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소'의 다리가 부러진 이유는?

['고기 킬러' 채식 전도사 되다⑭] 가축이 행복해야 인간이 건강하다

등록 2014.05.10 17:30수정 2014.05.1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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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고기를 아주 좋아했고, 먹는 것에 대해 어떤 '관점'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밥상 위의 동물을 한낱 '고기 조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동물은 물론 인간, 지구를 심각하게 해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연재기사에서 저는 채식주의만이 옳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고기를 먹기 전 꼭 생각해봐야 할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고민하면서 자기만의 관점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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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과도한 체중 때문에 다리가 꺾어진 소. (아래) 지나치게 뚱뚱한 몸을 이끌고 걷느라 발에 염증이 생겨버린 닭. SBS 스페셜 <동물, 행복의 조건 "고기가 아프면 사람도 아프다">의 한 장면. ⓒ SBS


미국의 젠틀반 농장 동물 보호소에는 기괴한 동물들이 살고 있다. 엄청나게 거대한 체구의 소는 다리가 체중을 견디지 못해 꺾어져 버렸다. 비대한 근육과 지방조직으로 지나치게 뚱뚱한 몸을 지탱하느라 발에 염증이 생긴 닭도 있다.


공장식 농장과 도축장에서 구조된 이 동물들은 자연에서는 볼 수 없는 '인공 가축'이다. 이들은 고기 생산을 목적으로 덩치가 큰 종자만을 선별적으로 번식 시키는 과정에서 출현하게 되었다.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은' 고기를 얻으려는 욕심의 산물인 것이다.

20세기 공장식 축산의 도래 이후 인류는 유례 없는 육식을 향유하고 있다. <가축이 행복해야 인간이 건강하다>(박상표·개마고원)는 이러한 풍요 이면의 무서운 현실을 경고한다.

가축을 괴롭힐 수밖에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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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이 행복해야 인간이 건강하다 ⓒ 개마고원

오늘날의 가축 농장은 대부분 공장식 농장이다. 공장식 농장은 '생산량은 최대화'하고 '비용은 최소화'하는 집약적인 생산라인으로 가동된다. 이곳에서 가축은 '이윤 추구를 위한 상품'으로 간주되며 '공장에서 자동차를 찍어내듯이' 생산된다.

사회성이 강하고 지능이 높은 돼지는 외부 자극이 차단된 비좁은 축사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결과 다른 돼지의 꼬리를 물어뜯는 공격성을 나타낸다. 돼지의 공격성을 완화 시키려면 사육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그러나 공장식 농장에서는 돼지의 송곳니와 꼬리를 잘라 버리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비좁은 닭장에 갇힌 닭도 스트레스 때문에 다른 닭의 머리나 항문을 피가 날 때까지 쪼아댄다. 양계업계에서는 닭들이 서로 공격하지 못하도록 부리를 잘라 버린다. 또한 산란율을 높이기 위해 계사의 불을 끄고 굶겨서 강제로 털갈이를 시킨다. 

송아지 고기용으로 사육되는 송아지는 태어나자마자 어미에게서 떨어져 비좁은 상자에서 사육된다. 송아지 고기는 연한 분홍빛을 띨수록 고급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농장에서는 송아지에게 철분을 제거한 대용유를 먹여 빈혈을 앓게 한다. 그러면 송아지는 자신의 털이나 배설물을 핥아서 철분을 보충하려고 한다. 농장에서는 이런 행동을 막으려고 송아지의 목을 묶어 고개조차 돌리지 못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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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집생활의 스트레스 때문에 쇠 울타리를 물어뜯는 돼지. 공장식 농장의 돼지들은 자극이 박탈된 무료한 생활로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다. <가축이 행복해야 인간이 건강하다>의 본문을 촬영한 사진.


이런 비인도적인 사육의 배경에는 효율성과 이윤만 중시하고 동물의 고통은 배려하지 않는 시스템이 있다. 그렇다고 가축을 기르는 농민이 가장 많은 이윤을 얻는 것도 아니다. 사료 값을 비롯한 각종 비용을 제하고 나면 농민에게 돌아가는 몫은 얼마 되지 않는다. 공장식 축산에서 가장 많은 이윤을 거두는 쪽은 사료·도축·가공·유통 등 수익이 발생하는 모든 부문을 소유한 다국적 거대기업들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축산 농민은 도산하지 않기 위해 생산원가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그 결과, 가축을 좁은 공간에서 기르고 항생제와 화학약품을 투여하는 방식을 피할 수 없다. 빨리 살찌우기 위해 거세를 시키고 성장호르몬제를 사용해야 한다. 

공장식 농장에서 사용되는 항생제·농약·살충제·성장촉진용 호르몬 등은 인체 건강을 위협한다. 가축의 사육과 도축에서 발생하는 대장균 감염은 식중독과 리콜 사태로 이어진다. 값싼 고기가 야기한 과도한 육식은 비만을 '신종 전염병'으로 만들었다. 

공장식 농장은 광우병·구제역·조류독감·돼지독감을 비롯한 치명적인 질병의 발원지로 지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장식 축산이 '바이러스의 슈퍼 배양소'이며 새로운 전염병을 끊임없이 양산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가축의 분뇨를 비롯하여 농장에서 배출되는 각종 유해물질이 야기하는 환경오염도 심각하다. 세계 식량기구는 축산업을 '환경을 위협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했다.

이런 현실에 비추어 공장식 축산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공장식 축산은 성업 중이다. 적은 비용으로 많은 고기를 공급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농민에게만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 지나치게 많은 식품을 먹어치우고 막대한 양을 버리는 소비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보다 저렴한 가격에, 보다 많이 먹으려는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두 번 먹던 고기를 한 번으로 줄여서라도 동물·인간·지구를 배려한 축산물에 좀 더 비용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농민이 복지 축산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농민이 잘 살지 못한다면 동물 복지를 법으로 제정한들 제대로 시행될 리 없기 때문이다.

먹는 행위는 '정치적 행위'

이 책은 육식에 반대하거나 동물의 권리 따위를 주장하지 않는다. 인간사회에서 육식이 사라질 거라는 가정도 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 책이 주장하는 동물 복지가 오로지 '인간의 건강과 안전'에 입각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저자가 과도한 육식의 폐단을 지적하고 "육식을 지금보다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내가 이번 연재기사에서 이야기하려는 바와 다르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채식주의자는 육식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육식을 하지 않음으로써 공장식 축산의 폐해를 줄이는 채식주의자의 실천을 '극단적인 행동'으로 폄하한다. 또한 채식주의자가 고기 한 점을 먹기라도 하면 '변절자'라고 비난한다.

이렇게 '완전한 채식' 아니면 '완전한 육식'에 치우친 사고방식은 "전부가 아닐 바에는 전무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양산했다. 그 결과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류가 태곳적부터 그래왔듯이(하지만 그 모습은 너무나 달라진) 육식을 멈추지 않았다.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책의 주장처럼 '동물 복지를 배려하되 육식을 줄이는' 다양한 실천을 할 수 있다. 공장식으로 생산된 축산물의 주요 유통 경로인 패스트푸드 끊기부터 시작해볼 수 있다. 공장식 축산물 대신 동물복지 축산물을 이용할 수 있다. 각자의 환경에서 '적당히 건강하게' 먹는 방법을 모색해볼 수 있다. 보다 나은 육식은 분명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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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 시판 중인 동물복지인증 계란. 오른쪽 상단 붉은색 동그라미 안의 동물복지 인증마크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제도는 2012년 산란계(계란)를 대상으로 시행되어 2013년 돼지, 2014년 육계, 2015년 한우·육우·젖소(우유) 순으로 확대 시행된다.


공장식 축산은 효율·속도·이윤만을 중시하는 시스템의 산물이다. 눈에 보이는 성과만을 중시하는 사회, 생명을 생명으로 간주하지 않는 사회가 행복하지 않다는 증거는 우리사회 곳곳에 드러나 있다. 

오늘날 먹는 문제는 생존을 위한 양분을 얻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지속가능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오늘날 먹는 행위는 정치적 행위'라는 철학자 피터 싱어의 말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둔 게 아닐까.

(* 다음 글에 계속됩니다.)

가축이 행복해야 인간이 건강하다 - 가축사육, 공장과 농장 사이의 딜레마

박상표 지음,
개마고원, 2012


#가축이 행복해야 인간이 건강하다 #공장식 축산 #동물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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