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만 버티고 가거라
살아 있어도 구해줄 것 같지 않아"

[어른들이 미안하다] 세월호 참사 정부의 태도, 잊지 않겠다

등록 2014.04.25 22:07수정 2014.04.25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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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고 8일째인 23일 오후 수학여행에 나선 2학년 학생들 다수가 희생된 경기 안산시 단원고등학교의 모습이 한 시간 가량 언론에 공개됐다. 희생된 학생들이 수업하던 교실을 비롯해서 교내 곳곳에는 무사귀환을 바라는 선후배와 친구들이 가져온 꽃, 사탕, 빵, 음료수 등이 메모와 함께 놓여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사고 당일인 16일 오후 3시부터 17일 밤 1시 20분까지, 나는 세월호 승선자 명단을 알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걸고 페이스북에 거듭 도움을 청했다.

"승선자 명단 어디 나와 있나요? 보신 분 알려주세요."

친구들과 놀러간다고 나간 아들에게 전화 연락이 안 되었다. 서른이 넘었지만 지금도 하루에 몇 번씩 전화 통화를 하는 아들이다. 며칠 전에 지나가는 말로 "제주도는 차를 가지고 가야겠지요?" 하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며칠 날 간다고 말은 안 했는데 그게 혹시 오늘이었나! 아들은 나갈 때 자동차를 가지고 나갔다. 우리가 사는 고양시에서 차를 가지고 제주도로 가려면 분명 인천에서 배를 타야 할 텐데… 아들은 연락이 안 되었다.

인천여객터미널에서는 승선자 확인은 그곳 소관이 아니라했다. 중앙재난대책본부는 계속 통화 중이고, 청해진해운은 아예 전화를 안 받았다. 고향 후배인 한 기자는 진도에 가 있는데, 자기들도 확인이 안 된다고 했다.

온갖 정황이 머릿속을 누비고, 속이 까맣게 탔지만, 승선자 명단을 확인하기 전에는 가족들에게조차 말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오전 1시 20분에 아이가 귀가했다. 자동차 충전기의 잭이 깨져서 핸드폰 충전을 못 했다고. 제주도 가는 배는 타지 않았다고.

세월호에서도 다행히 '탈출'하여 돌아온 사람들이 있다. 우리 아이만, 돌아온, 그 부모들 심정이 과연 기쁘기만 할까? 조난당한 배를 탈출하여 구사일생으로 집에 돌아온 아이들 마음이 사고 이전과 똑같을까? 국가는 이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하고 최선의 보호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세월호 사고 피해자 대부분은 경기도민이다. 사고 당일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현장에 내려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뉴스타파> 화면에 등장한 어느 학부모와 도지사의 대화를 듣고, 앞으로 경기도민이 도지사를 잘 뽑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묵묵히 사람들 사이에 끼어 서 있는 도지사에게 남자분이 물었다.


"지사님은 여기서 뭐하시는 겁니까? 구조대책위나 해경청에 말이라도 해줄 겁니까?"

대답이 참 걸작이었다.

"제가 경기도지사라 경기도에서는 좀 영향력이 있는데 여기는 경기도가 아니고…."

경기도민이 왜 저이를 지사로 뽑았을까? "물론입니다. 제가 지금 청와대든 대책본부든 뛰어 들어가서 애들 살려내라고 뒤집어 놓겠습니다" 정도는 해야 다음에 어디 출마하면 찍어줄 것 아닌가. 그날 저녁 시를 몇 수 지어 인터넷에 올렸다가 그분은 비난 바가지를 덮어썼다. 수많은 경기도민 조난당한 판에, 도백이 제 할 일 안 하고 시 쓰고 있느냐는 비난이었을 것이다.

반성했다. 지난 일주일간 모두들 반성했다. 남은 실종자 모두가 가족 품으로 돌아오기를 누구나 기도했다. 아침에 잠이 깨는 순간부터 온 국민이 숙제를 하듯 반성하고 기도했다. 각자 해온 일, 살아온 태도, 타기하면서도 체득된 이기심을 반성했다. 사회 구조에 틈이 생긴 것에 각자 일조를 했노라고 반성했다. 그래야 아이들이 돌아올 것 같았다.

그러나 개인의 반성을 독려하여 구조 활동 부실 책임에 물을 타는 권력자, 정치가, 언론인, 종교인들에게는 다 아는 한마디를 스매싱했다.

"너나 잘 해."

구조만 해준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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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꿇고 애원하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 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을 찾아 피해 가족들의 요구사항을 듣던 중 한 실종자 가족이 무릎을 꿇고 호소하고 있다. ⓒ 이희훈


주문 외듯 '얘들아 돌아와, 얘들아 돌아와'를 거듭하다 보니 잊었던 동요가 떠올랐다.

"얘들아 오너라 달 따러 가자 장대 메고 망태 들고 뒷동산으로. 뒷동산 올라가 무등을 타고 장대로 달을 따서 망태에 담자."

인왕산 아래 사는 대통령을 바라보며 도움을 구했다. 하늘에 피 묻은 달이 보이는 듯했다. 빤히 보이는 근해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손 놓고 지켜보는 일은 견디기 힘든 노릇이었다.

대통령이 현장에 다녀간 날 기대는 상승하였다. 첫날부터 손 놓고 있던 구조가 활발히 진행되려니 했다. 한 어머니는 대통령 앞에 무릎을 꿇고 읍소했다. 아이들에게서 살려달라는 소식이 온다고, 구해달라고. 무릎 꿇을 입장이 바뀌었다는 원칙 따위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구조에 진력해준다면 "유족충", "선동꾼", "종북좌빨"이라는 더러운 소리 따위는 다 무시할 수 있었고, 무릎 꿇기 아니라 엎드려 길 수도 있었다. 국민들 모두.

약속은 깨라고 존재하고 기대는 무너지라고 존재한다는 냉소적인 말이 있다. 대통령은 현장에서 1분 1초가 급하니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명령했다. 모든 방법으로 구조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시행되지 않았다. 그 이유를 언론들은 면피하듯 반복했다. 시행되지 않는 명령은 혹시라도 생존해 있을지 모를 아이들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통령이 다녀간 후 하루 동안 네이버 메인 화면에는 '책임자 엄중처벌'이라는 기사 제목이 조등처럼 걸렸다. 그 위에는 '시신 20구 인양'이라는 제목이 물을 뚝뚝 흘리며 적혀 있었다. 가장 먼저 시행된 명령은 '유언비어 유포자 엄정 대응, SNS 유언비어 엄정 대응'이었다. 경찰은 아이들이 배에서 보냈다는 카톡이나 페이스북 메시지도 모두 가짜라고 했다.

정부는 진도와 안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했다. 혜택과 통제가 함께 제공되는 조치였다. 뭔가 순서가 뒤바뀐 게 아닌가 불안감이 들었다. 구조 활동에 방점이 찍혀야 하는데, 단 한 명도 구조되지 못한 상황에서 왜 책임과 처벌에 대해서 말이 무성할까.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눈 밝은 이들이 정치를 비평하고, 시민이 정치를 감시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합리적 의혹과 분석도 유언비어인가. 한두 사람 건너면 금세 가족 공동체처럼 긴밀한 나라에서, 누가 사고를 당했건 말건 구조를 하건 말건 내버려둘 수 있는가 하는 말들이었다.

이틀 사흘이 지나도, 기다리는 생환 소식은 한 건도 전해지지 않았다. 뉴스 앵커 손석희씨가 참척당한 이들의 입이 되어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으나, 뜻밖에도 그의 프로그램을 징계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삼별초의 난 이래 가장 어수선하다는 진도에서 무르익고 삭아 바람보다 깊은 상여소리 대신, 팽목항에 해병대 특수부대 출신들의 텐트가 쳐졌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하루는 목이 콱 메는 소식도 왔다. 봉사요원으로 가 있는 친구로부터였다. 한 엄마가 세월호 가라앉은 바다를 바라보며 안 보이는 아이를 타이르고 있더라고 했다.

"○○야, 그만 버티고 가거라. 살아 있어도 구해줄 것 같지 않아. 그만 가서 쉬어. 깜깜한 데서 춥고 배고프잖아. 엄마가 곧 따라가서 안아줄게."

목마르고 굶주린 아이들이 차디찬 바닷물에 잠겨 견뎌내기 어렵겠다 싶은 나흘째였다. 물론 이때도 구조 활동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국민들은 아마 잊기 어려울 것이다. 반은 죽은 것과 같은 희생자 가족들에게 보여준 정부 관료들의 요식적인 태도와 방법이 없다는 표정들을. 상식을 벗어나던 돌출행동들을. 그것을 보는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내가 혹시 재난을 당하면 맞닥뜨릴 철벽 같은 모습이구나 하는 위축감을 부정할 수 없었다. 힘이 없다고 눈치를 모르겠는가.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 말한 대통령... 그 대화 잊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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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끝까지 기다릴께" '세월호 침몰사고' 6일째인 21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부두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자식의 이름을 부르며 "끝까지 기다릴께" "사랑해" 라며 오열하고 있다. ⓒ 권우성


애초 조난사고 자체는 오히려 단순했다. 국민들을 경악하게 만든 건, "이게 정말 대한민국의 실력인가!"라고 반문할 수밖에 없는 구조활동 부실이었다. 망망대해도 아닌 동네 바다에서 조난당했는데 한 명도 구조해내지 못했다. 대부분 국민들이 사나운 늑대에게 물어뜯기는 악몽을 꾸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구조해달라는 가족들의 호소가, 시신이라도 온전케 찾아달라는 애원으로 변하기까지 정부가 보여준 태도는, 시간을 끌어 '유가족 무릎 꿇리기'로 보일 지경이었다.

오래도록 비위가 가라앉지 않는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사망자는 150명이 되었다. 상당히 훼손되어 가족도 그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시신들이 수습되고 있다. 이제 살아남은 사람들을 어찌할 것인가. 질 나쁜 부조리극 같은 이 상황에서 그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구체적인 안을 듣고 싶다.

이미 엊그제부터 악질 누리꾼들은 세월호 관련 기사에 보상금에 관련한 악성 댓글을 달고 있다. 소위 보수논객이라는 지만원씨는 유족들을 향해 '시체장사'라는 말로 칼을 빼어들었다. 비정규 직원들로 선장과 승무원 수를 채우고, 대외 접대비에 엄청난 지출을 하던 청해진해운은 승객 탈출을 돕다 순직한 직원의 장례비 지급을 두고 잡음을 일으키기도 했다.

어느 안 보이는 손들이 희생자 가족들을 조롱할 준비를 마친 것 같다. 여느 예에 비추어, 이제는 돈으로 밀고 당기는 순서가 기다리고 있다. 보험 내지 보상금이 논의되는 동안 유족들이 과도한 모욕을 당하지 않기 바란다. 정부가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이 과정을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어주기 바란다. 시체장사니 자식 목숨 값 불리기 운운으로 국민 정서를 모욕하고 분열시키는 사람들에게 유언비어 배포자 이상으로 엄정 대응해주기 바란다.

딸이라는 말. 아들이라는 말. 향기롭고 보드라운 말이다. '그리운 것은 다 님'이라던 어른들 말씀대로, 자식은 '그리운 님'이다. 품안에 있던 자식을 정부의 부주의로 잃은 분들에게 성의를 다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나라도 아니다.

겨우 봄을 지나고 있을 뿐인데, 올해를 규정하는 사자성어가 인구에 회자된다. '자력갱생' '각자도생' 등이다. 불행하고 허탈한 현상이다. 권력자와 부자도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세상에 서민들이 무슨 수로 자력갱생하며 각자도생하겠는가. 그렇지 못하기에 우리는 세금을 내어 국가를 운영하고 정부 관료들에게 급여를 지급한다. "나라의 주인이 누구입니까?"라는 학부모의 질문에 "국민이지요"라고 답했던 진도 체육관에서의 운명적인 대화를 대통령이 잊지 말기를 부탁드린다.

더불어 우리들은 '약한 자의 힘은 연대'라는 진리를 붙들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가난하다고 하여 사랑을 모르겠는가.

[덧붙이는 시]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 조정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 이 소박하고 위대한 명제가 실현되었다면 세상은 바뀌었을 것

재만 남았을 때 비로소 울음은 오는 것. 바람 불고 비 내려 재마저 흩어졌을 때 울음은 비로소 생명을 얻어 유리하는 것. 비천하고 듣기에 지루한 것. 승냥이들은 그 자리에 닿지 못 하도록 울을 치고 으르렁거리는 것. 울음보다 빛나는 사과를 던져주고 굶주림의 두려움을 혼미의 강에 풀어놓고 가는 것.

타오르던 절규와 수심 깊은 희망이 끝났을 때 울음은 오는 것. 넋을 잃은 아무렇지 않음의 젖가슴에서 밤마다 흰 젖처럼 뿜어져 나오는 것.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자들을 불안하여하는 달이 밤마다 아홉 개씩 떠올라 숨을 곳 없을 때 들쥐처럼 그 울음을 함께 울 것.


#세월호 #안산 #진도 #대통령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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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2000 한국일보로 등단. 시집 <이발소그림처럼> 공동저서 <그대, 강정>.장편동화 <너랑 나랑 평화랑>. 2011 거창평화인권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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