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민 국정원 2차장과 사노맹, 정주영, 리영희

[인물탐구] 김수민 신임 국정원 2차장... 대검 공안부장 물망에 3번 올라

등록 2014.05.09 08:11수정 2014.05.09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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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에게 희망적인 기분을 주려고 자주 불러요. 목청을 많이 써야 하는 노래이다 보니 요즘은 힘이 좀 들던데."(<국제신문>, 2008년 12월 5일 자)

그가 가수 김수철씨가 불렀던 '젊은 그대'를 최고의 애창곡으로 꼽았을 때 좀 뜻밖이었다. 당시 '50대 중반'이라는 나이로만 치면 '거치른 벌판으로 달려가자 / 젊음의 태양을 마시자'로 시작하는 이 노래보다는 그의 또 다른 애창곡이라는 '호수에 잠긴 달'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호수에 잠긴 달은 당신의 고운 얼굴'로 시작하는 '호수에 잠긴 달'은 남성 중창단 '세 부엉'이 불렀던 노래다.    

"누구나 그리는 그 무엇이 있죠. 꼭 이성이 아니어도. 대상을 향해 진심을 다하는 순애보적인 정신이 가사에 잘 투영돼 있습니다."(<국제신문>, 2008년 12월 5일 자)

'희망'과 '그리움', '순애보'를 얘기하는 대목에서는 로맨티시즘이 느껴진다. 그런데 그는 오랫동안 공안분야에서 이름을 쌓아온 공안검사다. 당시 부산지검장이었던 그는 지난 7일 국정원 2차장에 발탁됐다.   

고 리영희 교수와의 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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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 국정원 제2차장 내정자. ⓒ 오마이뉴스

청와대는 지난 7일 서천호 전 국정원 2차장의 후임으로 김수민 변호사를 내정했다. 민경욱 대변인은 "형사, 공안, 외사 등 형사사법 분야에 서 폭넓은 경험과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고, 소탈하고 합리적 성품으로 주변의 신망이 두텁고 조직관리 능력이 뛰어나다"라고 발탁 배경을 설명했다. 경찰 간부(경기지방경찰청장 등) 출신인 서천호 전 2차장에 이어 공안검사 출신인 김 변호사를 발탁한 것이다.

김수민 신임 국정원 2차장은 오랫동안 검찰의 공안분야에서 일해왔다. 부산 태생의 김 차장은 경기고와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사법시험 22기(사법연수원 12기)로 검찰에 들어왔다. 부산지검과 대구지검 경주지청을 거쳐 1990년대 초반 서울지검 공안1부에 근무하면서 공안검사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김수민 2차장이 공안검사로 활약한 1990년대는 정치적으로 미묘한 시기였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세력 일부가 1990년 3당 합당을 통해 제도권력 안으로 들어갔다는 점에서 그렇다. 권위주의 정권이 서서히 민주파 정부로 옮겨가는 시기이기도 했지만, 검찰과 경찰, 안전기획부(안기부) 등 공안세력의 힘은 여전했다.

민주화가 진행되고 있었는데도 공안세력의 힘이 여전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1980년대 운동세력들이 정당 등 합법영역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지만, 적지 않은 세력들이 여전히 비합·반합조직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옥죄던 국가보안법이 살아있었음은 물론이다. '구공안'세력들이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는 토대가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김 2차장은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서울지검 공안1부에서 주로 국가보안법 등과 관련된 사건들을 처리했다. 서울사회과학연구소(서사연)사건,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사건, 반제반파쇼민중민주주의그룹(반제PD)사건,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김 2차장은 <사회주의 이론·역사·현실>, <한국에서의 자본주의 발전> 등의 책자를 발행한 서사연 소속 대학원생들에게 2~3년의 징역과 자격정지를 구형했다. 검찰은 이들이 발행한 책자들이 "북한을 이롭게 했다"라고 주장했지만, 이들은 북한 체제에 비판적인 운동그룹이었다. "학문·사상의 자유를 침해한다"라는 비판도 뒤따랐다.  

특히 <노동의 새벽>으로 유명한 시인 박노해씨의 부인이자 사노맹 중앙위원이었던 김진주씨에게는 국가보안법(반국가단체구성 등)을 적용해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2년을 구형하기도 했다. 김 차장은 당시 검찰 논고문을 통해 "시대착오적인 공산주의 건설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무장봉기를 통해 사회주의혁명을 기도한 피고인에게 중형을 내려 마땅하다"라며 중형을 요구했다.

김 2차장이 사형을 구형한 사건도 있었다. 그는 1993년 2월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으로 구속기소 된 최호경씨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며 사형을 구형했다. "남한혁명의 지도부로 활동해 국기를 뒤흔들었고, 구속된 뒤에도 반성의 빛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사형 구형의 이유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김 2차장이 공안검사로서 리영희(작고) 전 한양대 교수와 '악연'을 맺었다는 점이다. 1993년 1월 그는 1989년 <한겨레> 방북취재와 관련된 사건 항소심에서 리 전 교수에게 징역 4년에 자격정지 4년을 구형했다. 국가보안법(탈출 예비·음모 등)을 적용해 1심에서 선고한 형량을 유지한 것이다.

한편 2005년 서울지검 2차장 시절에는 소설가 조정래씨의 <태백산맥>과 최장집 고려대 교수의 <한국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를 둘러싼 국가보안법 고소·고발 사건에는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김 2차장은 <태백산맥>을 두고는 "북한의 주장과 유사한 표현들이 산재해 있으나 독자와 평론가로부터 예술작품으로서 객관적, 미학적 가치를 획득했다"라며 "그런 표현들은 자유토론과 상호 비판 과정을 통해 우리 국민에게 충분히 여과돼 받아들여질 수 있다"라고 전향적인 판단을 내렸다. 최 교수의 저서에도 "사실의 적시가 아닌 학문적 견해 표명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안기부에 약한 공안검사?

그렇게 국가보안법과 관련된 사건에 중형을 구형해왔던 김수민 2차장은 안기부 직원들의 야당 국회의원 후보 비방 유인물 배포 사건에는 약한 모습을 보여 입길에 올랐다.

경찰은 1992년 3월 21일 홍사덕 민주당 후보를 비방하는 흑색선전물을 아파트 단지에 배포하던 안기부 직원 4명을 구속해 이들의 신병을 검찰에 넘겼다. 특히 이들의 소지품에서는 현역 의원, 5공 관련 인사, 장·차관, 국영기업체 사장 등 90여 명의 차량번호가 적힌 명단까지 나와 '정치사찰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 사건을 배당받아 수사에 나선 김 차장은 1992년 5월 안기부 직원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검찰이 논고문을 통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국가정보기관원으로 상관의 허가 없이 후보자의 약점을 이용해 정치적 암살을 꾀해 중요한 국가기관의 명예를 떨어뜨리고 대외적으로 국가의 위신을 실추시켰다"라고 했음에도 구형량은 법정 최고형인 3년에 못 미쳤다. 

특히 검찰은 사실상 마지막 공판이었던 첫 공판에서 3분 만에 피고인 신문을 끝냈다. 형량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범행동기나 배후세력 존재 여부 등은 전혀 규명하지 않았다. 1992년 5월 9일 자 <국민일보>는 당시 공판 분위기를 아주 날카롭게 전했다.

"이들을 기소한 서울지검 공안1부 김수민 검사는 2개 항목으로 줄일 수 있는 질문을 구태여 4개 항목으로 쪼개 물은 뒤 한 피고인 등이 모두 '예'라고 짤막하게 대답하자 '이상입니다'라며 3분 만에 신문을 마쳤다. 그나마 신문사항은 모두 공소사실을 확인하는 것뿐이었고 배후관계에 대한 추궁이나 사건축소기도를 파헤치려는 열성도 찾아볼 수 없었다. (중략) 신속한 재판과는 달리 '준엄'하기까지 한 논고는 결국 법정최고형인 3년보다 1~2년씩 낮은 구형으로 끝났다. 실체적 진실이라는 형사소송법 정신이 간단하게 묻히는 순간이었다."  

'안기부에 약한 공안검사'의 면모는 1심이 끝난 뒤에도 드러났다. 안기부 직원들이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자 항소를 포기하려고 했던 것이다. 검찰의 '항소 포기' 방침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비판여론이 거세게 일자 김수민 차장이 뒤늦게 "1심 형량이 부족하다"라며 법원에 항소장을 냈다. 비판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였다.

또한 김 2차장은 1993년 현대목재의 국민당 선거운동 지원 의혹을 수사했다. 현대목재 임원들이 정주영 국민당 대표로부터 선거운동 지원을 요청받고 부하 임직원들을 연고지별로 휴가나 출장을 보내 선거운동을 벌이도록 지시했다는 것이 사건의 요지다. 정주영 대표의 지시 여부가 중요했기 때문에 그의 소환조사는 반드시 필요했다.

검찰 출석을 미루던 정 대표는 1993년 1월 15일에서야 검찰 소환에 응했다. 정 대표 조사에는 이종찬 당시 서울지검 특수1부장과 김수민 차장이 투입됐다. 조사는 4시간여 만에 끝났다. 국민당 쪽에서 정 대표의 미국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이유로 "낮 2시까지 조사를 마치고 귀가토록 해달라"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조사가 끝난 뒤 정 대표가 김 차장에게 "친절히 조사해줘 고맙다"라고 인사를 건넸다는 일화는 당시 조사 분위기가 어땠는지를 잘 보여준다.

"정 대표에 대한 5건의 대통령 선거법 위반 고소-고발사건을 조사한 김수민 검사실에서는 바깥의 긴장된 분위기와 달리 간간이 정 대표와 김 검사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해 화기애애한 분위기. 김 검사는 이날 정 대표가 들어오자 '다친 곳은 괜찮습니까'라며 서울지방법원 간호사를 불러 응급처치를 받도록 한 뒤 마치 '내방객'과 담소를 나누듯 조사를 진행했다고 한 관계자가 전언."(<세계일보>, 1993년 1월 16자)

이후 김 2차장은 음용기 현대목재 사장과 최갑순 상무에게 각각 징역 2년을, 정운학 부사장에게는 징역 1년 6월을 구형했다.

그의 좌우명 '상사망명'은 이루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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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내곡동 국정원 청사의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김수민 2차장은 서울지검 공안검사를 마친 뒤 대검 검찰연구관과 창원지검 충무지청장, 법무부 공보관, 대검 공안4과장,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지검 형사5부장, 대구지검 포항지청장, 춘천지검 차장, 부산지검 2차장, 서울지검 1·2차장, 대구고검 차장, 법무부 보호국장, 서울서부지검장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사법시험 22기 가운데 선두그룹이었던 김 2차장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당시 세 차례(2006년, 2007년, 2008년)나 검찰 인사의 '빅4'라는 대검 공안부장의 물망에 올랐다. 대부분 그의 사법시험 동기인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와 함께였다. 심지어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그가 대검 공안부장에 내정됐다는 오보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대검 공안부장 자리는 자신의 사법시험 동기(이준보)나 후배(박한철)의 차지로 돌아갔다.

공안 분야 최고 책임자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김수민 2차장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부산지검장과 인천지검장을 지냈다. 부산지검장 시절 재산공개에서는 부인 소유의 2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신고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사법시험 동기인 천성관 전 후보자가 비슷한 시기 서울중앙지검장에 이어 검찰총장 후보자에 내정되자 스스로 물러났다. 그리고 2009년 9월 법무법인 영진의 대표변호사로 들어갔다. 또 다른 공안검사 출신인 박만 현 방송통신위원장과 가까운 그는 지난 2월부터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위원장을 맡아왔다. 

김 2차장은 2009년 1월 인천지검장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20여 년 검사 생활을 하면서 '지금 하는 내 판단이 당대에 심판받는 것뿐만 아니라 먼 훗날 역사의 평가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해 늘 일 처리를 하는 데 엄숙함을 잃지 않으려 했다"라고 자신의 검사생활을 평가했다. 이어 자신의 좌우명인 '상사망명(上士忘名, 으뜸가는 선비는 명예를 바라지 않는다)'을 거론하며 "이름 알리기에는 신경쓰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국정원 2차장은 국내 정보수집과 분석, 대공수사, 대테러, 방첩 등의 업무를 지휘하는 자리다. 김수민 2차장이 오랫동안 공안분야에서 이름을 쌓아왔기 때문에 익숙한 업무일 수 있다. 하지만 댓글공작을 통한 대선개입, 간첩사건 증거조작 등으로 얼룩진 국정원을 개혁할 수 있는 적임자인지를 두고는 평가가 엇갈린다. "공안검사 출신을 중용하는 것은 국정원 개혁방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정보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공안검사 출신을 국정원 2차장에 발탁한 것은 공안을 중시하는 국정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중이 담겨 있다"라며 "다만 그동안 간첩사건 증거조작으로 검찰과 국정원의 갈등이 심했는데 김 차장을 발탁함으로써 공안 분야에서 두 조직의 협력관계가 복원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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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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