래서 애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

"'다른 아이는 몰라도 내 자식만은 '주의"에 빠진 부모 문제 또한 눈여겨 보아야 한다. 자식이 학교 생활에서 즐거움과 의미를 찾지 못하고, 성적이 떨어지며, 부모에게 거세게 반항하는 이유를 자식의 친구들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착하고 순하던 자신의 자식이, 이른바 '질 나쁜' 친구들 때문에 변했다고 여기는 전형적인 대한민국 부모의 모습이다.

청소년 전문가들에 따르면, 자녀 교육과 관련하여 부모가 담당하는 역할이 서로 다르다. 아버지는 자녀의 기본적인 생활 태도나 인성, 예의 범절 등의 문제를 맡는 게 좋다고 한다. 넓게 말하면 자녀가 사회성을 기르는 데 아버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대신 학교 공부나 성적에 관련된 문제는 어머니가 맡는 게 자연스럽다고 한다.

부모가 이러한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녀들과 차분하고 진지하게 자주 대화를 나누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자식과 대화를 나누는 부모들의 말을 들어보면 문제가 많다. 특히 권위적인 말하기 방식에 빠진 아빠들이 문제다. 많은 아빠가 일방적인 훈계나 강압적인 지시를 대화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는 깨인 아빠라며 자식에게 먼저 말을 걸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늘 자신의 주장만 펼치고 마는 것이다.

2010년 여성가족부에서 전국가족실태조사를 벌인 적이 있다. 조사 내용 중에 아이들이 고민이 있을 때 누구와 상담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그 결과 아빠와 상담하겠다는 아이들은 0.9퍼센트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아버지들의 약 60퍼센트는 아이들이 자신들을 대화 상대로 생각한다고 믿는다고 한다[이승욱 외(2012), <대한민국 부모>, 122쪽 참조].

가족의 현실은 아이들의 많은 부분을 좌지우지한다. 부모가 갖고 있는 자녀관과 양육관 등은 아이들의 태도 형성에 큰 영향을 준다. 문제 가정 아래서 문제아가 생겨날 가능성이 높다. 부모 문제가 그대로 아이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자녀를 자신의 손아귀 안에 쥔 채 쥐락펴락하려는 부모들이 많다. 자식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으로 여기는 부모들 또한 부지기수다. 공부 잘 하고 좋은 대학 가는 자식을 통해 대리 만족하는 이들이 대한민국 부모의 자화상이다.

이들은, 삶의 보람과 의미를 자식에게서 찾으려는 자신들이 아이들을 잡아먹는 '괴물'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자식의 행복을 위하는 것이라며 자식들을 철저하게 뒷받침하는 자신들의 행위를 희생과 사랑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그것이 자식들을 질식하게 하고, 대책 없이 엇나가게 하는 것인 줄도 모른 채로 말이다.

자식으로부터 '졸업'하는 부모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지 않을까. 한결같은 모습으로 자식의 곁에 있으면서, 그들이 실수하고 실패하며 아파할 때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부모여야 하지 않을까.

부모들이, 자식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삶의 확고한 기준과 원칙을 찾았으면 좋겠다. 부모들이 남들과 주변을 바라보지 말고 자신만의 뚜렷한 철학과 가치를 자식에게 전해 줄 수 있다면 좋겠다. 부모와 자식간의 따뜻하고 품위 있는 관계도 바로 이런 데서 생겨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너희가 중2를 아느냐 #부모 #자식 #대화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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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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